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막내아들-874화 (874/1,001)

제 874화

218화. 쓰러뜨리면 더 강한 놈이 오는 구조(3)

델키 남부, 균열 발생 지역.

“아, 이건 반칙이지!”

“메리 누님이 기껏 우두머리를 쓰러뜨렸더니 새로운 대균열이라, 이 마족 새끼들. 전쟁 참 편하게 하려고 한다? 무슨 대규모 공습을 이렇게 쉽게 새로 하냐고.”

토나 형제가 소리쳤다.

방금까지 메리가 우두머리격 마족을 상대하는 사이, 두 사람과 가문의 기사들은 진마계의 나머지 병력을 맡고 있었다.

메리는 피 칠갑을 한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대부분 방금 죽은 마족의 보라색 피였으나 그녀가 흘린 붉은 피도 조금 섞인 모습이었다.

“누님, 괜찮으십니까?”

“어, 뒤질 정돈 아니다. 망할, 앞선 놈이 막판에 치졸한 수를 쓰지만 않았어도 한탕 더 뛸 수 있는 건데. 개자식이 갑자기 자폭을 해?”

“허세 부리지 마십쇼, 막상막하였는데. 설마 누님 죽는 건 아닌가 식겁했다고요.”

“맞습니다. 그놈도 뭐 나름대로 진마계에서 알아주는 놈이라고 자길 소개했으니 그렇게 허세 부릴 필요 없습니다. 뭐라더라, 30대 귀족? 뭐 그런 것에 속한 가문의 장군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누님은 잘 싸우셨습니다.”

“시끄럽고, 지원 올 때까지만 버티자. 이제 1분 내로 저 균열에서 빠져나올 놈은, 방금 내가 벤 놈보다 분명 훨씬 강해. 느껴지는 기운이 차원이 다르다…….”

메리와 토나 형제, 그리고 기사들은 긴장한 채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치른 격전은 이미 그들 모두를 기진맥진하게 만든 상태였다.

만일 지원군이 빠르게 도착하지 않는다면, 기수들은 몰라도 기사들 중엔 전사자가 다수 발생할 터였다.

메리가 신독사에 오러를 두르며 눈을 부릅떴다.

토나 형제는 기사들과 함께 그녀를 중심으로 검진을 형성했다.

잠시 후 대균열에서부터 보랏빛 마기가 폭발하며 충격파가 일었다.

폭발은 열 차례쯤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며 기사들이 펼친 검막을 파괴했다.

이어 균열을 빠져나오는 한 마족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허리춤에 쌍검을 차고 있었고, 눈동자는 장발에 가려졌음에도 귀기가 흘러넘쳤다.

그가 한 걸음을 떼자마자 별안간 전장 사방에 거대한 건물과 구조물들이 치솟았다.

대균열을 통해 소환된 진마계의 성채였다.

기사들은 대지가 뒤틀리는 충격에 몸을 피하느라 진형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아, 사이칼은 죽은 건가.”

마족이 다시 자리를 잡은 메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메리와 기사들은 대답하기 전에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환된 성채엔 당연히 마족 병력이 가득했고, 그들은 벌써 기사들을 완벽하게 포위한 상태였다.

“등장 한번 더럽게 요란하구나, 마족. 그래, 내가 죽였다.”

“이름이 무엇인가, 인간.”

“메리 룬칸델, 룬칸델의 7기수다.”

“아, 룬칸델… 인세 제일가는 검가. 나는 칼루가의 대장군, 플렉 칼루가다. 네가 죽인 사이칼은 내 심복이었지.”

“그러냐?”

“너를 천 번 죽인다 할지라도 이 허망함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단 한 번밖에 죽일 수 없으니, 심혈을 기울여 최대한 고통스럽게 끝을 내주마.”

이내 플렉이 쌍검을 뽑으려는 찰나.

[보오오옹!]

별안간 전장 상공에 백색 차원문이 열리며 눈두꺼비 모트가 경쾌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쿵-!

