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첫날 아포칼립스가 열렸다-340화 (340/508)

결전의 날 (12)

* * *

“이런 빌어먹을!”

“킴이 잡아먹혔어!”

“젠장, 무전, 무전 보내! 당장 킴을 살려야 해!”

대식이 괴수의 입 안으로 들어간 것을 목격한 파일럿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가 대전차 미사일을 맞고도 죽지 않는 괴수의 몸을 거침없이 타고 올라갈 때만 해도, 정말로 저 끔찍한 뱀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했다.

용맹하게 괴수와 맞서 싸우던 영웅은 눈 깜짝할 새에 놈의 간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뱀은 통째로 삼키니까 아직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코브라, 여기는 코브라, 킴이 괴물에게 잡아먹혔다! 바로 지원군을 보내!”

“뭐?”

바로 그때, 선두에 있던 파일럿의 눈에 기묘한 무언가가 보였다.

“어······?”

이어서 그가 무전기를 붙잡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킴이 정말 잡아먹힌 게 맞아?”

“뭐? 무슨 소리야, 너도 봤잖아.”

“그럼 저 아래에 있는 건 뭔데.”

“아래?”

“저 아래에, 킴 말고 이런 곳에 있을 만한 사람이 있어?”

이어지는 그의 말에, 자리에 있던 파일럿들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괴수의 오른쪽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쾅!

돌연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괴수의 입에서 시뻘건 불꽃이 치솟았다.

* * *

[ ‘분신’이 파괴됐습니다. ]

[ 패널티로 분신에 부여된 능력치 중 일부가 사라집니다. ]

상태창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괴물 사냥꾼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분리. 지옥견을 사냥하고 얻은 이 새로운 스킬의 효과는 자신의 능력치 중 일부를 떼어내 분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킬의 용도는 상당히 다양했다.

평시에는 정찰용으로도 전투용으로도 쓸 수 있고, 지금처럼 위급할 때는 눈속임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스킬들과 마찬가지로, 그 유용함에 걸맞은 제약이 붙어있었다.

[ 패널티로 인해 특수 스킬 ‘분리’가 사라집니다. ]

이어지는 메시지에, 대식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고 있는 괴물의 거대한 대가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만한 스킬을 일회용으로 쓴다는 게 아깝기는 했지만, 바실리스크는 그리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분신을 사용하는 타이밍이 조금만 빨랐다면 놈이 눈치를 챘을 테고, 반대로 조금만 느렸다면 본체까지 놈의 입속에서 돌이 되고 말았을 터였다.

“크, 크륵!”

분명히 자신의 입 안에서 돌덩이가 되어버렸던 벌레가 태연하게 걸어오는 광경에, 거대한 괴수의 동공이 공포와 의문으로 물들었다.

“크, 크릉!”

분노한 놈이 거친 숨을 내뱉자, 폭풍이라도 분 것처럼 지면에 뿌옇게 흙먼지가 일었다.

너덜너덜해진 괴수의 아가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격통이 거대한 뱀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놈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몇 분만 더, 몇 분만 더 버틴다면 다시 한번 허물을 벗을 수 있었다. 이미 넝마가 되어버린 몸을 버리고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크릉!”

궁지에 몰린 괴수는 위협적으로 그르렁거리며 거대한 대가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지면을 휩쓸었다.

- 콰드드득!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 염병할 놈이······.’

상상 이상으로 질긴 놈의 생명력에, 괴물 사냥꾼의 등에서 비죽 식은땀이 솟아났다.

단순히 사냥감이 죽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 거대한 사냥감은 다음 탈피를 위해 시간을 벌려 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놈이 다시 한번 허물을 벗는다면······.

‘안 돼.’

괴물 사냥꾼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곱빼기에 분리까지. 이 거대한 괴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함정은 자신이 준비한 최고의 한 수였다.

그것도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는 한 수.

그리고 이 괴물이 탈피에 성공한다면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놈이 허물을 벗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후우······.”

