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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첫날 아포칼립스가 열렸다-441화 (441/508)

상륙 (3)

- 제, 젠장! -

- 피해! -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끔찍한 괴물들은 추락하는 와중에도 붉은 눈알을 번득이며 위액을 토해내려 하고 있었다.

- 이탈해! -

- 도망쳐! -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황급히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 했다.

대식의 말에 따르면 저놈들이 뱉어내는 독액은 갑옷을 녹일 정도로 강한 산성을 띠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머리 위로는 그런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수십이나 떨어지고 있었다.

- 달아나라고! -

- 도망쳐! -

결국 철옹성처럼 단단하던 대형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웨이치의 머릿속에 대식이 싸움에 임하기 전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최악의 경우에는 머리 위로 그놈들이 떨어질지도 몰라. 아니, 꽤 높은 확률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나을 거다.」

「그,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절대로 도망가면 안 돼. 밀집 대형을 거꾸로 거슬러서 움직이는 놈들이 늘어나면 정말로 다 죽는 수가 생기니까.」

절대로 죽게 두지 않겠다.

그러니 날 믿고 자리를 지켜라.

대식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웨이치는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물러나지 마! 지금 물러나면 다 죽어! -

- 동료들 다 죽일 셈이야!? -

- 절대 물러나지 말라고! -

이어서 그와 함께 서있던 몇몇이 악을 쓰듯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미 공포에 압도당한 병사들의 귀에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아, 안 돼.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그 순간, 몸을 돌려 달아나던 놈이 돌연 허공으로 떠올랐다.

- 이 개새끼들아! 도망가지 말라고! -

진형을 무너뜨려 가며 역주하던 병사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린 아호가 고함을 내질렀다.

졸지에 땅에서 발이 떨어진 병사는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 짝!

아호는 사나운 기세로 달아나려는 놈의 뺨을 후려쳤다.

- 정신 차리라고 이 미친 새끼들아! -

그리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다시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웨에엑!”

“그웩!”

그때, 머리 위에서 무언가를 토하는 듯한 역겨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물러나지 마! -

- 방패 위로! -

- 방패 위로 들어! -

웨이치를 필두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대식을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이미 몇 번이나 겪어 보았다.

변이체를 상대하던 와중에 대열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말이다.

일단 단단한 벽에 구멍이 생기면 그 틈으로 변이체들이 들이닥치고, 감염자가 나온다.

그 뒤에는 안쪽에서부터 진형이 붕괴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는 놈들과 싸우려는 놈들이 뒤엉키고, 서로가 서로의 장애물이 되어 발을 묶는다.

일단 상황이 거기까지 가면, 모두가 변이체의 먹이로 전락하는 결말밖에 남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본능에 따라 달아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장에 발을 들인 이상, 죽을 각오로 물러나지 않아야 죽지 않을 수 있었다.

- 버텨! 진 대형이 도와주러 오실 거다! -

- 버티라고! -

버티려는 자들의 고함 소리와 괴물들의 울음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곧이어 그 두 소리 위에 한 가지 소리가 더해졌다.

- 칙, 치익!

무언가가 타는 소리와 함께, 코를 찌르는 매캐한 악취가 피 냄새를 뚫고 퍼져나갔다.

웨이치는 저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을 뻔한 것을 간신히 눌러 참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앞쪽, 앞쪽 신경 써! 변이체들한테 당한다! -

막아야 할 건 위쪽만이 아니었다.

독액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방패를 위로 들었다는 건, 전방에서 달려드는 변이체들에게서 몸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의미였으니까.

- 1열은 앞에 신경 써! 2열이 1열을 지켜줘! -

- 2열, 1열 지켜줘! -

도망가려는 놈들을 막고, 명령을 내리고, 그 와중에 정면에서 달려드는 괴물들을 상대하면서 지면으로 추락한 독각조의 머리를 부수고.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해내려니 손발이 꼬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 제기랄! -

- 역할 나눠! -

- 아래 떨어진 놈 찌르라고! -

머리가 하얘진 병사들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일단 몸을 움직였다.

어디를 봐야 할지, 어디를 막고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점점 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귀와 눈을 통해 흘러들었다.

과부하가 걸린 뇌는 체계적인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팔다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덜그럭거리며 훈련된 동작을 취할 뿐이었다.

- 찔러! -

- 찌르라고! -

- 밟아! -

- 막아! -

고작 몇 초.

실제로는 고작 그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병사들은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더 흘렀을 무렵, 웨이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된 거지?’

머리 위로 독액이 쏟아졌음에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놈들이 없었다.

아니, 돌아보니 애초에 방패 위로 액체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환성을 내질렀다.

- 위는 괜찮아! 정면, 정면 봐! 정면 보라고! -

이어서 또다른 누군가가 이탈한 동료의 자리를 메꿨다.

조금 전의 혼란이 거짓말인 것처럼, 빠른 속도로 진형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웨이치는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위를 확인한 순간······.

그의 눈동자에 거대한 황금빛의 커튼 같은 것이 들어왔다.

- 어, 어어? -

* * *

“헉, 헉······.”

긴장이 풀린 세화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최대한 넓고 얇게 펴주세요. 독액만 막으면 됩니다. 」

대식의 지시에 따라 펼친 혼신의 배리어는, 가까스로 타이밍을 맞춰 중국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독액을 막아냈다.

“빨리 배리어 밖으로 빠져나오라고 해!”

“제일 가까운 조장 누구야!”

“철준 씨랑 4조입니다!”

