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막내아들-863화 (863/1,001)

제 863화

215화. 신과의 재회(4)

진은 투자드를 맡기로 했다.

태양신교의 사제 다섯 중 그는 분명 가장 강한 무인이었다.

“그럼 내가 유론가와 쿤겐가의 선배님들을 모시도록 하지. 룬티아, 네가 티펀가와 마이어가의 선배님들을 맡아라.”

“그래.”

“잠깐, 나는?”

“무라칸 님은 동료들이랑 페이텔을 보호하면서 구경이나 하고 계십시오. 저희가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오냐. 행여 문제가 생기거든 그때 도와주마.”

기수들은 그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태양신교 사제들은 분명 과거 세상을 호령하던 무인들이다. 투자드 아틸라의 경우는 당시 세계제일 검으로 이름이 드높았고, 나머지도 지금까지 회자 될 만큼 전설적인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객관적으로 ‘창성’으로 평가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진과 기수들은 패배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창성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자신들을 꺾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진이 평식 압제를 펼치며 투자드에게 쇄도했다. 동시에 진은 사방으로 뇌기를 발산해 근처의 다른 사제들을 양옆으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루나와 룬티아도 각자 맡기로 한 상대들을 붙잡았다. 전장의 중앙은 진과 투자드, 우측은 루나와 카이만, 쿤겐, 좌측은 룬티아와 루진, 친이었다.

쩌엉-!

시그문드를 받아낸 투자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줄곧 이런 싸움을 기다려왔다는 듯 광기에 찬 미소를 지었다.

‘싸움 그 자체의 즐거움에 중독된 부류인가, 눈이 돌았군.’

말이 많다고 핀잔을 준 모습에서 알 수 있듯, 투자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싸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로는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말이야, 싸가지가 이렇게 없나? 우리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상대를 고르는군. 난 저놈 피 맛이 궁금했는데.]

트락스가 루나와 진 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루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선배라 불러줬더니 정말로 뭐가 된 줄 아는 모양이네, 이 쓰레기가. 감히 누구한테 놈 놈 지껄이는 거야?”

스악-!

도끼 검 크란텔이 트락스의 머리로 쇄도했다. 트락스가 방어하기 위해 검을 치켜든 순간, 크란텔은 그토록 거대한 무기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유연하게 방향을 틀었다.

트락스 역시 한 번 더 반응했으나 뺨에 긴 상처가 남았다. 카이만이 난입하지 않았다면 트락스는 바로 수세에 몰렸을 터였다.

“이제 선배 대접은 끝났어,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두 놈 다 바짝 긴장하고 덤벼라. 몇 분이라도 더 살고 싶다면 말이야.”

루나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근처의 아공간들이 일그러지며 균열을 일으켰다. 몰려드는 폭풍과 천둥 번개는 루나에게 닿지 못하고 휘어버리는 모습.

[이런 미친…… 저 녀석이 말한 대로 튀는 게 옳았나? 카이만, 지금이라도 투자드한테 물러나자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카이만에겐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루나는 그를 찢어발길 기세로 도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시작부터 저렇게 밀린다고? 그것도 한 명에게?]

루진과 친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카이만과 트락스는 둘 다 10성, 그중에서도 당대엔 창성 근처라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시론 룬칸델을 제외하면 창성에 오른 인물은 없다 들었는데, 이런 격차는…….]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죠?”

룬티아가 세검 샤를을 허공에 가볍게 휘저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검신을 타고 파도처럼 사방에 오러가 퍼지고 있었다.

“나도 우리 언니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아주 많아.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부터 나를 상대하면서도 똑같은 생각이 들 거예요. 창성이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할 수 있지? 그런 생각 말이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검 샤를이 루진의 가슴팍을 찔렀다. 루진은 권갑으로 샤를을 쳐내자마자 머릿속으로 자신의 한계를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많아야 50회…… 그 이상은 막을 수 없다!’

루진은 겨우 그 정도 공방 안에 자신을 꺾을 수 있는 상대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설령 창성 기사라 할지라도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하물며 그게 같은 ‘10성’이라면 더더욱.

친 역시 세검을 막아내며 루진처럼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하나하나 혼신을 담은 일격도 아니고, 룬티아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같은 10성인데 이토록 차이가 극심하다는 사실을 납득하기가 어렵지?”

[흡!]

“아, 대답할 여유가 없나? 어쨌거나 차이를 알려주자면, 당신들은 참 물렁한 시대에 살았어. 우리가 투쟁하고 있는 시대는 그야말로 역대 최악이라고…….”

룬칸델과 지플의 천 년 전쟁은 최고조에 달했고.

각 세력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역대 최강, 혹은 그에 가까운 인물들을 보유한 게 현시대였다.

룬칸델엔 시론이, 지플엔 켈리악이, 제국엔 론이, 비궁엔 탈라리스가, 킨젤로엔 오르갈이.

게다가 그 뒤를 잇고 있는 다음 세대들 또한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 중이었다.

‘마신석’은 진이 활약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쭉 존재했으며, 거대 세력들의 전쟁은 흑해의 왕을 깨웠다.

흉신의 탄생이 있었고, 지하 세력과 진마계가 지상을 위협하고 있다.

