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156. 선택의 대가(10)
탈출구가 가까워질수록,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리란 것은 일찍이 예상한 바였다. 아무렴, 한 번에 두 발씩 나가는 총으로 학교 안의 못 해도 세 자릿수나 되는 사람들을 어찌 다 쏴 죽인단 말인가. 무슨 게임의 업적 달성도 아니고, 그런 짓은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다.
이 추측을 거드는 도서실의 비명과 정적까지.
그러나 이렇게 본격적인 함정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지.
핸드폰 조명에 떠오른 광경을 본 우리는, 하나같이 말문이 막혔다.
다목적실 내부는, 단적으로 말해 처참했다.
폭탄 테러의 중심지처럼 사방팔방 검게 그을린 자국. 오만 곳에 처박힌 정체 모를 파편들. 그리고, 원인 불명의 폭발에 휘말린 듯한 시체들까지.
이제껏 본 시체들도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여기 있는 시체들은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상태가 나빴다. 머리카락 길이와 넝마가 된 교복 차림 등으로 남녀 구분은 되었지만, 그 이상의 신원은 알아볼 수 없을 지경.
벌써부터 기껏 구역질을 참아왔던 사람들이 못 버틸 것처럼 굴고 있다.
정예은이 입을 가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밥솥이야.”
“밥솥?”
생뚱맞게 이 타이밍에 무슨 밥솥 타령인가. 잠깐 말뜻을 헤맨 나는, 곧 그녀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파편 중 조금 커다란 쪼가리 여럿. 그쪽으로 빛을 비추니 ‘취사’, ‘초 고화력’ 등의 문자가 적힌 계기판을 볼 수 있었다. 바닥을 중점적으로 살피자 비슷비슷한 파편들이 더 눈에 띄었다. 얼핏 보기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입견에 힘입어 달리 보이기도 했다.
본래 밥솥을 구성하던 일부분들.
도시락 폭탄은 이름이나 들어봤지만, 밥솥 폭탄은 또 처음이다.
저것들이 있던 자리가 유달리 거무스름한 것을 보면, 폭발의 진원지라 봐도 좋을 것이다. 파편의 양이나 다목적실을 온통 헤집은 모양새를 보아하니 한두 개가 터진 것도 아니다. 파편들을 죄다 긁어모으면 여섯에서 일곱 개 정도의 밥솥이 나오지 않을는지. 애석하게도 폭발물 취급 자격증이 없으니 확신은 못하겠지만.
대체 밥을 얼마나 태워 먹었길래 터져버리나 의아하기도 하다. 동생이 밥을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건만.
“…….”
그래도 이렇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참사를 눈에 담고 있자니, 폭발물의 배치가 지독하게 치밀했다는 걸 알 만했다.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굉장했는지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당장 눈에 보이는 시체만 다섯 구를 넘어가는데, 그중에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폭발 직후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즉각적인 죽음과 큰 차이가 없는 치명상이었을 터. 얼마 안 되는 여명은 되레 고통의 시간만 연장하는 꼴이 아니었을까. 부디 그 고통이 짧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하게 되니까.
우리가 너무 늦은 시점에 도착해서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그런 생각을 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던 중 예민한 의식을 찌르는 위화감이 있었다.
‘뭔가, 부자연스럽지 않나?’
나는 동행해 온 아이들이 전율하는 동안, 홀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을 흩트리는 불편한 감정과 모호한 위화감을 억누르며, 주위를 면밀히 관찰했다. 목적은 정보 수집. 얻고자 하는 건 추가적인 폭발 위험이 있을지에 대한 단서.
그렇게 찬찬히 둘러보니, 큰 파편들에 이어 작은 파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나는 그중 몇 개를 발끝으로 굴렸다.
‘대못에 쇠 구슬에 볼트에 너트…….’
아주 골고루 모아 놓았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준비했다는 느낌. 악의와 살의가 느껴지는 다양함이랄까.
설마하니 이것들 전부가 밥솥의 구성품은 아니었겠지. 아마 쌀 대신 채워 넣어 폭발 시의 파편 비산 효과를 노리지 않았을까 싶다. 살상력을 극대화하고자.
ET가 있었다면 그럴듯한 가설을 몇 개는 더 뽑아줬겠지만, 녀석은 이 자리에 없었다.
고개를 돌려 벽면을 응시했다. 온갖 쇠 쪼가리들이 난자하여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진 매트리스 벽면. 로르샤흐 테스트에 쓰일 것처럼 얼룩진 벽면을 샅샅이 훑자, 찾던 것이 핸드폰 불빛에 떠올랐다.