“바로 가서 길 뚫어주라고 해! 오래 못 버텨!”

동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왱왱거리며 울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길 뚫을 테니까 또 보고 있다가 필요할 때 배리어 쳐주세요. 한 명씩 지킬 거 없습니다. 부상자는 어차피 혜나 씨가 치료하면 되니까, 지금은 머리 위만 신경 써요.”

그때, 대식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두드리고는 무전기를 잡았다.

“불사신, 이탈하지 말고 현 위치 지켜주세요. 제가 직접 갑니다.”

이어서 검은 안개가 그의 몸을 감쌌다.

* * *

- 지, 진 대형이다! -

- 진 대형! -

- 진 대형! -

대식이 나타나자, 중국인들은 목청이 터져라 대형이라는 호칭을 연호했다.

하지만 대식은 그 환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대뜸 화염에 휩싸인 대검을 휘둘렀다.

- 쾅!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과 함께, 괴물들로 이루어진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왼쪽으로!”

대식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얼른 왼쪽으로 달려갔다.

병사들의 안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세화는 얼른 배리어를 거두어들였다.

「대식 씨, 앞으로 3분간은 무리예요. 부담이 너무 커요.」

세화의 보고를 들은 대식은 곧장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건웅 씨, 스킬 아껴 두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무리의 독각조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대식은 곧장 발아래 놓인 거대한 변이체의 시체를 들어 하늘 위로 내던졌다.

“끼익!”

갑자기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날아들자, 독각조들은 얼른 방향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는 기괴하게 몸을 뒤틀며 또 한 차례 독액을 토해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놈들이 독액을 토해낼 일은 없었다.

- 쾅!

먹먹한 폭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왔던 시체가 돌연 폭발을 일으켰다.

독액을 토하려던 괴물들은 그 폭발에 휩쓸려 힘없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 우, 우와! -

- 진 대형을 따르라! -

- 전진, 전진이다! -

- 앞으로 가! -

* * *

한편, 중국인 부대의 좌측과 우측 끝에서는 한국인들이 변이체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면에만 신경 쓰면 되는 중국인들과 달리, 그들은 처음부터 정면과 측면, 양쪽을 모두 신경 써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머리 위에서는 수시로 독각조가 날아다니며 폭격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형섭 씨!”

“쿨타임 다 돌았어!”

또다시 독각조가 나타나자, 형섭은 곧바로 거인화를 사용한 뒤 수 미터에 달하는 방패를 머리 위에 이었다.

“앞으로!”

“앞으로 가, 앞으로!”

거대한 철제 방패를 우산 삼아, 탐색조의 정예병들은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거인화 끝나간다! 건웅 씨한테 석판 날리라고 해!”

거인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대식이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만들어둔 수 미터짜리 석판이 날아와 그들의 머리 위를 지켰다.

배리어, 거인화, 그리고 공성전에 사용했던 특제 방패와 건웅의 능력을 활용한 석판 방패.

그것이 독각조의 폭격을 막기 위해 대식이 준비해둔 카드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카드는 완벽하게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여간 지독하다니까요.”

또다시 변이체 하나의 머리를 꿰뚫은 동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독하다니, 철저한 거지.”

형섭이 워해머를 휘두르며 표현을 정정했다.

모두가 대공포와 전함의 위력에 심취해 있는 사이에도 대식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직접 바다로 날아가 변수가 될만한 요소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중 공격에도 이런 대응이 가능한 것은 바로 그 편집적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 철저함 덕분이었다.

“여기는 델타, 여기는 델타. 적의 비행체가 거의 다 격추됐다. 조금만 더 버텨라.”

그렇게 수십 미터를 전진했을 무렵, 무전기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흐아아아······.”

더 이상 이 거대한 석판을 날려댈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건웅은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콘처럼 흐느적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좀 무거워서 그렇지 할 만했어요. 그냥 시멘트 포대 다섯 개씩 짊어지고 계단 오르는 느낌 정도였습니다.”

녹초가 된 건웅의 말에, 형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흘렸다.

“무지 힘들었다는 소리 같은데요?”

- 탕, 타당!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뒤쪽에서는 간간이 총성이 울렸다.

“끽!”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얼마 남지 않은 비행형 변이체들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 * *

“후우······.”

잠시 전열에서 이탈한 대식은 적당한 높이의 빌딩으로 들어가 아래쪽을 살폈다.

유령 박쥐와 독각조는 거의 다 박멸했고, 하늘과 땅에서 협공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정예군도 탐색조도 지금처럼 애를 먹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다.

톈진은 서울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였고, 그 초입부터 예상치 못한 적을 만났다는 건 그 안쪽에서도 자신이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정보였다. 정보를 얻을 가장 좋은 수단이 정찰이라는 건 두말하면 입이 아프고.

‘후우, 아주 거하게 헛짓을 해주셨군.’

포탄 구덩이가 가득한 도시를 바라보던 대식은 장탄식을 내뱉으며 육포를 질겅거렸다.

인구가 천만이라고는 해도, 톈진의 인구밀도는 서울의 10분의 1수준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심에 들어서니 초임부터 무지막지한 숫자의 변이체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지 않았다면, 도심 외곽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알아서 달아날 수 있게 두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대식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으니 물러나겠습니다.

그런 물렁한 마음가짐이라면 애초에 이곳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제 새 떼도 다 치웠겠다······.. 다음으로 넘어가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대식은 깨진 유리창 밖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고, 자신이 준비한 카드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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