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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첫날 아포칼립스가 열렸다-414화 (414/508)

재갈 (2)

- 그래도 삼천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나? -

더 이상 정예병을 선발하지 않겠다는 대식의 선언에, 진스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지금 그는 가능하면 많은 정예병을 육성하고 싶었다.

삼천보다는 오천이 좋고, 오천보다는 만이 좋았다.

정예병이 많으면 많을수록 본토 수복은 빨라질 테고, 더욱 큰 전공을 올릴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가 더 많은 정예병을 원하는데에는 대식 앞에서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저 날강도 같은 놈은 틀림없이 더 많은 걸 요구할 거야······.’

그는 이미 이 한반도에서 날아온 사기꾼에게 아픈 꼴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 한 번의 실수로 기름과 식량은 물론이고 발해만 인근의 유전 채굴권과 서해의 미개발 유전의 채굴권까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쓰고 말았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건 그것이 베이징과 화베이 지방을 정리하는 비용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상하이나 선전을 비롯한 다른 대도시를 정리할 때도 한국인들의 손을 빌리려 한다면, 정말이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손실이 커지고 말 터였다.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빤히 알고 있는 한국산 악덕 상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빠질 때 빠지더라도 얻을 건 다 얻어내고, 덤으로 나중에 딴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확실한 안전장치까지 마련해두는 것.

그것이 지금 대식의 목적이었으니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정예병의 숫자를 늘려줘서는 안 됐다.

“오늘만 해도 상당한 숫자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저희 쪽에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자가 없었다면 그 사람들이 전부 사망자가 됐겠죠.”

이에 대식은 적당한 구실을 대며 추가적인 정예병 육성을 거절했다.

- 뭐, 뭐라고? -

혜나의 능력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진스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치유 능력자라면 그들도 몇 정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힐러 따위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 그, 그게 정말인가? -

진스이의 목소리가 흥분과 놀라움으로 가늘게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식은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여하튼, 지금도 상황이 이런데 여기서 정예병을 더 늘린다면 저희가 원하는 수준에는 절대로 못 미칩니다. 설마 이제 와서 다른 병력과 별반 차이도 없는데 숫자만 많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 음······. -

진스이의 입에서 묵직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지금 상대의 판단에는 아주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여기서 정예병을 더 늘리자고 말하는 건 되지도 않는 생떼를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 음, 으음······. 알겠네. -

결국 만주의 장군은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일단 물러선다.

하지만 그게 영원히 물러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베이징 수복전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의 능력치는 엄청나게 올라갈 테고, 그때는 스스로 정예병을 육성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일단 그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손실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식사나 하죠.”

대식은 그 속을 빤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식사를 제안했다.

지금 중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수렁에 발을 들인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까지 가라 앉히는 일뿐이었다.

“아, 한국에서 해산물이 좀 도착했으니, 그걸로 요리를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머지 재료는 그쪽에서 충당해 주시고요.”

말을 마친 대식은 아무렇지 않게 식사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한편, 진지로 돌아온 정예군들은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뭐야, 진짜로 아무도 안 죽은 거야? -

- 간부들이 전과를 부풀린 거 아니야? -

- 솔직하게 말해봐, 어차피 우리끼리 숨길 것도 없잖아. -

성공은 최대한 부풀리고, 실패는 줄이거나 없던 일로 취급한다.

아포칼립스가 열리기 전부터 늘상 있어 왔던 상투적인 일이었고, 좀비가 나타난 후로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았다.

이런 거짓말에 익숙해진 이들이 의심이 많은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 그래, 정말이라고. -

- 부상자는 많았는데 죽은 놈은 하나도 없다니까? -

- 그게 말이 돼? 변이체와 싸우다가 다쳤는데 죽은 놈이 없다고? -

-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여자가 있어. -

- 뭐!? -

하지만 직접 전투에 참여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지자, 제아무리 의심이 많은 놈들이라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고 믿지 않고와는 별개로, 이 상황 자체가 못마땅한 사람들도 있었다.

‘······. 병신같은 것들.’

다른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무용담을 들어놓는 정예병들의 모습에, 웨이홍은 속이 뒤틀리다 못해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나타나 먹을 것과 아까운 연료를 가져가는 한국인들과 손을 잡고 싸우는 것만 해도 역겨운데, 언제 그랬냐는 듯 영웅 취급을 하는 꼬라지는 도저히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 쳇, 그래봐야 앞장선 건 중국인들이었겠지. 한국놈들이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줬겠어? 부상자가 많이 나온 것도 다 너희가 앞장서서 그런 거겠지. -

짜증이 치밀어오른 웨이홍은 제멋대로 상상한 내용을 사실인 양 떠들어댔다.

- 정말인가? -

-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

그 말이 제법 설득력이 있다고 느낀 중국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웨이홍의 말에 동의했다.

그때, 유달리 체격이 작은 사내 하나가 비아냥거리며 입을 열었다.

-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네가 그 자리에 있었는 줄 알겠군. 한국인들에게 맞았다고 아무 말이나 뱉지 마라. -

- 뭐? 지금 뭐라고 했어? -

웨이홍이 눈을 부라리자, 사내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 쯧, 한국인들은 자진해서 위험한 곳에 뛰어들었어. 우리한테는 비교적 안전한 일을 시키고. 거기다 종말의 씨앗도 반이나 나눠줬지. 이 와중에 동료들은 안중에도 없고 제 능력치만 챙기는 너나 아호 같은 놈들이랑은 다르게 말이야. -

이어지는 주이펑의 말은 전사자가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보다 더 큰 파장을 만들어냈다.

