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어…… 오빠. 내가 머리 가져가서 그래? 미안해.”
난데없는 남자의 눈물에 션이 안절부절못하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 애는 냉큼 붙잡고 있던 머리를 그에게 밀어 건넸다. 그러나 나는 션의 행동이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목 없는 귀신이 울고 있는 것은 바로 나 때문이었다. 내가 그를 감정의 모퉁이로 몰아간 탓이었다.
“어…… 저기……”
난감한 기분에 그에게 어떤 말이라도 붙여 보려고 했다. 하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당장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와는 별개로 내가 그를 상처 입혔다는 사실이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며 양손을 그러잡았다. 더 이상 그를 심문해 볼 용기는 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님을 승천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고 있었다.
“이봐.”
그때, 공작이 테이블 위를 탕탕 두드리며 목 없는 귀신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잔뜩 온몸을 움츠렸다. 꽤나 안타까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공작은 달리 아랑곳하진 않았다. 그저 담담한 투로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 갔을 뿐이다.
“무슨 설명이라도 해. 네 사연이 그렇게 눈물을 쏟을 만한 것인지는 솔직히 상관없어. 우리가 아는 건 네가 살인자였다는 것뿐이거든. 퇴마 당하기 싫다면 자신이 위험한 존재는 아니라는 주장이라도 해 봐. 물론, 그걸 믿어 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가 냉정하고도 서늘했다. 그에 목 없는 남자가 서둘러 〈영혼의 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하나씩 하나씩 글자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의 손가락이 계속해서 같은 글자들을 맴돌았다. 하지만 공작이 한 질문에 대해선 어떤 말도 덧붙이질 못했다. 그는 곤란해했고, 또 고민하고 있었다. 감정이 복받쳐 스스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양 파들파들 떨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결심했다는 듯 손가락을 옮겨 갔다. 긴장된 마음 탓인지 평소보다 지극히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공작과 나는 그런 그의 손가락 끝을 눈길로 따라갔다.
〈저택에서…… 나가려는 시도는…… 몇 번 해 봤습니다. 스스로…… 여기를 나갈 수는…… 없었어요. 누가 저를……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어려운 것 같아요. ……나갈 수 없습니다……. 죽은 후에서야…… 평화로운 기분을…… 느껴요. 이 평화를…… 온전히 느끼다 그냥…… 바람에…… 풍화되듯 사라지길…… 바랍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있음은 느낄 수는 있었다. 어쩌면 내가 나약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지극히도 불안해 보이는 그 모습에 자꾸만 동요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곤란해. 당신을 이곳에 놔둘 순 없어. 입을 닫을 생각이라면 관둬. 내일 바로 퇴마를 하는 신관을 불러올 거다.”
반면, 공작은 무척이나 단호했다. 그는 그렇게 짧은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목 없는 남자는 다급해진 나머지 냅다 양손을 허우적 댔다. 그러다 거의 체념한 듯 양손을 떨어트려 버렸다. 그러곤 다시금 〈영혼의 서〉에 자신의 손끝을 가져다댔다.
〈그렇다면…… 저를…… 퇴마하세요.〉
어? 어? 뭐라고?
남자에게선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 나는 제법 당혹스러워졌다. 어찌 되었건 그는 스스로 이곳을 떠날 순 없는 모양이었다. 협박조차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퇴마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그렇게나 이승에 남아 있길 바라더니 포기하는 것이 지나치게 빠르지 않은가?
“어째서요? 이승에 오래 있고 싶다면서요. 스스로 위험하지 않다는 변명이라도 해 봐야죠.”
나는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붙였다. 내 물음에 뭐라도 변명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해 버린 양 기운 없이 〈영혼의 서〉를 두드려 대기만 했다.
〈이해……합니다. 나는…… 사람을…… 죽였지요. 위험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살인마……이니까요.〉
살인마의 영혼. 그래, 확실히 위험하다. 어쩌면 살인의 원인이, 혹은 살인 그 자체가 미련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죽어서까지 이승에 묶여 버린 것이라면 그는 당연히 위험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자꾸만 물어보고 싶었다. 살인의 이유와 그때의 감정이 궁금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몸을 떨고 있는 그에게 어떤 질문도 덧붙일 수 없었다.
“아뇨……. 됐어요.”
그래서 그저 한숨만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툭 던지듯 마음속에 있던 말을 하나 끄집어냈다.
“……안심해요. 퇴마는 못 해요.”
