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73. 인면수심(人面獸心)(3)
끝없이 메아리치는 웃음이 고막을 광광 두드렸다.
그 웃음은 조폭 아저씨가 수십 번이 넘는 칼부림에 난자당해, 빨간 넝마주이 비슷한 꼴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는 고깃덩이는 이미 한 명이라기보다 한 구라고 불러야 함을 보여 주었다.
[하하하, 하하, 하아…….]
그때쯤, 살인을 끝낸 제스터가 다시 광신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격한 웃음의 반동인지 여전히 가슴을 헐떡이며.
주르륵, 피가 사방으로 번진다. 방금까지 살아 있던 사람의 뜨끈한 피가, 종양 같은 형상으로 바닥을 기었다. 후각이 마비될 것 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피와 광기의 한복판에서도 귓가에 윙윙거리는 이명이 감도는 와중에도, 머리가 심장 뛰는 순간마다 깨질 것 같은 상태에서도, 나는 생각을 쉬지 않았다.
제스터의 수중에 든 카드 패를 읽기 위해.
한 발 앞서 읽고, 한 발 빨리 대응하기 위해.
일단 ‘대담한 살인자’를 갖고 있단 말이지. 본래 밤에 한정된 변신을 낮에도 가능케 하는 스킬. 리스크가 너무나도 커, 단 한 명만 죽이면 동수를 이룰 수 있을 상황을 예상하여 쓴다. 이렇게 환한 대낮에 쓰는 건 ‘나 죽여 줍쇼―’ 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
그 외에 어떤 것들이 더 있을까. 말 그대로 대담한 살인을 저지른 만큼, 투표에 관여하는 스킬이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미카제 같은 멍청한 짓을 할 리 없지.
욱신, 머리가 달아올랐다. 혈관에 펄펄 끓는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지리멸렬해지는 사고를 억지로 붙잡고 끌고 간다.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스킬들이 뭐가 있더라.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불성실한 시민’, ‘필리버스터’, ‘폭군’, ‘의자 바꿔 앉기’, ‘면책 특권’, ‘어나니머스’, ‘정치 9단’, ‘유기명 투표’, ‘때 이른 마감’……. 모두 투표에 관여하는 스킬의 집단군.
그중 현 상황에 변수가 될 스킬을 솎아 내고 성능이 지나치게 강력하여 얻을 가능성이 희박한 것들을 제외하고, 이번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들을 한 번 더 걸러 냈다.
고통과 열기가 합병증처럼 정신을 쥐어 짜냈다. 간신히 그럴듯한 추측을 완성했을 때, 나는 이미 기진맥진해져 탈진할 것 같았다.
유력한 건, ‘불성실한 시민’ 정도인가. 까다로운 전제 조건이 하나 더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여기까지 생각하고 광신도가 심장 질환을 앓는 사람처럼 가슴을 누를 무렵, 권이세가 차갑게 일갈했다.
“다 쪼갰냐, 미친 삐에로 새끼야.”
곧게 뻗는 손엔 핸드폰이 들려 있다. 드는 동작과 연계되는 투표 선언.
[투표가 선언되었습니다. 모두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심 가는 사람에게 투표권을 행사하십시오. 제한 시간, 10분.]
권이세가 턱을 들며 경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뭔 지랄을 해도 이제 끝이야. 짖어 댈 유언이라도 있으면 짖어보든가.”
“아… 유언?”
광신도의 입꼬리가 다시 실룩였다. 허리는 반쯤 구부리고 고개만 뻣뻣이 쳐들며 병리적인 웃음을 머금는다.
‘으힉, 으히힉, 으히히힉.’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모습으로도 제스터가 연상된다. 하긴, 원래 어떤 인간인진 몰라도 영향이 아예 없을 것 같진 않다.
아무리 봐도 말이 통할 품새가 아닌지라, 권이세는 미간을 찡그리며 표를 행사했다. 다른 이들도 하나둘 표를 행사하여, 광신도에게 향하는 표는 쌓이고 쌓여 갔다.
권이세의 1표, 황보라의 1표, 슬기의 1표, 나의 1표까지 더해져, 총 4표. 표를 넣기 전 투표 창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면면을 확인했다.
여섯 명.
살아 있는 사람이 여섯 명인 이상, 일단 뒤집을 수 없는 수적 우위를 확보한 것…처럼 보인다.
광신도가 투표로 쫓겨나지 않으리란 확신에도, 나는 표를 아끼거나 미리 좋은 위치를 잡으려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이 뭘 갖고 있든 그걸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소모시킬 요량이었다.
슬기가 변수이긴 했다. 내가 의사를 방출하기 전, 가장 우려하던 것이기도 하다.
‘의사가 기권하고 광신도가 기권하고, 감염으로 인해 체인질링으로 변한 슬기마저 기권하면 어쩌나.’ 하고.
