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막내아들-611화 (610/1,001)

제 611화

157화. 투신합일

링링.

반이 자신과 함께하게 된 혼돈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투신의 반려생물이 된 덕에 자연스레 링링은 명왕족 사이에서 일종의 마스코트와 같은 입지를 지니게 되었다.

“링링이라, 아무래도 어감이 귀엽단 말이죠.”

진이 칵토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하자, 반의 어깨에 올라 있던 링링은 대번에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래서, 불만이냐! 어!?]

여전히 진과 링링은 자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서로에게 원한이 남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불만? 투신 형제에게도 의외의 면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흥! 반이 날 거둔 게 의외다, 마음에 안 든다, 이런 뜻이지?]

“또 이상하게 해석하네. 난 그냥 투신 형제가 그런 귀여운 이름을 선호하는 게 신기…….”

[넌 마음에 안 들어.]

“하, 그러냐? 나도 네가 썩 좋지는 않은데.”

[해보자는 거냐!?]

“둘 다 그만하도록.”

[먀먀!]

듣고 있던 반과 슈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진과 링링이 마주치기만 하면 이런 식으로 말싸움이 벌어지는 걸 벌써 한 달째 보고 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투신 형제.”

[알았어, 반.]

“그리고 링링. 진 형제의 말이 옳다. 왜 매번 진 형제의 말을 곡해하는 것이냐.”

[반은 왜 맨날 저 녀석 편만 들어?]

“네가 잘못을 하였기 때문이다.”

[흠…… 반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미안하다?]

진은 어깨를 으쓱였고, 링링은 반의 뺨에 착 달라붙어 새침한 모습을 보였다.

“진 형제도 잘한 것은 없다. 링링은 이제 무리 생활을 시작했으니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니 다소 실수하더라도 진 형제가 이해를 해주어야 한다.”

메롱, 메롱! 링링은 혀를 내밀고 눈 밑을 잡아당기며 진을 약 올렸는데, 진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가만히 있었다.

저럴 때마다 링링은 반에게 딱밤을 맞았으니까.

딱!

[억!]

링링은 잠시 이마를 움켜쥐고는 다시 반의 뺨에 몸을 비비는 모습을 보였다.

‘하여간 투신 형제한테는 사족을 못 쓰는군. 저 녀석이 그 끔찍한 혼돈이었다니……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반과 링링이 지내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충분히 휴식한 것 같으니, 다시 훈련을 시작하도록 하지.”

반과 진이 서로를 마주 보며 정좌했다.

링링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후, 그들은 매일 ‘투신합일’을 수련하는 중이다.

당연하게도 투신합일은 이전까지와 달리 빠른 속도로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동조’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뜻하지 않은 투신합일로 인해 진이 의식을 잃거나, 반이 지치는 일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링링이 자의로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된 덕이었다.

우우웅-!

두 사람의 광심장이 빛을 발하자, 반의 기운이 진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도달한 10성의 기운에 반의 힘이 더해지는 것은, 사실 극적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없었다.

반의 표현에 의하면, 진은 아직 자신의 힘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힘의 크기만 10성에 다다랐을 뿐, 1급 초인 특유의 제어력이 없으니 그만한 효율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진 형제가 다룰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정확히 알아야 해. 집중하도록.”

“예, 투신 형제.”

반의 방식은 과거 루나가 진행했던 심안 훈련과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

심안을 깨우칠 때처럼, 눈을 감은 채 자신의 기운을 ‘알아보는’ 것이다.

바다를 헤엄치는 것과 같았다. 힘이라는 바다를 내면의 심상으로 형성하고, 그 크기를 알아보는 작업이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끝이 어디인지.

진은 언제나처럼 반의 예상보다 빠르게 그 과정을 완수해내고 있었다.

이윽고 진이 미간을 좁히자 반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알아보았는가?”

“예. 투신 형제의 말대로 정말 끝에 다다르니 확연히 느껴지는군요. 여기가 끝입니다. 그리고 너머에는…… 투신 형제의 힘이 형상화된 듯한 바다가 보입니다. 그 사이에 연흑의 기운이 놓여 있고.”

연흑의 기운은 링링의 것이었다. 그 기운은 진과 반의 힘을 잇는 통로이자,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링링의 의지가 두 사람의 힘이 과하게 섞이지 않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그게 없다면, 이전까지 투신합일이 발현됐을 때처럼 진과 반에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도달했으니, 이제 투신합일의 통제는 완성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당장은 제 그릇이 부족해 투신 형제와 동조를 일으켜도 제 기운의 총량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는 없습니다.”

링링에게 힘을 빼앗겼을 땐 온몸이 반의 기운으로 충만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때는 진의 그릇이 빈 상태였으나 지금은 아니다. 반의 힘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다.

