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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첫날 아포칼립스가 열렸다-255화 (255/508)

신무기의 위력 (2)

“여기는 차가 너무 많은데?”

“쩝······. 그렇네.”

반환점을 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병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첫 번째 진입로는 도로도 넓고 차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덕분에 불도저 전차의 위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코스는 멈춰있는 차가 너무 많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차부대가 활약을 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대식은 이미 이런 상황이 펼쳐질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전차 부대, 방벽 세우세요.”

전투 불도저의 용도는 단순한 돌격용 전차에 국한되지 않았다.

좁은 길목에 세워두면 날카로운 창날이 달린 방벽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좀비들도 바보가 아니니 그 방벽에 달려들어 죽어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위치만 잘 잡아 세워두면 스물로 막아야 할 골목을 열로 틀어막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효과 정도는 낼 수 있었다.

‘이 사람 대체 뭐지······.’

능숙한 것을 넘어 익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대식의 전술에, 현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눈만 껌벅였다.

지금 상대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움직이는 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고 있었다.

마치 잘 짜여진 프로그램처럼, 어떤 상황을 마주하면 자동으로 가장 적절한 대응법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재, 이번에는 다른 일을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이어서 대식은 아재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래에서 작업을 한 다음······. 위로 올라가서······. 가능하시겠어요?”

“허어, 그거 재밌겠는디?”

대식의 설명을 들은 아재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쪽으로 물러났다.

“유경이, 이리 와봐!”

* * *

두 번째 코스를 따라 진격한 지 고작 몇 분 만에, 탐색조의 정예병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강해졌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인 건가?’

이 인근의 변이체들은 첫 번째 진입로에 있던 놈들보다 확실히 강했다. 일반적인 좀비의 숫자는 상당히 줄어있었지만 대신 2차 변이를 일으킨 놈들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았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흥분해서 치고 나가지 마! 방벽 최대한 활용하면서 천천히 나가!”

“친위대를 앞세울 테니 병사들은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이도록!”

동학은 병사들이 들고 다니는 것보다 1미터 이상 긴 장창을 장비한 꼭두각시를 선두에 세웠다.

좀비와의 싸움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작은 상처로도 감염이 되고 만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대식이 그에게 선물한 무덤지기의 친위대들은 달랐다.

인간보다 훨씬 크고 단단했고, 상처를 입어도 감염되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앞선 전투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동학이었다.

- 콰드드득!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처럼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았다.

‘이런!’

이곳의 변이체들은 꼭두각시의 단단한 갑주에도 상처를 남길 만큼 강력했다.

“1번 인형 뒤로 보내십시오, 혜나 씨는 부서진 부분 복구해 주시고요.”

그러나 대식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혜나는 감염을 어쩌지는 못하지만, 어지간한 부상은 모두 치료할 수 있었다.

즉, 감염을 당하지 않는 꼭두각시는 그녀의 능력을 가장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병사였다.

“밀어붙여!”

“너무 앞으로 나가지 마!”

“진형 유지하면서 천천히!”

그렇게 병력들이 변이체들과 밀고 당기고 있는 사이, 대식의 머릿속에 아재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식이, 재료는 다 모았어.”

“그럼 바로 유경이랑 서정이 데리고 올라가 주세요.”

아재와 대화를 마친 대식은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정지, 여기서 버티세요!”

순간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듯 대식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기서요?”

그들의 목표는 이 도로를 따라 아래쪽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인근에서는 조만간 종말의 씨앗이 생성될지도 몰랐다. 가능하면 한시라도 빨리 주위의 변이체와 보스 몬스터를 치워버리는 게 안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라니.

그들로서는 대식의 명령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여기서 버티면 됩니다.”

하지만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이유없이 이런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방진 펴!”

“버텨!”

“측면에서 나온다! 3조는 골목 틀어막아!”

육백의 병력은 곧장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바닥을 단단히 딛고 자리를 사수했다.

* * *

한편, 맞은 편에 위치한 건물의 옥상 위에는 유경과 서정, 아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몸을 낮춘 채 대기하고 있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서정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연 옥상 위에 두 대의 굴착기가 불쑥 솟아났다.

“우, 우와아아······.”

반신반의하며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포크레인 기사는 입을 쩍 벌린 채 아재를 바라봤다.

“뭣들 혀. 시작해야지.”

이에 아재는 장난스레 씨익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호위 병력들은 벽으로 기어 올라오는 놈들 잘 처리해주고!”

* * *

“어?!”

“응?”

“뭐야 저거······.”

옥상 위에 불쑥 솟아난 두 개의 거대한 그림자에, 변이체들을 막아내고 있던 병사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 위잉, 위이이잉······.

커다란 두 대의 쇳덩이는 곧장 특유의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그리고 다음 순간, 대식의 능력으로 변형된 커다란 버킷에서 돌과 쇳덩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악, 크아아악!”

“그륵, 그르르륵!”

7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돌과 쇳덩이는 그 자체로 흉기나 마찬가지였다.

2미터를 훌쩍 넘는 괴물의 근육도.

벌레처럼 단단해진 껍질도.

네 개나 되는 팔다리도.

그 갑작스러운 재앙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크륵! 크르르륵!”

