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막내아들-14화 (13/1,001)

제 14화

6화. 습격

폭풍성에선 내내 비바람 몰아치는 풍경을 보았건만, 진이 떠난 날 산 아래의 미텔 왕국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폭설이었다. 고작 몇 시간 만에 무릎이 푹푹 빠질 지경의 폭설이 첫눈으로 온 것이다.

마부는 온통 뿌연 시야 때문에 좀체 속도를 내지 못했고, 수호기사 제롬과 홀츠는 마차에서 내려 눈밭을 검으로 긁어 길을 냈다.

“아무래도 우선 근처 마을에 들러 눈이 그치길 기다려야겠네요, 도련님. 설령 무리해서 수도로 간다 한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이동 관문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요.”

“어쩔 수 없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으로서도 오랜만에 보는 눈이 영 반갑지 않았다.

느릿느릿 나아가는 마차,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 눈송이. 진은 비전서 필사 노트를 훑어보며 지루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녘.

챙! 푸히이이잉-! 별안간 마차에 묶인 두 마리의 준마가 자지러지는 울음소릴 냈다.

마차 측면에서 날아온 3성 마법, ‘얼음 송곳’이 두 말의 옆구리를 동시에 관통한 것이다. 마차가 뒤집어질 듯 덜컥였으나, 1초 후 마부 역시 같은 마법에 당해 절명했다.

“습격입니다! 도련님, 마차 안에서 대기하십시오!”

“습격입니다!”

제롬과 홀츠가 소리쳤다. 아울러 길리가 진을 끌어안으며 재빠르게 마차 밖의 상황을 살폈다.

평소의 소박하고 온화한 눈빛이 아니다. 붉게 변했다고 느껴질 만큼, 길리의 두 눈에 진한 살기가 끼어 있었다.

“도련님, 괜찮습니다. 7성 수호기사 둘에 제가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 길리의 이런 모습은 전생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룬칸델이 습격 받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고, 진 역시 두어 번 겪어 본 것이다.

“자객의 수는 약 스물입니다. 마법사와 무인으로 이뤄진 듯 보이나, 궁술사가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7성급 이상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군요.”

길리가 자신이 파악한 상황을 보고했다.

룬칸델의 유모들은 전원 7성 기사 이상의 전투 능력을 지닌 무인으로 이뤄져 있다. 어느새 길리의 무기인 클로가 소매를 빠져나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폭풍성을 떠나자마자, 아주 난리로군. 어떤 놈들이지?’

길리가 진을 진정시키려고 계속 말을 붙였으나, 그는 길리보다도 침착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두려운 마음?

그딴 건 느낄 수도 없었다. 7성급 전투 능력자 셋이 호위하는 데다, 설령 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여도 오르갈의 펜던트가 있는 것이다.

이 펜던트가 있는 한, 어떤 위기가 있더라도 한 번은 넘어갈 수 있다.

‘룬칸델의 마차를 습격할 정도다. 잡스러운 녀석들은 절대 아니야. 기사들이 영창을 눈치 채지 못한 걸 보면 6성급 마법사도 포함되어 있다.’

진이 차분히 마차 바깥의 상황을 그려보았다.

‘마차로 후속타가 이어지질 않고,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멀다. 꽤 먼 거리에서 습격이 시작되었고, 제롬과 홀츠가 반격하러 나갔……어?’

거기까지 생각한 진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리.”

“예, 도련님.”

“제롬, 홀츠. 저 두 사람, 가문에서 보낸 자들이 아니야. 아니면 배신자거나.”

“도련님, 갑자기 그게 무슨…… 저를 비롯해 폭풍성에 있던 모두가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제롬과 홀츠였어요.”

그들의 얼굴은 진도 알고 있다. 전생에서 몇 번 마주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이 그들을 가짜, 혹은 배신자라 여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길리. 우리 가문의 수호기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룬칸델의 아이를 이렇게 방치하지 않아. 설령 유모가 함께하고 있다 할지라도 말이지.”

“아!”

