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52/497)

인연

항구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하다.

거대한 돈이 오가는 곳으로 부를 따라, 명예를 따라 도시를 찾은 자들이 황촉 불빛 아래를 거닌다. 하룻밤 쾌락을 좇아서.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듯 사람이 사는 곳에 보기 좋고 예쁜 것만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그 불야성의 이면에는 짙은 그늘이 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못 하고 어두운 거리를 걷는 소녀도 도시가 품은 어둠이었다.

“언니이... 우리 어디가아?”

“집, 집으로 가야지.”

“엉? 아... 집! 집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꽉 잡은 제 언니 손에 의지해 따라오는 아이의 모습에 아디라는 저미듯 가슴으로 번지는 서러움을 느끼며 다시 눈물 흘렸다.

이 착한 아이는 세상모르고 자다 덜컥 끌려 나오고도 싫은 내색 하나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

“근데 고양이 아저씨는?”

“어, 어?”

“고양이 아저씨한테 인사는 하고 시픈데.”

갑작스러운 야반도주에 별달리 이유도 묻지 않던 것은 아마도 익숙해서일 것이다. 몇 년 살지 못한 짧은 생이었다지만, 이런 일은 몇 번이고 있었으니까.

이제 좀 잠이 깼는지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던진 순진한 질문에 주저앉은 건 오히려 아디라였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는 동생의 순진한 모습과 그러지 못하고 도망칠 길부터 찾는 자신이 비교되어 견딜 수 없었다.

“어, 언니. 울어?”

“아냐. 그냥 눈에 먼지가 좀 들어갔어.”

“바람도 안 불었는데.”

그제야 아디라의 얼굴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알아챈 동생의 물음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키가 껑충 큰 고양이는 부드럽고 따듯했다. 봄바람처럼. 그래서 기대고 싶었다. 믿고 싶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언니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아무튼, 가자. 집으로.”

“웅. 고양이 아저씨는?”

“그만, 그만해. 고양이 아저씨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

거짓말이었다.

난생처음이라고 말하면 거짓이겠지만, 대체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고기로 가득한 저녁은 행복했다.

아디나는 신나서 마구 먹다 배가 산처럼 불렀고, 아디라도 참지 못하고 평소보다 과식해버렸다. 울고 웃으며 감정 소모가 많은 하루를 보내다, 배가 가득 차자 졸음을 견디지 못한 동생은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하루하루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뾰족해진 마음이 녹아들 것 같은 시간이었다.

아디나를 데리고 아직 이름도 모르는 고양이가 잡아준 방으로 들어가는 길, 아디라는 분명히 들었다.

어려운 일이, 괴로운 일이 있다면 기대라고, 아스라이 다가와 흩어져 사라지는 목소리를.

원한다면 이곳에서 함께 머물러도 된다는 말을.

“이상하다. 아저씨가 내일도 아디나랑 놀아준다고 했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 그보다 빨리 가자. 이러다 내일 늦잠 자서 허탕 치겠어.”

“응! 알았어!”

바보도 안 믿을 거짓말에도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의 모습에 아디라는 손에 힘을 꽉 줬다.

이 아이는, 엄마가 남긴 마지막 흔적인 이 아이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몇 번이고 기회를 받고도 결국 고양이 씨를 배신하듯 도망쳐야 하는 자신이 미웠다.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믿음이라는 도박의 대가는 아디라 혼자만이 아니었으니까.

“엄마...”

“엄마? 엄마 왔어?”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부른 그녀는 옆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동생을 보고 눈치도 없이 흐르려는 눈물을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아디라에게 삶이란 겨울이었다.

엄혹한 바람이 살갗을 에고 눈보라가 온기를 앗아가듯, 그녀에게 자꾸 무언가 뺏어가기만 하는 잔인하고 무서운 무언가였다.

