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127. 하인리히의 법칙(2)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서두는 이렇게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인생에 있어 또 한 번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다. 정확히는, 그때까지 여러 번의 징조를 보고 있었지만 거기서 비롯될 참사를 예상할 순 없었다.
따라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방 침대에 누워 손등을 눈가에 올린 채 기다렸다. 새벽부터 아침이 오기까지 내내.
잠을 자려고 했다.
꿈을 꾸려고 했다.
그냥 꿈을. 일반적이고 평범한 꿈을. 남들이 흔히 꾼다는 그런 꿈을. 칼이나 시체나 비명이 없는 꿈을.
하지만 매양 찾아오는 것은 육종이 뒤덮은 지하철이나, 괴물들이 날뛰는 병원 복도 같은 것들. 때때로 의자에 묶여 내가 칼로 찌르길 기다리는 얼굴 없는 부모님.
늦은 밤까지 넘치는 가위와 악몽에 순차적으로 시달리고 나니, 더 이상 잠자리에 들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깬 것도 잠든 것도 아닌 상태에 이르러, 꿈나라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듯 말 듯, 멀어지다 가까워지길 반복하는 의식. 그것이 가까스로 깊은 곳까지 가라앉기 직전, 목소리가 들렸다.
“야, 오빠몬. 일어나.”
그림자가 눈꺼풀 위에 드리웠다. 눈을 떴다.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동생이 뭐라 뭐라 떠들었다. 나도 뭐라 뭐라 대꾸하자 동생은 인상을 찌푸리며 방을 나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손에는 양치할 때 쓰는 물컵이 들려 있었다. 물이 가득 담겨 있는 채로. 나는 잠시 상황의 난해함을 고찰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길래 주어진 물건일까?’
목이 건조했지만, 왠지 그것을 마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양치 컵을 머리맡 선반에 올려 두었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만 감고 누워 있었을 뿐. 뜨고 있으면 갖가지 이상한 것들이 시야에 끼어들어 성가셨다.
머리는 멍하고 눈앞에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게 껴있는 기분. 왜 이러는 걸까.
그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그리 특별한 게 없다.
어머니가 안 먹겠다는 아침을 챙겨 주고, 아버지가 태워 주는 차를 타고 등교하는 길에 ‘무릇 사내가 사는 삶이란’ 운운하는 설교를 듣고, 그러면서 일상적으로 걸려 오는 언론의, 모 사이비 종교의, 지긋지긋한 김미영 팀장의 연락이 시간차 공격을 가하고…….
그런 것들은 귀찮을 뿐 어디까지나 일상의 범주에 속했다.
정들었다고 보긴 어려운 학교에 도착하자,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등교하는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 한창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할 무렵,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을 오갈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또한 괴현상의 여파였다. 전에 가끔 말이 나오던 전면 등교 수업은 지금 와선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중앙 출입문에서 보건 선생님이 체온을 재고 출입 여부를 확인하는 번호로 전화를 걸고 나서야 교실로 향할 수 있었다.
교실에 입장하자 웬 종이비행기가 날아들었다.
“힘차고 굳센 아침. 밥 먹었수산시장?”
언제나 이 교실의 닐 암스트롱인 ET가 고향별에서 쓰이는 듯한 이상한 인사말과 손짓을 하며 나를 맞이했다. 교실의 버즈 올드린이 된 나는 답례로 평범한 지구식 인사를 돌려주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
“그래.”
창가에 있는 자기 책상에 걸터앉아 유유자적 바깥 경치를 감상하는 ET. 나는 녀석에게 걸어갔다. 유감스럽게도 바로 옆자리가 내 자리였던 탓. 책상이 떨어져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의자에 앉아 가방에 든 내용물을 주섬주섬 꺼내는데, ET는 그새를 못 참고 새로운 종이비행기를 만드는 중이었다. 일반적인 생김새와 미묘하게 다른 형상. ET가 종이비행기에 갖가지 변화를 넣는 걸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다른 데에 있었다.
책상에 바벨탑이 세워져 있었다. 온갖 잡다한 학용품으로 쌓아 올린 장대한 탑이. 어떻게 균형이 맞아떨어져 서로를 지탱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저런 결합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 나는 녀석의 작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어떻게 한 거냐?”
“그냥 한 건데.”
“근데 왜 만들었어?”
“그냥 심심해서.”
그래, 이놈은 이런 놈이었지.
심심하니까 해보고 하면 안 되는 게 없고. ET가 매양 이런 식이긴 했다. 저번 중간고사에서, 시험을 치르는 여덟 개 과목 중 네 과목은 0점, 다른 네 과목은 100점을 받는 기묘한 짓거리를 했을 때도 이런 식이었다.