“제롬, 홀츠. 둘 중 하나는 내 곁에 붙어 있었어야 해. 하지만 둘 다 나가서 싸우고 있잖아. 배신, 아니면 가짜. 두 가지밖에 없어.”

길리가 창문 밖을 확인했다. 과연 진의 말대로 제롬과 홀츠가 개전과 동시에 자리를 함께 비운 모습이었다.

으득!

이를 악문 길리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진이 말해 주고 나서야 사태를 깨달은 본인과, 배신자들을 향한 분노였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이 일은 가문으로 돌아가 엄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현 시간부로, 길리 맥로란은 룬칸델의 권속으로서 진 도련님을 보호하겠습니다. 다소 과격하게 도련님을 모시게 되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탈출도 중요하지만, 저것들과 싸우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도 놓치면 안 돼. 아군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예, 도련님. 룬칸델의 명예가 어긋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샤악!

돌연 길리가 전방으로 클로를 내리쳤다. 앉은자리에서 휘두른 일격이건만, 강철 마차가 그대로 양분되며 하늘이 열렸다.

이어서 길리가 진을 안고 쏜살같이 마차를 뛰쳐나갔다. 배신자들이 끌고 온 마차인 만큼, 위험한 장치가 숨겨졌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행동이었다.

어둑한 새벽하늘과 폭설이 겹쳐 바깥으로 나와도 시계가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번쩍이는 모습뿐이었다.

‘저놈들이 개전하자마자 함께 뛰쳐나갔다는 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

고로 마차를 습격한 게 아군이라면, 싸워도 괜찮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제롬, 홀츠와 싸우고 있는 저들 또한 또 다른 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길리가 진을 안고 그들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진 룬칸델을 찾아라!”

“3조! 왼쪽 놈을 막아!”

마차를 습격한 이들의 목소리였다. 가까이서 보니 제롬과 홀츠는 스물 가량의 인원과 호각으로 다투고 있었다.

“도련님, 왜 마차에서 나오셨습니까!”

“여긴 위험합니다, 일단 마차로 돌아가십시오!”

진을 발견한 제롬과 홀츠가 소리쳤다.

“닥쳐라, 더러운 배신자 새끼들. 배후가 누구더냐? 감히 도련님을 노려……!”

길리가 클로에 오러를 덧씌우며 눈을 부라렸다. 배신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이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저 여자는 길리 맥로란이다! 진 룬칸델의 생사도 확인되었다!”

“전원, 진 룬칸델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전투에 임하라!”

마차를 습격한 이들은 아군이었다.

진은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저들과 길리가 합세한다면, 펜던트를 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몇 초간 전투가 멈췄고, 진은 그사이 아군으로 판명된 자들이 입고 있는 갑옷과 로브를 살펴보았다.

‘잎사귀와 흑수라 문양. 유타가와 흑왕단이로군.’

유타가는 미텔 왕국의 마법 가문, 흑왕단은 최고 용병대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집단이다. 흑수라 문양이 하나인 걸 보니, 최정예는 아니었다.

그래도 하나하나가 5성급이라는 의미. 유타의 마법사들 역시 괜찮은 실력자들로 보였다.

‘배신이 아니라, 가짜였군. 말과 마부를 죽인 얼음 송곳은…… 유타가 마법사의 저격 실패였고.’

아군의 대략적인 전력을 가늠하자마자, 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제롬과 홀츠가 진짜 7성 기사였다면, 5성급 스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특히 시야 확보가 어려운 이런 공간에서라면 전투력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전 후 아직 아군 측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제롬과 홀츠가 룬칸델의 진짜 7성 수호기사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흑왕단 3군 부대장 무르카요! 룬칸델의 의뢰를 받고 현지의 유타가와 연계해 진 룬칸델을 구조하러 왔소.”

“푸흐흐…….”

별안간 가짜 제롬이 웃음을 터뜨렸다.

기괴한 웃음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어딘지 인간의 것이 아닌 듯 위화감이 짙어, 유타가와 흑왕단이 긴장하며 바짝 무기를 그러쥐었다.

