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284/497)

같은 곳을 보며 걷는 길

산맥의 밤바람은 시원했다.

안코나였다면 한창 절정에 오른 여름이 보낸 후텁지근한 바람에 갑갑할 때였지만, 여기서는 조용히 하늘을 보기 딱 좋았다.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쫑긋대는 귀에 힘을 주며 륜스이는 입을 열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응. 괜찮네.”

“으하하, 쿨랍담은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알아차렸다! 이 봉우리가 제일 명당이다!”

“명당이란 말은 또 언제 배웠데? 진짜 머리 좋네.”

“음? 그거 오거치고는이 앞에 생략된 말이 아니라고 믿는다.”

“아, 아냐! 진짜 아냐!”

에밀의 말에 쿨랍담이 괜히 눈을 부라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느긋하고 여유롭게 해결하던 모습은 없었다. 대신 젊은 날의 어리숙한 모습으로 에밀은 손사래 치며 격렬하게 부정했다.

륜스이는 펄쩍 뛰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쿨랍담을 말렸다.

“장난 그만 쳐라. 애 울겠다.”

“크하하, 에밀 반응이 제일 재밌다!”

“뭐야, 또 장난이야?”

에밀은 두 사람이 웃으며 나누는 대화에 괜히 툴툴댔다.

사실 반 정도는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또 진심이면 어쩌나 싶어서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5m가 훌쩍 넘는 거인이 안 그래도 험상궂은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며 불쾌한 기색으로 소리치는 와중에 쫄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륜스이야 본인이 쿨랍담보다 훨씬 강하니 아무렇지 않겠지만, 이 거구에게 한 대 맞으면 피떡으로 변할 에밀은 절로 언행이 조심스러워졌다.

“장난이다, 에밀이 종족 차별 같은 걸 안 할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다.”

“쿨랍담···”

에밀은 지금까지 보여준 자신의 진심이 통하는 것 같자 감동한 눈으로 쿨랍담을 올려봤다. 그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르고 할 수는 있지만, 에밀이라면 한 번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한··· 번? 그러면 두 번 실수하면?”

“맞는다. 잘못하면 맞아야지. 그 정도는 알 나이지 않나?”

사람 상체만 한 주먹을 장난스럽게 흔들며 하는 말에 에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전에 한 말에 마음을 놓으려던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앞으로도 말 한마디, 손짓 하나까지 조심스럽게 하기로.

“확실히 아펜니노산맥도 지내기에 나쁘진 않군. 우리 쪽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다들 프란체스코 각하가 드디어 미쳐버렸다고 생각하더라고.”

“음? 이 정도면 살기 좋은 편 아닌가? 딱히 위험한 것도 없고, 산이긴 해도 크고 넓고. 먹을 것도 많고.”

쿨랍담의 말에 에밀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위험한 게 없어? 오거라고 못 하는 말이 없다.

“그건 여기 자리 잡은 게 너희라서 그렇고. 사람은 여기서 버틸 수가 없다고. 위험한 게 없긴 뭐가 없냐. 사방팔방이 다 위험한 건데.”

“으하하, 그런가? 확실히 우리 기준으로 생각했군.”

인간이 괜히 아펜니노산맥이라는 넓은 땅을 정복하지 못한 게 아니다.

산이라는 특성상 농경지로 쓸 공간이 그리 많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다.

어차피 여기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들 도시로 옮기려면 운송 비용이 들 테니 큰 수익을 바라기도 어렵고.

하지만 이 거대한 산맥에서 기대할 게 농사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알리아타반도 면적의 50%가량을 차지한 이곳에서 나올 광물만 해도 어마어마할 거라고 누구나 추측했다.

실제로 탐광자가 와서 여기저기 둘러본 바로는 거대한 광맥이 여기저기 산재했다고 하고.

하지만 아무리 광물이 많이 나온들 캘 수가 없으니 의미가 없었다.

하나를 죽이면 열이 몰려오는 괴물들 등쌀에 상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야 광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림의 떡이거나 신 포도에 불과하니까.

물론 오거는 다르다.

