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곳을 보며 걷는 길
세 친구의 밤도 지나가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륜스이는 각자 할 일을 찾아 떠난 쿨랍담과 에밀을 뒤로하고 발보를 만나러 갔다.
아펜니노산맥 개발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광산 개발이었다.
어차피 산맥이라는 특징을 생각하면 농사는 자급자족 수준만 돼도 대만족이고, 실제로는 그보다 조금 못 미칠 거로 예상한다.
정말로 경사가 조금 완만한 산까지 전부 개발해서 계단식으로 농지를 만들면 또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었고.
관건은 이 거대한 산맥이 품고 있을 광물의 양과 질이었다.
보석 같은 귀금속은 바라지도 않고, 많이 나온들 시장을 생각하면 팔기도 어려우니, 철이나 구리 같은 일반 광물이 중요하다.
사실 그쪽이 훨씬 유용하기도 하고.
광맥 개발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 광물의 제련과 그를 통한 무구의 개발이었다.
지금은 두 도시가 오거의 무구를 만들어주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쭉 그럴 수는 없다.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오거의 무구를 만드는 건 인간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품이 많이 드니 효율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장기적으로 보자면 오거가 스스로 제 신체에 맞는 무구를 만들 수 있어야 했다.
팟코를 발보에게 붙인 것은 그래서였다.
녀석을 시작으로 꾸준히 오거 대장장이를 늘리기 위해.
그래서 찾은 대장간이었건만,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와 있었다.
“어? 사부님! 마침 찾아가려고 했는데!”
“음? 다른 아이들이랑 놀러 간 것 아니었느냐?”
“노는 것도 재밌긴 한데요, 지금은 할 일이 있어서요.”
“네가?”
평소에는 공부라면 질색이고 일하는 건 더 싫어하는 벤이었다. 그런 녀석이 아침 먹자마자 어딘가로 달려간다 싶더라니, 대장간에서 할 일이라니?
륜스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녀석이 살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네. 그, 저기. 제가 말이죠.”
“그래.”
“여기서 할 일이 있거든요?”
“네가 대장간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어차피 힘쓰는 일은 팟코가 다 하고, 기술 쓰는 일은 영감님이 다 하지 않느냐?”
“헤헤, 그게요.”
몸을 배배 꼬면서 답답하게 우물쭈물하는 녀석의 모습에도 륜스이는 가만히 두고 봤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막 던지던 녀석이 이렇게 조심스러울 정도면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대답은 안 하고 자꾸 빙빙 말을 돌리는 모습에 륜스이가 참지 못하고 직접 물으려고 할 때,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 이놈아! 나한테는 말만 하면 다 될 것처럼 말하더니, 그게 뭐 하는 짓이냐? 사내답지 못하게!”
“아니, 할아버지는 좀 가만히 계셔보세요!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힘들기는 개뿔, 시원시원하게 말하고 퇴짜 맞으면 포기하면 그만이지!”
“아, 퇴짜 맞으면 안 되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담배라도 피우다 온 건지 파이프를 챙겨 넣던 발보 영감이 어느새 뒤에서 나타나 벤을 타박했다. 녀석은 지지 않고 대꾸했고.
투덕거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꽤 친해진 것 같아서 보기 나쁘진 않았다.
여전히 벤이 할 일이 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래서,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영감님은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그런데 내가 말할 문제는 아냐. 자네 없는 데서만 용감하고 정작 자네 앞에서는 겁쟁이가 된 이 녀석이 직접 말하는 게 도리라네.”
“아아니, 겁쟁이라뇨! 전 겁쟁이 아니거든요!”
“겁쟁이가 아닌 사람은 한 마디면 끝날 말을 그렇게 입안에서 우물대지 않는단다. 바보 꼬마야.”
대체 무슨 일이기에 도리씩이나 논하는지 의아해진 륜스이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하다가 짚이는 걸 찾았다.
그는 우선 머리에 쓰고 있던 갓을 벗으며 벤을 불렀다. 그리고 부드럽게 물었다.
“도리를 말하는 걸 보니 발보 영감님 제자라도 되려는 게냐?”