길리가 진의 앞으로 나섰다.

“네놈들, 누구냐?”

그녀도 놈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녀가 7성 기사의 무위를 모를 리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큭, 뻔한 질문을 하는군…… 길리 맥로란. 룬칸델의 개에게 알려 줄 것은 없다.”

가짜 홀츠도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고쳤다. 더 이상 입을 열 것 같지 않았다.

“……도련님. 어떻게 할까요?”

진은 길리의 물음에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팔을 잘라서 내 앞에 데려와.”

“실행하겠습니다.”

“길리 맥로란. 네년이 강한 건 알고 있지만, 너무 얕보는군.”

“흑왕단의 무르카. 30초만 도련님의 신변을 부탁하겠습니다.”

길리가 가짜 제롬의 도발을 가볍게 무시하며 말했다. 무르카는 곧장 단원들과 함께 진 앞에 방어 대열을 이뤘다.

‘7성 기사의 전투를 보는 건 오랜만이겠군.’

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길리는 이미 가짜들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녀가 눈 덮인 땅을 박차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음이 일었다.

그야말로 쏜살같은 돌진. 흑왕단과 마법사들은, 그게 푹신한 눈밭을 딛고 얻은 속도임을 믿을 수가 없었다.

스걱-!

세 갈래로 솟은 클로가 가짜 제롬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놈은 반사적인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목이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끝났음을 깨달았고, 옆에 있던 가짜 홀츠는 급히 몸을 돌렸다.

제롬을 죽이고 지나간 길리를 눈으로 좇기 위해서였다.

가짜 홀츠는 길리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격을 하려고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푸욱. 이미 검과 함께 떨어진 자신의 오른손이 눈밭에 파묻히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어.”

쉬익, 샤아악! 후속으로 이어진 길리의 난무를 몇 번 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팔이 없어져 균형을 잃은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다 얻어걸린 회피에 불과했다. 길리의 클로는 가짜 홀츠의 왼팔도 깔끔하게 잘라 냈다.

여기까지 고작 7초.

길리는 남은 23초를, 놈의 잘린 팔에서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틀어막는 데 사용했다. 죽은 제롬의 긴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잘라 묶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흑왕단과 마법사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인물이 고작 유모란 말인가.’

‘차원이 달라……!’

반면 진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도련님.”

길리가 가짜 홀츠를 넘어뜨린 채 진 쪽으로 질질 끌었다. 놈은 계속 입안으로 눈덩이가 들어와 비명을 지르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콱! 길리가 놈의 머리채를 붙잡아 진의 발아래 고정시켰다.

“아무래도 상대를 얕본 건, 길리가 아니라 네놈의 주인인 것 같네. 룬칸델의 막내를 암살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8성 기사 서넛은 보냈어야지.”

진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자, 가짜 홀츠가 침을 뱉었다.

“큽, 크흐흣…… 단지, 경고일 뿐이다. 룬칸델의 시대는, 끝날, 큭, 것이야.”

“그건 나도 바라는 바야.”

진의 발언에 흑왕단과 마법사들이 깜짝 놀라며 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나 역시 룬칸델이 아니라, 진 룬칸델의 시대가 열리길 바라고 있거든.”

“위대한! 지플을 찬양하라아아!”

“아, 지플 추종자였나. 그렇다면 가문으로 데려가 캐낼 필요도 없겠어.”

콰직!

진이 주먹에 오러를 둘러 놈의 머리 옆을 내리쳤다. 격투술을 배우는 동안 익힌 오러 운용이었다.

“네놈은 놓아주마.”

“죽여라!”

“아니, 그 꼴로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네 동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테지.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어. 길리, 이거 아무 데나 던져 놔.”

“예, 도련님.”

길리가 놈을 들어 올려 저쪽 눈밭으로 던졌다.

진은 컥컥대며 몸을 웅크린 가짜 홀츠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하여간 순진하게 미친놈들이야. 이렇게 하면, 지플이 잘 봐줄 거라 생각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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