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투 대회
을씨년스러운 경악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관중의 뇌리를 틀어쥐었다.
누구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
루카 로시라고 해서 다른 사람과 다르지는 않았다. 아니 그는 오히려 더 심하게 놀랐다.
‘이게··· 페나 경의 본모습인가.’
챔피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 당사자였고, 륜스이가 실제로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을 감추던 장막을 들추고 모습을 드러낸 검사는 그의 생각보다도 더 대단했다.
‘압도적? 파멸적? 아니, 전부 개소리다.’
온갖 단어가 머릿속에서 휘몰아쳤지만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압도적이라고? 물론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피에트로는 작년에 헌무제 4강까지 올라간 남자다. 몸담은 곳이 썩 깨끗한 물은 아니라도 그 실력만은 포식자라고 부를 만했다.
그런 남자를 단 일합에,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무릎 꿇린 광경이 압도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압도적인가.
하지만 그런데도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했다. 뭔가 어색했다.
파멸적인가? 파멸적인 모습도 맞다. 륜스이가 내려친 일검은 검을 배운 자라면 누구라도 기겁할만한 공격이었다.
일반적으로 방패는 나무로 만들고, 나무는 결을 따라 쪼개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방패를 만들 때는 목재를 사선으로 겹쳐 만든다.
이렇게 하면 쪼개지는 걸 막는 건 물론이고, 강력한 힘으로 내리쳐도 서로 다른 결로 인해 날붙이가 방패를 가르는 도중에 흔들린다. 륜스이가 보여준 것처럼 반듯하게, 톱으로 가른 것처럼 잘리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나는···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과 손잡았나 보군.”
“그러고 보니 네가 후견인이라고 했지? 대단하네. 저런 사람을 다른 누구보다도 빨리 발굴하고.”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옆에 있던 여인이 대답했다.
루카 로시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여인. 하지만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될 여인이자,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여인.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또 아련했다.
괜히 옆을 보면 마음이 아파질 것 같아서 루카 로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륜스이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만큼은 그의 챔피언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도 했고.
“운이 좋았어. 나도 페나 경의 실력이 저 정도라고는 생각 못 했고.”
진심이었다.
해적선 두 척을 혼자서 쓸어버린 것? 물론 대단한 업적이다. 그런 짓은 날고 기는 A급 용병이나 전투에 특화된 A급 모험가라야 제한적인 상황에서 가능하리라.
루카 로시가 기대한 것도 그 정도였다.
승객에게 들은 대로라면 충분히 그 정도는 될 것 같았고, 그 정도만 해도 헌무제 우승하기는 충분하니까.
하지만 륜스이가 보여준 건 등급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 내가 듣기로는 아닌 것 같던데. 네가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며?”
“그야 부탁하려면 얼굴을 보고 해야 하니까.”
“거짓말. 그게 네가 찾아갈 이유는 못 돼.”
소꿉친구였고 첫사랑이었다.
지금도 가문이 달라 적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그녀를 원수라고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루카 로시가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했던 유일한 이유를 원수라고 부르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애달픈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인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추측을 시작했다.
“너는 분명히 저 남자의 실력을 알고 있었어. 그게 아니면 다 포기하고 군대에 처박혀서 시체처럼 살던 사람이 왜 그 무거운 걸음을 옮겼겠어?”
“줄리아.”
결국 참지 못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린 루카 로시에게 기억처럼 어여쁜 얼굴이 보였다.
아니, 더 예뻐진 것 같았다.
언젠가 파티에서 수줍게 내민 꽃을 받던 날부터 사랑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여인을 보며 루카 로시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로 몰랐어.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글쎄. 이건 도를 넘어서지 않았나?”
“그래? 재미없네. 그러면 재밌는 얘기로 넘어가 볼까?”
줄리아 리치는 붉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때는 친구로서 좋아했고, 다른 한때는 첫사랑으로 좋아했으며 지금은 미워하는 남자에게.
“우리 사이에 딱히 재밌는 얘기랄게 있나?”
“당연히 있지. 좀 섭섭하네. 네가 내게 잘 보이려고 꼬마 주제에 맞지도 않는 칼을 질질 끌다시피 차고 온 얘기라던가, 달빛 아래서 나눈 첫 키스라던가. 많잖아?”