지상에 착지한 모트 위엔 세 사람이 타 있었다.

시리스, 그리고 루나와 룬티아.

기사들은 그들을 보자마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흐트러진 모습 따윈 보이지 않고 곧장 검례부터 올렸지만 말이다.

“언니!”

“오오, 누님들!”

“다행히 안 늦었군.”

“메리가 좀 다쳤는데?”

“뭐? 그러네!? 우리 메리를 이렇게 만든 게 어떤 씹어 먹을 개자식이냐!”

“걘 내가 직접 죽였어. 그래서 좀 지쳐서 쉬려고 했더니, 이번엔 저 새로 등장한 마족 놈이 날 죽이네 마네 하네?”

루나와 룬티아가 동시에 홱 고개를 돌려 플렉을 노려보았다.

“나는 루나 룬칸델이다. 내 동생을 위협한 게 네놈이냐?”

“운이 좋은 놈이네, 메리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아주 고통스럽게 죽였을 텐데, 적당히 베어버려도 되겠군.”

“그, 누님. 저랑 헤이토나도 있습니다. 우리도 맞을 뻔했어요.”

“1기수, 3기수. 난 바로 다른 지역으로 가 봐야 합니다. 어서 내리시죠.”

“아, 맞다. 미안, 소궁주. 얼른 가!”

“빠르게 이동시켜 줘서 고마워. 여기 정리하고 있을 테니, 혹 다른 곳 지원 필요하면 다시 와 주고.”

“그럼 고생하십시오.”

[보옹. 보오오.]

모트가 다시 폴짝 뛰어올라 백색 차원문 속으로 사라졌다.

루나와 룬티아는 몸을 풀며 도끼검 크란텔과 세검 샤를을 들어올렸다.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무튼, 우리 메리를 괴롭히려던 대가는 아주 크다. 오늘 여기 모인 마족 전원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도망치는 놈은 살려주마. 도망칠 수 있다면 말이지…….”

토나 형제는 한 번 더 ‘누님들, 저흰.’이라고 말했으나 루나와 룬티아는 플렉과 마족들에게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다.

머쓱해진 토나 형제는 괜히 하하 웃고는 함께 플렉을 욕했다.

“누님들이 왔으니 네놈은 이제 뒤졌어!”

플렉은 일순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으나, 새로 등장한 두 기수는 진마계에도 위명이 자자한 요주의 인물이었다.

“루나 룬칸델과 룬티아 룬칸델… 그중 백경, 너는 붉은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더군. 보여 다오, 정말 그런 것인지.”

“별걸 다 아는군. 글쎄, 필요하다면 쓰겠다만 너 정도는 그냥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언니가 저걸 맡아. 난 병력을 몰살할 테니. 그리고 메리, 토나들.”

“오, 드디어 저희 이름을.”

“은 기사들과 함께 전원 퇴각해서 쉬어라. 얼른 회복해야 다시 싸우지.”

“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아, 언니. 그리고 저놈들 조심해. 내가 죽인 놈도 밀린다 싶으니 갑자기 자폭을 하더라니까.”

플렉은 물러나는 메리와 기사들을 향해 즉시 검기를 날렸다.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마족 병력들도 검기와 마법, 설치된 포들을 쏘았다.

그러나 플렉의 검기는 크란텔에 가로막혔고, 병력의 공격은 뛰어오른 룬티아가 사방으로 검기를 뿌려 상쇄해 버리는 모습.

“나와 룬티아를 상대로 한눈을 파는 놈이 다 있군. 인세 물정에 아무리 어두워도, 그런 짓을 하면 큰일이 나는 거야…….”

쩌엉-!

크란텔과 플렉의 쌍검이 격돌했다.

단 일격에 플렉이 딛고 있던 땅이 주저앉았고, 플렉은 눈을 부릅뜨며 루나를 밀어냈다.

