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첫날 아포칼립스가 열렸다-328화 (328/508)

전야 (2)

[ 스킬 레벨 상승으로 인해 포만감 최대치가 상승합니다. ]

[ 최대 포만감 250 -> 260 ]

[ 강화의 스킬 효과가 상승합니다. ]

[ 새로운 스킬 ‘원격 강화’를 습득했습니다. ]

‘원격 변환에 원격 강화라······. 이건 꽤 쓸만하겠는데.’

이어지는 메시지를 확인한 대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널따란 도로 위에서는 수백의 병사들이 굶주린 야수처럼 눈을 번득이며 변이체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빨리 빨리 해치워! 배고파!”

“밥 먹자, 밥!”

“저녁이 우리를 기다린다!”

사당역에서 멀어질수록 연합군의 발걸음에는 점점 더 속도가 붙었다.

이곳의 변이체는 서울만큼 강하지 않았고, 그 수 역시 그리 많지 않았다.

경기 남부를 휩쓸고 서울의 괴물들을 상대하며 끊임없이 실력을 높여온 정예병들에게 있어 이곳의 변이체들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뭐야, 위험할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잖아.”

“2차 변이까지 마친 놈들이 이렇게 약했나?”

심지어 몇몇 병사들은 싱겁다는 반응까지 보이며 변이체의 머리에 창날을 쑤셔박고 있었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어.’

자신의 계산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한 대식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가장 중요한 싸움을 앞두고 도움이 될만한 스킬도 얻었고, 전력 강화도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강남 3구를 정리하고 서울을 수복한다면 지금 이 병력들은 적어도 한반도 내에는 적수가 없는 무적의 군대로 거듭날 터였다.

그럼 자신이 할 일은 그 병력들을 적절히 나누어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의 도시들을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과천까지 앞으로 한참남지 않았어?”

“걷는 것도 일이다 걷는 것도 일.”

변이체들을 정리하며 쉴 새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병사들의 얼굴과 목소리에서는 일견 여유마저 묻어났다.

“큰 싸움 마치고 바로 보급로 확보한다길래 걱정을 좀 했는디, 이건 뭐 괜한 걱정이었구먼.”

동료들의 믿음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재는 피식 웃으며 대식에게 주전부리를 건넸다.

“서울와서는 너무 고생만 했으니까요. 변이체들이 너무 강해서 자기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모를 겁니다. 이쯤에서 스스로의 전투력을 확인할 기회를 좀 줘야죠.”

대식은 여유로운 태도로 아재에게 받은 건어물을 질겅질겅 씹었다.

너무 약한 것들만 상대하다 보면 실력은 없으면서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 조금만 위험한 상황을 만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얼간이가 된다.

하지만 그 반대도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해 온 사람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방어적으로 싸움에 임하는 버릇이 생기는 법이니까.

이 병력들을 너무 신중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대식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었다.

“뭐든지 밸런스가 중요하다 이거구먼?”

대식의 속뜻을 알아차린 아재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 칙, 치직.

그때, 대식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 여기는 육성 장군. 조금 전 초소에서 병력 이동을 확인했네, 곧 차량을 보낼 테니 조금만 더 밀고 내려오게.”

지금 그들은 과천대로를 따라 사당에서 과천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천은 아주 오래 전부터 승덕과 수도 군단의 병력이 머무르고 있는 땅이었다.

과천에서 우면산과 관악산을 끼고 강남까지 곧바로 연결되는 보급로를 확보, 강남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한다.

서울 공략을 위해 아포칼립스 초기부터 그려온 큰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 *

“으아아, 차다! 차!”

“드디어 집에 가는 건가?”

“집은 아니지 않아?”

“집이든 뭐든 일단 가서 쉴 수만 있으면 다 좋아.”

자신들을 태우러 온 차량들을 발견한 순간, 연합군의 정예들은 그대로 바닥에 덜렁 드러누웠다.

온종일 비를 맞아가며 괴물들과 뒹군 덕분에 그들의 몸 곳곳에서는 피 냄새와 땀 냄새, 썩은 내가 진동했다.

이대로 차를 타고 돌아가 뜨끈한 물에 몸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자, 자, 얼른들 타세요.”

곧이어 버스에서 후방 지원을 맡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탐색조가 길을 뚫었으니 그 도로를 말끔히 정리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차에 오르는 사람들 사이에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 갔다.

그들 중 대다수는 이름은커녕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문자 그대로 생판 남이었다.

하지만 인사를 주고받는 그들의 목소리와 말투는 아주 오랜 동료를 대하는 것처럼 퍽 친절하고 다정했다.

하는 일은 달랐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사회재건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생했다, 고생해라, 수고했다, 수고해라, 몇 글자 되지도 않는 짧은 몇 마디,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주고받던 인사말들이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 닿았다.

“자, 자, 다들 힘내서 치워보자고!”

“비 오니까 빨리 빨리 끝내봅시다.”

“우선 여기 차부터!”

온종일 비를 맞던 사람들은 비를 피해 차 안으로 들어갔고, 조금 전까지 그들의 어깨 위로 떨어지던 빗방울이 밖으로 나간 사람들의 어깨를 적셨다.

아직 앞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차창 밖을 바라봤다.

가늘어졌다가 굵어지기를 반복하는 변덕맞은 빗줄기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피곤에 절은 그들의 눈동자에 들어찼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동료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말없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 * *

“우, 우와아······.”

“이게 대체 뭐야.”

“이렇게 많다고?”

목적지에 도착한 병력들은 씻으러 가는 것마저 잊고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는 수십 대를 넘어 백 단위에 가까운 트럭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트럭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작전에 동원되지 않았던 탱크와 장갑차, 견인포에 박격포, 헬기는 물론이고 전차로 개조한 중장비까지, 지금 과천 정부 청사의 주차장과 공터에는 그들이 모아온 모든 자원과 병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고생했네.”

