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224. 모략의 중반(11)
두 기사가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를 개막한 그때, 다른 곳에서도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스. 찾느라 애먹었습니다.”
빙긋 웃는 말라깽이. 그 앞에 선 두 사람.
한 명은 주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눈매가 날카로운 여자였다.
말라깽이의 시선이 두 사람의 얼굴을 왕복했다가, 다시 여자에게 돌아왔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요? 어떻게 이렇게 금방 당신을 찾아냈는지.”
말라깽이는 웃음을 흘리며 손에 든 뭉툭한 권총 같은 물체를 손안에서 빙글 돌렸다.
그녀, 진세라는 가늘게 숨을 뱉으며 전신을 긴장시켰다.
아군 기사, 주인은 현재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리디거트를 통제하는 데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는 와중이라 외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처할 상태가 아니었다.
바로 그렇기에 이 상황에 나설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시간을 벌 생각으로, 다시 말해 적의 전력을 탐색할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최악의 상황은 언제든 일어나기 마련이지. 조직에 있다 보면 신물이 나도록 듣는 말 아닌가?”
“과연.”
그녀는 말라깽이가 가진 물체를 눈여겨보았다. 짙은 어둠에 가려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저런 생김새의 아이템은 수가 많지 않다.
괴현상이 시작된 이후, 조직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시작된 자료 조사. 그녀는 그 과정에서 본래 데드 체이스라 불리던 게임의 거의 모든 요소들을 알게 되었다. 아는 것과 실제로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래도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알아볼 정도는 된다.
그녀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적이 들고 있는 것이 ‘치안관의 권총’이라는 것을.
단 한 발만 장전되는 탄환. 이 탄환은 체인질링에게 피격될 경우, 무려 즉사를 보장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대항할 방법이 없는 이형의 괴물들에게 악몽과 같은 성능을 자랑하는 아이템. 투표전을 건너뛰고 즉결 처형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아이템의 무시무시함을 알 수 있다.
단점은.
“알고 있겠지? 그게 빗나가면 죽는 건 너야.”
“오, 이게 뭔지 알고 있었나요. 하긴, 모르는 게 이상한가.”
말라깽이는 그녀에게서 살짝 시선을 돌려 쥐고 있는 권총의 총구를 응시했다. 마치 총구에 깃든 심연에 홀리기라도 한 양.
그렇다. 데드 체이스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체인질링을 사살할 수 있는 규격 외의 아이템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만들어냈을 리 없잖은가.
이 아이템은 엉뚱한 사람에게 맞으면 소유자인 본인의 죽음을 초래한다.
실로 마탄, 마총이라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악마의 설계였다.
말라깽이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요, 보스 말씀이 맞습니다. 절반은.”
“…절반?”
“간단한 겁니다. 빗나간다고 무조건 죽는 게 아니고, 아예 사람에게 맞히지 않으면 아무도 죽지 않는 거죠. 모든 눈먼 탄환이 그렇듯이.”
하지만, 하고 말라깽이는 느긋하게 말했다.
“제가 이 거리에서 빗맞힐 거라 믿는 건 아니겠지요? 보스 곁에 있는 아이가 기사라는 건 이미 눈치채고 있습니다. 저희도 머리를 마냥 놀리고 있는 건 아니었거든요.”
단서는 많았을 것이다. 그리디거트를 통제하며 반쯤 인사불성 상태로 전락하는 아군 측 기사를 봤다든가, 왕의 상징성과 그에 들어맞는 천성 가의 핏줄이 4층 스테이지에서 보이지 않는 점이나.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여기 남은 인원 구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머지 역할군은 뻔해요. 보나 마나 권씨 도련님과 사라진 여성, 설하연이 ‘성채’ 역할군이겠죠? 언제든 아래 스테이지로 피신하기 위해 숨어있을 테고.”
그녀는 그 말에서 적의 정보 공백을 읽어냈다. 아군 진영에 있던 사다리. 적들은 아직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아군 왕이 이미 피신을 마쳤다는 것도 모른다.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은 간단하겠지만, 그녀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이 자체가 그녀를 방심시키려는 블러핑일 가능성을.
“자신 있어?”
