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첫날 아포칼립스가 열렸다-444화 (444/508)

상륙 (6)

[ ‘길들이기’로 테이밍한 동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생존했습니다. ]

[ 축적된 죽음의 기운이 임계치를 넘어섰습니다. ]

[ 히든 조건 달성으로 인해 특성이 변화합니다. ]

[ 아포칼립스의 테이머 (Lv.22) -> 비스트 마스터 (Lv.22) ]

[ 특성 변화로 인해 스킬이 변화합니다. ]

[ ‘길들이기’의 영향 범위가 크게 증가합니다. ]

[ ‘길들이기’에 필요한 시간이 크게 감소합니다. ]

[ ‘생물 강화’의 지속 시간과 효과가 크게 증가합니다. ]

[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 믿음직한 파트너 (Lv.25) : 테이밍한 동물과의 친밀도와 함께한 시간에 따라 능력치 중 일부를 공유합니다. 길들이기에 영향을 받은 시간이 길수록 더욱 많은 능력치를 공유합니다. ]

상태창을 바라보던 윤호의 동공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의 능력은 전투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생물 강화’를 통해 버프를 준다 한들 매나 고라니, 멧돼지 따위가 변이체를 잡을 만큼 강해질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일부나마 자신과 능력치를 공유한다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몰랐다.

‘얼마나 공유되는 거지?’

기대감에 부푼 윤호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빠르게 다음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 ‘파트너’로 인정된 생명체는 주인과 죽음의 기운에 대한 저항력을 공유합니다. ]

[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 필사의 저항 (Lv.25) : 주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파트너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크게 상승합니다. ]

그렇게 모든 메시지를 확인한 윤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아무리 능력치가 오르고 버프를 받았다 해도 작은 상처라도 입는 순간 끝장인 동물들을 데리고 전장을 누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곧바로 감염만 당하지 않는다면 부상을 입는다 한들 혜나에게 치료를 부탁하면 될 테니, 오랜 시간 함께한 자신의 친구들이 괴물이 되는 일도 없을 터였다.

‘이제 나도…….’

여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작고 여리여리한 그림자가 폐허가 된 도시를 뚫고 힘차게 내달렸다.

* * *

한편, 대식과 아재는 심각한 표정으로 폐허가 된 길거리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식이, 이게 맞어?”

질문을 던지는 아재의 얼굴에는 전에 없이 짙은 의문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대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종말의 씨앗을 파괴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저, 대식 씨…….”

그때, 혜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식에게 다가왔다.

그녀 역시 아재와 마찬가지로 지금 상황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왜 보스가 없죠?”

통상 종말의 씨앗 근처에는 그것을 지키는 수호자가 존재했다.

데몬이든, 웨어울프든, 자이언트 웜이나 쌍두귀든, 종류에 상관없이 늘 종말의 씨앗 근처에는 그들이 ‘보스 몬스터’라고 부르는 강력한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줄기를 따라 파편을 부수고 씨앗까지 거슬러 왔는데도 보스 몬스터는 코빼기조차 보이질 않았다.

기쁘다면 기쁜 일이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설마 헬기가 쏜 로켓에 맞고 죽기라도 한 걸까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혜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차라리 도망을 갔다면 모를까.”

대식은 그렇게 말하며 하이허강을 따라 늘어선 검은 관들을 바라봤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못지 않은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했을 도시는 이제 살아있는 시체들로 가득한 거대한 무덤에 불과했다.

베이징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긴 게 서너 달 전이라고 했으니, 톈진이 이런 상태가 된 시기 역시 그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역시 그렇게 된 건가.’

최악의 사태를 상상한 대식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혹시 이짝 보스가 벌써 다른 놈한테 잡아먹힌 거 아니여? 그것도 아니면 다른 놈이랑 손을 잡았던가.”

그리고 대식의 그 반응과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단서로, 아재는 곧바로 정답을 찾아냈다.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아까운 종말의 씨앗 하나를 포기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의 ‘왕’들은 아케이아에서와 다른 행동 양상을 보였다.

인구 밀도가 높은 만큼 종말의 씨앗도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것을 지키는 역겨운 괴물들은 서로를 잡아먹거나 복속시키고, 심지어 손을 잡아 인간에게 저항하려는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이곳은 서울보다 훨씬 빠르게 폐허로 변했고, 지금은 서울 수복 이후 석 달 이상이 흐른 시점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괴물은 바실리스크 이상의 끔찍한 무언가로 변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신하를 거느린 존재로 변모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대식조차 알 수 없었다.

“그, 그럼 빨리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도망가는 중일지도 모르잖아요.”

패주하던 왕을 쫓던 날의 기억을 떠올린 혜나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처럼 초조한 반응을 보였다.

“아뇨.”

그러나 대식은 단호하게 혜나의 의견을 부정했다.