결단을 내린 괴물 사냥꾼의 눈이 살기로 빛났다.

“크르르릉!”

영악한 괴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다시 한번 대가리를 흔들었다.

대식의 무기는 여전히 바실리스크의 입 안에 있었다.

혓바닥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놈은 무기를 뱉지 않았다.

지금 상대의 손에 들려있는 검은 비수 따위로는 절대 자신의 거대한 머리를 꿰뚫을 수 없었으니까.

‘······.’

상대가 무슨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지를 눈치챈 대식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바실리스크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딴 이쑤시개 같은 무기로는 놈의 거대한 대가리를 박살낼 도리가 없었다.

시체 구렁이 정도만 되도 형태 변형으로 어떻게 해봤겠지만, 사이즈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해.’

대식은 망설임없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탈피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계산이 맞다면, 아직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었다.

“그르릉!”

상상을 초월하는 거체가 다시 한번 지면을 휩쓸었다.

그 순간, 화살처럼 전진하던 검은 점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크륵!?”

사냥감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괴수의 입에서 당혹감에 찬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 *

동굴과도 같은 괴물의 아가리 속.

제 발로 독액이 흐르는 지옥 속으로 들어온 괴물 사냥꾼은 지체없이 불씨를 흩날리고 있는 자신의 무기를 집어들었다.

폭발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괴수의 아가리 속에는 검붉은 피가 강처럼 흘렀고, 사방에서 기절할 것 같은 악취가 풍겼다.

예상대로였다.

이 정도라면 조금 전처럼 시원하게 독액을 뿜을 수는 없을 터였다.

[ 특수 스킬 ‘불맛’을 사용합니다. ]

[ 특수 스킬 ‘화력 강화’를 사용합니다. ]

[ 특수 스킬 ‘악마의 힘’을 사용합니다. ]

괴수의 입 안에서, 다시 한번 태양처럼 밝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독액이 대식의 몸을 덮쳤다.

하지만 괴물 사냥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대검을 휘둘렀다.

[ 맹독 저항(Lv.15)이 적용됩니다. ]

[ 특수 스킬 ‘곱빼기’로 인해 스킬의 효과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

오래전 디브리스를 잡고 얻은 스킬.

그리고 부상으로 인해 약해진 독액의 농도.

그것이 대식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근거였다.

“으아아아아!”

악에 받친 고함 소리와 함께, 불꽃에 휩싸인 대검이 춤을 췄다.

묵직한 쇳덩이가 허공에 흔적을 남길 때마다 거대한 동굴 속에 살점이 파헤쳐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열 번, 스무 번······. 대식은 쉬지 않고 칼질을 반복했다.

제 키만 한 쇳덩이를 휘두를 때마다, 서서히 몸이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이미 공격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 퍽, 퍼벅!

쉴 새 없이 살점이 튀어 오르고, 검붉은 피가 괴물 사냥꾼의 온몸을 뒤덮었다.

“크, 크릉!”

빌딩만 한 괴수는 고통으로 온몸을 뒤틀며 끊임없이 독액을 내뿜었다.

* * *

“쓰, 쓰러졌어!”

“어, 어떻게 한 거지?”

“다시 입 안으로 들어간 거 아니야?”

하늘에서 괴물 사냥꾼과 괴수의 싸움을 지켜보던 파일럿들은 초조함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던 거대한 괴수는 미동조차 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제 발로 놈의 입안으로 기어들어 간 대식은 여전히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젠장, 입 안에서 죽은 거 아니야?”

“그럼 구하러 가야지!”

“어떻게? 여기서 헬기를 착륙시키자고?”

“주위에서 변이체들이 죄다 몰려올 거야, 우리 실력으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이 빌어먹을 새끼가, 그럼 죽게 놔둬!?”

“지원군, 지원군 요청해! 수송 헬기 보내라고!”

바로 그때였다.

“어? 저거 뭐야?”

폐허가 된 아파트 단지 위로, 수십 개의 검은 점이 달려오는 것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 * *

“으아아아아!”

