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 (11)
“괜찮아요! 대열 유지하세요!”
유경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오는 건물의 잔해를 피해 달아나려는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똘똘 뭉쳐있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던 콘크리트 덩어리가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포탄처럼 날아오던 돌덩이는 그 크기에 걸맞게 환한 빛을 발하며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날리지?’
유경의 눈동자가 빠르게 다리 위와 아래쪽을 번갈아 가며 훑었다.
뒤이어 삼성교 아래로 흐르는 탄천 위에 거대한 빛덩이가 나타났다.
- 쿠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떨어졌다.
그 아래에 깔린 변이체들은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한 채 다진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휴, 휴우······.”
“대체 뭐야!”
“무슨 괴물이 이런 짓을 하냐고!”
굳건히 다리 위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당혹감에 찬 외침이 터져나왔다.
지금 그들은 똘똘 뭉쳐 변이체들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밀집된 진영 위로 저런 게 떨어진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바위에 깔려 짓뭉개진 변이체들의 모습이 그들의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간 투석으로 재미를 봐 온 그들이기에 그 상상은 더욱 구체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경 씨 스킬 충전량이 얼마나 되지?”
“아, 안 돼, 저런 게 계속 떨어지면······.”
반쯤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그들의 얼굴이 다시 어둡게 물들었다.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투석이 날아왔다.
“아, 안 돼!”
유경은 이를 악물고 괴수가 던진 그 돌덩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대, 대식 씨!”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김 하사가 갈라진 목소리로 대식을 불렀다.
지금 그의 눈에는 아파트의 벽면을 꼬리로 후려치는 거대한 괴수의 모습이 비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건물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놈은 아파트를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은 채 투석을 계속할 심산이었다.
“여기는 탱고, 표적을 바꾸겠다!”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는 고기 러버, 아닙니다. 엄폐물 깎아내면 또 다른 곳으로 옮길 겁니다.”
하지만 대식은 저 초거대 괴수가 아니라 변이체들을 공격할 것을 명했다.
포탄을 쏟아부어 봐야 놈은 또 다른 건물을 엄폐물로 삼아 이 짓을 반복할 게 뻔했다.
이 일대를 석기 시대로 돌려버릴 작정이 아니라면 이 이상의 포격은 포탄 낭비에 불과했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이 거대한 도시에는 수십 층에 달하는 고층 건물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고, 포탄으로부터 몸을 지킬 방패라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리고 대식은 고작 덩치만 큰 뱀새끼 하나를 잡기 위해 그 아까운 포탄들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잡으려고!”
“걱정 마십시오. 그래봐야 그냥 큰 뱀이니까.”
말을 마친 대식은 곧장 무전기의 채널을 바꿔 헬기 부대에 연락을 취했다.
“여기는 고기 러버, 시작합시다.”
* * *
“저게 맞아?”
“저걸 직접 잡는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헬파이어 미사일 있잖아, 그걸 쏟아부으면······.”
머리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헬기들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에는 걱정과 공포, 기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대식은 허언을 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낱 인간이 어떻게 저런 빌딩이나 다름없는 괴수를 때려잡을 수 있단 말인가.
‘대식이······. 믿어도 되제?’
멀어지는 헬기를 바라보는 아재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다섯 개의 그림자는 눈 깜짝할 새에 사냥감이 몸을 숨기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상공에 도착했고, 그 중 네 대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미사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 쉬, 쉬쉬쉬식!
- 콰광!
사람들은 숨 죽인 채 결전의 무대가 된 아파트 단지를 바라봤다.
“김 하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윤호야, 보여!?”
미사일이 쏟아지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전황을 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문자 그대로 거대한 빌딩이나 다름없는 괴수의 머리에 헬파이어 미사일이 적중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 파일럿의 두 주먹에는 불끈 힘이 들어갔다.
모든 미사일이 급소에 정확히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다섯 발 이상이 확실하게 머리에 꽂혔다.
대식과 달리 그들은 헬파이어 미사일로 이 거대한 괴수를 사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어떤 괴물이라도, 이런 걸 맞고 숨이 붙어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1,000밀리미터가 넘는 장갑을 뚫고 전차를 박살 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강철로 몸을 둘둘 싸맨 전차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 전함을 공격하는 데도 쓰는 이 흉악한 미사일의 위력을, 그들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그어어어······.”
아니나 다를까, 괴물은 거대한 머리를 푹 숙인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푸하하! 됐어, 됐다고!”
“아무리 커봤자 좀비지!”
“이게 바로 헬파이어 미사일이라는 거다, 이 괴물 새끼야!”
승리를 확신한 아파치 파일럿들은 주먹을 바르쥐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래봐야 덩치만 큰 괴물이다.
인류의 지혜가 집약된 이 최첨단 미사일을 맞고도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무전기를 타고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하합니다, 파일럿들은 바로 물러나세요.”
이어서 무언가 반응을 보일 새도 없이 수송용 헬기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어내렸다.
“뭐? 무슨 소리야! 저 괴물은 이미······.”
선두로 날아온 파일럿이 무전기를 붙잡으며 외쳤다.
괴물은 이미 쓰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적진 한가운데로 대장이 뛰어내릴 이유가 없었다.
“뭐 하는 짓이냐고! 당장 킴을 복귀시켜!”
흥분한 파일럿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비추었다.
“이런 빌어먹을!”
“물러나!”
“젠장!”
공포에 질린 파일럿들은 있는 힘껏 조종간을 당겼다.
미사일 세례를 받고 쓰러졌던 괴물이, 어느새 다시 일어나 꼬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 * *
“후우······.”
무사히 지면에 안착한 대식은 긴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널브러진 거대한 허물을 바라봤다.