말하면서 그녀는 신중하게 발의 위치를 바꾸었다. 격전을 준비하는 자세. 그게 의외였는지, 말라깽이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막을 생각입니까? 몇 번이나 권유했는데, 보스께선 도통 넘어올 생각이 없는 것 같군요.”
“물러나.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어. 너야말로, 나를 지나쳐 갈 수 있을 거라 믿는 건 아니겠지.”
메마른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전부터 궁금했지요. 소문으로만 듣던 보스의 실력. 좋아요. 소문에 불과한 건지, 소문에 어울리는 것인지 알아볼 기회가 되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두 그림자가 동시에 움직였다.
말라깽이가 들어 올린 ‘치안관의 권총’. 중간 과정을 생략한 것처럼 조준선이 순식간에 정렬되고, 중심에 주인을 담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열병기를 상대하는 백병전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몸놀림. 명백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였으나, 직선을 이루는 동선과 등속운동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원칙. 모든 원칙은 예외가 존재한다.
그녀는 오히려 총구에 몸을 들이미는 듯한 우악스러운 움직임으로 상대에게 파고들었다. 상대가 쥔 것이 특수한 무기라는 것을 알기에 가능한 질주였다.
두 그림자가 서로에게서 강렬한 인력을 느낀 듯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둠 속에 둔탁하게 번지는 타격음은 두 사람이 교환한 첫수였다.
눈을 노리고 찔러오는 맹금 같은 손가락. 그를 중단부터 붙잡아 가로막는 왼손.
―꾸우욱.
말라깽이가 코앞까지 근접한 손가락을 보며 히죽 웃었다. 마른 손아귀로 상상할 수 없는, 유압식 프레스 같은 악력이 그녀의 팔을 으스러뜨릴 기세로 죄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손을 휘둘렀다.
말라깽이는 슬쩍 머리를 틀어 일격을 피하고는, 그대로 몸을 비틀며 권총을 뻗었다. 그녀의 어깨너머, 주인을 향해.
조준과 격발이 이루어지기 직전, 말라깽이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어느새 무릎 뒤를 걷어차 말라깽이를 무릎 꿇리는 차였다. 관절이 꺾여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 말라깽이는 자세 회복을 포기하는 대신, 어깨로 그녀의 복부를 강하게 들이박았다.
충돌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거리를 벌리는 두 사람. 말라깽이는 울컥 피를 토했다. 그에 섞여 나오는 이빨 여럿. 거리가 벌어지기 직전, 거하게 턱을 얻어맞은 탓이다. 하마터면 뇌진탕이 올 타격이었지만, 민활한 반사신경과 강화된 신체 덕에 가까스로 기절을 면했다.
―스르륵.
지면에서 거의 떠다니는 듯, 희미한 발소리. 어느새 충격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조심스레 그리는 원은 전통적인 대결과 닮았다.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기만이요 책략이었다. 상대의 리듬을 교란하는 엇박자의 스탭을 밟는가 하면, 일부러 틈을 드러내는 척 섣부른 돌진을 유도하기도 했다.
말라깽이가 내심 혀를 찼다.
‘만만하게 본 건 아니지만 가히 소문 이상인걸. 이거, 도저히 이길 방법이 안 보여.’
고작 몇 초의 근접 전투. 이 짧은 시간 내내, 그는 살아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삼도천을 횡단하는 것 같다고 할지…….
애초에 이길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었으나,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이기는 것 따윈 바라지도 않고, 그저 잠시간의 무력화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조차 과분한 기대였던 모양이다.
그가 가진 아이템, 치안관의 권총은 슬슬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중이었다.
어지간한 방해라면 열 번은 맞히고도 남을 텐데, 눈앞에 있는 것은 어지간한 방해 수준이 아니었다. 자칫 체인질링이 아닌 자에게 맞히면 소유자를 죽이는 악랄한 물건인지라, 사용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도 컸다.
말라깽이의 눈에 호승심이 타올랐다.
‘그래도,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그는 자신의 목적을 되뇌었다.
이기지 않아도 좋다.
다만, 상대의 주의를 찰나라도 흩어놓는다면.
활로가 열린다.
―저벅저벅.
보이지 않는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맴돌던 그들.
그리고.
―훙.
공기가 가늘게 전율했다.
아무런 신호도 전조도 없이, 같은 타이밍에 뛰어드는 두 사람.