룬티아의 말처럼 지금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위험과 장애물이 도사리는 시대였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이 끔찍한 시대를, 우린 몇 번이나 돌파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런데 같은 10성일 수가 없잖아? 혹시 페이텔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으니 신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던 건가? 우리 소가주에 의하면 그자는 신다운 신도 아닌데 말이야.”

듣고 있던 페이텔은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어 룬티아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룬티아가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기 전에 먼저 기가 죽어서 시선을 돌렸다.

‘저것들이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괴물 같은 놈들……! 아, 그나저나 인장을 써버려서 맹세를 무를 수도 없고, 대충대충 할 수도 없는데. 이 자식들이 앞으로 날 얼마나 부려 먹으려는 거지? 빌어먹을, 투자드 일당에게 당해서 소멸하는 것보다야 낫기는 한데.’

무라칸은 그런 페이텔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보쇼, 짱구 굴러가는 소리가 너무 커. 우리 덕에 살았으면 일단 고마운 마음만 가지고 있어야지. 어?”

[무라칸…….]

“이것도 다 인연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첫 만남은 썩 좋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아름다운 관계를 꾸려나가면 되는 것 아니겠어? 크하하, 지금부터는 다 댁 하기 나름이요. 꼬마랑 저 녀석들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해? 그런데 우리가 댁을 구하는 입장이 아니라, 잡아 죽이려고 했다고 생각해봐.”

잠시 그 상황을 상상한 페이텔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애초에 그는 진이 이렇게 강해지기 전에 청새 군도에서 완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건…… 그렇군. 고맙다.]

“그나저나 멀쩡한 계약자 내버려 두고 왜 여기 숨어 있던 거요? 저놈들이 댁을 노리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어?”

[……지플의 신 사냥 때문이다.]

지플은 오래전부터 마신석을 완성하기 위해 신들을 포획해왔다. 페이텔은 상위계 신인 만큼, 당연히 지플의 사냥 우선순위에 포함이 되었다.

[그놈들한테 붙잡히는 게 싫어서 숨었던 건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여기까지 알아냈어.]

“태양신교에 무녀라는 작자가 있어. 그놈이 수를 쓴 거지. 저 망령들도 그놈이 데려온 거고. 우리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당했겠군. 그나저나 나름 상위 신이라는 양반이 뭐 이렇게 약해? 저 정도도 못 이기고.”

[알면서 왜 그러나? 신이 인세에서 본연의 힘을 다 사용하려면 수많은 조건이 붙는다. 심지어 여긴 본래도 내 영역이 아니라 빌어먹을 형님의 무덤이다. 형님의 기운을 흉내 내느라 안 그래도 많은 제약이 더 늘어난 상황이었다.]

“천둥 신 그람, 그 양반이 진짜 대단하긴 했어. 그 양반조차 명왕족 투신에겐 안 됐지만. 그런데, 여기 남은 그람의 기운이 그렇게 강한가?”

[……한 십여 분 전까지는 죽은 형님의 사념이 아주 사나운 상태였다. 그런데 저놈들이 어떤 물건을 꺼내서 그 기운을 대부분 흡수하더군. 마신석과 호환되는 물건 같았다.]

“흡수?”

[그래, 아마 그것도 마신석의 재료로 사용하려고 챙겼을 거다. 솔직히 형님은 오만했으나 대단한 신이었으니, 그 잔존 사념만으로도 어지간한 신보다 좋은 재료가 될 테지. 과거 진 룬칸델과 네가 나를 꺾었을 때도 그 사념이 시그문드에 깃들어 너흴 도왔기 때문이었고.]

“그거 없었어도 댁은 나한테 안 됐어. 흐음, 그렇다면 저놈들 족치고 그 기운도 우리가 회수해야겠군.”

무라칸과 페이텔이 거기까지 대화를 나눴을 즈음, 진과 기수들의 싸움은 거의 승부가 난 상태였다.

[커헉, 헉……!]

[그러게, 아까라도 튀자니까!]

루나가 상대한 카이만과 트락스는 각각 사지를 하나씩 잃은 채 숨을 몰아쉬었고, 루진과 친은 권갑 속 주먹이 다 으스러진 채 마지막 발악을 하는 중이었다.

투자드 역시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다만 그는 수세에 몰린 사람이 아니라, 즐거워서 미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양신교에 귀의하고, 내가 바란 것은 단 하나. 이토록 재미있는 싸움이었다. 이 자리에서 소멸해도 여한이 없을 지경이로구나.]

“투자드 선배님은 상당히 미친놈이시군요. 혹시 살아있을 때도 오직 재미를 위해서만 싸워온 겁니까?”

[이보다 더 큰 쾌락은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 아니겠나?]

“충분히 즐기신 것 같으니 이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투자드가 품속에서 한 구체를 꺼냈다. 페이텔이 말한 바로 그 물건이었다.

[투자드! 그걸 쓸 생각이냐!? 안 돼, 그것까지 망치면 우리 전부 다 영생에 들 수 없다고!]

트락스는 루나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와중에도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투자드는 트락스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씨익 웃으며 진과 눈을 맞췄다.

[난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약속된 영생을 포기한다, 진 룬칸델. 그러니 너도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검들을 더 보여다오.]

투자드가 제 가슴팍에 구체를 쑤셔 넣었다. 구체 속에 그람의 뇌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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