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3)
“우선 작전의 진행과 진입 루트, 현장에서의 판단은 전적으로 저에게 일임하셔야 합니다.”
대식이 내건 첫 번째 조건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직접 전장에 나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북한이다. 게다가 지금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그곳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쪽의 지시를 일일이 따르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반면 나머지는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거나 약간의 불쾌감을 내비쳤다.
눈앞의 이 사내의 능력을 믿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사안이 워낙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전 찬성입니다. 김대식 씨와 함께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가장 먼저 찬성의견을 표한 것은 당연히 승덕이었다.
이어서 태호와 동학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다음은 대식과 함께 전국 순회 공연을 했던 군인들이었다.
일단 대식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이 모두 거수하자, 나머지도 하나둘 손을 들었다.
“두 번째, 이 서류에 사인을 좀 해주셔야 겠습니다.”
말을 마친 대식은 원석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들이밀었다.
서류의 내용은 이 작전이 철저하게 임시 국회와 군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이 일의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 역시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만에 하나라도 사망자 혹은 부상자가 나올 경우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작전의 성공 시 치러야 할 보상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 있었다.
“이봐요, 김대식 씨 이건 숫제 용병 계약 아닙니까.”
가만히 서류를 훑어본 의원 하나가 질문을 던지자, 대식은 피식 웃으며 답을 내놓았다.
“군대 갔다 왔습니까?”
말속에 뼈가 있는 듯한 그 질문에, 그는 불쾌한 듯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옵니까.”
“안 갔죠?”
“그건 내가······.”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그게 대한민국 군대 아닙니까? 저랑 거래할 때 그런 건 통하지 않습니다.”
말문이 막힌 의원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대식은 웃으며 상세한 조건 몇 가지를 덧붙였다.
“우선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안에 따라 국가에 귀속될 주택의 우선 입주권을 주십시오. 그리고······.”
조건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런 조건들을 그 잠깐 사이에 떠올렸다고?’
‘설마 이 남자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그리고 그 의문은, 마지막 조건에서 정점에 달했다.
“차원석 씨는 민간인 협력자로 국회에 와있을 뿐, 의원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분도 작전에 참여하는 겁니까?”
대식의 마지막 조건은 원석도 이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작전 참여 측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쪽 입장에서.
“아뇨, 하지만 임시 국회 쪽에도 저희 쪽 사람이 하나는 끼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그날 저녁. 대식 빌리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대식은 누구에게도 이 작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세상이 평화로워졌으니 어디까지나 본인의 결정에 따른다.
그것이 대식의 전언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 일에 손을 보탤 사람들을 뽑는 방식에 있어서도 일말의 관여조차 하지 않았다.
“저는 가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한번 이뤄보려고요.”
가장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대식의 과거 이야기를 들은 이후 그의 왼팔 자리를 놓고 지혁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 주훈이었다.
“전 그냥 가겠습니다. 동료들만 보내는 건 영 불안해서요.”
민호는 보상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 짤막하게 참여 의사를 밝혔다.
“뭐 대식 씨랑 가는데 별일 있겠어? 나도 참가.”
뒤이어 성찬을 비롯해 아포칼립스 초기부터 민호의 동료였던 몇몇이 손을 들었다.
“나는······. 가족들이 살아있어서······.”
누군가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환히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정말로?”
“으응······.”
말을 꺼낸 사내는 본래 3조에 속해있던 방패조의 일원이었다.
“이야, 잘됐네. 그럼 쉬고 있어, 우리가 가서 냉면이라도 얻어 올 테니까.”
“그게 뭘 미안할 일이야, 잘된 일이지.”
그의 동료들은 아쉬워하거나 눈치를 주기는 커녕 제 일처럼 기뻐하며 사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자, 자, 가족들 살아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빠집시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미안해할 동료들을 대신해 앞장서서 가족이 있다면 이 일에서 빠지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아니야, 나는 그래도 갈래. 이번 기회에 내 집 마련도 좀 하고.”
“저는 제 아들 군대 안 보내고 싶어서 가렵니다.”
“통일되도 군대는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설마요.”
“그런데 아들 있어요?”
“곧 생기지 않겠습니까?”
“애인은?”
“없습니다, 아직.”
“과연 아직일까요?”
“음······.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요?”
“충분히 신중하게 내린 결정인데요?”
물론 빠지란다고 모두가 순순히 빠지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북한에서 변이체가 넘어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또 누군가는 단순히 동료들만 보낼 수는 없어서.
이유는 다르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작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 *
다음 날 아침.
명단을 확인한 대식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울 공략에 참여했던 방패조의 인원은 대략 천 명 언저리였다. 그중에 삼백. 이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었다.
“삼백이라······. 겁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습니까?”
“그려, 숫자가 딱 좋지 않어?”
“뭐가요?”
“디스, 이스, 스파르타!”
“······. 그거 지키는 쪽 아니었습니까?”
“어허, 따지기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디. 이번 기회에 이뤄야 하지 않겄어?”
아재가 장난스레 농을 던지자, 대식은 살짝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애들이 그걸 알겠습니까?”
“아녀, 진짜로 이번 기회에 통일 한번 해보자고 가는 놈들도 있던디?”
