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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몰빵 기사가 되었다-102화 (102/109)

제102화

“인맥이요?”

“인맥은 무슨. 이 새끼한테 인맥이 어디 있어? 그냥 또 체펠린 공작한테나 가보겠지.”

“크음….”

드라니의 반문에 시라흐가 핀잔을 줬다.

카엘은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포도를 우물거렸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체펠린 공작이 뭐. 어째서. 그 정도 끗발이면 좋잖아. 괜히 잔바리들 어? 무슨 무슨 백작이니 후작이니 그런 사람들 알 필요가 뭐가 있냐고. 내 말이 틀렸어? 총관?”

“아, 아니죠. 체펠린 공작 전하 정도면 최고죠. 근데 정말 이런 부탁을 하실 정도로 잘 아세요?”

“그냥 뭐. 좀.”

“오… 대단하십니다.”

총관은 카엘을 새삼스럽다른 얼굴로 쳐다봤고, 카엘은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거 아니야.”

“아무튼 그럼 빨리 가서 부탁을 좀 해보시죠. 카직스로 출발하는 일정을 미룰 수는 없어서 오늘 내일 중으로는 반드시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알겠다고. 시라흐. 드라니. 가자.”

“네. 가시죠. 카엘 경.”

“난 왜? 난 빼줘.”

먼저 일어선 카엘의 뒤를 드라니는 선뜻 따라나섰는데, 시라흐는 벌러덩 드러누운 채로 요지부동이었다.

“뭐야? 넌 왜 안 가?”

“통행증은 너네들이 발급 못 받았지 내가 발급 못 받았냐고. 내건 있거든. 너네들만 갔다 와. 나는 잠이나 더 자야겠으니까.”

“어…. 그게 맞긴 해. 알았어. 갔다올게.”

“카엘 경. 저새끼 혼자 저렇게 둔다고요? 치사하게 혼자만 저러는게 말이 되나요? 우리만 개고생을 하고?”

선뜻 수긍하고 돌아서려는 카엘을 드라니가 붙잡았다.

“근데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쟤는 통행증 있다는데 뭐.”

“그것도 맞긴 한데. 그래도…”

“뭐 어쩌라고.”

“아, 아니에요.”

자신은 해당사항이 아니라서 안 가겠다는데야 딱히 할 말은 없었다.

*     *      *

“…무슨 일로 찾아왔나?”

“잠시만요. 목 좀 축이고….”

카엘은 응접실에서 체펠린 공작과 마주한 채로 차를 홀짝였다.

다행히 체펠린 공작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먼저 묻고 싶은 것을 물어도 되겠나?”

“네, 뭐. 그러세요.”

“자네 짓인가? 아니. 아니. 그건 자네 짓이겠지.”

체펠린 공작은 질문을 하다말고, 스스로 납득을 하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가요?”

“코번트리 저택 말이네. 그날 있었던 일.”

“아…. 그거요. 저 아닌데요?”

“시치미 떼지 말게. 왕실 군사 정보청에서 이미 여러 가지 증거나 증언을 토대로 이도류를 쓴 자가 흉수 중에 있었다고 결론을 내었어.”

“아… 그런가요? 근데 뭐 이도류가 꼭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뻔한 거짓말은 되었네. 왜 바로 떠나지 않은 겐가? 바로 론디니아를 떠나라고 했을 텐데?”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떠나야죠.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그래서 오늘 이렇게 공작 전하를 찾아뵌 것이고요.”

“뭐라고…?”

체펠린 공작이 미간을 좁혔다.

카엘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론디아 왕국을 좀 떠야겠는데, 지금 통행증이 안 나온답니다. 코번트리 탁시스 공작이 손을 썼다네요.”

“지금 그래서 통행증을 발급해달라고 나를 찾아온 겐가?”

“네! 그렇습니다.”

“뻔뻔하군. 론디니아를 떠나라는 내 말은 무시하고, 또 일은 혼자서 멋대로 저지르고 이런 부탁을 한단 말인가?”

“그건 죄송합니다. 근데 또 이제는 진짜로 떠나려고 하는데….”

