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도장
식사 시간은 왁자지껄하면서도 평화로웠다.
아이들은 처음 먹어보는 밥을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없는 것처럼 와구와구 입에 넣으며 감탄했다.
매끄럽게 기름이 코팅된 밥알과 플람베를 통해 배어든 묵직한 불 향, 짭짤하고 기름진 관찰레의 조화는 환상이었다.
륜스이는 자신이 만든 환상을 입에 넣으며 식사하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신나서 떠드는 아디나도, 평소와 달리 숟가락 옮기는 속도가 빨라진 아디라도 귀여웠다.
전부 이름이 b로 시작해서 B 형제들로 부르기로 한 사내아이들은 숟가락까지 먹을 기세였지만 그 또한 보기 좋았다.
엘레나 모녀나 리카르도가 나름대로 점잔 빼면서도 맛있게 먹는 것도 좋았고.
그래, 저 구석에서 당당하게 밥그릇에 코를 박고 처먹는 고양이 한 마리만 아니었다면 완벽한 아침이었으리라.
“그만 좀 못마땅하게 봐. 이미 들어온 걸 어쩌겠어.”
“짐승이랑 겸상하는 거 아닙니다.”
“쟤, 일단은 요정이다?”
“그래도 짐승이죠.”
륜스이와 네로의 유치한 다툼은 아이들이 씻고 돌아오면서 끝났다. 네로의 승리로.
리카르도를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초롱초롱한 눈초리로 부탁하는 데야 천하의 검성이라도 이길 방도가 없었다.
“밥 먹다 체하겠다냐아.”
“밥 먹으면서 말하지 마라.”
“쟤들은 잘만 말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아!”
“넌 짐승이잖아.”
“난 짐승 아니다냐아! 캣시다냐아!”
“그래, 짐승.”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녀석이었다.
엘레나와 이사벨라는 네로의 정체를 알고 깜짝 놀랐지만 금세 적응했다. 아니, 오히려 둘 다 네로를 퍽 좋아하는 편이었다.
륜스이는 그래서 네로가 더 마음에 안 들었고.
“쯧, 같이 밥 먹는 건 오늘만이다.”
“냐아,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다냐!”
“그래, 넌 식구가 아니니까 안 된다고.”
“식구다냐아!”
두 사람의 유치한 다툼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부드럽고 자상했지만, 언제나 진중함을 잃지 않는 륜스이였다. 그런 그가 보여주는 색다른 모습에 아이들은 벽이 없어지는 걸 느꼈다.
륜스이도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 혀를 한 번 찼다.
“쯧. 운 좋은 녀석. 대체 여기는 왜 온 게냐.”
“이미 말했잖냐아! 마녀님을 찾으려면 네 근처가 좋을 것 같다고 했잖냐아!”
“난 조용히 살 생각이다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냐아. 넌 가만히 있어도 온갖 재앙이 찾아들 상이다냐아.”
“이 녀석이?”
륜스이가 눈을 번뜩이자 찔끔한 녀석은 그제야 고개를 밥그릇으로 파묻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쫓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워낙 좋아했다.
집에 들인다고 해를 끼칠 것 같지도 않으니 별수 없었다. 동물 한 마리 있는 편이 아이들 정서에 좋기도 하고.
짧은 신경전을 끝으로 금세 식사가 끝났다.
아이들은 워낙 맛있게 빨리 먹었고, 엘레나와 륜스이도 모험가답게 먹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그나마 이사벨라가 조금 천천히 먹는 편이었지만 식사량이 적어서 숟가락을 놓는 때는 비슷했다.
“마! 손님 왔다! 싸게 안 나오나!”
“저 미친놈이?”
설거지를 자청한 리카르도가 일을 끝내고 후식까지 먹은 다음 아이들과 조금 쉬고 있을 때였다.
미리 불러둔 손님이 왔다. 억양이나 목소리 크기만 보면 강도질하러 쳐들어온 놈 같았지만.
륜스이는 그래도 손님이라고 문을 열었다.
