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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저택에 취직했습니다-89화 (89/150)

89화

“있지. 나는 소식이 궁금한 사람이 한 명 있어.”

그녀가 연못가 위로 양팔을 올려놓더니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이름은 루카. 성은 없어. 길거리 출신이거든.”

“음……. 다른 정보는요?”

“루카는 어릴 적부터 내 하인이었어. 나는 혼인을 한 후에도 그 애를 데리고 시가에 들어갔었지. 그 애가 없으면 결혼 생활도 그다지 재미없을 것 같았거든.”

“엄청 아끼던 사람이었나 보네요.”

“맞아. 아주 사랑했었지.”

“…….”

그 말에 나는 멈칫 몸을 굳히고 말았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 단순히 애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성애를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별건 아냐. 그냥 내 일방적인 감정이었어. 그땐 내가 이미 혼인한 후였기도 했고……. 그래서……. 그저 그뿐이었어.”

그러자 그녀가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픽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충 이해해 보자면 이랬다. 그녀는 혼인한 몸으로 그만 인정받지도 못할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하인을 향한 외사랑이었다.

“……그럼, 그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하세요?”

나는 조금 머뭇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사자에게 실패한 사랑 이야기를 묻는다는 것이 제법 껄끄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정작 그녀는 별스럽지도 않다는 듯 긍정의 대답을 했을 뿐이다.

“맞아. 난 그 애가 궁금해. 지금쯤 행복할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건 생각보다 소소한 바람이었다. 게다가 사람 하나쯤 수소문하는 것 정도야 그리 어렵지도 않을 성싶었다.

“그럼……. 그걸 알아봐 드리면 될까요?”

“정말?! 그래 줄래?!”

내 말에 그녀가 무척이나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큰일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정말로 기뻐하는 중이었다.

“정말 고마워! 사실 내가 직접 그 애를 찾아가 보고 싶긴 한데, 난 물 밖으론 나갈 수가 없는 몸이라서……. 물에서 죽는 바람에 물속에 갇혀 버리기라도 한 건가 봐. 이럴 줄 알았다면 물 밖에서 죽을 걸 그랬어. 선택을 잘못했지 뭐야.”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나는 문득 그런 그녀의 문장 속에서 이상한 흔적들을 발견했다.

선택을 잘못했다고?

그녀는 마치 그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설마 이 사람, 자살한 건가?

* * *

〈7/11. 카리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 하인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 애는 늘 아랫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는데, 혼란스럽다.〉

마님의 수첩 안을 살펴보고 있던 나는 의외의 내용을 발견해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곤 페이지의 가장 위쪽에 적혀 있던 글자를 다시금 읽어 내렸다.

〈카리나 반다르크〉

공작이 말해 준 연못 귀신의 이름이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건 너무도 이상했다. 그녀는 스스로 자살을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자살을 한 사람이 또다시 살해를 당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한 생에 두 번의 죽음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7/12. 카리나를 죽인 하인이 광장에 목이 걸릴 것이라 했다. 나는 그를 보러 갔다. 그리고 그제야 그 하인이 루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카가 카리나를 죽였을 리는 없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사형 집행을 막아 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결국, 루카의 목이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루카의 영혼은 그 자리에 있던 레반 반다르크에게 붙어 갔다.〉

루카? 그게 루카라고?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어쩌면 루카라는 사람이 억울한 모함을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군다나 쓰인 날짜를 보면 반다르크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겨우 하루 만에 그는 사형당하고 말았다. 귀족을 상대로 한 평민들의 범죄가 대체로 그렇듯 그는 재판조차 받지 못한 셈이었다. 어쩌면 그는 누명을 벗을 기회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7/13. 카리나의 장례식에 갔다. 육체는 있었는데, 영혼은 없었다. 승천한 모양이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8/22. 반다르크가의 행사에 참석했다. 의례적으로 보낸 초대장일 테지만 나는 무작정 행사에 참석해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카리나의 방을 둘러보다 연못 안에 카리나가 잠겨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 그 애는 승천하지 못했다.〉

〈10/2. 집 안에 연못이 완성됐다.〉

〈10/12. 폭풍처럼 비가 내렸다. 땅 위로 물이 가득 찬 오늘만이 기회였다. 행사 때 놓고 간 것이 있다며 반다르크가에 찾아갔다. 그렇게 카리나를 데려올 수 있었다.〉

〈10/14. 카리나가 루카의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나는 읽던 것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님이 친구를 승천시키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루카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도무지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건 꽤나 곤란한 일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 또한 연못 귀신에게 사실대로 말해 줄 자신이 없었다.

똑똑.