뭐, 어차피 퇴마를 하겠단 말은 거짓말이었다. 악령도 아닌 영혼을 퇴마시켜 줄 신관은 없었다. 아무래도 목 없는 남자를 내보낼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말이다. 정말이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눈앞의 남자가 기다려 보라는 듯 양손을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에 나는 자연스레 그에게로 시선을 맞추게 되었다.
〈저는……〉
그는 〈영혼의 서〉를 두드리며 또 한 번 문장을 만들어 냈다.
〈……아시다시피 살아 있을 적, 내 주인을…… 죽였지요. 제이먼 아우젠테스…… 그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건 놀랍게도 그가 살아 있을 적에 관한 이야기였다. 꼭꼭 숨기려고 할 줄만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괜찮은 건가……?’
어쩐지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만히 그를 지켜봤다. 그러자 목 없는 귀신은 곧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가 만들어 낸 문장에 따르면 그의 삶은 이러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아우젠테스에서 일했다. 그러다 열댓 살 때부터 가문의 차남인 제이먼 아우젠테스의 시종이 되었다. 제이먼은 훤칠한 키에 아주 잘생긴 남자였다. 게다가 누구에게든 친절해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단, 그에게만큼은 아니었다. 제이먼 아우젠테스는 가학성이 짙은 자였는데, 평소에는 그것을 숨기고 있다 에단을 통해 마구 배출해 냈던 것이다. 그는 밤마다 긴 채찍으로 에단을 때려 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에단은 저항할 수 없었다. 자신은 그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리는…… 이유는…… 터무니없었습니다. 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거든요……. 그러곤 눈물을 흘리며…… 제 손에…… 입을 맞췄고…… 신께…… 사죄했습니다…….〉
나는 그저 말없이 그의 문장을 읽어 내렸다. 고통스러운 사연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듯했다. 공작 또한 인상을 쓰며 한쪽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목 없는 귀신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몸이 너무나 아팠다고 한다. 상처가 깊어 열이 끓은 탓이었다. 그래서 그저 방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제이먼 아우젠테스가 채찍을 들곤 저를 찾아왔다. 그러나 에단은 주인의 모습을 보고도 인사조차 하질 못했다.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인은…… 가만히…… 누워 있는 나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찢어질 듯 웃었습니다……. 재미있다는 듯 내 얼굴…… 몸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다…… 옷을 벗겼습니다. 상처를 따라가는…… 손끝이…… 성적이었어요.〉
제이먼 아우젠테스는 느리고도 진득하게 에단을 좀먹어 갔다. 그렇게 행위가 끝난 후, 그의 주인은 채찍으로 그를 때렸고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 위로 새로운 상처를 만드는 것을 즐기기까지 했다. 에단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움을 구하고자 이리저리 시선을 돌아봤고, 때마침 문 쪽에 서 있던 하인들과 눈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그를 모른척해 버렸다.
다행히도 에단은 그날 죽지 않았다. 며칠을 앓았지만 다시금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주인의 손에 죽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목숨이 아까운 건 아니었다. 다만 죽고 난 후, 다시 태어나는 것이 두려웠단다. 기억하고 있는 모든 생이 불행하기만 했기에 다시 태어나도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마차 사고로 다리를 잃고 돌에 맞아 죽었던 삶, 매음굴에 팔렸었던 삶, 그저 일찍 죽어 버렸던 삶, 한평생 집 안에만 갇혀 살았던 삶…… 그 모든 환생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죽어 환생을 하면 또 어떤 불행이 찾아올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의 정신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했다. 그는 행복하고만 싶었다. 그렇기에 죽을 수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죽였습니다. 사고도……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가…… 죽였습니다.〉
살인에 대한 가감 없는 고백이었다. 한순간 목구멍이 꽉 막혀 오는 듯한 기분이 올라왔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 같았습니다. 퇴마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는…… 아닙니다. 난…… 여기 와서 가장 행복한데…… 이 집의 주인인 당신들은……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요……. 사실 저는…… 제가…… 불행했던 이야기만…… 했습니다. 불행에…… 잡아먹혀 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죠. 저를…… 가엽게만 봐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숨겨 봤자인 이야기입니다……. 맞아요. 저는 살인자입니다.〉
“…….”
〈저…… 그래도 앞으로는 가만히…… 있을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원한다면 돌아다니지도…… 않을 거고요. 저를…… 두렵게…… 여기지 마세요.〉
일순,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진 양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에게 동요되었기 때문인지 그가 제법 불쌍하게도 여겨졌다.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어요.”
방 안의 분위기가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침묵 속에 짓눌려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문득 목 없는 남자가 모든 걸 털어놓은 만큼 나 또한 솔직한 대화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협박으로 그를 쫓아내려고만 할 게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의 생각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