적어도 엄마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난 후에는 늘 그랬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이웃이 문을 부술 듯 쳐들어와서 알지도 못하는 빚을 이야기할 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뭔가 오해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인데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뭔가 불결한 것을 보듯 경멸하는 시선을 모르고 자랐던 건, 엄마라는 벽이 앞에서 모진 풍파를 대신 맞아줬기 때문이었다.

그 벽이 없어진 자매는 맨몸으로 시지라는 낙인과 차별, 모멸을 받아내야 했다.

“아냐, 가자. 언니가 전에 말했지? 엄마는 언제 온다고?”

“백 밤 지나고! 아디나 선물로 맛있는 거 많이 들고 온댔어!”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갑자기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지. 그래도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고 종종 먹을 것도 나누던 사이였는데.

돌이켜 보면 뭔가 주는 건 언제나 엄마였다. 어려운 살림에서도 엄마는 자매를 위해 대가를 지불했던 것이다.

덕분에 아디라는 이웃의 탈을 쓴 악마들에게 거리로 쫓겨나 세상의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동생과 자신이 왜 그토록 모진 대우를 받아야 했는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자매의 허리에 있는 발그레한 반점 때문이었다.

종종 찾아와 돈을 빌리고도 갚지 않은 것도, 음식을 받아 가고도 엄마가 죽자 안면박대한 것도 그래서였다.

자매가 시지니까. 시지에게는 그래도 되니까.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들을 쫓아내고 집을 뺏는 것도 마찬가지. 그게 시지의 집이라면 뺏어도 된다.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들 손뼉 치며 좋아했다. 더러운 악마들을 쫓아냈으니까.

“그래. 가자, 빨리. 언니 피곤해.”

“응! 집으로 가자!”

잔인한 태도는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단 하나도, 예외는 없었다.

갑자기 길바닥으로 내쳐져 구걸로 생계를 잇게 된 자매에게 연민을 표하던 사람도, 반점을 보는 순간 얼굴을 싹 바꿨다.

웃음 대신 싸늘한 조소로, 연민 대신 경멸로.

그런 세상에서 반점을 보고도 부드럽게 대해주는 사람은 오히려 더 위험했다.

지금보다 더 어려 말도 어눌하던 아디나가 크게 앓던 어느 날, 자매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매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약을 먹이고 밥도 줬다. 허리춤의 반점을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오히려 얼마나 괴로웠냐고 눈물이라도 흘릴 듯 자기가 더 아파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덧없이 하늘로 돌아간 후 처음 받아보는 호의에 세상의 쓴맛을 보고 나날이 독기를 키우던 아디라가 경계를 푼 건.

오랜만에 등에 댄 부드러운 침대가 불편해서인지 잠에서 깬 아디라가 제 부인과 더러운 계획을 논의하던 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자매는 암흑가 어딘가로 팔려 갔으리라.

발목에 사슬이라도 달린 채, 사내에게 범해질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됐을 터. 다시 생각해도 무사히 피할 수 있었던 건 천운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디라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으히히, 언니!”

“왜.”

“고양이 아저씨가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디 갔잖아?”

“어.”

“일 끝나면 다시 오겠지? 그러면 좋겠다!”

아디라는 목소리가 잠겨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소매치기하다 걸린 주제에 바락바락 대드는 그녀와 동생에게 보인 그의 호의가 진심이라는 건.

그래서 이렇게 도망쳐야 하는 자신이 미웠다. 그를 믿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지금이라도 그가 기다리는 여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아올라 온 가슴을 적실 것만 같아서, 아디라는 짐짓 싸늘하게 대꾸하며 동생의 손을 잡아챘다.

“언니도 몰라.”

“힝. 언니가 모르는 것도 있구나.”

아디라는 칭얼대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재주가 없는 한, 말과 행동만으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니 믿음은 도박이다.

자매를 팔아넘기려던 남자도 목소리는 진심처럼 들렸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도박으로 잃는다고 해봤자 재산 정도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두 자매가 잃을 건 그녀들 자신뿐이다.

그러니 아디라는 도박 따위 할 수 없었다.

