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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대공의 시한부 동생을 숨겼다-99화 (99/120)

제99화

잉거솔 저택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저택에 방문한 특별한 손님들 때문이었다.

그 손님들은 바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레이나가 칼릭스를 위해 초대한 다른 가문의 아이들이었다.

‘이 천사같이 생긴 아이들이.’

그녀는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칼릭스를 괴롭혔단 말이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시선을 주던 레이나는 자신을 해리라고 소개한 소년 앞에서 시선이 멈췄다.

‘얘가 주동자고.’

해리는 레이나가 그의 인삿말에도 대꾸 없이 빤히 보기만 하자 의아한 얼굴을 했다.

레이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다들 와 줘서 고마워. 즐거운 시간 보내렴.”

그녀는 칼릭스를 보았다.

“칼릭스, 네가 아이들에게 저택을 직접 구경시켜 줄래?”

고개를 끄덕인 칼릭스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레이나. 여러모로 바쁠 텐데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칼릭스는 레이나가 저택에 아이들을 초대해 대접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루키우스와 함께 바쁘게 움직이며 저택을 몇 차례나 비웠고, 대신전에서 치를 시험도 코앞이었다.

“오히려 더욱 신경 써 주지 못해 미안한걸.”

레이나가 칼릭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다른 가문 아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낼 때만 해도, 자신이 대신전에서 시험을 치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겨우 아이들의 일정에 맞춰 날짜를 조율했는데 바쁘다고 취소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잘됐어.’

레이나는 자신이 아이들 틈에 끼어 있는 것보단 칼릭스가 직접 나서게 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그렇다고 아예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지.’

레이나는 칼릭스의 옆에 있는 빌을 보았다.

그녀는 칼릭스와 등진 채 빌에게 속삭였다.

“빌. 너만 믿을게.”

빌은 레이나의 부탁으로 오늘 하루 칼릭스의 전담 시동으로 둔갑했다.

아이들이 칼릭스를 괴롭히는 상황이 오면 눈치껏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맡겨 주세요.”

빌이 한쪽 눈을 찡긋하자 레이나는 든든해졌다.

“저택을 소개해 줄게.”

칼릭스는 긴장하기는 했으나 떨지 않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를 따라 아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레이나가 지켜보던 때였다.

“백작 부부는 어찌하고?”

레이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정령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건 대공님께서 맡으셨어요.”

레이나는 정령의 옆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마틴이라는 자가 세 번째 제물을 원할지도 모른다고 했지?”

정령은 골치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 세 번째 제물을 샘의 정화 말고도 다른 일에 이용할 수 있나요?”

“내가 숨결을 불어넣기는 했으나 내가 오염되면서 그 힘도 사라졌을 것이다.”

정령은 평범한 인간이 이제 와 그 힘을 이용해 볼 수는 없으리라 판단했다.

“밀레이 백작 가문에서 그 물건이 가보로 내려져 온다면, 그건 나에게 받은 뜻깊은 물건이라 그렇겠지.”

“하지만 다른 가문에서도 그걸 원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아직도 그 물건이 특별한 줄 알 테니까.”

정령의 숨결을 불어넣은 물건이 특별한 힘을 가졌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걸 모르니 탐내는 것이다.”

혹은 희귀한 물건이니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거나.

“그럼 마틴도 착각하는 걸까요?”

밀레이 백작 가문의 가보를 손에 넣으면 특별한 힘이 생길 거라고?

정령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석연치 않아. 너희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틴은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더구나.”

밀레이 백작 가문의 가보를 갖고자 온갖 술수를 부린 마틴이었다.

정령은 마틴이 확신 없이 위험을 자처할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말끝을 흐린 정령이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것은 마틴보다 우리가 먼저 세 번째 제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나도 동의했다.

다만 릴리가 협조해 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릴리는 레이나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왔으나, 다른 가문들이 밀레이 가문을 노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제국을 위해서라도 밀레이 백작 가문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

정령의 말만 들으면 가보에 대단한 힘은 없을 텐데.

‘릴리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레이나는 당장 답을 구할 수 없는 의문 대신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다니엘부터 해결해야겠어요.”

“그 사기꾼 말이냐?”

“황제 폐하께서 다니엘을 찾아낸 조델을 대신관 자리에 임명할 예정이라는 말이 돌더라고요.”