“예? 히익! 어떻게 아셨어요?”
“찾아오려고 했다는 건 허락 받으려고 한 거고?”
“헤헤, 네···”
말 한마디 못 하고 몸만 꼬던 벤은 다 들킨 것 같자 뻔뻔하게 배시시 웃었다. 륜스이는 자신이 거둔 아이 중에서도 아디나와 함께 가장 밝고 장난기 많은 녀석을 보며 물었다.
“왜?”
“예? 왜라뇨?”
“왜 발보 영감님께 배우고 싶냐고 묻는 게다. 어차피 영감님이 대장장이 일 말고 가르칠 수 있는 게 있을 리 없으니, 배우는 것도 그거겠지. 왜 굳이 그걸 배우고 싶은 게냐?”
“아니, 자네 말이 좀···”
“영감님, 지금은 사제가 대화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발보는 륜스이의 말에 발끈해서 끼어들려다가 륜스이의 서늘한 말에 그대로 입을 꾹 닫았다.
성질머리라면 어디 가서 누구에게도 안 밀리는 그였지만, 확실히 지금으로서는 그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었다.
벤은 무거워진 분위기에 눈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륜스이를 올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요, 칼을 만들고 싶어서요.”
“칼은 왜?”
“그냥요. 그냥 칼이 좋아서 만들고 싶었어요.”
“그냥, 그냥이라···”
벤은 그냥이라는 말을 되뇌는 륜스이를 보며 점점 움츠러들었다.
세상에 다시 없을 호인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아이들에게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 륜스이다. 하지만 같이 살면서 느낀 건, 아니라고 생각한 부분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단호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 륜스이였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하는 사람이었지만 정말 중요하다 싶은 부분에서는 칼 같았다.
사내아이들과 놀면서 소매치기하던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괜히 장난스럽게 한 번 더 해보는 건 어떻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정말 할 생각은 아니었고 장난이었지만, 륜스이는 그날 아이들을 불러놓고 진지하게 타일렀다.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혼낸 다음에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줘서 그날의 일이 마냥 괴로운 기억으로만 남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사부님께도 어떤 선이 있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지금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 건 그래서였다.
사부님의 선을 넘었을까 봐. 실망하실까 봐.
“뭐, 좋다. 이왕 배울 생각이라면 열심히 배우거라.”
“잘못했, 예?”
“이런, 내가 인상 좀 썼다고 무를 생각이었느냐?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면 지금이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 아니에요! 말이 잘못 나왔다고요! 할 거예요!”
화들짝 놀라서 허겁지겁 수습하는 아이를 보며 륜스이는 푸근하게 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남아야만 했던 아이들이었기에 그는 무언가 해라, 하지 말아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음껏 놀게 놔두었고.
검술은 시대가 험하니 어디서 객사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정도였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고, 흥미를 느끼는 분야도 다르니, 제자라고 강제로 검의 길을 걷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검사로서 산다는 게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인지 아느니만큼, 자식처럼 여기는 아이들에게 자신처럼 살라고 하는 건 못 할 짓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륜스이였기에 벤이 검술을 배우면서 생각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녀석에게는 아쉽게도 재능이 없었다. 딱히 둔재까지는 아니었지만, 옆에 있는 녀석들이 아디나와 아디라 자매나 리카르도 같은 천재였으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법도 했다.
벌써 발보 영감의 제자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건 의외였지만,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인생은 빨리 시작한다고 꼭 멀리 갈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그래도 어릴 때 무언가 접하면 좋은 점이 많으니까.
륜스이는 이제야 안심한 건지 조마조마한 얼굴들이 화색으로 변한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누구나 검에 살 수는 없고, 검에 살지 않는다고 하여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라고 했거늘, 왜 그리 긴장한 게냐?”
“그게··· 두 스승을 모시는 건 실례라고 해서요.”
“음? 누가 그런 말을, 아. 영감님이셨군.”
“크흠, 그렇네. 내가 오래 살다 보니 그런 문제로 칼부림까지 나는 모습을 많이 봐서 괜한 걱정에 한 말이라네.”
