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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저택에 취직했습니다-109화 (109/150)

109화

나는 건조하기만 한 렌의 태도가 불만스러워졌다. 그래서 짜증스레 그 애를 보챘다.

“야. 잘 봐 봐. 우리 로티, 어쩌면 대단한 신관이 될지도 모르잖아. 대신관까지 오를지도 몰라. 그럼 우리 집안에서 대신관이 배출되는 거지!”

“누나, 로테라는 정말 신력 같은 거 없는 것 같아. 얼마 없는 내 신력으로 느껴 본 바가 그래. 그러니까 너무 희망적인 헛꿈 꾸지 마.”

렌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물기가 묻어 있던 손을 탁탁 털곤 식당 밖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나는 눈을 갸름하게 뜨고선 로티를 돌아봤다. 렌의 말대로 로티에게 정말로 신력이 없다면 내가 어젯밤 본 것이 어디서 나온 힘인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건 팔찌에 달린 자그만 보석들에 담겨 있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도 거대했었으니까.

“참. 나 오늘 시장에서 일손을 돕기로 했어. 누나는 어차피 집에 있을 거니까 애들 좀 잘 보고 있어.”

내가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렌이 끼어들어 말했다. 놀랍게도 저 비실비실한 녀석을 계속 써 주겠다는 곳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에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저 애가 없는 동안 로티를 신전에 데려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알았어. 애들은 나한테 맡겨. 잘 다녀와.”

“아. 맞아. 그리고 로티 오늘 받아쓰기하는 날이야. 누나가 봐 줘. 잊지 말고 꼭 해야 해.”

“그럴게.”

그 말을 끝으로 렌은 문밖을 빠져나갔다. 나는 창가로 가 렌이 완전히 현관을 벗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손짓으로 로티를 불러왔다. 그러곤 그 애의 귓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받아쓰기 땡땡이치고 언니랑 어디 나갔다 오자.”

“좋아!”

곧바로 상당히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받아쓰기를 건너뛰게 된 상황에 무척 신이 난 모양이었다. 아이는 그대로 식탁 앞으로 뛰어가더니 부랴부랴 음식들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어차피 라이언 옷 갈아 입히고 나와야 해.”

“알았어!”

내 말에 로티는 입 안에 넣었던 스푼을 천천히 꺼냈다. 그러곤 느린 움직임으로 수프를 떴다. 그러다 건너편 자리에 서 있던 나를 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언니. 근데 어디 갈 거야?”

“음……. 신전에 갈 건데…….”

신전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로티의 신력을 확인해 보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신전 이야기를 하고 보니 로티가 신전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애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디저트 사 줄게. 전에 먹었던 거 엄청 맛있었다고 했지? 거기서 먹자.”

“응. 좋아. 그리고 언니 나 거기 가고 싶어!”

“거기라니?”

“옛날 우리 집! 우리 집 가 보고 싶어!”

“옛날 우리 집이라면 하이엔의 저택 말이지?”

“응! 거기!”

“음……. 갈 수는 있는데 들어가진 못해. 거기 이제는 우리 집도 아니고…….”

한순간, 우려되는 마음이 들어섰다. 로티는 다른 동생들과는 달리 옛집에 품은 애착이 진득할 정도로 강했던 아이였다. 그런 넷째에게 이젠 더 이상 ‘하이엔의 저택’에 들락거릴 수 없다는 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알아.”

그런데 로티가 의외인 대답을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그 애를 바라봤다. 곧이어 시무룩하게 입만 삐죽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하지만 달리 떼를 쓰지는 않았다. 요란하지 않은 그 반응이 꽤나 놀라울 지경이었다. 어느새 넷째가 단단히 철이 들어 버리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오빠가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우리 저택 다시 사라고 했어. 그러면 된대.”

아이가 고개를 주억이더니 말을 이어 갔다. 아무래도 렌이 집은 다시 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아이를 설득해 놓은 듯했다. 세상에! 나는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었다. 반면 렌은 로티를 완전히 설득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른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저 떼쟁이를 이렇게나 얌전하게 만들었다.

“좋은 생각이야, 로티! 돈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이 돼! 우리 부모님도 상단을 해서 돈 많이 벌었었어!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어!”

“응. 나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집 살 거야! 그럼 언니랑 오빠랑 라이언이랑 다 같이 살자. 알았지?!”

“그래. 그래. 그럼 나는 좋지.”

나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대꾸했다. 물론 부모님은 돈을 잃기도 많이 잃었었다. 결과적으론 쫄딱 망해 버리기까지 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것이니, 굳이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언니, 그럼 오늘 옛날 우리 집에도 가 보는 거지?”

“그래. 같이 가 보자. 일단 나 라이언 옷 갈아입히고 올게. 로티는 식사 다 하고 식탁 좀 정리 해둬.”

“알았어!”

내 말에 로티는 냅다 스푼을 입에 넣었고, 수프를 꿀꺽 삼켰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라이언을 안아 들곤 문밖을 나섰다.

* * *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운이 좋게도 눈에 익은 신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얼른 그를 붙잡아 로티의 신력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신관은 이게 또 무슨 상황이냐는 듯 나를 보긴 했지만 별다른 말 없이 로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곤 아주 조금의 신력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되돌려 주었다.