“그 사람들 나이가 몇입니까?”
“젊은 놈들도 많어. 자기 애는 군대 안 보내고 싶다던디?”
“음······. 예상 밖이네요.”
말을 마친 대식은 곧장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출발하죠. 시간 끌어서 좋을 거 없는 상황이니.”
* * *
과천에서 군의 병력과 합류한 대식과 탐색조의 일원들은 빠르게 고양을 지나 파주로 진입했다.
“그런데 정말로 비무장지대를 통과할 생각이십니까?”
대식의 곁에 앉아있던 낯선 사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네.”
대식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호두과자를 우물거리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사내의 이름은 리한수.
이번 북한행의 원인이 된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의 절대권력자인 김정운은 아포칼립스가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이 되고 말았다. 수십 년간 휴전선 북쪽을 지배해오던 김씨 일가의 후계자치고는 다소 허무한 최후였다.
여하튼, 독재자가 급사하니 국방위원회를 비롯한 북한의 군사조직과 당은 후계자 자리를 두고 사분오열하여 내란을 일으켰다는 게 그의 증언이었다.
좀비에 식량난으로도 모자라 내란에 곧 다가올 끔찍한 겨울까지.
덕분에 지금 파주와 철원 일대는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돌파해 넘어오는 탈북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한수는 가장 먼저 남으로 넘어온 인물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탈북자 그룹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탈북자 그룹의 요청에 의한 북한 지원과 내란 수습.
그것이 이 작전의 명분이었고, 진정한 목적은 당연히 자연스러운 북한 지역의 흡수통일이었다.
“그런데······. 지뢰는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대식에게 대략적인 이동 경로를 들은 한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한때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개성 공단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이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이미 수백번이나 그 노선을 타고 버스가 오갔으니,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보다는 그 노선을 따라 이동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차선책은 임진강을 도하하는 것이었지만, 대식은 그 두 가지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DMZ의 지뢰밭을 뚫고 이동하는 것을 택했다.
“글쎄요, 제가 남한에서 누가 넘어올 걸 걱정한다면 통일대교랑 임진강 철교 인근은 24시간 감시할 것 같은데요. 가장 안전하고 뻔하다는 건, 병력을 매복시키거나 감시하기도 가장 좋다는 이야기니까요.”
대식은 피식 웃으며 자신이 굳이 위험한 곳을 지나려는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수로는 안 됩니다. 배달차가 못 다녀서.”
“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첨언에, 한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저희야 그냥 건너가도, 배달차는 못 건너오잖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한수와 대식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탐색조를 실은 버스가 임진강 어귀에 멈춰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저희 쪽에 다 방법이 있으니까.”
말을 마친 대식은 아무렇지 않게 눈앞에 보이는 작은 섬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밥은 반드시 맛있는 걸로.
그것이 바로 이번 작전에서 그가 내건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 * *
초평도는 파주에 위치한 작은 섬이었다.
육지와의 거리가 1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사실 섬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곳이었다.
초평도를 지나 진동면으로, 다시 백학산을 넘어 진서면을 경유해서 개성의 동쪽으로 진입한다.
그것이 대식의 1차 진입루트였다.
‘이 동무를 진짜 믿어 되는 건지 모르겠구만······.’
한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웬 계집 둘과 이능을 이용해 초평도로 넘어가는 대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고작 저 인원이 넘어가서 뭘 하겠다고······.’
하지만 의심은 이내 놀라움으로 변했다.
강 건너편에 기다란 쇠막대 하나를 꽂아 넣은 젊은 여자는 반대편에도 긴 막대를 하나 설치하더니 크게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자, 그럼 건너갑시다.”
이어서 강 건너편에서 대기하던 병력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동한 것은 병력뿐만이 아니었다.
병력을 태우고 온 버스들도 모조리 빛에 휩싸여 아무런 수고도 없이 강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이게······.”
한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사람과 물건을 이동시키는 쇠막대를 바라보자, 아재가 넉살 좋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허허, 뭘 놀라고 그려.”
* * *
“혹시 모르니까 세 개 정도 설치해줘.”
초평도에 도착한 대식은 곧바로 서정에게 예비 관문을 만들어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네, 걱정 마세요.”
서정은 씩씩하게 웃으며 세 개의 관문을 추가로 만들었다.
캠퍼스에 있을 때부터 자기 사람을 챙기는 마음 하나로 변이체의 사체를 토막내는 작전을 떠올리던 그녀였다.
그 정은 1년여의 시간을 거치며 더욱 깊어졌으니, 이번 작전에 그녀가 동참하는 건 어쩌면 정해진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자, 그럼 저희는 진군하죠.”
무사히 예비 관문이 설치된 것을 확인한 대식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걸어가듯 DMZ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스킬을 활용해 성찬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보입니까?”
“아뇨, 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며 더욱 강력해진 투시 능력자가 있는 한, 지뢰 따위는 애초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뭐, 뭐야······.’
탐지기도 무엇도 없이 지뢰가 매설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지역을 가로지르며 곳곳에 깃발을 꽂는 탐색조의 모습에, 한수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자들이라면 정말로 북한의 상황을 수습하고 그 ‘침입자’들을 몰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그의 가슴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