발보의 말에 륜스이는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시대가 험하니, 기술은 그 자체로 아주 귀한 자산이다.
괜히 장인들이 길드를 만들고, 상인들이 자기들끼리만 상술을 공유하는 게 아니다. 이 시대에는 그게 무엇이든 기술은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전해진다.
아직 인쇄 비용과 제지 비용이 많아서 책이 대중화되지 못해 그런 것도 크다.
일단 지식이 서적을 통해 풀리기 시작하면 조금씩 기술 전수에 비밀스러운 분위기도 완화되지만, 이곳은 책 한 권이 한 가족의 한 달 생활비용 수준이니까.
그 귀한 기술 중에서도 무술은 특히 까다롭고 엄격하게 전해졌다.
괜히 비인부전이니 하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무술이란 본질적으로 죽이는 기술이기에, 함부로 전한 대가가 죽음이 되어 돌아올 수 있으니까.
“음, 다른 무인들이 스승을 모시는 문제로 다툰 걸 본 모양이오.”
“그렇지. 몇 번 봤다네.”
“그래서 오해하셨군. 무인들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무술의 영역에만 해당하오. 무술이 아닌 부분을 배우는 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소이다.”
“으잉? 그렇다고? 아니, 왜 그것만··· 아!”
스승을 두고 다른 스승을 모시면 비전 유출의 위험이 있다.
종종 모르면 죽어야 하는 종류의 기술을 다루는 유파가 그런 위험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륜스이는 어느 쪽이냐 하면, 딱히 신경 쓰지 않는 쪽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무술을 영상과 서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왔다. 당연히 그에게 지식이란 널리 나누고 퍼트려 발전할 것이지, 꽁꽁 싸맬 것이 아니었다.
예외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그런 이유를 제외하고도 사실 비전은 의외로 알고 나면 별 가치가 없는 게 많다.
팔굽혀 펴기나 버피 테스트 따위도 당장 이곳으로 오면 비전의 신체 단련법이 될 것이다.
륜스이로서는 거기 목매다는 무인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공감까지는 할 수 없었다.
“분석 당하거나 기술이 유출되는 걸 경계하는 거요. 내가 볼 때는 별 의미 없는 짓이지만.”
“어? 그런가? 꽤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지. 상대가 안다고 당했다면 그만큼 실력이 부족한 게지. 일곱별은 특징과 무술이 모두 알려졌으니 싸울 때마다 위험하오? 아니잖소.”
“하긴.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렇구만. 그런데 왜 일곱별이라고 하나? 이제 여덟별이지!”
륜스이는 발보 영감의 장난기 어린 너스레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리아드나 해전에서 필리포를 꺾은 장면을 본 사람이 지나치게 많았다. 덕분에 최근에 그는 기존의 일곱별에 더해 검성으로 불리고 있었다.
성인의 성이 아니라 별 성자를 썼지만.
괜히 이상한 쪽으로 빠지려는 이야기를 바로잡으려 륜스이는 영감을 무시하고 한쪽 무릎을 굽혀 앉으며 벤과 시선을 맞췄다.
잘 먹지 못해서 유독 키가 작은 벤은 그러고 나서야 간신히 륜스이와 눈높이가 맞았다.
어느새 여유를 되찾고 총기로 반짝이는 눈을 보며 륜스이는 부드럽게 말했다.
“누군가는 그냥 좋아서 한다고 하면 화낼지도 모른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어, 가벼운 마음은 아닌데요···”
“안다. 세상에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많고도 많지만, 그냥 좋은 것보다 강렬한 이유가 또 어디 있을까. 벤, 그냥은 무서운 말이다.”
그냥 좋다나, 그냥 싫다는 정말로 무서운 말이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하거나 멈출 수 없다. 그냥 좋던 게 다시 그냥 싫어지거나, 그냥 싫던 게 다시 그냥 좋아지는 것 말고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강력한 동기라는 뜻이기도 했다.
생존이나 복수처럼 삶이 망가져 버린 사람의 집착에 가까운 동기를 제외한다면, 그보다 더 강렬한 동기도 없다.
어디까지나 진심일 때에만.