그사이 룬티아는 적진을 파고들어 마족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그녀의 찌르기에 머리가 통째로 사라져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나마 조장급 마족들은 두어 번 검을 섞다 명을 달리했다.

콰앙-!

처컥-!

크란텔이 쉴 새 없이 플렉의 쌍검을 두들겼다.

루나가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땅과 구름에 거대한 검흔이 남았다.

메리는 플렉을 사이칼에 비해 차원이 다른 강자라 표현했으나, 루나의 입장에선 그저 조금 특별한 적에 불과했다.

“지친 내 동생을 상대로 우쭐거린 게 우스울 지경이군, 마족. 연전이 아니었다면, 너는 메리를 이렇게 압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플렉은 대답하지 않고 대장군이 되기 전, 몇 차례 겪었던 패배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을 완벽하게 압도했던 한 사람의 모습이 특히 루나와 겹쳐 보이고 있었다.

파엘리토 벨가시움, 진마계제일검.

‘백경, 과연 허명이 아니었군. 파엘리토 님과 라이셋 님 이후, 내가 이토록 압도된 적이 있던가?’

플렉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도주.

괜히 목숨을 걸고 싸워 봐야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사이칼처럼 자폭을 한다면 부상다운 부상을 입힐 수는 있을 테지만, 치명상은 무리였다.

루나는 머잖아 다시 회복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마족들을 도륙할 것이다.

‘백경과의 승부는 지토 님께서 더 많은 힘을 하사해 주신 다음으로 미룬다.’

안타깝게도 루나에겐 플렉의 속내가 훤히 보였다. 플렉의 검에선 그녀가 그간 검을 섞어 온 ‘상대적 약자’들에게서 엿보이던 필사적인 느낌이 묻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명백히 약할 뿐, 플렉은 진마계의 대장군 중 하나다.

오늘 놓친다면 플렉은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을 죽이고 고문할 것이다. 따라서 루나는 결코 놈을 놓치지 않을 선택지를 골랐다.

행여 갑자기 도주로로 이어지는 차원문을 열거나, 공간 도약 같은 것을 사용할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수.

“소원대로, 보여 주마.”

심검 적월.

크란텔이 붉게 물들었다. 그 순간 플렉은 루나의 예상대로 차원 이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룬티아가 도륙하고 있는 마족 병력을 제물로 어둠계 공간 도약 마법을 펼치고 있던 것이다.

플렉은 설령 루나가 붉은 검기를 사용하더라도 도망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과거 파엘리토에게 대적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도주했던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붉은 기운을 사용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 루나라는 인간은 시론 룬칸델과 더불어 지금 지토 님께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플렉은 파엘리토가 루나와 붉은 검기에 대해 그렇게 말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플렉은 파엘리토처럼 붉은 검기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파엘리토로부터 도망친 자신이, 루나를 상대로 벗어나지 못할 리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차원문이 열렸다.

단 한 걸음만 옮기면 플렉은 즉시 그 차원문 속으로 들어가 진과 사키엘이 마주하고 있는 주둔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플렉은 그 한 걸음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마계 대장군 플렉 칼루가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플렉의 인지와 달리, 그의 몸은 차원문이 열리자마자 붉은 검기에 완전히 분해되어 입자로 흩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후우!”

루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플렉과, 그와 함께 사라진 차원문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이전 대균열 때문에 연달아 사용해서 그런가, 상당히 지치는군… 당분간은 사용을 자제해야겠어. 혹 이러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횟수 제한이 더 줄어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긴 하네.’

한창 마족과 그들의 성채를 부수고 있던 룬티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루나를 돌아보았다.

플렉이 그것들을 제물로 사용한 탓에 한순간에 적이 다 사라진 것이다.

“어? 언니! 괜찮아?”

“놈을 안 놓치려고 살짝 무리했어. 여긴 정리됐으니, 일단 막내한테 다시 연락하고 다른 지역 상황 물어보자. 난 티칸으로 돌아가 조금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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