체인질링 측에 ‘정치 9단’이 있었다면, 아마 4:4의 동수로 끝났을 투표전. 그러나 슬기는 의사를 추방하는데 손을 보탰고, 지금 와서 입장을 달리할 것 같진 않았다. 자신의 변신 스택을 써가면서 나를 지켰으니까.
그 이유는 아직도 알쏭달쏭하지만, 아무렴 어때. 당장 중요한 건 제스터의 방출 여부였다. 동기가 불살의 신념이든 연모의 감정이든 나중에 들어도 될 것이다. 이왕이면 전자였으면 싶긴 하지만.
실금하듯 웃음을 흘리던 광신도가 말했다.
“있지. 유언은 너희가 남겨야 할 것 같은데?”
“뭐야, 이 새끼야?”
“권이세 군. 뭔가 이상한 걸 못 느끼겠어?”
느물느물한 태도로 이죽거리는 광신도. 권이세는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고, 그래서 권이세는 한층 일그러진 얼굴로 쏘아붙였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네 정신머리가?”
“이히히히힛! 땡이지! 틀렸지! 그게 아니지!”
울컥한 권이세가 한 걸음 나서는 순간, 내가 정답을 맞혔다.
“목사님은 어디 갔어요?”
설마 선교 활동이나 마실을 가진 않았겠지.
한줄기 정적이 내린다. 그제야 한 사람의 부재를 깨닫고 동공을 키우는 사람들.
뒤이어, 폭발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끼요오오옷! 광신도가 잔뜩 흥분한 것처럼 몸을 흔들어댔다. 흡사 잭 인 더 박스를 의인화한 양 웨이브를 타는 게, 안구 건강에 심히 좋지 않았다. 다 큰 성인 남성이 이 무슨 추태인지. 감정 과잉도 도가 지나쳤다.
“정답, 정답, 정답! 참 잘했어요, 이서희 어린이! 대단해! 훌륭해! 선물로 뭘 줄까요? 귀? 손가락? 이빨?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 봐요! 원하는 사람 걸로, 원하는 대로 뽑아 줄게요! 아! 물론 내 거는 안 된다는 거 명심하고!”
줘도 안 받는다.
“아니, 그런 꺼림칙한 선물은 필요 없어요. 어디 쓸 데도 없고.”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나는 의심스럽게 광신도를 보았다. 그래도 대화가 통하는 것에 위안을 얻으려 했건만,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모습이 영 불안했다. 어떤 말이 기폭제가 되어 돌발 행동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다.
지금도 봐라. 오른쪽 머리 위로 세 번 짝짝짝, 왼쪽 머리 위로 세 번 짝짝짝, 그 중간에서 또 세 번 짝짝짝. 정신 사납게 손뼉 치는 꼴을. 그렇게 보이지도 않고 딱히 어울리지도 않지만, 장래 희망은 치어리더였던 건가?
“쓸 데가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해? 목걸이로 꿰고 국 끓여 먹고, 전시만 해놔도 좋은 것들인데! 안 그래?!”
귀를 엮어 만든 목걸이와 손가락을 넣은 스프와 이빨을 다닥다닥 붙인 장식물을 생각해 보았다. 각 내용물을 뒤바꿔 보기도 했다. 역겹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내 심미적 감각은 아직 정상이었다.
흐음. 이 정신 나간 것들하고 두 번째로 엮이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나, 제법 기특해.
“안 그래요. 그러니까, 그렇게 좋아서 죽으려던 목사님은 어떻게 했는데요?”
내 반응에 광신도가 시들해졌다. 제풀에 꺾인 모양새로 어깨를 으쓱였다.
“맞혀 봐. 문제를 풀기도 전에 답안지를 확인하려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야. 아, 너라면 알겠지만 죽이진 않았어.”
그래, 죽이진 않았겠지. 투표 화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은 사람들이 흑백으로 표시되는 것과 달리, 목사는 총천연색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내 짐작이 맞다면, 아마 목사는 차라리 죽음을 희망할 것이다.
죽는 것만 못한 신세가 되었을 테니.
이놈이 이토록 의기양양한 이유. 지난밤,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푹찍 하면 됐을 나를 죽이지 않은 이유. 게다가 슬기의 감염 사태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뱀파이어에 이어, 제스터도 특수 능력을 개화한 상태로 게임에 투입된 것이다.
한 박자 늦게, 비명처럼 권이세가 정답에 도달했다.
“토이 박스?!”
광신도의 자지러지는 웃음이, 또 한 번 신경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권이세 친구! 드디어 정답을 맞혔구나! 젠장, 믿고 있었다구!”
언뜻, 발랄하기까지 한 어조였지만 광신도 외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웃을 수가 없다. 기가 막힌 나머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이것도 밸런스 패치의 일환이겠지. 데드 체이스의 경험이 있는 생존자 두 명이 아이템과 특전을 함께 들고 게임에 임했다. 그러니 상대하는 측도 그 못지않은 혜택을 줘야겠지. 마찬가지로, 특전을 안기고 특수 능력까지 얹어 준 채로.
