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작전 (7)
“호두 과자인가?”
태호가 픽 웃으며 질문을 던지자, 혜나는 곧장 고개를 저으며 그 추측을 부정했다.
“아니에요, 순대죠. 천안이면 병천 순대 아니에요?”
그 해괴한 대화에, 영환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하는 표정으로 번갈아 두 사람을 바라봤다.
“네?”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총알의 가치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지금 대식은 아무런 손실 없이, 문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인 탄약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막대한 양의 총알을 얻은 대가로 원하는 게 호두 과자에 순대라니,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이란 말인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영환은 이내 조금 전 그들이 나눈 대화가 절대로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태호의 눈빛은 벙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진지했으니까.
“에이, 두 분 다 아직 멀었네. 정답은 둘 다입니다. 맞죠?”
그때, 지혁이 거만하게 웃으며 정답을 밝혔다.
이에 대식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지혁을 칭찬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영환의 마음에는 이내 한 줄기 비애감이 찾아왔다.
‘내 목숨을 구해준 대가가······. 순대랑 호두 과자인 건가?’
이번 일로 태호는 총알을 얻었고, 자신은 대식 덕분에 후일 군법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대가로 요구하는 게 고작 순대와 호두 과자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러거나 말거나, 태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식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역시 돼지 내장은 내가 내는 건가?”
“그럼 누가 냅니까?”
대식의 반문에, 태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영환의 얼굴 위로 옮겨갔다.
“혹시 자네 마을에 돼지 없나?”
“어, 없습니다······.”
“호두 과자 재료는?”
“호두랑 계란을 제외하면 있습니다만······.”
“호두 과자에 계란도 들어가나?”
“네, 반죽에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군. 알겠네, 계란은 내가 맡지. 나머지는 맡겨도 되겠나?”
결국 그들의 기괴한 페이스에 휘말려버린 영환은 얼떨결에 그 흐름에 동참하고 말았다.
“마, 맡겨 주십시오.”
“좋아. 이제보니 자네 아주 괜찮은 사람이구만.”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재료의 일부를 영환에게 떠넘기는 데 성공한 태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다시 대식을 바라봤다.
“근데 자네 그거 아나? 평택에도 돼지 농장이 있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설마 먹을 걸 아끼시려는 건 아니죠?”
이에 대식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 질문의 의도를 물었다.
“그럴 리가. 난 총알보다 자네가 탐나는데, 돼지가 아니라 뭐라도 줄 수 있네. 그래도 나만 내는 건 왠지 억울해서 말이야. 원래 맨날 한 놈만 내면 기분 나쁘잖아.”
“으음······. 그건 그렇군요, 믿겠습니다.”
“어째 대식 씨는 남자들한테 꽤 인기가 많네요. 그것도 군인들한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재입대시키고 싶은 인재지.”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십니까.”
반쯤 넋이 나간 채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영환은 얼른 사람을 불러 순대와 호두 과자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수배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 * *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탄약창 인근의 주민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 두두두두······.
지금 마을에는 커다란 수송용 헬기 세 대가 내려앉고 있었다.
이윽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가던 로터가 멈추고, 그 안에 탑승하고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주위에는 어느새 주민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있었다.
이런 상황에 헬기까지 동원해 가져온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헬기에서 튀어나온 물체를 확인한 순간······. 그들은 연신 눈을 부비며 자신들이 뭔가를 잘못 본 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계란?”
“저거 계란 아니야?”
“저건 호두 같은데······?”
“그거 말고도 죄다 식재료 같은데.”
한편, 헬기에서 내리는 식재료를 바라보던 대식은 서글픈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왠일이래요? 먹을 거 앞에 두고 그런 표정을 다 짓고?”
아련함마저 느껴지는 그 촉촉한 눈빛에, 혜나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한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며 질문을 던졌다.
“······.”
이에 대식은 말없이 혜나를 바라보다가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호두 과자랑 순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릅니까?”
“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한 혜나의 반응에, 지혁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며 답을 내놓았다.
“호두 과자는 반죽해야 되잖아요. 팥앙금도 만들어야 되고. 순대도 오래 걸리기야 매한가지고요.”
“그럼 지금 그 표정이······. 먹을 거 기다려야 돼서 나오는 거라고? 몇 달 만에 처음 보여주는 그 사슴 같은 눈망울이!?”
혜나가 뭐라고 떠들든,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대식은 슬픈 표정으로 한 가지를 물었다.
“지혁아, 보통 팥앙금 직접 만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아냐?”
“한 서너 시간은 걸릴 겁니다.”
“후우······. 그치?”
바로 그때였다.
“저······.”
영환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마을 주민 중 하나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총각, 한 시간이면 돼요.”
그 말을 들은 지혁은 곧바로 택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이, 어떻게 한 시간 만에 앙금을 만들어요. 끓이고 식히고 졸이고 으깨고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다른 거야 몰라도 끓이고 식히는 건 손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닌데요.”
그러나 중년의 아주머니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 답을 내놓았다.
“제 능력이 그거에요. 신속 조리라고······. 사실 별로 쓸모는 없는 능력인데, 그래도 총각이 워낙 배가 고픈 거 같아서. 좀 도움이 되지 않을······.”
그 순간, 잔뜩 풀이 죽어있던 대식이 자리에서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대식의 모습에, 아주머니는 귀엽다는 듯 픽 웃음을 흘렸다.