사람이 괴물 하나를 죽이면 열이 몰려오지만, 오거가 괴물 하나를 죽이면 백이 도망친다. 감히 오거의 영역 안에서 나 잘났다고 버틸 놈들은 없고, 갑자기 살기 싫어져서 우르르 덤빌 놈은 더 없다.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곳도 없지. 딱히 다른 세력이랑 충돌할 필요도 없고.”

“확실히 그렇다. 쿨랍담은 싸우는 게 무섭지 않지만 싸우는 게 무섭다.”

에밀이 이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쿨랍담을 바라봤지만, 륜스이는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쿨랍담 개인은 전투가 두렵지 않은 전사지만, 통치자로서는 전투가 두렵다는 말이겠지.

제대로 된 통치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였다.

“그래. 너희는 숫자가 워낙 적으니까.”

“이제 많아질 거다. 일단 여기 제대로 자리 잡고 나라를 만들고 나면 다른 곳에 있는 오거도 데려올 생각이다!”

“뚜와처럼 협박하진 말고. 들어보니까, 너희가 강제로 끌고 가서 노예처럼 쓰려고 한 줄 알더라.”

“그건 좀 억울하다! 뚜와, 그 바보가 우릴 보자마자 도망갔다! 동족을 보고 반갑게 맞아주지는 못할망정!”

륜스이는 야생에서 너희는 영역 침범한 동족을 가차 없이 때려죽이지 않냐는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괜한 말로 분위기를 나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인간도 같은 인간 군대가 나타나면 무서워서 도망치니까, 너무 안 좋게 보지는 마라.”

“맞아. 솔직히 천이나 되는 군대가 갑자기 집 근처에 나타나면 해코지할까 봐 벌벌 떠는 게 정상이라고.”

“너희는 숫자가 많지 않나. 우린 세상에 믿을 게 우리뿐이다. 서로 믿고 마음을 나눠도 모자란 마당에 싸우기 바쁘니 한숨만 나온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오거라고 생각하겠는가.

얼굴을 가리고 말만 듣는다면 세계 평화를 위해 불철주야 고뇌하는 이상가의 말이라고 해도 믿었으리라.

륜스이는 개박하 띄운 물을 들이마시며 쿨랍담을 달랬다.

“어쩔 수 없지.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경험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다 그런 거다.”

“이해한다. 다 이해하는데,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더 답답해지겠군.”

“응?”

에밀이 륜스이의 말에 반응해서 의아한 표정의 쿨랍담에게 툴툴댔다. 자꾸만 놀려먹는 게 얄미워서 고운 말이 잘 안 나왔다.

“나라라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피곤한 건데. 벌써 답답하면 나중에는 죽고 싶어지도록 답답해질걸?”

“으음, 괜찮다. 답답하게 하는 놈은 때려주면 해결된다.”

“그거 참 오거스럽네. 때린다고 일이 다 풀리면 얼마나 좋겠냐.”

“쿨랍담도 폭력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그보다 오거스럽다는 말··· 불순한 뜻이냐?”

“아, 아냐! 진짜 아니라니까!”

“넌 기회 한 번 썼다. 쿨랍담이 기억해 둔다.”

서로 다른 성격만큼이나 키도 다른 두 남자가 투덕대는 모습을 보며 륜스이는 개박하 잎 띄운 물을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인수족은 원형이 되는 종족의 신체 특징을 완전히는 아니라도 대부분 따라간다.

덕분에 그는 술을 잘 못 마셨다.

인간의 특성도 있었기에 알콜 해독 능력이 없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술이 약한 정도는 됐다.

그래서 그는 취하고 싶을 때면 개박하 잎을 쓰곤 했다.

달은 밝고 바람은 시원하고 산은 높고 친우들은 흥겨우니 취하기 좋은 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투박한 그릇에 담긴 개박하 물을 홀짝이던 륜스이는 문득 질문을 던졌다.

“쿨랍담.”

“응? 왜 그러나?”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솥뚜껑보다 큰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며 에밀을 놀리던 쿨랍담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휘영청 밝은 달을 올려보는 륜스이가 보였다.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 것만 같은 검은 털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몸에 걸친 검은 두루마기가 밤바람을 맞아 나부꼈다.

어딘가의 동화에서나 나오는 밤 요정 같은 모습으로 륜스이는 쿨랍담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 위로 달을 띄워놓은 채.