“해주겠네.”

“네?”

“도와주겠다고. 통행증 발급을.”

“어…. 진짜요?”

카엘은 너무 의외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솔직히 뻔뻔하다고 질책하는 체펠린 공작의 말이 틀린 게 아닌지라,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쉽게 해주겠다고 하니 오히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농이나 할 만큼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그건… 아니겠죠. 혹시 이게 좀 필요하신가요? 필요하다면 얼마나…? 많이는 못 드리는데…/”

카엘은 오른손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늘 그렇듯 뇌물이 필요하냐는 뜻이었다.

“얼마나 줄 수 있나?”

“네? 진짜 이거였어요? 아… 진짜 많이는 못 드리고요. 제가 돈이 별로 없어가지고요. 요새 돈 없어서 퀸스베 상회에서 공짜로 지내고 있거든요. 아무튼 그러면…”

“농담이네. 이건. 돈은 필요 없네.”

“아… 하하. 그렇죠? 하아. 다행입니다. 정말. 그럼 그렇죠. 공작 전하께서 돈은 무슨!”

“대신 이걸 가져가게.”

딸각.

체펠린 공작이 목함 하나를 열더니 자그마한 돌 하나를 꺼내 카엘에게 내밀었다.

매끈하고 투명한 돌이었다.

“이건….”

카엘은 체펠린 공작이 건네준 돌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호출석.

보통 두 개가 하나의 쌍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하나로 다른 하나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돌이었다.

그리고 그 신호를 보내는 것은 대륙의 끝과 반대편 끝에서도 가능할 만큼 거리는 상관없었기 때문에 한 쌍의 호출석은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다.

“그게 뭔지 알겠나?”

“호출석 아닙니까?”

“알아보는군. 견문이 제법 있는 모양이네.”

“그거야 뭐. 근데 이걸 왜 제게 주시는 겁니까?”

호출석을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걸 지금 왜 주는지가 궁금했다.

“간단하게 말하겠네. 요새 국내 정세가 그리 좋지 못해.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탁시스 공작이 언제 군을 일으켜서 론디니아로 들이칠지 몰라. 정세가 급박해졌어.”

“네? 탁시스 공작이 반란을 일으킨다고요?”

“안 그래도 살얼음판이었는데, 자네가 불을 당겼거든. 론디니아의 코번트리 저택이 당했으니 탁시스 공작으로서는 론디니아를 들이칠 좋은 명분이 되겠지. 군을 일으키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 당장은 아니겠지만 1년이나 2년. 어쩌면 6개월 내가 될지도 몰라.”

“…그래서 제 탓이다?”

“자네 탓이 없지는 않지.”

“그거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지금 하시는 말씀들 제게 왜 하는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호출석은 또 뭐고요.”

“만약 탁시스 공작이 정말 군을 일으켜서 론디니아를 들이친다면, 그때 이 호출석으로 자네에게 신호를 주겠네.”

“…그래서요?”

“그때가 되면 자네가 론디니아와 나를 돕게.”

“…그건 아니죠. 제가 왜요. 통행증 하나로 뭘 얼마나 뽑아먹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체펠린 공작의 말은 5만의 군세를 이끄는 코번트리에 맞서달라는 말이었다.

단순히 복면을 뒤집어쓰고 코번트리의 저택을 습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딸그락.

체펠린 공작은 차분한 표정으로 찻잔을 다시 홀짝이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금 왕실 군사 정보청에서 차단하고 있는 정보를 탁시스 공작이 알게 되면 그 칼끝은 자네에게 향하게 되어있어. 어쩌면 이미 확보했을 수도 있겠지. 자네가 한 짓이 아니라는 어설픈 거짓말은 더 이상 하지 말게.”

“…….”

체펠린 공작은 이미 카엘이 했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거의 반쯤은 시인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자네 실력이라면 이건 어쩌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탁시스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것을 진압하는데 자네가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면. 그때는 코번트리 공작가의 대영지를 분할하게 될 거야. 그중 한 축을 자네가 가지게 되겠지.”

“그건….”

솔직히 이건 좀 혹했다.

