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알리아타 연합
승전보를 기다리는 고향으로 향한 배는 날 듯이 바다를 질주했다.
병사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더는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기쁨이었다.
전투가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터인데, 역사에 남을 대사건의 일익을 담당했으니 자연히 흥겨울 수밖에.
그들은 가족에게 신나게 무용담을 떠들 생각에 기뻐했다.
물론 모두가 기쁠 수만은 없다.
함대 전체를 총괄하는 대제독과 각 함대 사령관, 륜스이와 루카가 모인 선실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마냥 무거운 건 아니지만, 가볍다고만은 할 수 없는 분위기.
어색한 침묵이 철을 잘못 알고 피어난 꽃처럼 시드는 공간에서 베르토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페나, 아니지. 안코나 경.”
“예. 말씀하시지요.”
“꼭 그렇게 결론 내려야 했소이까?”
륜스이는 무거운 표정의 노제독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세월 겪어온 고난이 만든 주름이 그의 불편한 심정을 나타내듯 꿈틀댔다. 하지만 륜스이는 당당했다.
“그렇습니다.”
“하··· 내, 경에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전투를 멈추고 퇴각할 권리를 준 건 사실이오.”
“예? 제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이 무슨···”
베르토의 말에 각 함대 사령관이 기함했다.
륜스이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결국 최전선에서 뛰는 선봉장에 불과했다. 그런 자에게 마음대로 전장을 이탈할 권리를 주다니.
그들이 경악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제독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네.”
“대체 무슨 이유가 있길래요? 말이 안 되잖습니까!”
“전쟁은 도박이야.”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며, 단 한 번도 적에게 맞서 물러난 적 없고 두려움을 드러낸 적도 없던 군인의 담담한 고백이었다.
“판돈으로 터무니없는 걸 걸고 하는 도박이지. 왜? 무조건 이기는 전쟁은 없으니까. 전력을 집결해서 전장으로 나가는 시점부터, 자네들은 패배할 가능성이 생긴단 말일세.”
“그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게 우리 역할 아닙니까!”
“그래, 줄이는 거지. 없애는 게 아니라.”
베르토는 무거운 눈으로 후배를 바라봤다.
평생 승승장구해온 이 친구들은 패배한 뒤를 생각할 줄 모른다. 하지만, 무릇 최고 사령관이라면 패배한 뒤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들은 아직 멀었다.
자기 대답이 이들에게 깨달음이 되길 바라며 그는 말문이 막힌 후배에게 조언했다.
“가진 모든 걸 끌고 나와서 싸운 다음은? 승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지만, 세상 어느 전쟁이 무조건 이긴다는 말인가? 저 위대한 제국의 초대 황제도 이종족 연합에게 일격을 당했네. 우리의 선조들도 망할 해적 패거리에게 목이 비틀릴 뻔한 적 있지.”
강한 전력이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전력이란 카드 게임에서 손에 쥔 패와 같아 강할수록 좋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패에 일격을 당하기도 하는 법이다.
아무리 변수를 줄이고 또 줄인다고 한들, 무조건 이길 수는 없다.
그들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한들 자네들의 의문이 풀리진 않겠지. 왜 안코나 경인지.”
“예. 제독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명령하시면 될 일입니다.”
“우선, 안코나 경이 내가 그런 권한을 줬다고 겁쟁이처럼 도주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선봉으로 돌격한 배에서 퇴각 명령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자네가 해전을 처음 하는 풋내기도 아니고, 그런 의문을 가지면 안 되지.”
육전에서도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공간에서는 명령이고 뭐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사방이 배로 둘러싸인 채, 광활한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가 폭음과 포효와 섞여 휘몰아치는 바다의 전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레오네는 포함이었다.
쉴 새 없이 굉음을 토해내는 배에 탄 사람들이 명령을 들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한참 먼 본진에서 올리는 연이나 깃발을 확인하고 돌아올 수도 없다.
캄피오니가 륜스이와 루카에게 부여한 권한은 두 사람의 가치를 생각했을 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더라도 안코나 경이 살아남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패배는 면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네.”
“아···”
함대 사령관들은 베르토의 말에 탄식하면서도 수긍했다.
그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림자로 햇빛을 가릴 정도의 대괴수를 일검에 베어버리는 남자가 아군에 있었다.
배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는데도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륜스이가 단단한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안코나를 지킨다면 누가 있어 뚫을 수 있을까.
배를 잃고, 사람을 잃을지언정 본진만은 지키기 위한 베르토의 방비였다.
“하지만 그 권리를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지. 무엇보다 나는 전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적에게 넘어갔을 때, 아군 함선을 수습해 퇴각할 권한을 준 거요. 자의로 전투를 끝낼 권한을 준 게 아니라는 말이요. 그러니 설명해주시오. 왜 그런 결정을 해야 했는지.”
“우선.”
륜스이가 보여준 신위 덕분인지, 전투를 준비하며 쌓은 신뢰와 호의 덕분인지 이들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었다.
불같이 화내면서 불문곡직으로 죄인 취급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뒀던 륜스이는 그나마 차분하게 이유를 듣고자 하는 베르토의 태도에 내심 감탄했다.