“너는 그냥 검이 좋다고 했지. 네가 좋다고 하니 내가 왜 막겠느냐.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네가 발보 영감님과 사제의 연을 맺는다는 하여 나와 네가 맺은 연이 끊어지느냐?”
“아니요! 사부님은 영원한 사부님이세요!”
륜스이의 말에 벤은 자신도 모르게 발작하듯 소리쳤다.
미래라고는 없는 삶, 리카르도 형의 호의에 기대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었다.
소매치기의 최후는 붙잡혀 손목이 잘리고 죽거나 범죄 조직 따위에 들어가서 하루살이처럼 살다가 비참하게 소리소문없이 길바닥에 몸을 누이는 것이라는 걸.
그렇다고 달리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부모도 없는 빈민 아이에게 공들여 귀중한 지식을 가르치려 할까. 지식은 고사하고 한 끼 밥조차 적선하는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오직 어둠만 가득한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내려온 빛이 륜스이였다.
벤에게 륜스이는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당연히 인연을 끊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 넌 영원히 내 제자지. 발보 영감님께는 역시 검 만드는 걸 배우겠구나.”
“네! 제대로 가르쳐주신다고 하셨어요!”
아이의 우렁찬 대답에 발보가 괜히 민망한지 헛기침했다.
륜스이는 빨리 낯간지러운 말을 끝내라는 듯 자꾸만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벤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래의 명장이 여기 있구나. 언젠가 네가 만든 검을 쓰는 날이 올 수도 있겠어.”
“믿어주세요! 꼭 최고로 멋진 검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아, 이놈아! 아직 쇠 보는 법도 안 배운 놈이 무슨 허세냐! 그런 건 다 만든 다음에 내밀면서 하는 거다!”
“헤헤, 그런가?”
훈훈한 분위기에 초라도 치려는 듯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발보의 호통에도 벤은 기분 좋게 웃었다.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 날, 기분 좋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 만날 때는 저리 웃지 못했다.
겉으로는 까불대고 떠들썩하게 굴었지만, 그 모든 행동 뒤에는 작은 불안감이 그늘처럼 따라붙었다.
이제는 다르다.
아이는 어느새 내리쬐는 여름 햇살처럼 환한 웃음을 지울 수 있게 되었다.
륜스이는 가슴이 따듯해지는 기분으로 다시 녀석을 쓰다듬어 주려고 했다.
멀리서 다급한 발걸음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어? 갑자기 왜 그러세요?”
가늘게 휜 눈으로 그를 보며 기분 좋게 웃던 륜스이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자 벤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륜스이는 대답 대신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참다못한 발보까지 뭐라고 물으려 할 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길인지 흉인지 모르겠구나.”
“예?”
“사, 사부님! 사부니이임!”
멀찍이서 아디나가 전에 없던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녀석은 짧은 다리를 정신없이 앞뒤로 움직이며 외쳤다.
“므, 므이! 므이 아줌마가!”
“므이가 어찌 됐다는 게냐? 진정하고 말해 보거라. 아, 그전에 숨부터 좀 골라야겠구나.”
보폭도 작은 녀석이 어찌나 날렵하게 달려왔는지, 순식간에 륜스이의 앞에 도착해서 헐떡이며 외쳤다.
륜스이는 아디나의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급하게 군다고 바뀌는 건 없다.
“헥, 아헥! 으갸악! 지, 진정했어요!”
“그래, 므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느냐?”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숨넘어갈 것 같던 상태에서는 벗어난 아디나가 륜스이의 질문에 폴짝 뛰어오르며 외쳤다.
“아, 아기를 낳는 것 같데요! 빨리 와 보세요!”
“음?”
“쿨랍담 아저씨랑 뚜와 아저씨가 너무 불안해 보여서 사부님 좀 데려오래요! 언니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륜스이와 발보가 눈을 맞췄다.
전해진 소식은 길사였다. 하지만 흉사로 끝날지 모르는 소식, 륜스이는 즉시 대지를 박찼다.
아버지가 될 사람과 친우를 달래기 위해.
새 생명의 탄생을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