“진짜로 배가 많이 고픈가 보네.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얼른 해다줄게.”
“감사합니다, 선생님!”
* * *
“자, 자, 빨리 빨리 움직여요!”
“반죽 너무 묽게 안 되게 조심하고!”
“오랜만에 하니까 이것도 재미있네.”
“그러게 말이야, 이게 뭐라고.”
진한 팥 냄새와 반죽이 구워지는 고소한 향기가 커다란 주방 안을 가득 채워나가자, 사람들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평화로운 시절, 호두 과자는 흔해 빠진 음식 중 하나였다. 적어도 천안 인근에서는 조금만 가도 여기저기서 호두 과자를 파는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같은 세상에서 호두 과자는 더할 나위 없이 사치스러운 요리였다.
“그런데 어떻게 계란이 다 있었대?”
“화성 쪽에 양계장에서 가져왔대요.”
“진짜로 그쪽은 상황이 좋나 보네.”
그리고 풍부한 식재료는 그 자체로 대식과 그 동료들의 세력을 증명하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문제와는 별개로, 지금 그들은 참을 수 없이 즐거웠다.
“옛날 생각나네.”
“면회 오던 사람들이 호두 과자 많이 사 갔는데.”
“어휴, 나는 지겨워서 안 먹었어.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되니까······. 너무 생각나더라구.”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평화롭던 시절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다 보니,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돌아가고 싶다.
그리운 시절의 일상이 스치듯 손안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것뿐인데,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고개를 들었다.
“우와······.”
그렇게 첫 번째 호두 과자가 완성되자, 사람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이, 왜 칠칠맞게 눈물이 난대.”
“질질 짜지 말고, 얼른 그거 그 총각 갖다 줘!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밥 늦게 나온다니까 울려고 하더라!”
“에헤이, 반죽에 눈물 들어가! 얼른 저리 가!”
* * *
한편, 바깥에서는 굶주린 병사들이 자신들의 대장처럼 눈을 번득이며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호두 과자다, 호두 과자.”
“언제 나오나······.”
“맛있겠다······.”
그리고 첫 번째 호두 과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나왔다!”
“나왔어, 나왔어! 진짜 호두 과자야!”
이어서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약속이나 한 듯 한곳으로 쏠렸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흥분과 감격으로 가볍게 손을 떨고 있는 대장의 모습이 비추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날 수 있었던 건 대식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러니 호두 과자를 가장 먼저 맛 볼 자격이 있는 것도 그였다.
그게 아니라도 이미 그들에게 대식의 먹방은 중요한 식전 에피타이저가 되어 있었지만.
“흐으음······.”
종이 봉투에 소담하게 담긴 호두 과자를 받아든 대식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그 향기를 음미했다.
고소하면서도 살짝 달달한 그 추억의 냄새에, 그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좁혀졌다.
‘따뜻해······.’
이어서 그는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라도 주운 사람처럼 황홀한 표정으로 따끈한 온기를 뿜어내는 과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200년 하고도 8개월 만에 재회한 그 귀중한 과자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으음······!”
따뜻하다 못해 조금은 뜨끈한 열기에 이어 보드랍고 폭신한 빵의 식감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조심스럽게 턱을 움직이자, 빵 안에 숨어있던 달콤한 앙금이 기다렸다는 듯 대식의 혀에 새로운 자극을 선사했다.
밭에서 갓 재배한 신선한 팥으로 만든 앙금은 초콜릿이나 사탕이 가진 것과는 또다른 달콤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 알알이 박혀있는 호두 알들은 자칫 물리기 쉬운 단맛에 담백함을 더해주었고, 오독오독 씹히는 호두 특유의 식감은 액체도 고체도 아닌 듯한 앙금과 그보다는 조금 더 씹는 맛이 있는 빵과 어우러져 그 모든 식감을 한층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으아아······. 맛있겠다.”
“역시 천안 하면 호두 과자지.”
“왜 옛날에는 좋아하지도 않던 음식이 이렇게 맛있게 느껴지냐고!”
대식의 먹방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던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봤을 그 익숙한 간식의 맛이 혀와 머리에 아른거리며 그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괜히 옛날 생각나네.”
“그러게, 명절에 시골 내려갈 때는 항상 사 먹었는데.”
“휴게소에서 사서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먹으면 좋지.”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모님과 함께 내려가던 고향길의 추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던 평화로운 나날들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의 풍경들은, 이제 손을 뻗으면 잡힐만한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오늘 손에 넣은 무기들은 그 그리운 풍경들로 자신들을 이끌어 줄 다리가 될 터였다.
“내년쯤이면 고속 도로에서 호두 과자 사 먹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좀비들 대신 사람과 자동차로 가득한 평범한 고속도로 위의 풍경을 그렸다.
“밀려도 좋으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게.”
“그래, 이제 잘될 거야.”
“그럼, 잘되고 말고.”
그렇게 사람들이 희망에 가득 차 있을 때, 호두 과자를 우물거리던 대식의 손이 돌연 우뚝 멈춰섰다.
“응?”
“뭐야, 대식 씨가 왜 저러지?”
그토록 고대하던 호두 과자를 고작 서너 개밖에 먹지 않고 그대로 멈춰버린 대식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이건······.’
그리고 지금 대식의 눈앞에는, 또다시 시스템 창의 메시지가 어른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