3미터에 가까운 거인이 있는 힘껏 굳게 닫힌 괴물의 아가리를 떠받쳤다.

“꺼내, 꺼내라고!”

“빨리 꺼내요!”

장검을 든 사내는 황급히 그 안으로 뛰쳐들어가 시체처럼 누워있는 사내를 어깨에 들처맸다.

“변이체들 온다!”

“가서 막아!”

대식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탐색조의 최정예들은 둥그렇게 방진을 짜고 그 자리를 사수했다.

이 자리에서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대식이 죽게 놔둘 수는 없다. 그것이 그들의 결의였다.

“지켜! 형님이 죽었을 리가 없다고!”

지혁이 악을 쓰듯 고함을 내지르며 외쳤다.

“형, 형! 정신 좀 차려봐요!”

이어서 윤호가 가느다란 팔을 열심히 휘두르며 대식을 불렀다.

“어떻습니까!”

빠르게 방진에 합류한 민호가 변이체들의 머리를 날려버리며 물었다.

혜나는 아무런 답도 없이 스킬을 활성화했다.

지금은 말 한마디 내뱉을 시간도 아껴 해독을 시작해야 했으니까.

[ 해독(Lv.10)을 사용합니다. ]

[ 대상의 몸 안에 있는 독이 중화됩니다. ]

[ 해독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움직일 수 없습니다. ]

김 하사의 말에 따르면, 그 거대한 뱀은 독을 뿜는다고 했다.

아니, 독이 아니라 무언가 기괴한 이능의 일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켜, 지키라고!”

“한 발짝도 물러나지 마!”

대식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달려온 동료들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동료들의 고함소리와 변이체들이 내지르는 섬뜩한 비명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 투두두두두두, 투두두!

이어서 아파치 헬기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쏴, 쏴!”

“킴을 지키라고!”

“절대 물러나지 마!”

* * *

“대식 씨, 대식 씨! 정신 들어요?”

대식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시체로 가득한 다리 위에 몰려든 수천의 사람들은 오로지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움, 끝났습니까?”

대식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에, 사람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거봐, 안 죽었다니까!”

“죽긴 누가 죽어!”

“어어? 아까 죽은 것 같다고 울지 않았어?”

“닥쳐, 감동받아서 운 거라고!”

“형님, 형님!”

“형!”

이어서 지혁과 윤호를 비롯한 몇몇이 대성통곡을 하며 그에게 매달렸다.

어린아이처럼 콧물까지 흘려가며 질질 짜는 두 사람의 모습에, 늘 무뚝뚝하던 대식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너무 시끄럽게 굴면 또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전 이제 못 싸워요. 배고파서.”

농담 섞인 대식의 한마디에, 아재는 못 당하겠다는 듯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허허허, 걱정 말어. 자네 누워있는 동안 싹 다 정리 끝났으니께.”

아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위에서는 더 이상 지긋지긋한 변이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요?”

또다시 눈물범벅이 되어있던 혜나가 입술을 샐쭉 내밀며 핀잔을 주자, 대식은 아무렇지 않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저씨 아니었으면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대식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재의 얼굴 위로 향했다.

“아저씨가 무전 받고 곧바로 유경이한테 남은 충전량 다 써서 구하러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지원군이 제때 도착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아재의 공이었다.

아재는 전투가 벌어지는 내내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해주는 김 하사의 곁에 꼭 붙어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면, 언제든 대식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대식이가 절대로 생각 없이 입 안에 들어갈 리가 없다니께! 바로 지원군 보내야 혀!」

그리고 동료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군말없이 사람들을 추려 지원군을 파견했다.

“어뗘? 이만하면 오른팔 맞제?”

혜나가 말을 마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던 아재는 능청스러운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거참······. 몇 번을 말합니까. 아재가 오른팔 맞다니까.”

원하던 답을 들은 아재는 몇 번 들어도 좋다는 듯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으허허허! 그려, 그려, 그럼 됐어! 그럼 인제 집으로 가자고! 치킨 먹어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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