키는 그보다 조금 작지만, 옆으로 워낙 넓어서 현관이 꽉 차는 느낌의 남자 네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니는 마, 반응이 와 이리 늦는데? 그래가 눈 감으면 코 베이는 데서 먹고살 수 있겠나?”
“내가 지금 집 사고 남은 돈이 얼마더라. 아직 만 골드 정도는 남은 것 같았는데.”
“어? 맞나? 부자였네···”
그래도 지난 삶에서 친구였다고 좀 가르쳐 줄 생각으로 불렀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 녀석들이 어디서 비명횡사라도 하면 괜히 먹먹해질 것 같아서 뭐라도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당당하게 몰려와서 소란 피우는 모습을 보니 뒈지게 놔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부지런한 딜런 씨는 자산이?”
“마, 니는 몰라도 된다!”
“나보다는 많겠지?”
“당연한 소리! 니 인마, 꼴랑 만 골드 있다고 사람이 게을러지면 안 되는 기라!”
괜히 지기 싫어서 누가 봐도 거짓말을 막 던지는 딜런의 뒤통수를 형이 후려쳤다.
사실 D 형제들로 불리는 이 사람들이 전부 싹수없고 할 말 못 할 말 못 가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막내인 딜런을 제외하면 다들 상식인이었다.
그중 가장 신사적이고 부드러운 맏이, 다니엘이 난처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이 녀석이 좀 개념이 없어.”
“괜찮습니다. 원래 그런 녀석인 줄 알고 불렀으니까요.”
“그래도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아서 다행이네. 이건 집들이 선물.”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보따리를 건넸다. 륜스이는 보따리를 받는 순간,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차렸다.
“유리 제품이군요. 가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감사합니다.”
“괜찮아. 우리도 벌이는 나쁘지 않으니까. 유리도 가격이 좀 있어서 괜히 부담스러울까 봐 고민했어. 그래도 우리 망나니 막내, 친구니까 그냥 그걸로 정했다.”
“아니, 행님! 내가 와 인마랑 친군데요? 거기다 망나니라니! 내를 그래 보고 있었습니까?”
“친구 아니었으면 넌 리카르도 못 지켰을 때 위약금 물렸어.”
녀석은 발끈하다가 륜스이의 차가운 대꾸에 기가 죽어서 침몰했다.
그러면서도 실실 웃는 게 내심 친구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남자 츤데레라니. 그것도 근육 덩어리에 못생기기까지 했다.
끔찍한 모습에 륜스이는 절로 놈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어졌지만, 뒤에 아이들도 있고 해서 이를 갈면서 참았다.
애들 앞에서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는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보따리를 탁자 위로 가져와 풀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유리그릇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너무 예쁘다···”
“맞아!”
“꼬마 아가씨들이 좋아해 주니, 열심히 고른 보람이 있구만. 하하.”
안코나에서는 선물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함께 기뻐하는 게 예의였다.
그런 문화를 몰라 곤욕을 치른 적이 있던 륜스이는 일단 아이들이 즐거워할 시간을 충분히 줬다.
감탄을 내뱉으며 그릇을 이리저리 만져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륜스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쳤다.
“자, 그러면 이제 수련을 시작해 봅시다. 다들 편한 옷 입고 정원으로 가시죠.”
“네에!”
아이들이 신나서 정원으로 달려 나갔고 어른들은 느긋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륜스이는 우선 워밍업부터 시작했다.
현대인이 상식 수준으로 아는 간단한 운동이나 이론도 이곳에서는 놀라운 비전이었다.
감각적으로 훈련 전에 몸을 데워두는 편이 좋다는 점을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모든 지식은 비밀리에 아는 사람들끼리만 전수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행운이었다. 륜스이라는 전설적인 검사에게 배울 기회를 받았으니까.
가볍게 준비 운동을 끝마친 아이들을 불러 모은 륜스이는 직접 검을 뽑아 자세를 보여줬다.
“자, 우선 이렇게. 두 손은 달걀 쥐는 것처럼 엄지랑 중지가 닿게 쥐거라. 검지는 자연스럽게 그 위로 풀어두고.”