병사들이 멍하니 그 무지막지한 양의 병기와 차량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장군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이게 다입니까?”

대식이 담담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승덕과 포드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둘뿐만 아니라 이제는 소령이 된 이 대위를 비롯한 장교들 중 상당수가 그랬다.

하지만 직접 총을 들고 나서지 않았을 뿐, 그들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것은 마찬가지였다.

열차나 다른 운송 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평택에 있는 미군의 전 장비와 천안, 세종, 대전 등지에서 확보한 모든 탄약들을 이곳까지 옮겨와야 했으니까.

“경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 남겨놓고 모두 날라왔네. 이게 우리가 가진 모든 무기야.”

승덕이 보기 드물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대식은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일은 병사들이랑 주민들이 다 했는데. 나야 사실 지시만 내린 거지.”

“원래 장군은 그런 자리 아닙니까. 일은 안 하고 말만 하는.”

대식의 장난 섞인 한마디에, 굳어있던 승덕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하, 그거야 그렇지. 그러려고 별 단 거 아니겠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친 승덕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쳤을 텐데 얼른 씻고 나오게. 저녁도 거의 다 됐으니까 나오면 바로 식사도 하고.”

승덕의 한마디에 신이 난 병사들은 피곤마저 잊은 듯 신이 나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야, 좋네, 좋아.”

“얼른 가서 씼자고, 아주 죽겠네.”

“오늘 저녁은 뭐가 나오려나?”

“하루 종일 비 맞았는데 좀 뜨끈한 거 나왔으면 좋겠다.”

“뜨끈한 거에 가볍게 한 잔 딱 걸치고 푹 자면 최곤데 말이야.”

“크, 좋지.”

“그럼 빨리 빨리들 가자고!”

* * *

“아우, 죽겠다······.”

“생각보다 더 피곤한데?”

샤워를 마치고 나온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능력치가 올랐다고 한들 종일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전장에 서 있었으니 정신이고 몸이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바람에 실려온 향기가 콧속을 파고든 순간, 그들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팔다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우와, 냄새 죽인다.”

“뭐야, 또 뭔데!”

구수하고 진한 향기를 바탕으로 그 위에 은은하게 더해진 마늘과 후추 냄새, 그리고 약간의 시원한 냄새.

그리고 새콤한 김치 냄새와 쌀밥의 향기까지.

그 아찔한 향기 앞에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갔다.

- 훅.

바로 그때, 대식의 몸이 돌연 검은 안개에 휩싸였다.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나타난 검은 그림자는 변이체를 상대할 때 이상의 속도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스킬까지 써서 갈 일이야?!”

“뭐야, 대체 뭐길래 저러는데!”

“뛰어, 뛰어, 가자고!”

“먹방 놓치겠다, 얼른 가자!”

잔뜩 흥분한 병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이 나서 대식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달려갔다.

“빠르다, 빨라!”

“역시 조장들은 다르네.”

“우리도 빨리 가자고!”

그렇게 병사들이 식당에 도착했을 무렵, 대식과 조장을 비롯한 능력치가 높은 사람들은 이미 식판에 밥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상태였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의외라면 의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들의 곁에 앉아있었다.

“앗, 유경이 너!”

부랴부랴 식당으로 달려온 혜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유경을 흘겨봤다.

“배신자, 이 배신자야! 나는 데리고 갔어야지!”

“누님······. 진정하시죠.”

그렇게 혜나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사이, 대식이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

간만에 본격적인 먹방이 시작되자, 식당에는 쥐 죽은 듯한 적막이 깔렸다.

고춧가루 양념을 쓰는 국들과는 또 다른, 담백하면서도 진하고, 조금은 자극적인 향기가 콧속을 스며들었다.

진한 육향을 품고 있는 갈비탕의 향기를 한껏 만끽한 대식은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국물을 입 안에 떠넣었다.

직접 재배한 대파의 알싸하면서도 시원한 맛과 향, 후추 가루가 자아내는 약간의 자극적인 맛, 그리고 소갈비에서 우러나온 특유의 진하고도 담백한 맛까지.

“하아······.”

맛에 대한 인증이나 다름없는 탄식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어서 뜨끈한 국물을 촉촉하게 머금은 갈빗살이 식신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푹 익지도 않고 너무 설 익지도 않은, 그야말로 절묘한 고기의 상태에 대식은 저도 모르게 바르르 몸을 떨었다.

“이거 진짜 맛있네요.”

“고기 엄청 부드러운데?”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네요.”

대식 못지 않게 음식에 진심이 된 그의 동료들 역시 한마디씩 품평을 내놓으며 정신없이 고기를 흡입했다.

“깍두기도 완전 대박인데.”

“역시 갈비탕은 김치가 반이라니까.”

“당면 더 있으면 좋겠는데······.”

그들의 식사는 딱히 결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처럼 비장하지도 않았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웃고 떠들며, 평소처럼 먹고, 평소처럼 즐거워했다.

다른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류를 지키겠다는 둥,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겠다거나, 무언가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 따위는 없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고,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리며 늘어지게 한잠자고 일어나는 것.

그 거창할 것 없는 소박한 행복을 만끽할 뿐이었다.

“으아, 더는 못 먹겠다.”

“내일은 또 뭐가 나오려나?”

“내일도 고기 나오나?”

“······.”

하지만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식당 안에는 묘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하나둘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내일이라는 두 글자가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내일은 뭐가 나올까, 라는 단순한 질문은 내일도 내가 이걸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분위기는 점점 더 무거워졌고, 웃음 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때, 대식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일은 치킨 먹죠.”

그리고는 짤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맥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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