콘센트. 그리고 그에 연결된 토막 난 플러그 선. 플러그 선 끄트머리에는 그을리고 부서진 기판 일부가 붙어 있었다. 나는 대못 하나를 주워 그 위에, 바깥에 노출된 전선과 맞닿게 떨어뜨렸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역시 전기가 끊어져 있나?’
아니면 이 대못이 특이하게도 전기에 반응하지 않는 둔감한 체질이거나.
나는 뒤따라 온 수진이에게 어느 쪽이 더 현실성이 높겠냐고 자문을 구하고, 어이없다는 투의 대답을 들었다.
“스파크 안 튀면 당연히 전기가 안 흐르는 거지. 왜, 저게 겉보기만 금속이고 속은 나무일까 봐?”
“뭐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야.”
“근데 그게 왜?”
“전기가 안 흐르면, 더 이상 밥솥 폭탄을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더라고.”
뭐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폭에 이르기까지의 수단은 전력을 활용한 것 같다. 콘센트마다 끼워진 굵직한 플러그 선을, 하나같이 본체는 날아가고 꼬리만 남은 몰골을 보고 짐작한 것. 생존 전략을 잘못 채택한 도마뱀 같다.
학교 내부의 조명이 다 꺼진 것에서 그러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면, 이곳에 위험이 남아 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먼저 들른 사람들을 몰살시킨 시점에서 이 함정은 효용가치를 다했으니까.
한곳에 두 개 이상의 함정을 설치하는 건 철두철미함이 아닌 비효율에 가깝다. 다음에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 있는 참상을 보고 기겁하며 물러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니까. 나처럼 약간 맛이 간 인간을 상정해 뒀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자꾸 신경이 곤두선다. 숨을 깊게 들이쉴 때마다 전신을 내달리는 선득한 감각. 의식을 아무리 집중해도 그저 막연한 불안감만 더해질 뿐.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대체 무엇이 잉걸불 같은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번 지독하네.”
송진서의 혼잣말. 무심결에 흘려들으려던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뭐?”
“어, 뭐가?”
“방금 뭐라고 했어?”
코를 싸맨 송진서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냄새 한번 지독하다고. 그게 왜?”
냄새.
이제야 겨우, 아까부터 줄곧 내 신경을 긁어대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 죽음이 만연한 자리에 진득하게 감도는, 숨 막히는 냄새 그 자체. 아까부터 코를 찌르는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는 명백한 이상 징후였다.
환기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기묘한 사실.
창문이 닫혀 있다.
어째서?
‘왜 아무도 창문으로 탈출하지 않은 거지?’
폭발이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졌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만한 인원수가 한자리에 모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터. 그동안 누구 하나 창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다, 라.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차라리 나무에서 고구마를 따는 게 더 현실성이 있었다.
나가지 않은 게 아니라, 나가지 못한 거라면 어떨까.
나는 술렁이는 불안감에 젖어 창문이 있는 곳에 조명을 비췄다.
창문 유리는 그 너머의 어둠이 먹칠하여 새까맸다.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 달빛 머금은 별자리를 형성하고 있다.
일그러진 카시오페이아 위에 흐릿한 잔상처럼 떠오른 내 모습. 그리고 다시 그 위에, 벚꽃 같은 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유하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저게, 뭐야?”
하지만 현재 계절이 여름의 끝자락, 가을 초라는 것을 감안하면.
…저것의 정체가 벚꽃일 리가 없다.
창문에 묻은 것은 온통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이었다. 그것이 일시적인 착시로 벚꽃처럼 보였을 뿐. 창문 앞에는, 아마 저 수많은 손자국을 남겼을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물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머리가 다시 아파졌다.
창문이 닫혀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이만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유리가 남아 있는 것부터 정상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주춤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이번에도 내가 먼저 발을 떼었다. 마음 같아서는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여 송진서 등을 앞세우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노골적으로 미끼 삼으려는 의도를 치장할 방도가 없었다.
희박한 위험 때문에 분란을 자초할 필요는 없겠지. 촉박한 시간도 시간이다. 살인마가 우리의 뒤를 쫓고 있을 가능성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옆으로 밀어보았다. 무언가에 고정된 것처럼 열리지 않는 창문. 당연히 걸쇠가 걸려 있는 것도 아니다.