탈피.
바실리스크가 위험한 순간에 사용하는 일종의 위기탈출용 스킬이었다.
‘일단 스페어는 확실히 없애뒀고.’
하늘을 향해 집채만 한 꼬리를 휘두르는 괴수의 모습에,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바실리스크는 변이체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놈이었다.
꼬리를 휘둘러 성을 부수고, 수 미터에 달하는 바위를 투석기처럼 집어 던지던 그 괴물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놈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이만한 건 아케이아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비늘 한 장이 자신보다 거대한 뱀 앞에서, 괴물 사냥꾼은 처음으로 약간의 오한을 느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놈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면, 함께 치킨을 먹을 동료들이 몇백은 줄어들 테니까.
- 탁.
대검을 든 괴물 사냥꾼의 발이 시커먼 비늘을 밟고 위쪽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어어어어!”
분노에 휩싸인 괴수는 발작을 하듯 헬기를 향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집어 던졌다.
대식을 돕기 위해 날아왔던 헬기들은 놈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급히 고도를 높였다.
“이 새끼가······. 난 보이지도 않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괴물 사냥꾼은 한쪽 입꼬리를 뒤틀며 대검을 치켜들었다.
[ 특수 스킬 ‘곱빼기’를 사용합니다. ]
[ 특수 스킬 ‘불맛’을 사용합니다. ]
[ 특수 스킬 ‘악마의 힘’을 사용합니다. ]
[ 특수 스킬 ‘악마의 육체’를 사용합니다. ]
[ ‘광포한 연타’를 사용합니다. ]
망막 위에 익숙한 메시지들이 흐르고, 붉은 빛이 흐르는 대검 위에 시뻘건 불꽃이 피어올랐다.
* * *
“그어어어어어!”
거대한 괴수가 몸을 뒤틀며 포효를 내질렀다.
불길에 휩싸인 검은 쇳덩이가 춤을 출 때마다 시커먼 비늘이 튀어오르고, 그 밑에 감춰진 썩은 살점이 불타며 매캐한 악취를 풍겼다.
꼬리를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괴물에게 있어, 그것은 몸에 올라탄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벌레의 발톱은 놈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안겼다.
“그어어!”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예감이 놈의 본능을 자극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저 쇳덩이들보다, 자신의 몸에 올라탄 이 작은 벌레가 더 위험하다.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놈은 거대한 몸을 뒤집고 뒤틀며 산을 오르듯 비늘을 밟고 달려오는 벌레를 떨어뜨리려 애썼다.
‘이런 미친······!’
지면이 통째로 뒤집히는 듯한 움직임에, 괴물 사냥꾼의 몸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날지 못하는 벌레가 발판을 잃은 것을 확인한 괴수는 잽싸게 꼬리를 휘둘러 상대를 짓이기려 했다.
- 훅!
그 순간, 벌레의 몸이 검은 안개에 휩싸였다.
흉흉한 빛을 번득이는 괴수의 꼬리는 결국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쉬익!”
바실리스크의 입에서 섬뜩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놈은 이 기괴한 이동 방식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먹이가 된 오만한 버러지 중 하나가 사용했던 능력이었다.
- 부웅!
단번에 수십 미터를 훌쩍 뛰어넘은 괴물 사냥꾼은 광기로 눈을 번득이며 거대한 쇳덩이를 휘둘렀다.
부서진 비늘의 파편이 지면을 향해 쏟아졌다.
괴물 사냥꾼은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빠르게 위쪽으로 내달렸다.
멀리서 보기에 그것은 산을 기어오르는 작은 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작디작은 점은 거침없이, 그리고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산을 정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작은 불덩이가 산등성이를 넘었을 무렵,
“그릉······.”
괴수가 낮은 포효를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온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괴물 사냥꾼은 잽싸게 대검을 휘둘러 비늘 한 장을 잘라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그 비늘의 끝을 밟아 자신의 몸뚱이 앞에 세웠다.
[ 형태 변형을 사용합니다. ]
[ ‘바실리스크의 비늘’을 변형합니다. ]
괴물의 비늘은 그대로 방벽이 되었고, 그 위로 희멀건 액체가 날아왔다.
사냥꾼은 작은 몸을 더욱 작게 웅크린 채 그 뒤에 몸을 숨겼다.
- 콰득, 콰드드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비늘 방패가 빠르게 굳어갔다.
강철처럼 번득이던 커다란 비늘은 어느새 수분기 하나 없이 퍼석하게 마른 진흙처럼 변해 있었다.
“쉬익······!”
자신의 독액을 막아낸 벌레의 모습에, 바실리스크의 거대한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놈의 독액은 단순히 사냥감을 마비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량의 독액을 흠뻑 뒤집어쓴 상대는 순식간에 돌이 되어 종국에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부서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어 있었다.
주제를 모르고 덤벼들었던 뿔 달린 벌레처럼.
이놈도 그런 최후를 맞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 벌레는 달랐다.
인간의 껍질을 쓴 이 작은 괴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독액을 막아내고 자신의 숨통을 끊기 위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워어어!”
분노와 공포.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괴수의 머리를 지배했다.
이성을 잃은 거대한 뱀은 집채만 한 아가리를 쩍 벌려 어느새 목덜미까지 기어오른 작은 괴물을 집어삼키려 했다.
“와라.”
오만한 벌레는 그 공격을 피할 생각조차 없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크릉!”
분노한 괴물은 그대로 아래턱을 움직여 벌레를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입 안에 들어온 벌레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있는 힘껏 독액을 뿜었다.
“크륵, 크르륵······!”
흉물스러운 괴수의 입에서 환희와 광기에 찬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입 안에 들어온 먹이가 독액을 뒤집어쓰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