그때였다. 집무실 밖에서 짧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집사님이 벌컥 문을 열더니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런데 그는 늦여름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양손엔 장갑을 낀 채 코끝까지 목도리를 올리고 있는 상태였다.

“편지가 몇 개 왔습니다.”

그가 공작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말했다. 목도리에 가로막힌 그의 목소리는 꽤나 먹먹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어디서 온 거지?”

공작이 담담한 어투로 그에게 물었다. 나와는 달리 그는 집사님의 괴상한 차림새가 달리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 하나는…….”

집사님 또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양 자연스레 두 개의 편지를 양손에 들더니 발신인을 읽고자 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가 풀쩍 뛰어올라 집사님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편지 봉투 하나가 바닥으로 팔랑이며 떨어져 내렸다.

“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떨어진 편지를 내려다봤다. 언뜻 봉투 입구 쪽으로 황실의 직인이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이건 잘못 온 것이군요.”

집사님은 순식간에 그것을 주워 올렸다. 그러곤 빠르게 앞주머니 안으로 구겨 넣었다.

“아뇨. 그거 황실에서…….”

황실에서 온 편지를 험악하게 다루는 그의 행동에 나는 화들짝 놀라 말을 뱉었다.

“잘못 온 것이 맞습니다. 돌려보내야겠습니다.”

하지만 집사님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그는 남은 편지 하나를 공작에게 건네고는 고양이를 안은 채, 문 앞으로 되돌아갔을 뿐이다.

“나비 녀석이 방해됐겠습니다.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그러곤 고양이를 데리곤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뭐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서 손가락 끝으로 집사님이 나가 버린 문 쪽을 가리키며 공작을 돌아봤다.

“공작님, 집사님이 황실에서 온 편지를 그냥 구겨 버리셨는데요?”

“잘못 온 거야.”

“그런데 황실 직인이…….”

“황실에서 잘못 보냈나 보군.”

두 사람은 꼭 내게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황실 편지에 내가 알아선 안 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만 했다. 그러나 달리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 괜한 생각이겠지……. 황실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정말 잘못 왔을 수도 있지.

물론 집사님의 어색한 반응이 의아하긴 했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정말로 숨기는 게 있다면 숨기는 이유도 있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굳이 캐물어 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공작은 건네받은 편지 봉투를 뜯어 안에 있는 편지지를 꺼냈다.

“로라. 사람을 써서 루카라는 자에 대해 알아봤는데, 그에 대한 내용이 왔어.”

그러더니 두꺼운 편지지에 시선을 꽂은 채로 내게 말했다.

“뭐라고 적혀 있나요?”

“반다르크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는군.”

“아. 그거 마님 수첩에도 있는 내용이에요.”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루카라는 사람은 모함을 받아 사망한 것이 맞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는 씁쓸하게 입술을 물었다. 이런 불운한 소식으로는 연못 귀신의 미련을 풀어 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승천시키는 것 또한 불가능할 게 뻔했다.

“그냥 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해. 달리 방법도 없는 것 같으니.”

“그게 맞을까요……?”

“진실을 말해 봤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겠죠……. 그래도 걱정이네요. 이러면 승천시킬 수도 없을 테고…….”

“……로라. 이곳의 영혼들을 모두 승천시켜 주겠다는 생각은 안 해도 돼. 아니, 그러지 마.”

그런데 공작이 대뜸 의외인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 왜요……?”

“전에도 말했지만 난 널 이곳 영혼들을 승천시켜 달라는 이유로 고용한 게 아니야.”

“그렇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서요. 그리고 커버스할덴에도 귀신이 없는 쪽이 좋고…….”

이건 귀신들뿐만 아니라 공작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이곳의 귀신들을 모두 승천시킬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귀신들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공작의 얼굴에도 피로한 그림자가 지워질 것이다. 내게는 다 공작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알아. 네가 좋은 마음으로 그들을 승천시켜 주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여태 널 말리진 않았던 거지. 솔직한 말로 나는 네가 싫어할 만한 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거든.”

그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슬쩍 눈동자만 들어 그런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황태자 생신 연회 때 네가 쓰러진 걸 보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이곳 영혼들에게 그렇게까지 마음 쓰지 마.”

“……그게. 악령이라도 되면 안 되잖아요…….”

“황성에 살고 있던 그 노인은 건국 초부터 있었지만, 악령이 되지 않았어. 귀신들이 꼭 악령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한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렇게 대꾸한 공작은 한쪽 손으로 편지지를 들더니 팔랑거리듯 내게 흔들어 보였다.

“조사해 본 결과도 이렇게 나왔어.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반다르크 부인껜 루카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 아니면 잘살고 있더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 그냥 그렇게 잊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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