약 2초. 두 사람이 도합 여섯 번의 공방을 주고받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6초. 네 개의 손발이 만들어내는 직선과 곡선이 수십 줄기의 복잡한 무늬를 그렸다. 마치 만다라가 피어나는 광경을 묘사한 것처럼.
10초를 넘어서자, 안 그래도 빨랐던 속도가 한계에 이르렀다. 섬세하게, 거칠게. 그야말로 극한으로 갈고 닦은 격투기술의 향연.
일반인의 눈으로는 이미 명멸하는 그림자와 소리로밖에 싸움의 궤적을 파악할 수 없었다. 마치 두 사람만이 다른 시간대에서 살아가는 생물이 된 것 같았다.
관점에 따라 그것은 춤과 유사성이 있었다. 상대의 호흡과 나의 호흡이 겹쳐지고, 나의 행동에 대응하는 상대의 행동이 있다. 그것이 천변만화하는 동작과 함께하면, 안무라 부르기에 모자람 없음이라.
말라깽이의 정권 지르기를 그녀의 장저가 저지했다. 사각지대에 숨어 있다가 위로 솟구치는 올려 차기. 말라깽이는 이 역시 예상한 것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보냈다.
회피 동작과 동시에, 말라깽이가 앞차기를 날렸지만 그녀는 무릎을 들어 가볍게 받아내고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전광석화 같은 지르기, 후리기, 쳐내기가 무한한 갈래의 호를 그리고 그와 같은 공세가 동등한 속도로 휘둘러졌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육체적인 힘의 충돌. 그러나 그 기저에는 아득할 정도의 정밀한 계산과 가공할 사고 속도가 교차하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상대방의 발이 놓인 모양새, 동체, 근육의 잔물결, 관절의 비틀림, 그 모든 것을 계산하여 한 번 한 번의 동작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더해 각 일격의 질량과 속도, 각도를 무의식중에 계측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소용돌이. 자신과 상대와 주위 지형지물의 좌표를 현재 공간에 그려 넣고 받아 막을지, 옆으로 흘려낼지, 회피할지, 반격할지 가장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짜올리는 방정식.
또한 그 순간만의 최적해만으로는 두 수 앞, 세 수 앞에서 상대의 공격에 목숨을 내주게 된다. 네 수, 다섯 수, 생각의 지평선이 펼쳐지는 한, 무한히 이어지는 수읽기를 정신과 육체 양쪽으로 풀어가는 과정.
―쾅!
또다시 폭발음에 가까운 소리가 터지고, 마침내 엉겨붙은 두 그림자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허윽…….”
엉망으로 나뒹군 것은 말라깽이였다. 한사코 일어나려 하지만, 이번에는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주르륵. 진작에 다 터진 입술 밖으로 검붉은 핏물이 쏟아졌다.
“후우.”
반면 그녀는 그토록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음에도,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묻은 것이라곤 상대의 피와 먼지뿐.
승부가 났다.
“하, 정말 격이 다르군요.”
극도로 탈진한 말라깽이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부들부들 몸을 일으키는 것도 그만두고, 장님처럼 손을 더듬어 권총을 붙잡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건만, 결국 한 번도 격발할 때가 오지 않았던 무기.
그르르륵. 금속이 바닥에 질질 끌리며 당겨지는 소리.
안간힘을 써서 조준하려는 차에, 그녀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에 손이 포개졌다. 총구가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그녀가 물었다.
“궁금하지 않아?”
“흐, 뭐가 말입니까?”
“이렇게 방아쇠를 당겼을 때, 그걸 당기는 건 나일까, 너일까? 어떻게 판정될까?”
말라깽이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방아쇠에 누구 힘이 더 강하게 들어갔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죠. 설마 시스템이 그 정도도 구분 못 하겠습니까?”
“역시 그런가.”
“보스답지 않게 안일하군요.”
“다 죽어가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담담하게 말하던 그녀가, 돌연 눈을 크게 떴다.
말라깽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뇨, 바로 이런 점에서 말입니다.”
말라깽의 손에는, 교전 도중 기어코 훔쳐낸 물건이 들려 있었다.
리모컨. 어떤 인물이 복용한 독극물을 활성화하는 장치가 말이다.
그녀가 미처 저지할 새도 없이 꾸욱, 버튼이 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