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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저택에 취직했습니다-106화 (106/150)

106화

우리는 곧장 장터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몇 걸음 더 걸어 나가자 달빛만 비치는 어스름한 골목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느새 세상엔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아 버린 후였다. 장에서 나오는 길에 벌써 해가 져 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주변을 마구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귀신이 나타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왜 그래요?”

소후작이 그런 나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둥의 표시를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의 어깨 너머로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저거?’

그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그가 살아 있는 존재는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소후작의 옆으로 찰싹 붙어 섰다.

“왜 그래요? 뭔가 있나요?”

“있어요. 그러니까 모른 척하세요.”

그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그러곤 정면만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소후작 또한 달리 다른 질문은 하지 않은 채 나를 따라왔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이 애석하게도 귀신은 저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존재를 인식해 버린 듯했다. 골목길을 지나갈 때마다 그 영혼이 자꾸만 나타나 내 시야에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남루한 차림의 그는 곧 번뜩이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악의가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충 봐도 악령, 혹은 악령이 되기 전 단계의 영혼인 것 같았다.

뭐가 어찌 되었건 이대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자칫 저 귀신이 나를 따라 집 안까지 발을 들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우리 집엔 어린아이들도 둘이나 있었다. 렌이라면 몰라도 로티나 라이언에겐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뻔했다.

“소후작님. 죄송한데, 좀 돌아서 가면 안 될까요?”

나는 소후작의 한쪽 팔을 붙잡아 우리 집 반대편으로 이끌며 속삭였다. 그러자 소후작은 그런 내 가벼운 손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 왔다.

“무슨 일이에요?”

“귀신이 따라와서요. 우리 집까지 오면 안 되니까, 따돌려 보고요.”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그걸 잘 모르겠어요. 자꾸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걸 반복하고 있어서요.”

“알았어요. 같이 가 줄게요.”

소후작이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우리는 골목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네를 아예 빠져나올 때까지도 귀신은 좀처럼 떨쳐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와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 오고 있을 뿐이었다.

“큰일 났어요. 귀신이 점점 가까워져요. 이러다간 나한테 귀신이 붙을 거 같아요.”

두려움이 커지자 절로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에 소후작은 내 팔목을 붙잡더니 자신을 향해 끌어당겼다. 그러곤 휘청거리는 내 어깨를 꽉 붙드는 것이었다.

“로라. 진정해 봐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방법……? 방법이라…….

그 말에 나는 소후작을 올려다보며 차분히 마음을 내려 앉히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곤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별다른 해결책은 나오질 않고 있었다.

“음……. 로라. 죽은 영혼도 살아 있을 때와 같다고 했죠?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에 잘 모인다고…….”

그때 소후작이 불쑥 끼어들어 내게 물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에 대한 저의가 무엇인진 알 수 없었으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럼, 혹시 장터로 다시 돌아가 보는 건 어때요? 사람이 많고 유령이 많으면 그 사이에 뒤섞여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어? 아!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

그 순간 나는 냅다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는 것이 옳았다. 미행을 따돌릴 때도 많은 사람 사이에 섞여드는 편이 쉽지 않겠는가? 그러니 귀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내가 귀신들이 바글바글한 장터의 한복판에 설 용기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소후작님……. 전 그러기가 좀 무서워요……. 분명 귀신이 많을 거라서…….”

우습게도 그랬다. 나는 누가 뭐래도 상당한 겁쟁이였다. 용기를 내기엔 콩알만 한 심장이 그 무게조차 견디지 못하고 똑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 제가 로라를 잘 붙잡고 가면 어떨까요? 가능한 한 무섭지 않게요.”

그러자 소후작은 낮은 듯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해 보려고 했다. 나는 잠시 눈만 끔뻑이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소후작의 한쪽 팔을 양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채였다. 겨우 한 명의 귀신을 보는 것조차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젠 수많은 귀신을 봐야만 하게 생겼다.

나는 잠시 고민하며 소후작에게서 손을 떼어 냈다. 그런데 그가 일순 내 팔을 붙잡더니 다시금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그에 나는 얼떨결에 도로 그의 팔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요. 이렇게 가면 아주 무섭진 않을 거예요.”