다만, 투신합일은 그럼에도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초월적인 무공이었다.

“이제 형제는 나와 함께 있는 한, 지칠 일이 없다.”

투신합일이 펼쳐진 상태에서는 진의 기운이 빠질 때마다 반의 힘이 더해진다.

진은 언제나 최대치의 기운을 보유할 수 있다는 의미.

검황성전 당시 ‘거울’이 진에게 신적인 마력을 선사했다면, 반은 무한의 오러와 뇌기를 주는 셈이다.

그러나 진짜로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예, 게다가 투신 형제의 경험과 감각, 그리고 눈까지 더해지고 있으니…….”

거기까지 말하던 진이 불현듯 몸을 떨었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전율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진은 자신이 가진 힘의 최대치를 정확히 인지했고, 링의 연결점과 그 너머에 있는 반의 기운을 알아보았다.

한 달 만에 이룩한 그 성과 덕에, 투신합일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동조율을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가 반이 가진 경험, 감각, 시선의 공유인 것이다.

그녀가 투신으로서 축적해온 모든 것이 진의 뇌리로 스며들고 있었다.

보라스의 명왕족 대장장이술을 이용한 기억 전송, 발레리아의 기록 마법, 솔더렛의 기록 장치를 통한 간접 경험.

그것들이 전승이라면, 지금 진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합일’이다.

말하자면 진은, 반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맹인이 눈을 뜨면 이런 기분일 것 같군…….’

집처럼 익숙한 훈련장의 풍경조차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어느 벽이 약한지, 어느 땅이 단단한지, 바람이 얼마나 다채롭게 흐르는지, 진은 그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신이 되어서 세상을 관조하는 것만 같은 감각. 진은 그 느낌에 전율하고 있었다.

심지어 훈련장 저 멀리, 바깥에서 다른 형제들이 호흡을 하는 것마저 선명하게 전해졌다.

‘투신 형제는 평소에 이런 감각으로 살고 있었다는 말인가?’

지금의 진으로서는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감당키 어려운 정보와 감각이 전해지고 있으니, 그걸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질 지경이었다.

최초로 투신합일이 펼쳐졌을 때도 진은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지금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광심장을 물들이고 있는 빛이 약해졌다. 진이 더 지치기 전에 반이 투신합일을 해제한 것이다.

“허.”

진은 누구도 믿지 못할 기적을 홀로 목도한 사람처럼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극도로 아쉬운 마음을 겨우 억눌러야만 했다.

투신합일이 해제되자마자, 세상이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온 기분인 것이다.

더 이상 훈련장의 땅과 바람이 정확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전해지지 않았고 형제들의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이 되었던 것 같은 감각은 꿈이었다는 듯 사라졌다.

“꽤 충격을 받은 얼굴이로군, 진 형제.”

“그 정도가 아닙니다. 방금 저는 아무런 노력 없이…… 창성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노력이 없었다는 말은 틀렸다. 애초에 진 형제가 스스로 이룬 성취가 있었기에 내 감각이 그만큼 전달된 것이다.”

진이 반의 감각을 느낀 것처럼, 반 또한 진의 감상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만큼이라고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진 형제, 나는 투신이다.”

[그래, 우리 반은 투신이다! 이 허접한 놈, 영광인 줄 알아!]

[먀, 먀먀?]

링링의 반응에 슈리는 네가 왜 자랑스러워하냐는 듯 소리를 내었으나, 진은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방금 자신이 경험한 ‘반’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투신 형제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과거 첫 수련 당시, 반과 일합을 나눌 수 있게 된 날.

그때도 진은 반이 아득히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고, 이후로도 줄곧 그래왔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지금이야말로, 가장 멀어 보였다.

“형제도 나와 같은 영역에 들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형제는 내 감각을 아예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테니.”

반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 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분명히 닿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감각은 사라졌으나 기억은 남았을 테지, 진 형제.”

“그렇습니다, 투신 형제.”

세상이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온 것 같아도, 투신합일이 진행된 동안 겪은 감각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그 감각을 통해 수련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말하자면 형제는, 나처럼 싸우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지. 또한 투신합일의 유지 시간을 늘리는 것도 병행하도록 하지.”

그보다 더 빠르게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수련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유지 시간을 늘리고 싶으면 이 몸한테 잘 보이는 게 좋을걸?]

“어허, 링링.”

[힝.]

“진 형제의 성과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그때부터는 투왕 형제들과 다시 대련을 시작할 것이다. 첫 번째 상대는, 십이투왕 형제다.”

십이투왕 테토. 반이 테토를 첫 번째 상대로 지목한 것은, 그가 투왕 중 가장 약하기 때문이다.

반은 진이 투왕들을 전투력 순으로 하나씩 꺾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