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1)
“자, 자, 얼른 얼른 환자들 이송하고!”
“부서진 장비들도 잘 챙겨둬, 나중에 대식 씨가 복원하면 다 쓸 수 있으니까.”
전장을 정리하는 병사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거리 곳곳에 남은 포탄 구덩이와 끝도 없이 늘어선 시체들도, 바닥을 굴러다니는 탄피와 누더기가 되어버린 건물들도, 사방에서 풍기는 지독한 악취도,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는 못했다.
확실히 오늘의 승리는 아무리 기뻐해도 부족할 만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강남 3구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지역이었다. 아포칼립스가 열린 시점이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랬다.
단순한 전과로만 봐도 이번 전투는 ‘대첩’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큰 승리였다.
하지만 대식이 보기에 이번 승리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 확실히 강해지지 않았어?”
“강해졌지, 능력치도 엄청 올랐고.”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뭔가 어떻게 싸워야 할지 확 감이 온다고 해야 하나?”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이번 싸움에 대한 감상은 그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
자신감, 경험, 임기응변 능력, 팀워크, 정신력······.
사람이 몇이고 능력치가 몇이고 하는 수치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무언가.
그것이야말로 이번 싸움으로 손에 넣은 것은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는 게 대식의 생각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이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1조 부상자 102명, 감염자 37명. 사망자 없습니다.”
“2조 부상자 97명, 감염자 52명. 사망자 무.”
“3조 부상자 130명, 감염자 9명, 사망자는 없습니다.”
“4조······.”
줄줄이 이어지는 보고 속에, 전사나 사망자라는 단어는 없었다.
“허허허허, 진짜로 다 같이 먹게 됐구먼.”
아재의 입가에는 전에 없이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
다 같이 치킨을 먹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아재와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게요. 정말 다행입니다.”
철준의 하나밖에 남지 않는 눈에도 웃음기가 가득 묻어났다.
잊지 않으려 노력해도 가끔은 떠오르지 않는 이름과 얼굴들이, 오늘은 늘어나지 않았다.
몸에는 또다시 흉터가 늘었지만, 그중에 동료들이 만든 상처는 없었다.
이제 그에게 그것은 흉터가 아니라 훈장이었다.
“그래도 당장 전투에 못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감염됐던 사람들은 절대 안정이에요, 절대 안정.”
한편, 혜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쉴 새 없이 부상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손가락은 움직여요, 이런 거 안 통해요.”
그리고는 주훈을 돌아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 주훈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혁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희 어디까지 걸어가요?”
좀비들을 해치우며 전진할 때는 정신이 없어 알지 못했지만, 집에 돌아가려 하니 어느 세월에 테헤란로를 거슬러 올라가나 걱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어어, 걱정 말어. 차 미리 불러 놨응게. 한 삼사십 분만 걸으면 될겨.”
이에 아재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무전기를 흔들었다.
* * *
“온다, 온다.”
“어때? 분위기는?”
“일단 좋은데요?”
한편, 수송조 사람들은 목이 빠져라 대식을 비롯한 연합군의 병력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진한 걱정이 묻어났다.
우면산을 따라 이동해 강남역으로, 다시 테헤란로를 따라 병력들을 맞이하러 오는 동안 그들이 본 풍경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산처럼 쌓인 변이체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그들이 느낀 감정은 기쁨이나 승리감이 아니라 걱정이었다.
아무리 대식이라 해도 이만한 숫자의 변이체를 죽이며 전진을 했는데 전사자가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물어봐도 될까요?”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입을 뗐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신들은 뒤처리 조였다.
직접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몇이나 잡았냐고, 또 몇이나 죽었냐고 묻는 것조차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너무나도 밝았다. 정말로 이런 큰 전투를 치른 직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환한 표정이었다.
“오셨습니까!”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최대한 밝고 씩씩하게, 수송조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여 인사말을 건넸다.