“어, 리카르도 오빠다. 오빠!”

폭풍우 치는 바다를 떠도는 배처럼 흔들리는 마음으로도 자매는 요리조리 도시의 골목길을 잘도 헤쳐갔다.

외지인은 배가 없으면 다닐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로처럼 뻗은 수로는 다리로 연결되어 도보로도 어디든 갈 수 있다.

평생을 안코나에서 보낸 자매는 당연히 어둠 속에서도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단단한 육지 위에 건설된 구도심 대신 펄 위에 말뚝을 박아 땅을 만든 신도심에 들어선 지 오래되지 않아 자매는 집에 도착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허름한 건물 비슷한 것 앞에는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아디나가 소리치자 그는 돌아서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희, 무사했구나. 소매치기하다 잡혔다고 들었는데.”

“웅! 고양이 아저씨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목욕도 하게 해줬어!”

“아니, 그보다 지금 여기서 이러면 안 돼. 빨리.”

“빨리, 뭐?”

쇠를 긁는 것처럼 불쾌한 목소리가 서늘한 밤공기를 울렸다. 아디라는 그제야 리카르도의 거구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사람을 발견했다.

쪼그려 앉아있다가 일어났는지 다리를 두드리는 사람은 썩 이상하게 생긴 건 아니었다.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얼굴이었다. 턱부터 눈 바로 아래까지 가로지르는 흉터가 없었다면, 한두 번 마주치고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아디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아디라도 입술을 깨물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야, 너 요새 좀 막 나간다? 내가 바로 뒤에 있는데 빨리 뭐? 내가 눈뜬장님으로 보이냐?”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닌데? 새꺄, 잘해라? 그리고 너희.”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거북해지는 목소리에 아디라는 동생의 손을 잡고 얼어붙었다. 놈은 포식자 앞에 선 사냥감 같은 자매의 반응을 보며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운 좋다? 고양이 아저씬지 뭔지는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손목은 잘릴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 너희 더러운 핏줄을 생각하면 애새끼고 뭐고 죽는 게 맞지 않냐?”

“이익!”

반발심에 주먹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서는 아디라를 보며 놈은 피식 웃었다.

“이익, 뭐? 꼴에 더럽단 말 들으니까 기분 나쁘냐? 아직 정신 못 차렸나 보지? 오랜만에 개처럼 맞아 볼까?”

언젠가 놈은 기분이 나쁘다며 아디라를 두들겨 팬 적이 있었다. 그것도 죽일 기세로 무자비하게. 아디라는 놈에게 맞고 나서 꼬박 일주일을 앓다 간신히 일어났고 아디나는 매일 엉엉 울었다.

그날 이후로 자매는 놈만 보면 고양이 앞의 쥐가 되어 움츠러들었다.

“형님, 그만해 주십시오. 애가 놀랐잖습니까.”

“이 새끼가!”

리카르도가 놈을 제지하려고 해봤지만,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놈은 리카르도의 뺨을 한 대 치더니 그걸로도 분이 덜 풀렸는지 몇 대 더 후려쳤다.

“야, 네가 나보다 키 좀 크고 힘 좀 세다고 뭐라도 된 것 같냐? 조직에 들어오면 뭐, 바로 위로 치고 올라가실 유망주께서는 선배도 안 보이나 봐?”

“아닙니다.”

놈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리카르도가 아무것도 못 하고 얻어맞는 모습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막을 알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 하리라.

놈의 뒤에는 조직이 있었다. 반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잔혹하고 거대한 조직이.

리카르도는 터진 입술을 쓱 닦고 가만히 고개 숙였다. 혼자라면 조직이고 뭐고 날뛰다 죽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네가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애새끼들 생각도 해야지. 나 같은 버러지한테 처맞는 게 꼬우면 그딴 애새끼들 버리고 지금이라도 조직으로 들어오던가.”

“파울로 형님, 그건 이미 다 얘기된 거 아닙니까.”