일단 자신이 어떻게 칼을 쥐는지 보여준 륜스이는 아이들을 하나씩 봐주며 틀린 점을 교정해줬다.
“검을 그렇게 꽉 쥐면 안 된다.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면 정작 필요할 때 제대로 힘을 낼 수 없으니까. 아래에 둔 손의 새끼손가락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느슨하게 쥐거라.”
아이들은 조금 흥분한 모양이었지만, 나름대로 다들 집중해서 륜스이의 가르침을 잘 따라왔다.
가장 기초적인 발도와 납도, 파지법을 가르친 륜스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오늘은 그것만 연습하자고 했다.
비정상적으로 긴 태도를 쓰는 륜스이의 검술은 저 세 가지가 특히 중요했다.
본래라면 목검으로 하기 힘든 훈련이다.
다행히 가검의 칼집은 이미 만들어졌기에 먼저 받아와 거기 맞춘 목검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예? 다른 건 안 배워요?”
“첫날부터 무리하면 좋지 않단다. 더구나 발도와 파지는 검술의 시작이다. 납도는 실수하면 자기 손이 베이니 더 신경 써야 하고. 생각해 보거라. 멋지게 상대를 이겨놓고 칼을 집어넣다가 손을 베이면 그보다 더 우스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건, 그렇죠···”
“자, 오늘 하루. 딱 한 시간 반만 열심히 해보자꾸나. 내일부터는 네가 배우고 싶던 걸 가르쳐 주마.”
“네!”
조곤조곤 부드러운 설득에 아이들은 하나둘 이해하고 연습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온종일 훈련만 할 생각도 없었고, 짧은 시간 동안은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어린 나이에는 오랜 시간 동안 훈련할 필요도 없고 시켜서도 안 된다.
륜스이는 한동안은 하루에 2시간 이상 훈련 시킬 생각이 없었다.
물론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었다.
“한 시간 반만 훈련한다고? 니가 아들 아끼는 건 알겠는데, 너무 느슨한 거 아이가?”
“저 정도가 딱 좋아. 아직 성장할 나이에 쓸데없이 굴려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다.”
달리 말하면 성장할 만큼 성장한 성인은 마구 굴려도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너무 심하게 하면 다칠 수도 있으니 정확하게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만 굴릴 생각이었다.
륜스이는 우람한 옛 친구를 보며 히죽 웃었다.
딜런은 갑자기 등줄기가 짜릿해지는 기분에 두 눈을 깜빡였다. 이런 기분은 한창 싸울 때나 느꼈는데?
보통 칼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면 드는 기분이었다.
“자, 친구야. 너는 어른이지?”
“어? 마, 보면 모르나? 내가 어른이 아이면 누가 어른이고?”
“좋아, 아주 좋아.”
언제나 허세로 재앙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
딜런은 전형적인 그런 사람, 륜스이는 이런 녀석이 비명 지르는 모습이 좋았다. 친구가 강해지는 것도 좋았다.
개인적인 만족감과 선행이 맞아떨어지는 완벽한 상황 앞에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너는 지옥이다.”
“갑자기 뭔 헛소린데?”
“네 틀려먹은 몸뚱이부터 자세에 기술까지 전부 고쳐주겠다는 거지.”
“니, 좀 말이 기분 나쁘다?”
“꼬우면 나보다 강하면 된다.”
륜스이의 말에 구시렁대던 딜런은 이어지는 말에 입을 꾹 닫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이가 없도록 강한 놈에게 배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검술이 비전으로 통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물론 안코나는 상업 발달의 정점인 만큼 무술을 가르치는 도장도 여럿 있다.
다들 별것도 아닌 걸 가르치면서 단계별로 돈만 뜯어내는지라 실속이 없어서 문제지.
그런 의미에서 륜스이가 진지하게 가르쳐 준다는 건 다른 곳에서는 무릎 꿇고 부탁해도 받기 힘든 기회였다.
“일단 자세부터 잡아라. 나랑 싸울 때처럼.”
“어? 알았다.”