도로를 가득 메운 채 붉은 눈을 번득이던 괴물들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단말마가 터져나왔다.

“끄, 끄륵······.”

커다란 돌덩이에 머리를 맞은 놈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힘없이 늘어졌고,

“끄아아악!”

쇳덩이에 몸이 뭉개진 변이체는 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비명을 내질렀다.

반면 괴물들과 대치하고 있던 병사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우, 우와아아······.”

“최고다!”

“더 해라, 더 해! 다 죽여버려!”

병사들의 환호성, 괴물들의 비명, 기계 팔이 움직이는 소리와 끊임없이 떨어지는 쇳덩이와 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어지럽게 뒤엉켜 울려퍼졌다.

“전진!”

이어서 대식의 우렁찬 목소리가 병사들의 귓등을 때렸다.

* * *

“올라옵니다!”

“창 던져!”

“돌로 찍어버려!”

옥상 위의 병사들은 벽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변이체들을 향해 창과 돌덩이를 던져댔다.

“빌어먹을! 몇 마리 올라왔어!”

하지만 사방에서 기어 올라오는 변이체를 그들만으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젠장, 퇴각 준비! 퇴각 준비!”

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변이체들이 6층에 다다르자, 당황한 병사들은 곧장 서정이 만들어둔 거점으로 달려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재는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니, 후퇴하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쓸어버려!”

아재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두 개의 커다란 쇳덩이가 옥상의 난간 위에 버킷을 올렸다.

- 위이잉!

유압 밸브가 굉음을 토해내며 커다란 쇳덩이가 좌우로 춤을 추자, 날카로운 철침이 돋아난 버킷이 난간 위에 올라선 변이체들의 몸을 강타했다.

“끄륵!”

“크아아악!”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건물을 기어오른 괴물들은 거대한 쇳덩이에 치여 허무하게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 * *

“자, 장난 아닌데······.”

“뭐야 저거.”

“거점만 만들면 완전 무적이잖아.”

변이체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한 병사들의 눈이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아저씨가 포크레인을 옮기고 나머지 병력은 서정 씨랑 유경 씨가 이동시킨 건가?”

“이건 완전 이동식 성채잖아.”

불도저에 이어 포크레인까지.

대식이 개조한 중장비는 조건만 갖춰지면 엄청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게다가 보급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병사들이 체력을 온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전투력이 몇 배는 뻥튀기 되는 느낌이었다.

“자, 자! 얼른 밀어붙여!”

“저놈들 뒤쪽에 정신 팔렸잖아! 지금 밀어!”

자신감이 붙은 병사들은 더욱 사기충천해 앞으로 돌진했다.

그렇게 위아래에서 협공을 당한 좀비들의 진형은 순식간에 붕괴되고 말았다.

‘이건······. 진짜야, 이 사람들은 진짜라고.’

한편, 줄곧 대식의 곁에 붙어있던 현준은 자신의 심장이 전에 없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느꼈던 의구심과 걱정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떻게든 이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해.’

대신 그 자리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식 일행과 손을 잡아야겠다는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혹시 저희한테 따로 원하시는 게 있을까요?”

그리고 그 생각은 곧장 질문이 되어 그의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뭐, 그건 천천히 얘기하죠. 지금은 여길 청소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담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하는 대식의 태도는 현준에게 더욱 큰 확신을 불어넣었다.

“으으으······.”

바로 그때였다.

으스스한 신음소리 같은 것이 현준의 귀를 스쳤다.

“끄으으으, 흐으······.”

* * *

그 소리는 동시에, 모두의 귀에 들렸다.

돌무더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뚫고, 쇳덩이가 부서지는 소리를 가로질러, 모두의 귀에 닿았다.

병사들의 함성 소리와 괴물들의 단말마는 전경에서 배경이 되어 뒤로 밀려났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누군가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 위로도 곡소리인지 신음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덧씌워졌다.

“뭐야, 이게······. 이거 왜 이러는 건데.”

“대체 어디서 들리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소리는 모든 곳에 존재했다.

때로는 가까운 것 같았고, 때로는 멀리 있는 것 같았으며, 위에서, 동시에 아래에서도 들리는 것 같았다.

“······.”

“흐으으······.”

사람들은 점차 말을 잊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 탁!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작은 산처럼 쌓인 돌무더기 위로 몸을 날렸다.

수백에 달하는 망자의 시신을 뒤덮은 무덤 위에 올라선 검은 그림자는 하얀 빛무리에 휩싸여 옥상으로 이동했다.

“대식이, 이 소리 뭐여?”

대식과 마주한 아재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리는 그 기분 나쁜 소리는 천천히, 하지만 아주 확실하게 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깔린 배경음 같던 그 곡소리는 점점 더 참을 수 없는 소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재, 저쪽으로 병력들 전진시키세요.”

바로 그때, 대식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아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썩은 내를 풍기는 시체들의 군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일자로 쭉 돌파해야 합니다.”

말을 마친 대식은 가볍게 고개를 돌리며 빠루를 뽑아 들었다.

콘크리트 나무들이 숲을 이룬 도시의 한쪽에는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작은 언덕이 솟아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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