이러면 게임이 흥미진진해지지 않을까? 필시, 눈깔 괴물은 두근두근 기대 만발하여 이 게임을 관찰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길지, 이긴다면 어떻게 이길지, 몇 명이나 승리를 만끽할지. 그 기승전결을 고대했을 것이다.
‘엿이나 까 잡숴라, 사우론 짝퉁같이 생겨가지고.’
내 저주를 비웃듯, 투표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지금으로선 체인질링의 승리 선언에 가까울 방송이.
[투표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결과를 공개합니다. 김슬기 0표. 권이세 0표. 백요한 3표. 이서희 0표. 천광훈 0표. 황보라 0표.]
[퇴출자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지치고 닳아버린 신경은 절망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이게 데드 체이스, 그 엿 같은 게임의 진수다. 체인질링을 밝혀내도 그걸로 끝난 게 아니다. 어떤 국면에서든 끝내 이런 구도가 반복된다.
투표전에서 압도당한 지금, 체인질링에게 대항할 유일한 수단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3표?! 3표라고?!”
왜! 대체 왜! 부르짖던 권이세가 홱 돌아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눈길의 지향점은 당연히 슬기였다.
슬기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 아냐.”
“너밖에 없잖아, 너일 수밖에 없잖아!”
“그래? 그럼 그렇게 믿든가. 굳이 믿어 달라고 우길 생각은 없어. 어차피 믿지도 않을 텐데 뭘.”
발장구에 손 장구까지 치며 꺽꺽 웃어대는 광신도와 당장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한 슬기와 권이세. 뭔가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은 눈치챘지만, 배경지식이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황보라.
광신도가 얼쑤절쑤철쑤 하며 이간질에 불을 붙였다.
“사랑스러운 동지여! 같은 주인을 섬기는 내 동료여!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저 얼간이들 그만 놀리고 어서 이쪽으로 와! 내 옆자리는 언제나 널 위해 비워 뒀으니까!”
슬기는 여전히 얼음장 같은 무표정으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권이세를 응시했다. 하지만 광신도가 기이한 유쾌함을 담아 떠들었을 때, 슬기의 얼굴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네가 아니었으면, 네가 알려 주지 않았으면 정말 꼼짝없이 질 뻔했잖아!”
…뭐?
슬기는 대답이 없었다.
오직 광신도의 폭로만이 이곳을 지배했다.
“우리 목사님한테 2표를 행사할 힘이 있었다니!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하찮은 화풀이 따위나 하기 위해 저놈한테 매달릴 뻔했지! 하마터면 위대하신 존재께서 베푸신 희생제를 형편없이 망칠 뻔했다고! 그걸 네가 막아준 거야!”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며 광신도가 넙죽 엎드렸다. 과장된 동작으로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찍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싱글벙글 웃는 낯짝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 난잡한 이간질과 폭로 사이에서 사실을 추려 냈다.
슬기는, 목사에게 ‘정치 9단’이 있음을 눈치챘다. 그를 토대로 제스터를 설득했다. 제스터는 나 대신 목사를 토이 박스에 처넣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기권으로 처리되는 투표 시스템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 목사의 표는 기권으로 향했다.
광신도의 기권 1표. 목사의 ‘정치 9단’이 포함된 2표. 나머지는, 정말 슬기가 맘을 바꿨는지 ‘불성실한 시민’ 스킬을 썼든지 해서 4표가 채워졌다.
그래서 이놈은 추방되지 않았다.
앞으로의 전개도 암울한 건 마찬가지였다.
매 투표마다 쿨타임이 도는 ‘정치 9단’과 달리 ‘불성실한 시민’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까짓거, 상관없겠지. 누구든 한 명을 죽이면, 목사를 끼고 있는 광신도는 언제든 투표전에서 압도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체인질링이 두 명 남은 상황. 실질적으로 죽음이 머지않은 목사를 제외하면, 생존자는 세 명이니 동수판정에 이르는 길이 너무나 쉽다. 그리고 제스터의 변신 스택이 모자랄 일은 없으리라.
토이 박스 안에 생존자를 처넣으면, 그때부터 개방된 스테이지 안의 모든 표식은 제물 시행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방사능이 토양을 오염시키듯, 멀쩡했던 표식들마저 서서히 잭 인 더 박스로 변질되기에.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이 모두 그렇듯, 이번에도 깨달음이 늦었다.
알지 못한 가운데, 어느새 개미지옥 같은 수렁에 발이 빠지고 있었으니.
아니. 어쩌면 이미 머리끝까지 잠겨 있을까.
“이제 남은 건…….”
광신도가 소리 없이 웃었다. 공허하고 섬뜩한, 상어 같은 눈동자를 번득이며.
“너희 탐스러운 목숨들을, 한 명 한 명… 달걀을 깨는 것처럼 깨트려 줄게. 그 껍데기 안에 있는 것들로, 비로소 내 주인의 갈증이 해소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