본래도 밀랍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더 어색해지는 모습을 보며 줄리아 리치는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일순간 북풍한설처럼 차가워진 얼굴로 그녀는 정말로 궁금했던 걸 넌지시 언급했다.
“그것도 아니면, 다 포기하고 시체처럼 지내던 로시의 탕아가 하필 바다와의 결혼식 때 몸을 움직인 이유라던가.”
“뭐야, 겨우 그런 게 궁금했던 건가? 별거 없어.”
루카 로시는 굳은 표정을 풀고 피식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그냥 돈이나 좀 벌어볼까 해서. 네 말대로 다른 사람들은 페나 경이 얼마나 강한지 아무도 모르잖아? 한탕 해먹을 기회지.”
“흐음, 그래?”
헌무제는 단순한 무투 대회 아니라 성사의 일부인 만큼 도박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안코나인에게만.
외지인에게는 헌무제고 성사고 간에 그냥 눈이 즐거운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도박판도 열렸고 안코나 측에서도 딱히 막지는 않았다.
상인의 도시에서 세금 걷을 건수가 생겼는데 굳이 막을 필요는 없으니까.
소문으로는 헌무제 도박에서 걷는 세금이 막대한 무역 이익의 1할이나 된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안코나인은 도박에 참여할 수 없었다.
불법은 아니었지만, 만약 안코나인이 헌무제 결과를 두고 도박을 했다는 사실이 퍼져나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사회적으로 매장되리라.
줄리아 리치는 그래서 확신했다. 지금 자신의 옛 친구가 거짓말하고 있다는걸.
“그런 걸 나한테 말해줘도 돼? 우린 이제 원수잖아.”
“아냐.”
“뭐?”
조금 전 륜스이가 보여줬던 일검 만큼이나 단호한 부정에 줄리아는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당황했다.
그런 그녀에게 루카는 들불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나는 널 원수라고 생각한 적 없어.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이상한 말 하지 마. 네 생각이 어떻건 우리는 원수야. 그렇게 정해졌다고.”
“누가 정했는데? 가문의 어른들이?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루카 로시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20년 전 냉전이 시작되는 자리에는 그도 있었다. 아니, 직접 살인 사건의 도구가 된 칼을 가져다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말할 수 있었다.
그가 건넨 칼에 독 따위는 전혀 발려 있지 않았다고.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이라 그저 두려웠다. 그래서 뭐라고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말 따위, 아무 의미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확신했다. 음모가 있었다는걸. 그리고 증오했다. 기다렸다는 듯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해 연인을 갈라놓은 두 가문의 모든 걸.
“달리 할 말은 없어. 너는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잘해 나가면 돼. 내 여자가 되는 날까지.”
“재미없는 농담이야.”
“농담 아냐. 이건 예언이야.”
루카 로시는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륜스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개인의 피후견인이다. 이토록 멋진 승리를 보여줬으니 후견인으로서 이야기라도 나눠야 했다.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애써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는 그를 줄리아는 안타깝게 바라봤다.
엇갈리는 연인의 단상이었다.
***
“미친놈.”
“음? 자네 뭐라고 했나?”
“아닙니다.”
마르코는 륜스이의 일검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옆에 앉아있던 무능한 늙은이가 그의 어처구니없는 심정도 모르고 던진 말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사람 새끼가 아니군.’
명색이 한 유파의 수장이라는 늙은이는 조금 전의 일검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놀란 기색은 있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저 검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이니까. 왕년에는 나름대로 이름도 날렸다고 하니 늙어서 눈이 나빠졌을지도 모르겠다.
륜스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내심 안코나 최강을 자부하던 마르코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난번에 싸웠으면 무조건 죽었겠군. 아니, 죽지는 않았으려나. 그래도 팔 한 짝 정도는 내줘야 했을 것 같은데.’
냉정하게 륜스이의 실력을 가늠하던 그는 질투심에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실력이 떨어지는 자라면 륜스이의 힘에 놀랄 테고, 검술에 조예가 있는 자라면 그 깔끔한 기술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마르코처럼 노련하고 강한, 수없이 사선을 넘어온 달인이라면 알 수 있으리라.