소후작이 픽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슬쩍 눈만 들어 그의 표정을 살피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소후작은 기운이 센 것 같으니 귀신들도 함부로 다가오진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에게 잘 붙어 있기만 한다면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을 성싶었다. 덧붙여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엔 꼭 저 귀신을 떼어 내야만 했으니 이젠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기도 했다.

“음……. 네. 그렇게 해요.”

그 후, 우리는 장터로 돌아갔다. 동네의 다른 골목길과는 다르게 그곳엔 인공적인 불빛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활기에 찬 얼굴로 밤거리를 배회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사이 사이로 이따금 피를 흘리고 있거나, 살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존재들이 섞여 든 것이 보였다. 역시나 밤을 타고 영혼들이 모여든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끔 소후작의 등 위에 숨어 조용히 그의 발길만 따라갔다.

“으아아아…….”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나는 쫄보인 주제에 왜 귀신을 볼 수 있어서 이런 고생을…….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을 애써 참으며 소후작의 팔을 꽉 붙잡았다. 소후작은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며 그런 나를 이끌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게 붙잡히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내 손등을 톡톡 두드리는 것이었다.

“로라, 무거우면 그냥 눈감고 갈래요? 내가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게 잘 모셔다드릴게요.”

“……그럼. 부탁할게요.”

아무래도 내가 너무 무서워하는 티를 내 버린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그의 말에 거의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그렇게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귀신들은 눈꺼풀 너머로 까맣게 사라졌다.

시야가 가려지자 요란한 사람들의 소리와 폭죽 소리가 유난히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손바닥 안으론 소후작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체온에 의지하며 애써 무서움을 떨쳐 냈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갔다.

“이봐요, 아가씨.”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그냥 귀로 듣기론 젊은 여성인 듯 보였다.

“거기, 빨간 머리 아가씨.”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그녀가 누군가를 콕 집어 이야기했다. 빨간 머리라면 나를 가리키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불쑥 호기심이 들었다. 하지만 선뜻 눈을 뜰 수는 없었다. 저 목소리가 사람이 맞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소후작님. 저 빨간 머리 찾는 목소리……. 소후작님에게도 들리세요?”

그래서 결국, 소후작에게 목소리의 행적에 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네. 저도 들려요.”

소후작이 대답했다. 들린단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이구나!

그제야 눈을 뜨고 고개를 돌아보자 붉은색의 옷을 입은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그 모습이 상당히 신비로운 감상을 주고 있었다. 꼭 다른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고만 있다 그녀를 향해 느리게 입을 열어 봤다.

“저……. 저를 불렀나요? 무슨 일이시죠?”

“그래요. 아가씨. 아가씨가 특별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불렀답니다.”

“네?”

“혹시 무언가 남다른 감각을 느끼고 있진 않으세요?”

“네?”

응? 귀신을 말하는 건가? 그런데 내가 볼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의아한 기분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마주 보며 매혹적일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롭게 보였다. 그래서 정말로 그녀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가씨. 그 운명 바꿔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녀가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그야 귀신을 보는 게 운명이라면 그런 운명 따윈 바꾸고 싶었다. 당연히 그들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말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아가씨의 미래, 그 운명을 그들에게 물어볼 수 있답니다.”

“그들이요……?”

나는 커다랗게 숨을 삼키며 더 귀를 기울여 봤다. 무작정 낯선 사람의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 일었다. 방법이 있다면 귀신을 보지 않길 바랐고, 공작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건…… 바로 이것을 사면 됩니다!”

갑자기 그녀가 좌판에 펼쳐 놓은 것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고개를 내려보자 그녀의 앞으로 네모난 나무 판들이 몇 개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위론 여러 가지 문자들이 적혀 있었다. 이래저래 조합하면 적절한 단어나 문장들을 만들 수 있을 성싶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엔 ‘맞습니다.’, ‘틀립니다.’와 같은 간단한 대답들도 쓰여 있었다.

“이게 뭔데요?”

“여기에 초를 켜고 주문을 욉니다. 그럼 당신의 주변으로 영혼들을 모을 수 있답니다.”

“……그거 설마 강령술인가요?”

“그들은 답을 알려 줄 겁니다.”

“……잠시만요……. 이거 위험한 거잖아요. 맞죠?”

나는 기가 막힌다는 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강령술은 꽤나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해 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내 말에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세를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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