- 그게 정말이야? -

- 그걸 나눠줬다고? -

- 그래, 어디 그뿐인 줄 알아? 이 무기들까지 공짜로 나눠줬다고. -

자신의 손에 들린 게 떡밥인 줄도 모르는 물고기는 그렇게 말하며 대식에게 받은 창과 방패를 흔들었다.

- 갑자기 어디서 새 무기가 났나 했더니······. -

- 잠깐, 그러고 보니 갑옷까지 입고 있잖아? 그것도 아주 제대로 된 걸로. -

- 설마 그 갑옷도 한국인들이 준 건가? -

- 그래, 이능으로 만든 거라고 하더군. 능력치까지 붙어있어. 게임처럼 말이야. -

- 그게 정말이야? -

또다시 의심 많은 종자들이 나타나자, 주이펑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창을 떠넘기듯 누군가의 손에 쥐여줬다.

- 어!? 뭐야 이거, 정말로 능력치가 붙어있잖아! -

시스템창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한 중국인은 귀신에 홀린 듯 입을 쩍 벌렸다.

- 설마 다른 장비에도 다 붙어있는 거야? -

- 뭐야, 나도 줘봐, 나도. -

일단 떡밥이 뿌려지자, 빠른 속도로 물고기 떼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허허허, 이거 한국에 다시 연락 좀 넣어야겠는디?”

한편,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아재는 낄낄대며 웃음을 흘렸다.

중국인들에게 나눠준 장비에는 수많은 포인트와 제작팀의 노고가 들어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식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물건을 공짜로 나눠줄 리가 없었다.

“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원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재는 웃으며 무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국인들을 가리켰다.

“이거 옛날 생각나는데요.”

뒤이어 그 장면을 바라본 민호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랑은 다르제. 저건 공짜가 아니니께.”

“그래도 3천 세트나 공짜로 나눠준 건 좀 아쉬운데요.”

민호는 그렇게 말하며 대식의 얼굴 위로 시선을 옮겼다.

더 많은 장비를 팔기 위해 보낸 샘플이라고 치기에는 지나치게 선심을 쓴 것 아니냐, 또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에 대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을 내놓았다.

“제가 아재한테는 공짜로 장비를 주고, 민호 씨한테는 바가지를 씌우면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일단 기분이 나쁘죠.”

“그런데 아재랑 제가 그 후로 계속 붙어 다니고, 민호 씨한테는 자꾸만 바가지를 씌운다면요?”

이어지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을 내놓았다.

“뭐······. 썩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일단 둘 다 싫을 것 같네요.”

“그겁니다.”

“네?”

민호가 조금 더 자세한 의미를 물으려 하자, 아재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허, 이 이상은 스포금지여.”

“아니······.”

“그렇답니다.”

장난스레 웃음을 지은 대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 * *

- 뭐? -

- 지금 병사들 사이에 난리가 났습니다. -

- 또? 왜? -

보좌관의 보고를 받은 진스이의 머릿속에 불현듯 대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악랄한 한국 놈이 또 무언가 일을 벌인 게 틀림없다.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 그게, 오늘 한국인들이 나눠준 장비에······. 능력치가 잔뜩 붙어있다고 합니다. -

- 공짜로 나눠줬다고 하지 않았나? -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진스이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 설마······. 자기들도 같은 장비를 얻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 건가? -

- 네······. -

또 한 번, 뒤늦은 깨달음이 진스이의 뒤통수를 때렸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물건을 판다고 했다면, 일단 조건을 맞춰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했을 터였다.

하지만 일단 병사들에게 샘플이 뿌려졌다면, 이제는 조건을 맞춰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물건이 좋으면 좋을수록 병사들은 그것을 탐낼 것이고, 자신이 뭐라고 떠들든 그 물건을 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할 터였다.

‘제기랄, 그 장비를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때늦은 후회에, 진스이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자신이 거래를 거절하면 병사들이 자진해서 거래에 나설 테고, 억지로 그 거래를 막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예군과의 차별 대우로 가뜩이나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화약이 잔뜩 쌓여있는 창고에 불을 던져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인데 무슨 명분으로 그 거래를 막는단 말인가.

- ······. 장군님. -

보좌관의 부름에, 진스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 일단 장비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를 해보지. 병사들한테는 그렇게 전해. -

- 하지만······. 또 값을 엄청나게 높여서 부를 텐데요? -

- 그럼 다른 방법 있나? -

말을 마친 진스이는 장군이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힘없는 걸음걸이로 대식이 있는 곳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질문을 던지는 대식의 얄미운 태도에, 진스이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 그, 장비 말이야. -

“장비요?”

- 그래, 자네가 나눠준 장비 말일세. -

“아, 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대화가 이어질수록, 진스이는 인내에 한계가 오는 것을 느꼈다.

- 혹시 그걸 구매할 수 있겠나? 훈련이야 그렇다 쳐도, 장비는 다른 병사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것 아닌가. -

이어지는 진스이의 말에, 한국에서 날아온 악덕 상인은 곤란하다는 듯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자식이······.’

진스이의 가슴속에서 불덩이처럼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대식의 그런 반응이, 지금의 그에게는 잔뜩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선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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