무섭도록 자연스러워서 미치도록 부자연스러운 그 일검에 담긴 깊이를.
“선물이 필요하겠습니다.”
“선물? 갑자기? 누구에게 주려고?”
“왜, 노사님 제자 있잖습니까. 그, 레오라고 하던가요?”
“아, 레오나르도? 뭐, 성격 좋고 강한 친구지. 그런데 자네랑은 사이 안 좋지 않나?”
마르코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노물의 얼굴이 역겨워서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멍청하고 노망까지 든 거로 모자라서 탐욕이 골수까지 뻗친 버러지였지만 아직은 쓸모가 있다.
적어도 그가 암흑가를 통합하고 무술 카르텔까지 휘어잡아 안코나 민간의 무력을 모두 쥘 때까지는 살려둬야 한다.
최소한 암흑가를 온전히 집어삼키기 전에 양지 놈들과 칼부림해서 전력을 깎아 먹을 수는 없으니까.
저 괴물의 목을 따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하 놈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
그가 딱히 수하를 아끼는 타입의 보스는 아니었지만, 이왕 칼받이로 내몰려면 별 인연도 없는 놈들이 낫지 않겠는가.
“이제 좀 관계 개선도 해야지요. 레오, 그 친구도 이번 헌무제에서 우승하면 유명 인사가 될 텐데요. 언제까지 날 세울 수야 없잖습니까.”
“허허, 잘 생각했네. 내가 아끼는 젊은이들이 서로 불편해 보여서 내심 신경 쓰였거늘. 자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니 마음이 놓이는구먼.”
젊은이의 목숨에는 관심도 없는 작자가 괜히 신경 써주는 척하는 꼴이 역겨웠지만, 마르코는 화내는 대신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사실 이번 우승자는 무조건 레오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보셨다시피 저 륜스이라는 놈이 만만치 않잖습니까?”
“끙, 그건 그렇지. 피에트로도 어디 가서 무시당할 친구가 아닌데 일격에 진 걸 보면 확실히 그래.”
“레오가 이기더라도 크게 다칠 수도 있지요. 그러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아닙니까.”
은근한 목소리로 탐욕만 남은 노괴물을 살살 달래면서 마르코는 상자를 내밀었다. 무슨 물건인지 묻는 눈빛에 그는 교활하게, 하지만 무해한 얼굴로 웃었다.
“경기 전에 이걸 먹어보라고 하십시오.”
“그게 뭔가?”
어느새 사람 좋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의심이 뚝뚝 묻어나는 시선을 보내는 노물에게 마르코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집중력을 올려주는 약입니다. 저도 한 번 먹어 봤지요. 한 시간 정도는 오감이 예민해지더군요.”
“그래? 몸에 안 좋은 건 아니고?”
“절대 아닙니다. 제가 레오를 괜히 해쳐서 뭘 얻겠습니까. 우리의 우정이 박살 나는 것? 연합과의 전쟁? 아시다시피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암습을 하면 했지, 독은 안 쓰지요.”
“하긴, 이상한 부분에서 결벽증이 있지.”
수긍하는 듯하면서도 한 자락 의혹을 거두지 않은 모습에 마르코는 내심 욕을 내뱉었다. 평생 암투로 세월을 보낸 노인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건네는 건 정말로 독 따위가 아니니까.
“믿기 힘드시면 굳이 레오에게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떼어내서 다른 사람에게 시험해보셔도 되고요. 약효가 조금 줄긴 하겠지만, 어차피 결판이 나기까지 한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두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알았네. 내 자네의 호의는 확실히 전달하지.”
마침내 수긍하는 노괴물의 모습에 마르코는 씩 웃었다. 한 점 악의도 비치지 않는 얼굴로.
독은 아니지만, 사람을 뿌리부터 바꾸는 약을 줬으니 그는 이익을 볼 일만 남았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약을 먹은 레오가 륜스이를 없애건, 륜스이에게 레오가 당하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운이 좋다면 승리한 놈도 치울 수 있다.
음모가 피어나는 배 위에서 꽃놀이패를 쥔 악마가 천사처럼 웃었다.
