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 (3)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포성에, 저우쓰와 그의 수하를 비롯한 중국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 이, 이런 x발! -
- 엎드려! 엎드리라고! -
- 저놈들이 어떻게 여기를! -
- 젠장,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샌 거야! -
먹먹한 포성 사이로 고함 소리와 욕설이 뒤섞였다.
지금 그들은 사절단을 맞이했던 본래의 아지트에 있지 않았다.
사절단이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건 적들도 곧 자신들의 위치를 알아차릴 거라는 뜻이었다.
해서 저우쓰는 남아있는 자신의 병력들을 모두 이끌고 해주와 벽성 사이의 마을로 숨어든 상태였다.
- 이런 x발! 차오페이! 차오페이! -
분노한 저우쓰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차오페이의 이름을 외쳤다.
차오페이가 그에게 제안한 책략은 간단했다.
일단 북한의 주민들과 군대를 한곳에 모은다.
그리고 이미 텅 비어버린 자신들의 아지트에 남한군이 포격을 가하도록 유도한다.
일단 남한놈들이 선공을 가하면 북한군도 어쩔 수 없이 참전할 테고, 그때 곳곳에 모아둔 북한의 주민들까지 끌어들여 협공을 가한다.
이렇게 하면 북한놈들은 발을 뺄 틈도 없이 남한군과 맞붙게 되고, 남한놈들이 먼저 포를 쏴 댔으니 북한의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편이 될 거라는 게 차오페이의 설명이었다.
「북한놈들이 우리 편을 들지 않으면 어쩔 생각이지?」
「상관없어, 그때는 한곳에 모아둔 한국놈들 중에 일부를 인질로 잡고 거래를 하면 되니까.」
「그놈들이 북한 놈들도 모조리 죽이려고 들면?」
「그럼 나머지 북한 놈들은 우리 편이 되겠지.」
「······. 나쁘지 않군.」
확실히 그럴싸한 책략이었다.
차오페이의 말대로 한다면 어느 쪽에 붙을지 없는 북한의 주민들과 군인을 강제로 싸움에 끌어들일 수 있었으니까.
그 전략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저우쓰는 차오페이를 살려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그런 전략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차오페이가 말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적들은 본래의 아지트가 아니라 자신들이 숨어든 곳을 정확하게 찾아내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 차오페이, 차오페이! 어디 있냐고! -
눈이 뒤집힌 저우쓰는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마저 잊은 듯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때, 건물의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익숙한 그림자가 그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 저 개새끼가! -
상황이 이쯤 되니 저우쓰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의 머리로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적들이 자신들의 매복지를 알아차린 것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배신자는 이 전략을 제안한 차오페이가 분명했다.
저 빌어먹을 겁쟁이가 내놓은 책략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길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디부터가 거짓말이고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저놈은 처음부터 자신을 배신할 생각으로 이따위 전략을 제안한 게 분명했다.
- 죽여버리겠어! -
정글도를 집어 든 인간 백정은 그대로 배신자를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차오페이는 두뇌파였다.
괴물을 상대로든 사람을 상대로든 직접 전투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저우쓰는 본토에서부터 수없이 많은 괴물들을 도륙 내며 단련해 온 강자였다.
그런 그가 저우쓰의 손에서 달아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 죽어라 개새끼야! -
저우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오페이의 머리를 향해 정글도를 내리쳤다.
- 으, 으아아! -
죽음을 직감한 차오페이의 입에서 공포에 찬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 정글도가 박히는 일은 없었다.
- 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정글도의 궤도가 틀어졌다.
“차오페이?”
저우쓰의 공격을 막아낸 정체불명의 사내가 무심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차오페이는 바닥을 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저우쓰겠네.”
-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 빵즈 새끼가! -
저우쓰는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한번 정글도를 휘둘렀다.
앞도 뒤도 없고, 상대의 실력을 확인해 보거나 하는 일도 없이 일단 칼부터 휘두른다.
게다가 눈이 뒤집힌 상황에서도 칼을 휘두르는 폼은 거의 흐트러지지 않는다.
포악한 성격에 살인에 익숙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움직임까지.
“맞네.”
상대가 사냥감임을 확신한 대식은 가볍게 빠루를 들어 두 번째 일격을 막아냈다.
- 캉!
정글도와 빠루가 맞부딪히며 새빨간 불똥이 튀어 올랐다.
‘이놈이······.’
자신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막아내는 대식의 모습에, 저우쓰는 본능적으로 반보 뒤로 물러났다.
- 쉭!
동시에 시커먼 쇳덩이가 그의 머리가 있던 곳을 가로질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일격에, 대륙에서 이름을 날리던 살인자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 저 개새끼 잡아! -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직감한 저우쓰는 곧바로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여기서 차오페이를 잡겠다고 정신을 딴 데 팔았다가는 순식간에 목이 달아난다. 그것이 짐승처럼 발달된 그의 육감이 내린 결론이었다.
“······.”
대식은 말없이 눈앞의 중국인을 바라봤다.
‘현대에도 이런 눈을 한 놈이 있군.’
그리고는 채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저우쓰의 용도를 정했다.
- 붕!
차가운 쇳덩이가 단숨에 저우쓰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 캉!
정글도와 빠루가 맞부딪히며 저우쓰의 몸이 가볍게 휘청였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두 번째, 세 번째 일격이 저우쓰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저우쓰는 이를 악물고 정글도를 휘둘러 그 공격을 막아냈다.
- 퍽!