“한데……. 여기서는 거대한 신력이 느껴지는군요.”

그러다 로티가 들고 있는 나무 보석함을 가리키더니 말을 덧붙였다.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그를 바라봤다.

“네? 여기서요? 정말요?”

“네. 제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무 보석함 위로 손을 얹었다. 그러곤 무언가를 가늠해 보는 듯 작게 인상을 썼다.

“어……. 어떤가요?”

“확실합니다. 신력이 느껴져요. 게다가 이 정도로 거대한 힘은 난생처음 감정해 봅니다. 대신관께서 가진 것의 몇 배는 되는 것 같군요. 아무래도 이 보석함이 성물이거나 이 안에 있는 것이 성물인 듯합니다.”

“서……성물이요?”

“예. 이 정도 기운이라면 성물, 아니면 그에 준하는 것이라고밖엔 설명할 길이 없어요.”

“아아. 그럼…… 그 빛이…….”

나는 빠르게 귀신을 밀어냈던 환한 빛을 기억해냈다. 어머니의 유품이 어째서 성물인진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귀신에게서부터 우리를 지켜 준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일순, 울렁이는 듯한 기분이 올라왔다.

“빛이요? 이 보석함에서 빛 같은 게 나왔습니까?”

곧이어 신관이 의아하다는 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어젯밤의 기억을 돌이켜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노란…… 빛이었어요.”

“그렇다면…… 이 안에 ‘태양의 눈’이 들어 있나 봅니다. 성력은 본디 색이라는 게 없어요. 아마 노란 그 보석을 통해 노란빛이 번진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 정도 신력이라면 거의 주먹만 한 ‘태양의 눈’ 정도는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 말문이 꽉 막혔다. 어머니의 유품이 ‘태양의 눈’이라고 한다. 그리고 ‘태양의 눈’은 꽤나 비싼 축에 속하는 보석이었다. 게다가 신관의 말대로 그것이 주먹만 한 크기라고 한다면 그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높을 것이었다. 우리 집이 부유했던 시절,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다 털어낸다고 하더라도 구입하긴 어려울 게 뻔했다.

가만……. 우리 집이 언제부터 가난해졌더라……?

나는 자연스레 기억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어릴 적 내게 빙의한 귀신이 갑자기 악령이 된 일이 있었지……. 아마 그때부터였나……?

그래. 생각해 보면 그날 이후부터 하이엔가는 점차 가세가 기울어 갔던 것 같다. 어쩌면 부모님은 그때부터 무언갈 대비해 두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빙의가 쉬운 체질인 그들의 자식을 위해 신력이란 예방책을 갖춰 놓은 것이다.

맙소사…….

그러니까 모두 나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한평생 모은 재산은 보석 하나를 사는 데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로 인해 내 동생들은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을 누리지 못했다. 특히나 아이들이 성장기 때 삶은 감자만 주야장천 먹어 댔던 것을 생각하면 갑갑할 정도로 마음이 쓰렸다.

“한데 영애는 대체 이것을 어디서 구한 것입니까?”

그때, 신관이 손끝으로 보석함을 톡톡 두드리더니 내게 물었다. 나는 왈칵 쏟아질 것만 것은 눈물을 꾹 삼키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유품이에요.”

“……그렇군요. 어머니께서 영애를 많이 걱정하셨던 모양입니다. 영애는 빙의가 쉬운 체질이니까요.”

“네……. 그랬나 봐요.”

“잘 간직하고 있으세요. 어머니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네…….”

나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부모님이 어젯밤 악령으로부터 로티를 지켜 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건 로티가 보석함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저것이 우리 남매를 지켜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보석함 자체가 성물이 아니라면 이걸 부숴도 괜찮은 거지요? 사실, 이 보석함에 열쇠가 없거든요. 악령이 들어올 때 성력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 보석함은 그냥 없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들어 신관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이왕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뇨. 그러실 것 없습니다. 귀한 보석이니 눈에 보이게 두는 것보단 이런 낡은 보석함에 숨겨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신력은 본디 신성한 영혼의 힘입니다.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가로막히진 않습니다.”

그가 작게 손을 휘적이며 대답했다. 영혼의 힘이라. 그러고 보니 영혼 그 자체인 귀신들은 벽이 있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벽을 통과해 버릴 뿐이었다. 신력 또한 영혼의 힘이라 한다면 그와 비슷한 원리로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점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목걸이에 걸린 로켓에 ‘태양의 눈’을 넣었을 땐 로켓 사이로만 빛이 새던걸요?”

“그건 ‘태양의 눈’에서 나온 노란 파장이 로켓에 가로막혔기 때문일 겁니다. 신력 자체는 로켓을 통과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애께서 어제 봤다고 한 노란빛도 저 보석함 틈 사이로 빠져나온 것일 테지요.”

“아.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로티를 향해 고개를 내려봤다. 아이는 한 손에 보석함을 들곤 다른 쪽 손으론 라이언의 손을 잡고 있는 채였다. 그 둘은 큰 눈을 끔뻑이며 무슨 일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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