“그자가 사기꾼 덕분에 제대로 황제의 눈에 들었구나.”

“마틴의 목적이 무엇이든, 다니엘의 신성력이 가짜라고 밝혀진다면 마틴의 입장은 아주 난처해질 거예요.”

조델과 마틴은 서로 협력하여 다니엘을 데려왔다.

사기극임이 밝혀지면 조델과 함께 마틴도 황제를 속인 죄를 피해 갈 수 없을 터였다.

“다니엘이 가짜라고 밝히려면 제가 신성력 보유자라는 것부터 확실히 인정받아야 하고요.”

정령이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나를 보았다.

“그래서 그 방법을 써 보겠다는 것이냐?”

정령은 레이나가 그에게 부탁했던 것을 떠올렸다.

“일단 알려 주신 방법대로 혼자 해 봤는데, 한계가 있어서요.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정령의 눈썹 끝이 축 처졌다.

“나 역시 너를 도와주고 싶으나, 그랬다간 내 힘이 금방 소모되어 버릴 것이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레이나가 싱긋 웃자 정령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한 번쯤은 저를 도와주실 수 있도록 정령님의 힘을 보충해 줄 방법이 있잖아요.”

“설마…….”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하루 세끼, 제가 만든 음식을 꼬박꼬박 챙겨 드시면 돼요.”

정령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 * *

그 시각.

아이들은 한창 칼릭스를 따라 저택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잉거솔 저택에 와 보다니.”

“우리 말고는 이곳에 와 본 아이들이 없겠지?”

감탄한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던 때였다.

“이것 봐!”

한 아이가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선물이라고 적혀 있어!”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뜨였다.

“칼릭스, 너는 매일 이 그림을 보는 거야? 좋겠다.”

칼릭스는 어리둥절했다.

아이들이 저택을 구경하면서 까탈스럽게 평가할 줄 알았지, 순수하게 부러워할 줄은 몰랐다.

사실 비슷한 수준이어야 비교하고 깎아내릴 수 있었다.

차이가 압도적이니 아이들은 그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대단한 저택을 구경한다는 특권에 더 심취해,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봤자 칼릭스가 이 저택의 주인도 아닌데.”

해리가 코웃음을 치며 그림을 보았다.

“어차피 저 그림도 잉거솔 대공님이 황제 폐하께 받은 거 아냐?”

“…….”

“이 저택에 네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잖아.”

해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동화책이나 애들 장난감은 다 칼릭스 거겠지만.”

칼릭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자 빌이 재빨리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칼릭스는 빌을 봤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얼른 입을 열었다.

“맞아. 우리 형은 대단해.”

“…….”

“그, 그렇게 대단한 형을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칼릭스는 얼굴이 붉어졌으나 꿋꿋하게 말했다.

해리의 미간이 살짝 구겨지던 때였다.

“그러고 보니 대공님의 약혼자분도 대단한 사람이라며.”

한 아이가 끼어들어 말했다.

“대신전에서 신성력 시험을 치른대.”

아이들이 다시 한번 놀랐다.

“칼릭스. 잉거솔 대공님의 약혼자분이 신성력 보유자야?”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

아이가 칼릭스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해리가 했다.

“만약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떡해?”

해리가 눈썹 끝을 내리고 과장되게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대공님의 약혼자는 거짓말쟁이라고 밝혀지는 거 아냐?”

“…….”

“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황제 폐하까지 속였으니 목이 날아갈지도 몰라.”

해리가 칼릭스의 겁먹은 얼굴을 기대하며 그를 보았다.

“해리 가트너.”

그러나 예상과 달리 칼릭스가 싸늘한 얼굴을 하고 있어 해리는 움찔 몸을 굳혔다.

“레이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

“너희를 초대하겠다고 적극적이었던 게 레이나인 건 알아?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소리를 하다니.”

칼릭스가 해리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해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가 복도 벽에 등이 닿았다.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그런 말 해 봐.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해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눈동자가 원래도 저렇게 붉었나?’

그는 칼릭스의 핏빛 눈동자가 무척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대답해.”

입술을 꾹 깨문 해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릭스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아이들을 보았다.

“내가 아지트를 만들어 둔 곳이 있는데, 거기도 구경해 볼래?”

언제 날을 세웠냐는 듯, 평소의 수줍음 많은 얼굴로 돌아온 그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멀거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칼릭스는 괴물 대공의 동생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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