오늘 처음 검을 잡는 아이들과 달리 파지법부터 가르칠 필요는 없었다.
딜런의 무기가 일반적인 목검보다 훨씬 큰 글레이브라는 것도 큰 상관 없었다. 어차피 다루는 맥락은 륜스이의 진은 태도와 큰 차이도 안 났으니까.
오히려 크기 때문에 뒷날 베기를 지양한다는 점에서 두 무기는 사용법이 비슷했다.
“흠. 너 검술 어디서 배웠냐?”
“동네 아이씨한테 배웠는데? 와? 마이 이상하나?”
“그 아저씨, 양손검 쓰는 사람 아니지?”
“와, 니는 척 보면 그런 것도 보이나? 맞다. 그 아이씨는 키도 작고 해가 방패랑 칼 쓰더라.”
아예 기본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엉성했다.
륜스이는 녀석이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일단 자세가 너무 엉성해. 모양만 흉내 낸 느낌이야. 이건 다른 형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개를 끄덕여도 툴툴대는 느낌이던 딜런과 달리 나머지 D 형제들은 순순히 수긍했다.
마을에서 대충 배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사실 형제들이 글레이브를 주 무기로 삼고 배운 것도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에 제대로 된 방패와 검이 있을 리 없고, 그들을 가르쳤던 전직 용병은 없는 도구로 가르치느니 차라리 다루기 쉬운 농기구로 가르쳤다.
크고 묵직한 무기가 남들보다 키도 크고 우람한 형제들에게 잘 어울리기도 했고.
덕분에 D급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승급할 수 있었지만, 다들 느끼고 있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걸.
“머리 위로 무기를 들면 자연스럽게 팔이 벌어지는 건 맞지만, 너무 넓게 벌린다. 조금 더 좁혀. 그리고 하나 더. 왼발을 앞으로 둬라.”
“엥?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보통 전부 오른발을 앞에 두라고 하던데?”
륜스이는 궁금한 게 많은 바보 제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르쳐주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멍청한 제자는 그도 좋아하지 않았다.
검술의 모든 자세와 동작에는 의미가 있고, 온전히 이해했을 때 제대로 쓸 수 있다.
본능에 따라 재능만 믿고 날뛰는 자는 어느 정도까지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지만, 최고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태도가 영 불량하지 않은가. 그는 바보 제자의 머리통을 목검으로 가볍게 내려쳤다.
“아! 질문했다고 때리는 기가! 와, 세상에 이런 사부가 있나!”
“사부라고 생각하면 예의를 좀 갖춰라. 바보 제자 놈아. 너처럼 불손한 놈을 돈도 안 받고 가르치는 관대한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 것 같냐?”
륜스이는 괜히 기분이 더 나빠져서 딜런의 머리통을 한 번 더 내려치고 설명을 시작했다.
확실히 이유는 말해줘야 했으니까.
“상단은 공격하는 자세다.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고, 일합에 모든 걸 거는 자세다. 왼발을 앞에 두는 건 그래서다. 너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면서 선공해야 하니까.”
륜스이는 아직도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바보 제자를 위해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그가 자세를 취하자 삽시간에 조금 느슨하던 분위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다들 잘 봐두거라. 이게 내 내려 베기다.”
차분하게 발도와 파지를 연습하던 아이들도, 아이들을 봐주던 엘레나도 륜스이를 바라봤다. D 형제들은 이미 보고 있었고.
모두의 시선 속에서 륜스이는 아래로 일검을 내려쳤다.
보이지 않는 적을 넘어, 지옥 끝까지 베어낼 기세로. 운명을 베어 가를 의지로.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속도는 줄였지만, 아름다울 정도로 곧은 선에서 물씬 풍기는 죽음의 향기에 모두 압도됐다.
침묵이 드리운 정원에서 시범을 끝내고 다시 자세를 푼 륜스이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낙성이라고 한다. 떨어질 낙에 별 성을 쓰지.”
평생 쫓을 검이 스승의 목소리를 따라 낙인처럼 제자들의 뇌리에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