그의 처지에서 생각하자면 륜스이가 월권을 저지른 거로 보일 테니까.
아무리 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일이라고 해도, 륜스이가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물론 가만히 있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르고, 거기서 싸웠다고 한들 좋은 꼴은 보지 못했겠지만.
군율은 지엄하고 또 추상같은 법.
륜스이는 베르토가 보여주는 실망감을 이해했다.
“캄피오니 제독님께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음?”
“제가 일종의 월권을 하면서까지 결정한 일을 그대로 따라주시지 않았습니까.”
베르토는 륜스이의 말에 허탈하게 웃었다.
그 상황에서 그러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병사들 모두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눈치도 없이 공격하라고 명령해봤자, 고집쟁이 노인네의 바보짓으로 끝날 뿐이다.
그건 망할 로란체 사령관 놈도 마찬가지였고.
그 전장에서 가장 눈부시게 활약한 륜스이가 말하고 필리포가 동의한 순간, 이미 피를 볼 만큼 보고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까지 환호한 순간 모든 것은 끝나 있었다.
그래도 그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알아주는 륜스이의 모습이 보기 나쁘지는 않았다.
평생 낯 간지러운 표현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남자답게 코끝을 한 번 찡그리고 말았지만.
그는 손을 몇 번 휘저으며 대답했다.
“말만이라도 그리해주니 고맙소.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이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단 이유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제가 강제로 전투를 끝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황, 그 자체입니다.”
“상황?”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과 현장 속에 있던 사람은 아무래도 느끼는 바도 다르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전선의 가장 앞에는 있는 법이다.
1함대와 2함대 사령관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고, 3함대 사령관과 베르토는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서 그 차이가 보였다.
“나름대로 정비는 했지만, 1, 2 함대와 로란체 측의 선두 함대는 뒤섞여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다시 혈전이 벌어질 상황이었지요. 문제는 느긋하게 깃발이나 연으로 보내는 신호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륜스이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베르토를 바라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즈라트 알 탄과 싸우기 위해 본래 시행했던 작전 같은 건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대형은 무너졌고 적아는 엉망으로 섞였지요. 그 상황에서 싸우면 공멸뿐이었습니다. 병사들도 그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니 싸우고 싶지 않았겠지요.”
누구나 살고 싶지, 죽고 싶지는 않다.
이겨도 죽거나 크게 다칠 전장을 반기는 병사가 어디 있겠는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전쟁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제독께서 아무리 노련하고 영민한 지휘관이시라도 최전선의 분위기를 멀리서 아실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제가 먼저 나서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우발적인 공격이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전투를 만들기 전에.”
“그 괴물을 벤 공격으로 적을 쓸어버릴 수는 없던 거요?”
“불가.”
3함대 사령관의 질문에 륜스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그때도 륜스이는 깔끔하게 부정했다.
단천검이 뭐든 할 수 있는 편리한 기술이라는 인식을 줄 생각은 없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번에 구사한 반리합일 역시 마찬가지다.
신성을 개화한 지금도 그는 반리합일을 완전하게 구사할 자신이 없었다.
무리한다면 사용은 할 수 있을 테고, 개화한 신성 덕에 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몇 달은 정양해야 할 정도로 크게 몸이 상하리라.
“단천검은 편하게 마구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즈라트 알 탄을 벤 시점에서 기술의 반동으로 저는 죽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건 중상을 입고도 싸운 필리포도 마찬가지였지요. 레오네도 더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적의 함대는 전력을 꽤 보존한 상황이었습니다.”
륜스이의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 상황에서 싸우는 건 다른 어떤 여지도 없는 공멸이었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끙···”
다른 사람들이 침음을 내는 걸 보며 루카는 내심 웃었다.
사실 륜스이가 전장을 정리하려고 할 때, 말리고는 싶었다.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큰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었으니까.
병사들에게 지지받을지는 몰라도 군 수뇌부와 갈등을 빚어서야 결국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의 시작부터 가장 선두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운 레오네는 물론이고 접전을 펼친 선두 함대는 양측 가릴 것 없이 엉망이었다.
차마 그 상황에서 도저히 싸우자고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움푹 들어가서 손을 덜덜 떠는 포술장, 팔을 부여잡고 꼼짝도 못 하는 조타수, 여기저기 부러지고 베이고 찢어진 몸으로도 끝까지 싸워준 병사들.
그 얼굴을 보면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 말만은 할 수 없었다.
“전쟁을 멈춰야 했던 이유는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했다고 믿습니다. 다음은 권한의 문제군요. 이 부분은 루카가 설명할 겁니다. 아, 그 전에. 저는 봉헌검주로서 이번 전쟁 한정으로 제 권한을 온전히 루카에게 위임했습니다.”
쟁쟁한 장성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는 걸 보며 루카는 소리 없이 웃었다.
당연한 일이다. 백 년이 넘도록 탄생하지 않은 탓에 봉헌검주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 평의회 의원들과 자신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까.
륜스이가 봉헌검주의 의무와 권한에 대한 서류를 읽다 언급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겠지.