겉모습은 멀쩡해도 교우 관계가 신통치 않은 인물은 분명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회성이 다소 부족하거나 일반인과 사고방식이 확연히 다르다거나. ET가 멀쩡한 현생 인류의 외양을 갖고 있음에도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데엔, 그리고 그런 취급을 받는 이유는 명백히 후자였다.
언젠가 내가 우정 어린 충고를 전한 적 있다. 그런 독특한 말투와 사고방식을 고치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면 한결 사람 대하며 사는 게 편해지지 않겠느냐고. 남 말할 처지도 아닌 내가 나답지 않은 오지랖을 부린 것은, 이 녀석을 그만큼 생각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대답을 들었다.
“그 결괏값이 전보다 크거나 비등하다고 가정하면 선론계 진리치의 합이 잠결해의 범위를 벗어나 후론계의 결정값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정의역의 관측 지시 작용이…….”
ET는 이런 형식으로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다’를 증명해냈다.
그 뒤로 나는 ET에게 성격에 관한 조언을 그만두었다.
녀석이 지나가듯 말했다.
“수학 공부는 했냐?”
“아니.”
나는 나른한 머리를 짓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통화를 하느라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자 ET가 나를 별스러운 것을 보듯 보았다.
“오늘 첫 수업부터 수학인데. 큰일 났네.”
“큰일 날 건 또 뭐야.”
“기억 안 나? 오늘 수학 평가 보는 날이잖아.”
그랬나? 나는 수업 일정표를 보고 ET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좀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망할 철밥통 같으니. 수학 선생의 수업 방식은 영 우아하지 못하다. 평소 수업은 재미없게 하는 주제에 숙제는 터무니없이 많이 내고, 또 시시때때로 이런저런 평가를 보아 악명이 자자했다. 저조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과제를 내리는 것은 덤.
그래서 항상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바닥을 기었지만, 본인은 학생들의 원성을 한 귀로도 듣지 않는다. 왜 대학교수 대신 고등학교 교사 노릇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맥없이 수학 교과서를 꺼내 별표를 그려 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여기서부터 평가에 도움이 될 기본 공식들이 나오는 구간이다.
“지금 와서 하면 늦을 텐데.”
ET는 한 점의 위기의식 없이 하품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달관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여유였다. 나는 그 여유에 부조리함마저 느꼈다.
수업 시간에 맨날 종이비행기나 접으며 소일한 녀석과 수업 내용을 열심히 경청한 내가 어째서 기댓값과 반대되는 결과를 받는 것인지. 에너지 보존 법칙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는 건가?
내가 세상을 이루는 법칙의 중대한 결함을 발견하는 동안, ET는 창밖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그러지 말라고 담임 선생이 여러 번 경고했는데도 좀처럼 고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수학 교과서를 보며 씨름하는 사이, 같은 반에 속한 급우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수진이가 나를 보자마자 눈총을 주고,
“너, 먼저 가면 간다고 말도 안 하고 가냐?”
그런 수진이에게 수학 꿀팁을 전해 듣기 위해 굽실거리고,
“이따가 매점에서 빵 살 테니까 한 번만 도와줘.”
ET가 얄미운 소리를 하며 끼어드는 것도,
“빵 하나로 되겠어? 뉴턴하고 라이프니츠가 무덤에서 울겠네.”
그리 모날 것 없는 일상의 연장선이었다.
몇 가지, 이 일상에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슬기의 빈자리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어떤 것이 빠졌을 때 느껴지는, 기묘한 공백.
다른 하나는 나와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단 둘뿐이라는 것이다.
“…….”
나는 잠시 어지러운 숫자와 수식에서 눈을 떼고, 조금 달라진 입지를 실감했다.
소음의 빈부 격차라고 할지. 내가 있는 주변만 유독 조용하다.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는 교실 안에서도 나와 가까이 있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로 인해, 교실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인구 밀도 과다 현상이 빚어졌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방역 당국이 입이 닳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장하는 추세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
나는 그 불편한 거리감을 모른 척했다.
평소였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나눴을 지인들. 그럭저럭 친분 관계를 형성했다고 여긴 사람 대다수가, 지금은 나를 철저히 무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 상황.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쩔 수 없이 말을 걸어야 하는 순간에도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사실, 무시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져야 진짜배기인데. 적어도 반 친구들은 그 점에 대해 능숙하지 않다.
처음에야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알게 모르게 나를 흘긋거리는 시선과 자그맣게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착각인가 싶은 것도 한두 번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이 더욱 확실하게 전해졌으니까.