“자, 얼른 타십시오. 차 안에 마실 것 실어놨습니다. 음료수도 좀 있고 물도 있고, 이것저것 많으니까 목이라도 축이세요.”
상준은 친절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안내하면서도 연신 아재의 눈치를 살폈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아재는 씨익 웃으며 검지와 엄지를 맞대 0을 그렸다.
“정말입니까?”
상준의 눈이 아재가 손으로 만든 것과 똑같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상준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반대로 입꼬리에는 조각칼로 새긴 듯 진한 웃음이 번졌다.
“얼른 가죠! 얼른! 치킨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달 기사의 발걸음이 나는 듯이 가벼워졌다.
사람을 가득 실은 버스와 트럭마저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시원하게 바퀴를 굴렸다.
* * *
시체들의 산을 뒤로 하고 아직도 싸움의 흔적이 남은 도로들을 지나자, 조금 전까지의 치열한 싸움이 거짓말인 것처럼 평화롭고 깨끗한 마을의 풍경이 병사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
“집이다.”
“집이야.”
차 안에는 잠시 묘한 정적이 깔렸다.
축제처럼 떠들썩하리라고 예상했던 개선문으로 가는 여정은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우리가 이걸 지킨 거야······.’
‘이제 곧 다른 곳도 저렇게 되려나?’
‘이제 걱정할 거 없겠지?’
‘평화는 좋은 거구나······.’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던 익숙한 풍경이, 어제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림들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그렇게 감상에 빠져 이동하기를 한참······. 병사들의 입가에 약속이나 한 듯 환한 웃음이 번졌다.
“기다렸어!”
“고생했어요!”
“멋있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빨리 와서 치킨 먹어요!”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의 양쪽에는 수천의 사람들이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들판에서 꺾어온 꽃을 던지고, 누군가는 옷인지 뭔지 모를 천조각으로 만든 깃발을 흔들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지옥 같은 싸움에서 살아남은 전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하······. 이거 왠지 찡한데.”
“그러게, 생각도 못 했는데······.”
“왠지 영웅이 된 것 같네.”
“이만하면 영웅 맞지.”
“그런가?”
“그럼.”
생각지도 않은 환영인파에, 잠시 감상에 빠져있던 병사들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럼 내려볼까?”
“그래, 얼른 씻고 밥 먹자고!”
차에서 내리자, 서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맑은 공기가 그들의 폐속 깊숙이 파고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 속으로 들어오던 썩은 내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신선한 공기 속에는······. 감히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향기가 섞여 있었다.
“치, 치킨······.”
“양념 냄새도 나는데?”
“야, 양념도 있는 건가?”
차에서 내린 병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 코를 킁킁거렸다.
“······. 다들 대식 씨처럼 되고 있어.”
천 단위의 사람들이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코를 벌름거리는 기괴한 광경에, 혜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언니, 언니도 똑같아요.”
유경은 피식 웃으며 벌름거리고 있는 혜나의 코를 가리켰다.
“그래도 난 저렇게 미어캣처럼 하지는 않잖아!”
“뭐 어때요, 미어캣 귀엽고 좋잖아요.”
“아, 미어캣도 테이밍해보고 싶다.”
조금은 뜬금없는 윤호의 한마디에, 혜나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한국에는 그런 거 없잖아. 족제비라면 모를까.”
“다른 나라에는 있잖아요.”
“어허, 이상한 떡밥 뿌리지 말고, 얼른들 씻고 나와! 밥 먹어야제!”
이어서 아재가 그 대화를 싹둑 잘라내며 세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허허허, 고생했네, 고생했어!”
그때, 보급과 식사를 담당하고 있던 승덕이 환히 웃으며 그들에게 달려왔다.
나이와 덩치, 직급에 걸맞지 않은 그 순진무구한 해맑은 태도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정말 고생했어! 정말, 정말 고생했어!”