“크흠, 이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전투를 멈추는 부분에 있어서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온전히 캄피오니 경의 관할이니까요.”
“아니, 사과는 충분히 받았네. 왜 멈춰야 했는지도 이해했고. 권한이 무슨 뜻인지나 말해주게나.”
“알겠습니다. 마지막 봉헌검주가 죽은 지 너무 오래돼서 여러분 모두 잘 모르시겠지만, 봉헌검에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권한이냐니까.”
루카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조바심을 조금 더 키우기 위해서.
“안코나에서 또는 안코나인이 관련된 모든 분쟁에 개입하여 중재하고 종결할 권한이지요.”
“뭐? 봉헌검에 그런 권한이 있다고?”
“예.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확실히 있습니다. 본래는 결투 따위를 막고 나아가 가문 간의 내전을 막기 위한 권한이지만···”
판결할 권한이 아니라, 싸움을 멈출 권한이었다.
사실 전쟁에까지 적용하는 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그러라고 준 권한이 아니니까.
엄연히 봉헌검에 부여된 권한은 안코나인끼리 피 흘리는 사태를 막기 위한 권한이었다. 하지만 의도가 어찌 됐건 루카의 말대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써먹어 주는 것이 정치인의 미덕 아니겠는가.
“권한이지만?”
“평의회에서는 전투까지도 인정했습니다. 전략 차원에서 전쟁의 지속 여부는 도제 각하와 평의회가 결정하지만, 단일 전투에 한해서는 봉헌검주가 중지할 수 있습니다.”
장성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야 군인들이 뭐가 된단 말인가. 전쟁의 시작과 끝을 정하는 건 정치인의 영역이다. 그건 인정할 수 있다.
옛제국의 혼란기처럼 군인이 정치인을 겸하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마땅히 정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그들의 미덕이니까.
하지만 봉헌검주는 엄밀히 따지자면 외인이다. 외인에게 전투의 종결권을 주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나자 루카는 그에 관한 설명을 첨언했다.
“사실 이 권한은 본래 봉헌검주가 군의 지휘관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겼습니다. 다만 륜스이는 지휘관이 아니지요. 그래서 제게 그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자네가?”
“예. 전투 전에 제가 요청 드린 게 기억나십니까?”
“아, 전투를 끝낼 권리.”
루카는 출항 전에 마지막으로 가진 회의에서 분명히 밝혔다.
장교 루카가 아니라 로시의 후계자이자 군 내부에서 평의회를 대표하는 귀족으로서 그는 임의로 상대와 협상할 권한을 받았다고.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상대와 합의해 전투를 끝낼 권리를 달라고도 요청했다.
마음대로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도리가 아니라고 하며.
문제는 권리를 받은 자가 루카라는 점이었다. 륜스이가 아니라.
“그래, 그랬지··· 후, 한데 왜 그 권리를 다시 안코나 경이 사용한 건가.”
“제가 요청했습니다. 당시에 제 목이 쉬어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게다가 힘이 하나도 없어서 탈진한 상태였는지라.”
사실 루카가 전장 전체에 육성을 전달할 방법도 없었다. 자연히 륜스이를 통해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베르토는 한숨 쉬며 수긍했다.
전투를 그만해야 하는 당위성도 이해했고, 권한 문제에서도 시작 전에 모두 함께한 자리에서 인정했으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강력한 권위를 가진 두 권한이 동시에 움직인 상황이다.
그래도 못내 섭섭한 기색을 보이는 베르토에게 륜스이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말했다.
“캄피오니 경.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
“난세지요. 피로 피를 씻고, 재로 재를 태우는 지옥도가 도래할 겁니다.”
“허?”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군부는 륜스이와 루카의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난세의 방향타는 결국 군이 쥐기 마련이니까.
“황위가 불안정합니다. 그 와중에 후계자는 여전히 불명확합니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억눌릴 대로 억눌린 시지는 들고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고 이종족 연합과 동부의 소왕국은 휘청이는 제국에게 복수할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시대가 화약고 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는 건 알고 있네. 자네가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그 지옥도에서 안코나가 과연 혼자 역경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안코나는 강하니까. 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도 과연 여왕의 영광이 온전하게 남아 있겠습니까?”
베르토는 륜스이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륜스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 목적이 뭔지는 아직도 모호하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혼자가 어렵다면 함께 하면 되지요. 우리에게는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이해하는 자가 있지 않습니까.”
“미친 소리군.”
눈을 번뜩이며 내뱉는 말에 륜스이는 미소 지었다.
“이곳 출신이 아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지요.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안코나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오.”
“하지만 말입니다.”
륜스이의 푸른 동공에 세로로 가늘어졌다.
섬뜩한 기세를 풍기며 그는 평생 살아오며 터득한 진리를 말했다.
“생존에 금기는 없습니다. 원한을 안고 익사하는 것과 원한을 삭여내고 화해로 순항하는 것. 선택은 어느 쪽입니까? 안코나는 어디로 향해야 합니까?”
무거운 선택의 열쇠가 노제독에게, 안코나인에게 주어졌다.
어느 문을 열 것인가.
격동하는 시대의 변곡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