“이제 이곳에 너희의 나라를 만드는 건 확실해졌다.”

“그렇지?”

“앞으로 이런저런 일이 많을 거다. 한동안은 안코나와 로란체가 최선을 다해 은폐하겠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오가다 보면 언젠가 알려질 수밖에 없어.”

“음, 쿨랍담도 예상하고 있다. 그래도 동맹이 잘 도와주면 되지 않겠나?”

쿨랍담은 현명한 오거였지만, 행정이나 정치와는 인연이 없었다.

애초에 오거를 의사 결정에 받아주는 사회가 있을 리도 없고 오거의 사회는 그냥 없으니까.

이제 처음부터 만들어나가고 경험해 봐야 하는 처지라 그런지 비교적 낙관적인 모습이 보였다.

륜스이는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렇기에 지금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로란체는 잘 모르겠고, 안코나는 한동안 최선을 다해 너희를 돕긴 하겠지만 그거로는 부족해.”

“야, 로란체도 열심히 도울 거거든?”

“프란체스코 공이 멍청해 보이진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지. 관건은 아무리 숨기려고 애써봐야 언젠가 알려진다는 거다. 온갖 악의적인 말이 너희에게 향할 거다. 일부는 행동하려는 자도 있겠지.”

갑자기 들어온 진지한 말에 쿨랍담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주먹을 꽉 쥐면서.

“덤비면 다 죽인다.”

“그게 아니지. 애초에 덤비지 못할 정도로 세를 키우는 게 상책이다. 쿨랍담, 좋은 통치자가 되려면 전쟁을 피할 줄 알아야 해. 언제나 싸우는 건 가장 마지막에 하는 선택이다.”

“쿨랍담도 안다. 하지만 우리 처지도 안다. 너희는 조금 다르지만 다른 종족에게 우린 여전히 괴물이다.”

씁쓸한 얼굴로 사람만 한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키며 쿨랍담은 달을 바라봤다.

하늘 아래 달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오건만, 사람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같은 사람끼리도 어떻게든 온갖 꼬리표를 붙여서 서로 나누고 차별하는 와중에 아예 종이 다른 오거에게는 어떻겠는가.

“그러면 괴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지. 안코나와 로란체가 보내는 정치적 지지만으로는 부족해. 쿨랍담, 아까 나라 이름을 오거리아로 하고 싶다고 했지?”

“그래. 그게 괴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들 나라는 오거의 낙원이 될 거다.”

먼 옛날, 제국의 황도에서 느낀 충격과 공포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일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종족 자체가 말살을 앞두고 있다는 공포는 쿨랍담처럼 강대한 자의 뇌리에조차 벌겋게 달군 인두로 지진 것처럼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쿨랍담은 오거의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야만과 무지, 광기와 폭력 속에 사는 동족을 구해내서 정해진 멸종에서 구해주고 싶었다.

한 번 그런 마음을 먹고 나자 욕심이 커졌다.

그저 오거의 멸종을 막는 걸 넘어, 대륙 모든 오거에게 꿈이자 낙원이 될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모든 오거가 마음 편히 먹고 마시며 천수를 누릴 수 있는 곳.

그들의 신이 내린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광폭화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쿨랍담이 달 너머로 보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오거의 낙원이라··· 일단 네가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건 알겠다.”

“하하, 생각이야 늘 하고 있다! 난 대장이니까!”

기분 좋아 보이는 쿨랍담을 보며 륜스이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이 녀석은 시야가 좁다.

대륙에 있는 오거를 모두 모은다고 한들 몇이나 될까? 만?

솔직히 만은 될지도 불확실했다.

오거는 분명히 최상위 포식자였지만 그만큼 지나치게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과도하게 폭력적이기에 동족과 공존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고 머무는 곳마다 폐허로 만들었다.

물론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도 살아가기 위해 정착한 지역을 소모하는 건 마찬가지다.

단지 그들은 소모하는 만큼 재건하려는 노력도 하고, 불필요한 파괴는 지양하는 편이다.

지금의 과도한 소비가 미래의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도 하고 있다.

