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막내아들-722화 (721/1,001)

제 722화

181화. 메리의 꿈(1)

티칸궁, 정원 테라스.

“오라버니. 우리가 언제부터 친해졌었지?”

메리가 앞에 놓인 화채를 휘저으며 말했다. 수저에 닿은 얼음이 덜그럭대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갑자기 그런 걸 왜 묻냐.”

디푸스가 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냥 문득 궁금해졌는데, 도통 기억이 안 나서 말이야.”

손가락을 넣어 보니 담뱃갑은 텅 비어 있었다.

“하, 다 떨어졌었네. 가지러 가기 귀찮은데. 너 담배 없냐?”

“없어. 그것보다 내 질문이나 좀 신경 써주지?”

“글쎄, 언젠가 자연스럽게 친해졌겠지.”

“아니야, 그런 성의 없는 답변으로는 이 답답한 기분을 해소할 수 없어. 이것 때문에 며칠째 한숨도 못 잤단 말이야.”

“뭘 또 그렇게까지.”

“알잖아, 난 뭐든 한 번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하면 늘 이런 식이라고. 해결될 때까지 온 신경이 거기에만 쏠려. 한두 번 보냐?”

“그 성격 좀 고쳐라, 자식아. 가끔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놓을 때도 있어야지. 오, 헤도 경.”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을 지나던 헤도가 디푸스에게 담배를 건넸다.

“다음에 두 개로 갚게.”

“물론, 밀라산 최고급으로 드리지.”

기분 좋게 담배를 문 디푸스는, 주머니를 뒤적이다 또 한숨을 내쉬었다.

불이 없었다.

치익-!

“언제든 곤란할 땐 입구에서 제트를 찾으시면 됩니다요, 디푸스 경.”

그러나 이번엔 지나가던 제트가 잽싸게 디푸스의 입가로 성냥을 갖다 대었다.

“제트, 아주 적절하군. 여기서 지내며 느낀 건데, 자네는 늘 이토록 적절한 인간이야.”

“괜히 우리 나리께서 이 제트를 영입한 게 아니지 말입니다. 두 분, 다른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요? 라트리 님 가게에서 특제 쿠키라도 좀 가져다드릴까?”

“가서 망치나 하나 가져와라. 이왕이면 피콘 님이 만든 걸로.”

“엇, 메리 경. 망치요? 망치는 왜……?”

“내 질문을 자꾸 씹어 드시는 우리 오라버니 머리 좀 깨버리게.”

“하하,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후우……!

이내 한 차례 연기를 뱉은 디푸스의 얼굴에 만족감이 서렸다. 성질이 뻗친 메리는 디푸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 거 참. 알았다, 알았어. 생각해보면 되잖아.”

“응, 당장 생각해.”

“어디 보자. 여기, 길리 유모! 잠깐만.”

디푸스가 옆을 지나치려는 길리를 불렀다.

“예, 디푸스 도련님. 말씀하십시오.”

“유모가 처음 가문에 왔을 때 말이야. 내가 이 녀석이랑 친했던가?”

“음…… 그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그때 진 도련님을 돌보느라 대부분 폭풍성에 있었으니까요.”

“생각을 하랬더니, 길리 유모한테 물어보냐!?”

“하지만 저와 도련님이 본가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두 분의 우애가 무척 깊어 보였습니다.”

“하긴, 그때는 우리 둘 다 기수였으니 시기상 그럴 수밖에 없겠군. 대답해줘서 고맙네. 그보다, 내상은 좀 어떤가?”

“동료분들 모두가 신경 써주신 덕에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푸스 도련님, 이제 그만 미안해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럼 괜히 일하다가 막내 녀석 화나게 만들지 말고 어서 가서 쉬는 게 좋겠어.”

길리가 고개를 꾸벅이고 가던 길을 가자 메리는 수저를 구겼다.

“흠, 흠! 처음 친해진 건 네가 초급반을 졸업했을 때쯤 같은데. 그때 검 고르는 거 내가 도와줬잖아.”

“엄청 대충 골라줬었지. 오랜만에 그 재수 없던 오라버니의 대사가 기억나네. 야, 넌 저걸 써라. 사슬검인데, 이름은 독사다. 너같이 표독하고 눈매가 더러운 애들한테 딱 어울리지.”

“하지만 그 대충 골라준 무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잘 썼냐? 리칼튼에서 부서지기 전까지.”

“아무튼 틀렸어. 그때 내가 독사를 골랐던 건 오라버니한테 한 방 먹이기 위해서였거든. 일대일로 꺾은 다음에, 난 네가 성의 없이 골라준 검으로도 널 이길 수 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안타깝게도 내가 그 대사를 들을 일은 없었군. 그때부터 너는 툭하면 내게 덤볐는데 한 번도 못 이겼잖아.”

“오라버니는 그때 이미 기수였으니 당연한 걸 그렇게 자랑스레 말하면 곤란하지. 대신 방심하다가 독 바른 독사에 베여서 며칠 앓았던 건 기억이 안 나나?”

“친선 결투 행사 때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데 습격했었지? 불문율 다 어기고. 그 흉터 아직도 여기 있다. 하여간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그거 내가 문제 삼았으면 진짜 큰일 났을 거다. 오, 그럼 그때 내가 그냥 입 닫고 있어서 친해졌던 거네!”

“아니야. 그날 이후 오라버니는 한동안 날 벌레 보듯 봤었잖아.”

“메리, 그럼 그게 사람이 한 짓이었다는 말이냐.”

“좀 그렇긴 했어. 그런 짓을 하고도 졌으니.”

“요점이 좀 어긋난 것 같다만. 아무튼 그것도 아니면…… 조슈아가 마련한 형제들 만찬에서 같이 놈 노려보다가 동질감을 느꼈던 날. 그날이다!”