어쩌면 백작령을 확보하고 백작으로 승작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최상의 경우로만 상황이 흘러갔을 때였고.

상대는 론디아 왕국 최강 세력의 코번트리 가문이었다.

이기면 백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면 멸문이었다.

물론 목이 잘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자네가 선택을 해. 그때가 된다면.”

“…근데 그런 위험이 있다면 왜 저를 내보내는 겁니까? 오히려 론디니아에 붙잡아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자네가 외부에서 변수가 되어주길 바라거든. 5만의 군대가 론디니아를 물 샐 틈 없이 포위한다면, 그때는 이 론디니아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런 건가….”

“어쨌든 통행증은 발급해줄 테니, 이 호출석을 가져가게. 신호가 울렸을 때 선택은 자네 몫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엘은 체펠린 공작이 건네준 호출석을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서려는 카엘에게 체펠린 공작이 덧붙였다.

“물론 내가 자네라면 당연히 론디니아와 나를 돕는 선택을 하겠네. 어차피 론디니아가 무너지고 나면 다음은 자네 차례가 될 테니까.”

“그것도 고려하겠습니다. 아, 근데 필요한 통행증은 두 장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가는 길이 좀 멀어서요. 제니스 왕국까지 갈 거라 호출석이 울려도 진짜 오고 싶어도 못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너무 원망은 마세요.”

“그것 역시 자네 선택이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다행이고요.”

*     *      *

과연 체펠린 공작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체펠린 공작이 통행증을 발급해주겠다고 한 후, 퀸스베 상회 총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통행증 두 장을 즉각 발급 받아왔다.

카엘과 드라니의 몫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퀸스베 상회의 카직스행 일정에 따라서 카엘 일행도 상단 행렬에 몸을 실었다.

안 그래도 총관이 카엘 일행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카엘이 공인된 검투 대회 우승자인 터라 카직스까지 가는 여정이 카엘 일행에게 편하게 이어졌다.

최고급 마차 안에서 가져다주는 음식이나 먹다가 자잘한 몬스터나 강도떼의 습격 따위는 퀸스베에서 고용한 용병들이 알아서 처리를 해줬다.

“끄윽. 매일 이렇게만 갔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나설 일이 없으니까 너무 편한데요.”

드라니가 고기 두 접시를 비우고 배를 두드렸다.

“아이씨. 저 새끼 입 막아. 재수 없게.”

카엘은 시라흐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해야 하나.

분위기가 좋을 때는 그것과 관련된 말을 아예 안 하는 게 좋았다.

매번 그러다 여행도중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게 한두 번인가?

시라흐도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즉각적으로 드라니의 입을 틀어막았다.

“좀 닥쳐 이 새꺄.”

“우욱. 우… 뭐, 뭐야?! 내가 뭘 잘못 한 거야!”

“좀 닥치라고.”

“움! 우욱!”

탁! 탁!

시라흐가 한창 드라니의 입을 틀어막고 있을 때였다.

불안함을 전주하는 듯 마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두어 번 울렸다.

“뭐, 뭐야?”

딸칵.

“아, 카엘 경. 이것도 좀 드셔보시라고요. 케이크 인데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불안함으로 급격히 흔들리는 카엘의 동공 앞으로 총관이 케이크 한 접시를 내밀었다.

“케, 케이크야?”

“네… 케이크인데요? 싫어하세요?”

“다른 건 뭐 없고?”

“네. 아직은요. 급한 일 있으면 부르겠습니다. 그때 좀 도와주세요.”

“어… 그, 그래.”

“그럼 이건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딸칵.

“하아….”

“크하…”

총관이 마차 문을 닫고 다시 나가자 카엘은 물론 시라흐까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카직스 왕국으로 가는 국경에 도착할 때까지 카엘 일행이 나서게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카엘 경! 도착했습니다! 내리셔도 됩니다!”

“뭐야? 벌써?”

“네!”

“알았어!”

딸칵.

혹자는 대륙 최강자라고도 하는, 검의 포퍼가 있는 나라.

카직스 왕국을 앞두고 카엘 일행은 차례로 마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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