몇 번이나 아재의 손을 꼭 붙잡은 채 그 말을 내뱉던 승덕은 무언가를 찾는 듯 바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치켜뜨며 아재를 바라봤다.
“그런데······. 김대식 씨는 어디 있나?”
순간 승덕의 얼굴이 어둡게 물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이 믿을 수 없는 승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때, 자칭 대식의 왼팔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승덕을 바라봤다.
지혁과 눈이 마주친 한미 연합군의 부사령관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서, 설마······. 아니야, 아니,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형님은 이미 씻으러 가셨습니다. 치킨 빨리 먹어야 한다고.”
“뭐? 개선문 퍼레이드는?”
회심의 이벤트가 외면당했다는 소식에, 승덕은 선물을 거절당한 어린아이처럼 울상을 지었다.
“내, 내가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허허허, 우리 장군님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이따 치킨 먹을 때 얼굴 보면 되는 거 아니여?”
아재는 버림받은 노년의 장군(?)의 어깨를 위로하듯 토닥이며 웃었다.
“이, 이······. 양념 치킨에 치킨무에 혹시 몰라서 파채까지 준비했는데······.”
“그럼 됐네, 대식이는 퍼레이드보다 그걸 더 좋아할 거여.”
“그, 그런가?”
“그럼.”
“그런데······. 내가 전부터 궁금했는데, 자네 나이가 몇인가? 왜 자꾸 반말을······.”
“흠, 흠! 그럼 얼른 씻으러 가자고.”
말을 마친 아재는 달아나듯 잽싸게 발을 놀려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그날 밤, 식당에는 전에 없이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리고 홀의 한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는 황금빛 옷을 곱게 차려입은 닭이 우아하게 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
대식은 눈을 감은 채 그 향기를 만끽하며 천천히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퇴근 후에 먹는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 한잔.
고단한 하루를 끝마치고 눈을 감을 때마다 상상 속에서 수천 번은 맛보았던 그 신성한 음식이, 지금 눈앞에 놓여있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식신은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하고 천천히 닭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대식의 손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황금빛 닭다리를 집어들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바삭한 감촉에, 그의 몸이 저도 모르게 바르르 떨렸다.
“하아······.”
천천히 숨을 내쉰 대식은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태양처럼 빛나는 그 눈부신 물체를 입 안으로 가져갔다.
첫입은 소금도, 양념도 없이.
- 바삭.
튀김옷이 부서지는 청명한 소리가 적막한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아, 아아······.”
대식의 입에서 차마 억누르지 못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딱딱하다기에는 부드럽고, 부드럽다고 하기에는 조금 딱딱한, 하지만 몇 입을 씹으면 자연스럽게 풀어지며 부서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튀김옷이었다.
고소하면서도 기름진 튀김옷의 맛에 이어, 그 안에 숨어있던 촉촉한 닭다리 살의 식감이 그의 혀를 강타했다.
튀김과 대비되는 부드럽고 수분감이 있는 식감.
그리고 약간의 짭짤함.
간이 된 듯 안 된 듯 미묘하지만, 그 미묘함이야말로 첫 번째 한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귀중한 맛이라고, 대식은 생각했다.
일단 맛이 강한 게 들어가면 그다음부터는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그렇기에 오직 첫 번째 한입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섬세한 맛.
대식은 눈을 감은 채 아주 천천히 턱을 움직이며 그 맛을 음미했다.
“우, 우와아······.”
“으으, 배고프다.”
“치킨 먹방도 대식 씨가 하면 다르구나.”
“어떻게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걸까?”
“오늘은 나도 자신있어.”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리며 그 먹방을 감상했다.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부위 하나씩을 집어들려던 찰나······.
- 쿵!
대식이 돌연 주먹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내리쳤다.
“하아······.”
뒤이어 그의 입에서 아쉬움을 넘어 깊은 회한이 담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응?”
“왜 저러시지?”
생전 처음 보는 그 기괴한 반응에, 자리에 있던 병사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식의 얼굴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