“그날 동질감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였어. 같이 루나 언니한테 벽을 느끼던 그 긴 세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고.”

“그거야 모든 형제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지.”

“막내는 아닐걸.”

“어디선가 마법 포탄을 한 보따리 구해와서 장자의 방을 폭파하겠다던 너를 내가 우연히 발견해서 제압한 날? 아버지에게 도전하겠다며 아버지가 화장실 가시는 것만 기다리던 널 내가 말린 날?”

“땡. 우연히 발견한 거 맞아? 날 문제아로 여겨 지켜보고 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우연은 없었어. 모두 다 오라버니가 날 감시한 결과였지.”

“네가 그런 미친 짓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그날이었나 내가…….”

이후로도 디푸스는 메리와 겪은 수많은 과거의 일화들을.

아니, 소중한 추억들을 기분 좋게 말하고 있었다.

이런 여유로운 오후는 오랜만이었다. 어찌나 즐겁고 편안한지, 디푸스는 겨우 한 모금을 들이마신 담배가 아까 다 타서 손가락 사이에 그냥 끼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메리도 웃고 있었다. 때로 디푸스가 지나치게 창피한 과거사를 꺼내면 화채를 들이마셨으나, 대체로 깔깔 웃다 눈물까지 흘릴 지경이었다.

“……크큭, 크하핫, 끄윽. 미치겠네. 그래, 그런 일도 있었, 악! 깜짝이야!”

“히.”

“요나!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아까 헤도 경이 디푸스 오빠 담배 줬을 때부터.”

“세상에.”

“히히, 메리 언니랑 디푸스 오빠, 둘 다 너무 바보 같아. 나도 아는 걸 두 사람은 왜 모르지?”

“어, 넌 우리가 언제 친해졌는지 안다는 말이냐? 요나.”

요나가 수줍은 듯 웃으며 테라스 바깥을 가리켰다.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위, 메리의 사춘기 호와 코스모스의 함대가 떠 있었다.

“아……!”

메리와 디푸스는 드디어 깨달은 듯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맞아! 그날이었어. 오라버니가 내 배에 이름을 붙여준 날!”

“그래, 네가 예비 기수가 되어 가문을 떠날 무렵이었지. 그런데 요나 너는 그걸 어떻게.”

돌아보니 요나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같은 순간을 떠올렸다.

-예비 기수가 되면 배부터 구하겠다는 녀석은 너밖에 없을 거다.

-그간 육지에서 많이 싸웠으니 뱃놈들도 좀 족쳐보려고.

-배를 구하면 선호는 사춘기가 좋겠다. 제발, 그 배를 타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 돌아와라.

-응, 너나 어른이 되도록 하세요.

-그래도 결국 어른이 되기 어렵다면, 무사히 살아서라도 돌아와라. 네가 가문을 떠나 그 지랄 같은 성격으로 정말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니까. 그간 네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건, 전적으로 내 덕이다.

-아, 잘난 4기수께서 날 도발하고 싶은 모양이군. 그럼 내기 하나 할까? 나는 내가 너보다 강해져서 돌아온다에 건다. 너는 내가 송장이 되는 쪽에 걸어. 내가 이기면 뭘 줄래? 참고로 내가 지면 아무것도 못 줘. 죽었을 테니까.

돌이켜보면 그날이었다.

비록 메리는 디푸스의 진심 어린 걱정에 까칠한 반응을 보였으나, 그날이야말로 그간 알게 모르게 쌓아온 두 사람의 유대감이 서로에게 직접 언어로 전해진 날이었다.

“돌아오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다시 지켜주마.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네가 사고 치면 뒤도 봐주고, 생각 없이 사지로 걸어가면 말려준다는 뜻이다……. 그날, 오라버니가 나한테 그랬지.”

“넌 이제 네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게 내 취미가 된 모양이라며 비아냥댔고. 뭐, 약속 꼭 지키라는 쪽지를 남기며 처음으로 한 줄기 귀염성을 보여주기는 했다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야 치기 어린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 있지만, 오라버니는 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게 배은망덕했던 나한테 왜 그런 낯간지러운 말까지 했던 거야?”

말만이 아니다. 실제로 디푸스는 지금까지도 늘 자신보다 메리를 더 챙겨왔다.

그리고 메리는, 사실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째서 디푸스가 그 시절부터 줄곧 자신을 아껴주는 것인지.

“거창한 이유가 있겠냐. 그냥 처음엔 미운 정이 들었다가, 네 녀석하고 지내는 게 진짜로 재밌어진 거지. 너도 기수가 된 다음부터는 그래도 좀 사람 비슷한 게 됐잖아. 오라비로서 크나큰 보람을 느낀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기도 했다. 두 사람은 애들처럼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좀 속이 시원해졌냐, 오늘부터는 푹 잘 수 있겠어?”

이어진 디푸스의 질문에 메리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아직 오라버니한테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남았네.”

메리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왜 그랬어? 왜…… 왜 나와 막내, 가문, 세상을 배신하고 흉신의 권능을 받았던 거야……?”

디푸스가 손가락 사이에서 다 타버린 담배를 떼어냈다.

“길리는 오라버니가 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다른 동료들도 그런 식이지만. 오라버니는 결국 마지막에 정신을 차렸지만. 난 아직 납득이 안 돼. 그러니 이제 말해줘.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는 거지?”

“메리, 산책이나 좀 하자.”

“또 대답을 피하려고는 하지 마. 오늘은 반드시 들어야겠어. 오라버니에게 대답을 듣지 못하면, 난.”

“따라와, 걸으면서 이야기해주마.”

돌연 디푸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메리는, 멍하게 디푸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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