그때, 생각지도 못한 각도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어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 컥! -
저우쓰는 짤막한 숨을 토해내며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상대는 아주 조금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만으로 그 공격을 흘려냈다.
‘뭐, 뭐야, 어디서 이런 괴물 새끼가······.’
저우쓰의 눈동자가 당혹감과 공포로 물들었다.
옆구리에서 둔중한 통증이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조금 전의 발차기로 갈비뼈가 나간 것 같았다.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악마를 잡은 이후 그의 육체는 총알도 막아 낼 수 있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그런데 고작 발차기 한 번에 갈비뼈가 나가다니.
‘크으······.’
옆구리에서 시작된 통증은 공포로 변해 빠르게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이미 상대와의 격차를 절감하고 있었다.
아포칼립스가 열리기 전부터 칼밥을 먹고 산 그였다.
그렇기에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것’은 자신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인, 진정한 괴물이었다.
‘어, 어째서 여기에 이런 놈이 있는 거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의 뇌가 잠시 정지했다.
남한은 평화로운 나라였고, 그곳에 사는 놈들은 모두 온실 속의 화초였다.
자신처럼 맹수가 활개 치는 정글 속에서 자신의 이빨과 발톱으로 살아남은 인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 인간은 대체 뭐란 말인가?
- 화륵!
그 의문을 해결할 새도 없이, 눈앞의 사내가 든 쇳덩이에서 시뻘건 화염이 피어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할법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저우쓰는 빌지 않았다.
상대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이런 눈을 한 놈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건 이미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넣은 사자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죽어, 이 개새끼야! -
저우쓰는 발악하듯 고함을 내지르며 정글도를 휘둘렀다.
그리고는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노리고 아껴둔 자신의 스킬을 사용했다.
[ 포식자의 발톱(Lv.12)를 사용합니다. ]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네 개의 시커먼 발톱이 돋아났다.
수백의 괴물과 수십의 인간을 갈갈이 찢어발긴 인간 백정의 이능이었다.
- 쉬이이익!
네 개의 발톱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대식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역겨운 빵즈, 죽을 때 죽더라도 몸에 바람구멍 하나 정도는 뚫어주마!’
그러나 저우쓰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 쉭, 쉬쉭!
벌겋게 달아오른 칼날이 검게 물든 허공에 눈부신 궤적을 그렸다.
네 개의 발톱은 사냥감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그대로 잘려나갔고, 정글도는 부서졌다.
- 서걱.
이어서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저우쓰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됐다.
대륙에서부터 이름을 날린 인간 백정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이새끼······. 일부러······.’
상대는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을.
* * *
- 사, 살려줘! -
- 살려줘, 제발! -
- 자,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
총과 도끼, 칼과 몽둥이를 들고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중국인들은 마치 처음부터 저항을 할 생각이 없었던 놈들처럼 바닥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너무나 싱거운 결말이었다.
이에 대식과 함께 마을에 잠입한 형섭과 주훈, 민호를 비롯한 특공대는 다소 허탈한 표정으로 대식을 바라봤다.
“이거······. 생각보다 싱거운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죽을 때까지 바락바락 덤벼들 줄 알았더니.”
물론 단 한 명도 저항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저우쓰의 심복 수십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것처럼 악다구니를 쓰며 덤벼들었다.
하지만 아재는 그놈들에게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수제 폭탄을 선물해 주었고, 몇몇은 건물 안에서 뛰어나오다가 주훈이 몰래 설치해 둔 지뢰를 밟고 폭사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이 죽고 남은 찌꺼기는 형섭과 민호의 몫이었다.
“허허, 대식이가 그 저우쓰인지 뭔지 하는 대장놈을 알뜰하게 잘 써먹어서 그려.”
“알뜰하게요?”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까 불 피우는 거 못 봤어?”
“봤죠.”
“대식이가 그런 놈 잡는데 불까지 피울 필요가 있겄어?”
아재의 반문에, 민호와 형섭은 대식이 왜 생각보다 빨리 저우쓰를 처리하지 못했는지, 아니, 처리하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보라고 한 거군요.”
“그려, 원래 무력이 높은 장수가 일기토로 죽어버리면 병사들은 사기가 확 꺾이는 법이니께.”
모든 게 아재의 말대로였다.
대식은 처음 일격으로 얼마든지 저우쓰를 죽일 수 있었다.
대검을 손에 들면 탱크의 포신도 잘라내는 괴물이 한낱 인간을 상대로 몇 번이나 합을 주고받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일격에 싸움을 끝내버리면 아무도 그 광경을 보지 못한다.
해서 대식은 적당히 시간을 끌며 적들의 시선이 집중됐을 때 불을 피우고, 결국 감춰둔 이능까지 동원했음에도 손도 발도 써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이 무력과 잔혹함으로 흑룡방을 이끌던 저우쓰보다 더 공포스럽고 강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후······. 조용.”
흑룡방 잔당들의 눈이 공포로 물든 것을 확인한 대식은 짤막한 한마디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두려움에 압도당한 중국인들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함에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애썼다.
“차오페이?”
이어서 대식의 시선이 무릎을 꿇고 있는 흑룡방의 2인자에게로 향했다.
“넌 나랑 할 얘기가 좀 있을 것 같은데?”
밑밥은 모두 뿌려뒀다.
이제 이놈에게 함부로 남의 땅에 들어와 헛짓거리를 벌인 대가를 받아낼 차례였다.
그것도 이자까지 두둑하게 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