자세히 보니 양쪽 창문이 맞닿는 부분에 여러 개의 대못이 박혀 있었다. 폭발 당시 파편이 튄 것도 있지만, 이런 절묘한 위치에 일정한 간격으로 박힌 대못은 누가 봐도 인위적인 작업의 흔적이었다.
창문 유리를 검지로 툭툭 두드려보자 땡땡, 하는 맑은소리가 아닌 퉁퉁, 하는 탁한 소리가 났다. 손끝으로 쓸어보면 단단한 고무를 만지는 듯한 감촉.
하드너(Hardner)… 라고 할지. 유리 표면에 무언가를 발라 놨다. 그것도 맨눈으로 보면 도저히 구분하기 힘든 재질의 무언가를. 정확한 소재는 몰라도, 한창때의 젊고 힘 좋은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두들겨도 버티고 폭발의 여파에도 와장창 깨지지 않을 정도의 견고함으로 유리를 보호하고 있다.
나는 듬성듬성 구멍 난 자리를 더듬었다. 이렇게 만져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선명하게 나뉜 두 층. 앞에 있는 것은 고무 같은 감촉이고 뒤쪽은 유리의 촉감이었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나는 한 걸음 물러서 숙고했다. 그새 유리에 베여 핏방울이 배어나는 손가락을 핥으며.
구멍이 뚫린 것을 봐선 비현실적인 강도는 아닌 듯한데. 게다가 곳곳에 황천의 뒤틀린 별자리가 펼쳐져 있으니, 전체적인 내구성도 감소해 있을 것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억지로 뜯어내다 보면, 사람 하나 나갈 수 있는 크기의 탈출구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와서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는 일도 까다롭다. 나가는 길에 살인마와 맞닥뜨릴 가능성에 새로운 탈출구는 또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 미지의 안갯속엔 미지의 재난이 도사리기 마련이다.
강화된 창문을 뜯어내며 발생할 소음은, 감수해야겠지.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더라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심 끝에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다들 이쪽으로 와줄래? 이것만 뜯어내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제안해도 선뜻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리는 아이들. 하기야, 창문에 덕지덕지 묻은 핏빛 손자국을 보고도 이쪽으로 오기란 보통 담력으론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답답한 행동에 짜증이 치미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나는 감정적인 언행 대신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었다.
“무서운 거 알아. 망설이는 것도 이해하고.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해결되는 게 없어. 탈출구가 코앞에 있잖아. 빨리 끝내고 나가자.”
재차 설득하자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다가오는 아이들. 선두에 선 수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답답하게 굴어서 미안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어찌어찌 탈출 멤버 네 명을 창문 앞으로 불러 모으는 것에는 성공했다. 마른침 삼키며 창문을 바라보던 송진서가 손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말했다.
“그냥 뜯어내려면 손도 다치고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도구 같은 거라도 찾아볼까? 망치라든가.”
말은 일리가 있지만, 녀석의 속내는 직접 손을 보태기 부담스러우니 잠깐이나마 내빼고 싶은 것이리라.
나는 그런 의중을 짐작하면서도 순순히 송진서를 보내주었다. 속내야 어떻든,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해. 근데 뭐 찾으러 다니면서 괜한 소리 안 새어 나가게 조심하고.”
“아, 알았어.”
쓸 만한 게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정 소득이 없다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금속 쪼가리들을 주워 와도 괜찮다.
송진서가 수색 작업에 임하는 동안, 남은 네 사람은 옹기종기 유리와 씨름을 벌였다.
제법 크게 뚫린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꾸욱꾸욱 힘을 넣는다. 가장자리부터 점차 넓혀나가 작은 구멍을 크게 만드는 식이다. 성경 구절에 빗대어 표현하면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정도가 되겠지.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들 완력이 부족한 건지, 이 유리의 강화 처리가 지나치게 잘 된 건지. 아무리 용을 써도 유리 가루만 부슬부슬 떨어졌다. 어쩌다 금이 가도 아교를 바른 듯 균열의 확산이 저지되었다. 발밑에 보란 듯이 엎어져 있는 시체들도 발딛음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질기게 달라붙은 유리 조각에 피가 철철 흘렀다. 나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열 손가락 전부 상처투성이가 된 손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고된 작업이 될 줄 몰랐는데.
‘송진서가 가져올 도구를 기다릴 걸 그랬나? 아니면 같이 찾아보든가.’
하다못해 다른 사람을 딸려 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때늦은 후회를 하는 순간, 가까운 곳에 있던 유하나가 나를 흘낏흘낏 보고 있음을 눈치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