자각도 있다. 그럼 그렇지, 하고.
그만한 대사건을 두 번이나 겪고 온 불순물이, 평범한 집단생활의 장에 원만하게 녹아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지.
새삼스러운 경험도 아니다. 소위 사건이란 것과 연루된 인간은 사정과 형편을 떠나 그 사건의 일부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으니까.
살인자의 가족이 평생 그 멍에를 짊어지는 것처럼.
살해당한 사람의 가족들이 평생 그 일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하자면, 죄의 구성품 중 하나로 간주된다고 할까. 처음에는 동정 어린 눈으로 볼지 몰라도, 은연중엔 그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네가 그때 거기 없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겠지.
옳은 말씀이다. 반대 상황에 부닥치면 꼭 같은 말을 던져주고 싶을 정도로.
교실 곳곳에 분포된 크고 작은 집단의 반응이 그처럼 일관적이었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의도적이라 보기에는 충분한 거리감.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무심코 흠칫하고,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내 귀가 닿지 않을 곳에서는 다시 자기들끼리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학교생활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공포 게임의 고인물이었던 내가 학교에선 아싸?’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제법 익숙해졌으니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야, 보자 보자 하니까 너희들 진짜 너무한 거 아냐?”
기어코 언성을 높인 것은 수진이였다.
내가 만류할 새도 없이, 잔뜩 졸아붙은 반 친구들에게 삿대질을 병행하며 외쳤다.
“서희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는데? 얘가 그런 일을 당하고 싶어서 그렇게 됐겠어?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 왕따시키는 거야? 지금 뭐 하자는 건데?”
학생들의 눈길이 모두 수진이에게 쏠렸다. 표정과 눈에 담기는 감정은 개인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당황과 분노와 호기심과 희미한 죄책감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듯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듯―하다가, 누군가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피해를 보는 게 누군데?”
박태빈… 이었나. 내 기억력이 정확하다면 반장을 맡고 있던 녀석이다. 학교에 통 안 나오다 보니 정말 친했던 몇몇을 제외하면 이름과 얼굴과 특성이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았다.
반쯤 인기투표에 가까운 반장으로 선출된 점에서, 당연히 박태빈의 그룹은 교실 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박태빈은 민의에 의해 뽑힌 사람답게 자신을 반장으로 밀어준 친구들에게 보답하려는 모양인지 다른 아이들이 체면이나 예의상의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을 거침없이 끄집어냈다.
“아니, 양심이나 생각 둘 중 하나라도 있으면 그렇게 낯짝 두껍게 다니면 안 되는 거 아냐? 무슨 정신머리로 학교에 오는 건데? 그러다 여기서 괴현상 터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박태빈이 들먹이는 것은 요즘 뜬소문처럼 퍼지는 가설이었다. 괴현상이 데드 체이스의 경험자를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것. 통계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이기도 했다. 일반인과 데드 체이스의 경험자가 괴현상에 휘말릴 확률을 비교하면, 후자가 대략 7~8배를 상회한다던가.
그런 면에서 볼 때 박태빈은 마냥 헛소리하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자기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까, 이런 날 선 반응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에 수진이가 다시 발끈했지만, 나는 이번에야말로 수진이의 어깨를 잡고 말렸다. 돌아보는 수진이에게 고개를 저으며,
“난 괜찮아. 그러지 않아도 돼.”
잠깐 무거운 침묵이 사람들을 에워쌌다.
언제나 교실에서 배경을 담당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내게, 이 존재감은 썩 내키지 않는다.
분란의 원인이 된다면 잠시라도 사라져 주는 게 낫겠지. 모두의 평온과 안정을 위해. 조회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전까지만이라도.
나는 부르는 수진이에게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려 교실을 빠져나갔다. 걸어가는 내 몸에 자석이라도 달린 것 같았다. 같은 극을 밀어내는 자석처럼, 내 주위로 사람들이 스르륵 뒤로 물러서 길을 비켜 주었다. 홍해를 가르듯 실시간으로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에, 뿌듯한 기분은 없었다.
교실 상황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수진이는 분을 못 이겨 씩씩대고 있을 거고, 박태빈을 위시한 반 친구들은 공범 의식에 젖어 떫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ET 녀석은 질리지도 않고 종이비행기를 만들고 있을 테고.
인적 드문 복도 한쪽에 멈춰 있으려니, 뒤늦게 수학 평가가 떠오른다. 공부를 하다 말았으니 망칠 게 분명해 보이는데. 하지만 이제 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교실에 들어가 공부에 매진하는 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어쩐다.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도중, 핸드폰이 웅웅 울었다.
화면을 보니 내가 기다리던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