대지모 신의 축복으로 산성화된 토양을 정화하거나 요정들이 숲을 키우는 것처럼.

반면에 오거는 그런 게 없다.

그저 부수고 황폐화한다. 재앙으로 군림하지만, 달리 말하면 누구에게나 무찔러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이 짧다.”

“응? 생각이 짧다고? 좀 자세하게 설명해라. 쿨랍담도 혼자 다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라. 듣고 고치겠다.”

물론 이 유연하고 개방적인 성격은 축복이다.

륜스이는 자세까지 고쳐 앉으며 진지하게 묻는 쿨랍담의 모습에 내심 생각했다.

이 녀석이야말로 오거라는 종족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고.

희망이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이 될지, 찰나를 밝히고 사라지는 최후의 섬광이 될지는 녀석에게 달렸다.

아플 수도 있는 말을 한 건 그래서였다.

“대륙에 있는 오거를 모두 모으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으음, 확실히 그렇다. 솔직히 오천도 안 될 것 같다. 사실 더 많아봤자 데려오기도 힘들 것 같고.”

“그건 좀···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듣던 에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무리 오거가 강력한 종족이라고는 해도 오천이면 아무것도 못 한다. 잠깐 난동 부리거나 도시 한두 개 정도 폐허로 만드는 건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본격적으로 체계를 잡고 성장하기에는 지나치게 적은 숫자다.

누군가는 유수의 대도시도 한때는 겨우 몇백, 몇천으로 시작한 시절이 있지 않으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시대가 다르다.

그때는 다른 지역에 경쟁자가 없던 시대였다.

반면에 지금은 사방에 나름의 세력이 꽉 들어차서 판도가 굳어진 상황.

신참자가 비집고 들어가 무언가 하려면 더 많은 인구와 힘이 필요하다.

괜히 휘하에 수천씩 거느린 용병 군주들이 직접 나라를 세우지 못 하는 게 아니다.

“적지. 지나칠 정도로 적어. 오천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하지만 우린 강하다!”

“나라를 힘으로만 운영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 오천중에 행정 업무가 가능한 오거가 얼마나 되나? 금융과 상업은? 농업, 목축, 광업은? 나라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조직이 아니라네.”

쿨랍담은 륜스이의 말에 앓는 소리를 냈다.

듣기 싫은 말이지만, 분명히 옳은 말이기도 하다.

오천을 데리고 싸우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 단기적으로는 어디든 가서 죽이고 약탈하는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메뚜기 떼 같은 삶을 살게 하려고 동족을 모은 게 아니다.

쿨랍담이 원한 건 안온하고 문명화된 삶이었지, 폭력과 광기에 취해 삶을 찰나로 허비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는 킁, 콧김을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옳은 말이다. 네 말이 옳다. 닥치는 대로 날뛰다 전멸할 생각이 아니라면 오천은 너무 적은 숫자다.”

“그래. 오거는 강하지만 마탑이며 신전, 온갖 이능력자와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숫자의 군대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지.”

온전한 편제를 갖췄을 때, 첩첩이 쌓인 이능의 효과로 강해지는 건 오거의 특권이 아니다.

인류의 군대 역시 함께 누리는 권리이자 법칙.

작정하고 국가급 전력이 토벌에 나서면 결국 오거의 군대는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니 나라를 세우는 게 아닌가.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아펜니노산맥에 정착한 게 그 시작이다. 앞으로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동맹과 친구의 도움이 있다면 분명히 가능하다.

쿨랍담은 스스로 인정한 친구에게 답을 물었다.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뭔가 방법이 있으니 말을 꺼낸 게 아닌가.”

“방법은 있지.”

“오! 믿고 있었다, 친구! 뭔가? 빨리 알려다오!”

쿨랍담이 거대한 손으로 륜스이의 등짝을 치려다 멈칫했다.

물론 륜스이가 악의 없이 내려치는 공격에 맞을 리 없지만, 다른 오거에게 대하는 것처럼 했다가 혹여 맞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리며 믿음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완벽한 해답을 기대하면서.

륜스이는 그런 쿨랍담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으며 무덤덤하게 잔인한 말을 뱉었다.

“오거의 나라를 버려라.”

“뭐?”

믿음이 배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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