“아, 그래. 알았다, 우리 형님이랑 다 얘기해뒀다고? 나 같은 말단이 뭘 어쩌겠냐. 그래도 새끼야, 처신 잘해라. 알지? 너 없으면 걔들은 다 죽는 거야.”

리카르도에게는 돌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홀로 거리를 떠도는 처지. 자신과 비슷하지만, 덩치도 힘도 타고나지 못한 녀석들이 안타까워 거둔 아이들을 생각하면 멋대로 날뛸 수 없었다.

놈은 그런 리카르도를 보며 혀를 한 번 차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자매에게 돌렸다.

“그리고 좆 같은 시지년들아. 상납금 떼먹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안 떼먹었어! 상납금은 다 냈다고!”

“그럼 이건 뭔데?”

놈이 들어 올린 손에 매달려 대롱대롱 흔들리는 더러운 포대를 보고 아디라는 입을 틀어막았다. 잡히면 손목이 잘릴 위험을 감수하고 남의 주머니를 털어 한 푼 두 푼 모아둔 돈이 든 주머니였다.

“이! 내놔! 우리 거야!”

“오, 잘하면 한 대 치겠다? 이게 왜 너희 거냐? 상납금 안 내고 숨겼으면 당연히 조직 거지.”

“닥쳐! 그 잘난 상납금은 한 푼도 안 빼먹고 다 냈다고! 그건 우리가 먹고 싶은 빵 한 조각 안 먹고 모은 돈이라고!”

“아, 그래? 내가 실수했네. 그렇게 어렵게 모은 돈인 줄 몰랐지. 자.”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건지 얼굴을 싹 바꾸고 돈이 든 포대를 내미는 놈의 모습에 아디라는 흠칫했다.

분명히 뭔가 꿍꿍이가 있는 짓이었지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 돈은 아디나의 미래다. 동생을 이 끝나지 않는 겨울에서 빼낼 동아줄이다.

그녀는 주춤주춤 놈이 내민 포대로 다가갔다.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포대를 잡으려는 찰나 눈앞에 있던 포대가 사라졌다.

“어딜, 개만도 못한 년아. 너희가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는 내 알 바 아냐. 중요한 건 너희는 시지고, 돈 같은 건 모을 필요도 없고 모아서도 안 된다는 거지. 그러니까 이 돈은 상납금을 빼돌린 게 맞아.”

“이, 이! 개새끼야!”

누렇게 뜬 이를 드러내고 이죽거리는 모습에 아디라의 분노가 결국 두려움을 이겼다. 격분해서 달려드는 소녀에게 놈이 취한 행동은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거친 손바닥이 작은 소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그녀 앞에 쪼그려 앉은 파울로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비아냥거렸다.

“이래서 시지는 안 돼. 하나같이 멍청해서 해도 되는 행동이랑 안 되는 짓을 구분 못 한다니까. 어쭈? 눈깔 안 깔아? 밤에 칼이라도 들고 찾아올 기세네?”

“씨발, 내가 못 할 것 같아?”

“아, 그래? 그러면 죽어. 난 쓸데없이 후환 안 남겨. 너 같은 년 하나, 아니 둘 뒤져서 나자빠진다고 뭐라고 할 놈도 없고.”

놈은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아래로 찔렀다.

아디라의 눈동자에 섬뜩한 칼날이 가득 들어찼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날카로운 칼끝을 보며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미안해. 난 여기까지인가 봐. 아디나는 못 지켜줄 것 같아.’

“거기까지.”

“끄아아!”

마지막까지 동생을 생각하며 환상처럼 떠오르는 엄마의 얼굴 앞에서 참회하듯 던진 독백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번뜩이는 칼날이 어둠을 갈랐다. 거대한 칼이 사람을 매달고 벽에 틀어박힌 곳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침묵을 찢었다.

어둠 속으로 푸른 불꽃이 떠오르고 그녀가 도망친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매에게 보여주던 따듯한 웃음 대신 싸늘한 조소와 함께.

비열한 자의 종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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