***
“우아, 사부님 진짜 멋있다!”
“그렇지? 우리 사부님이 최고야!”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리카르도는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제가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서슴없이 표현하는 아이들과 달리 그는 조금 전에 느낀 충격을 속으로 삭여냈다.
이전이라면 그냥 강하다고 생각했을 장면이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새삼스럽게 딜런의 평이 떠올랐다.
내려 베기는 처음 칼을 잡은 초보부터 달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쓰는 기술이지만 륜스이의 것은 격이 다르다고 했다.
기술적으로는 평생 그 한 동작에만 매진한 달인이지만 기술의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면 륜스이가 신처럼 보인다던가.
미치도록 부럽고 또 미치도록 두려운 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가능할 수도 있지.”
“헉, 누구? 아, 로시 경.”
혼잣말에 돌아온 대답을 듣고 리카르도가 기겁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며칠 전에 사부님을 만나러 온 사람이 보였다. 그 유명한 로시 가문의 자제라던가.
달고 다니는 소문이 그리 좋은 건 아니었지만, 리카르도는 개의치 않았다. 소문 운운하기에는 당장 본인부터 노골적으로 억울한 평가를 받고 있지 않았나.
다만 꺼림칙한 건 로시라는 이름 그 자체였다.
이제는 륜스이의 제자라는 번듯한 신분을 가졌다지만, 아직도 높은 사람들은 좀 껄끄러웠다.
“뭘 그리 놀라나?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아니요, 그. 다른 분이 들으실 거라고는 생각 못 해서요.”
“하긴, 혼잣말 훔쳐 들은 내가 나빴구만.”
“그, 그런 뜻은 아닙니다!”
뒷골목 빈민 출신이라던가.
도저히 출신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박한 모습이었다. 루카 로시는 제자들에 대한 륜스이의 평을 떠올렸다.
순후한 성정과 타고난 육신이 최고를 노릴 만하다. 최강이 될 수 있을지, 최강이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지는 자신이 논할 바가 아니라고 했지만 큰 사람이 될 재목이라고도 했다.
혈통이라는 타고난 약점은 오히려 이 순박한 소년을 빛나게 해 줄 후광이라던가.
“뭐, 일단 들었으니 대답해주자면 될 수 있을 걸세.”
“예?”
“자네 사부처럼 되고 싶다는 말 아니었나? 될 수 있다고.”
“아, 감사합니다.”
“이런, 빈말로 들리나 보군. 난 진심이야. 좋은 사부를 만났고 재능도 있다면 못 할 게 뭔가?”
루카 로시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십 년을 진흙탕에서 뒹굴며 가진 것을 전부 내려놓은 그도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 한다. 일단 안코나의 태양까지 닿을 생각이었다.
날개를 꺾고 깃털을 뽑아 버린 독수리가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사슬이 채워졌던 작은 새끼 고양이가 대호로 크지 못할 건 또 무언가.
“믿게. 모든 건 거기서부터 시작한다네. 저 자리에 서서 자네 사부처럼 홀로 오롯이 빛나는 모습이 된 자신을 생각하게. 그리고 다시 믿게. 자네가 상상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확정된 미래라고.”
사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단순히 강하다거나 크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세력과 싸워야 했다. 하나는 확실하고 어쩌면 둘 모두와.
그러니 그는 믿었다. 믿어야만 했다. 명실상부한 지배자가 되는 자신을.
“좋은 말씀 해주시고 계시군요.”
“어? 사부님!”
루카 로시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눈을 가늘게 뜬 륜스이가 던진 말의 내용은 호의적이었지만 의미는 달랐으니까.
아니, 정반대였다.
제자에게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눈빛에 루카 로시는 부지런히 할 말을 생각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현재의 극심한 손해로 돌아와서야 투자자 실격 아니겠는가.
사부님이 이기고 돌아와 그저 좋은 제자들 속에서 홀로 심산이 복잡한 루카 로시였다.
생각과 생각이 교차하고 음모가 슬그머니 싹트는 성스러운 대회의 첫 일정이 그렇게 끝났다.
돌아온 검성의 충격적인 데뷔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