“적이 왔다고 달아나서 손을 잡을 만한 상대였다면 벌써 몇 달 전에 손을 잡았을 겁니다. 반대라면 진작에 잡아먹혔을 테고요.”

그때, 주훈과 민호를 비롯한 조장들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들 역시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아니고 대식을 따라다니며 겪은 게 있으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대식 씨.”

민호가 입을 열자, 대식은 이어질 말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지금 쫓아가기에는 다들 너무 지쳤습니다. 그리고 왕 한둘이 손을 잡는다고 전황이 뒤집힐 정도로 저희가 약하지도 않고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 태도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일단 정비부터 하고, 천천히 치고 나가도 충분합니다.”

“음…….”

“하긴, 그렇네. 독각조라는 놈들도 한국에서는 못 봤던 놈들이고, 저 안에 들어가면 또 뭐가 있을지 모르니께. 이런 상태로 진격을 서두르는 건 좀 꺼림칙하긴 허제.”

지금 대식의 태도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그리고 이 고요한 반응은 그가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터였다.

정말로 예상 밖의 사태가 벌어졌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대처하는 게 바로 김대식이라는 인간이었으니까.

“대식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뭐.”

“그럼 이제 뭐 합니까? 휴식이면 역시 밥?”

주훈이 숟가락을 움직이는 시늉을 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못 당하겠다는 듯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걸 닮아가는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굳어졌던 분위기가 조금 풀어질 무렵…….

“형, 형!”

저 멀리서 북한에서 잡은 멧돼지를 탄 윤호가 달려오는 것이 대식의 시야에 들어왔다.

신이 나서 달려오는 윤호의 표정과 거의 곰만큼 거대해진 멧돼지의 모습에, 대식은 곧장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직감했다.

윤호는 큰 소리를 내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였다.

늘 능글맞고 밝은 지혁과 달리 대놓고 칭찬을 요구하는 일도 없고, 잘했다고 말해줘 봐야 수줍게 웃는 게 고작인 아이였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멀리서부터 자신을 부르며 달려올 정도라면, 제법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좋은 일이 무엇일지를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윤호는 언제나 자신의 작고 약한 몸과 겁이 많은 성격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특성 바뀌었어?”

대식의 첫 번째 질문에, 윤호의 얼굴에는 더욱 큰 웃음이 번졌다.

“네, 비스트 마스터래요. 스킬은요…….”

이어서 윤호는 어린아이처럼 조잘거리며 자신의 새로운 스킬을 설명했다.

“잘됐다!”

“그러게, 잘됐네.”

“축하해.”

해맑게 웃으며 떠들어대는 윤호의 모습에, 동료들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헤헤, 감사합니다.”

윤호는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대식은 그런 윤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늘 그렇듯 무심한 태도로 한마디를 던졌다.

“잘했어.”

잘됐다가 아니라 잘했다.

그 작다면 작은 차이 사이에 숨겨진 의미에, 윤호는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럼 내가 밥 먹고 새 장비 만들어 줄게.”

그러나 정작 그 반응을 끌어낸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릴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윤호도 더 강해졌고, 다른 분들도 더 강해졌고, 저희한테는 아직 남은 카드가 많으니까요.”

* * *

“여기는 고기 러버, 항구 인근 완전히 정리 끝났습니다.”

대식의 연락을 받은 진수는 곧장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항구의 안전이 확보됐다. 지금부터 입항을 시작한다.”

항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상군이 완벽하게 주변을 정리하기를 기다리던 함선들이 다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온다, 온다.”

“빨리 와라, 빨리.”

점으로 보이던 배들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확인한 병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얼른 그 거대한 배달차, 아니, 배달선이 항구로 들어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저 끝에 있는 게 보급함이지?”

육군 출신의 한 병사가 질문을 던지자, 옆에 있던 병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 크다……. -

- 뭐가 저렇게 커? -

길이 190미터, 폭 25미터에 달하는 특급 배달선의 등장에, 중국인들은 넋을 잃고 바다 위를 바라봤다.

보급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 어떤 정예병도 먹지 않고는 싸울 수 없는 법이고, 그건 상대가 변이체나 괴물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회식’이라는 스킬을 통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 오늘은 뭐가 나오려나. -

- 또 맛있는 거 주나? -

- 한국인들은 먹을 거 하나는 확실히 챙겨주잖아. 난 그게 제일 좋더라. -

가만히 중국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아재는 키득거리며 혼잣말을 하듯 농을 던졌다.

“먹을 거 앞에서는 한국 놈이고 중국 놈이고 없구먼.”

그렇게 기대에 찬 시선을 받으며, 마침내 배달의 민족이 만든 기술의 결정체, 초대형 배달선이 항구에 들어섰다.

“자, 자!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아재의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병사들은 웃으며 함선 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그래서, 쓸만해 보이던가? -

톈진의 눈이라 불리는 거대한 관람차 위에는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악마가 앉아있었다.

지옥으로 변한 도시의 중심에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괴물은 오만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또 다른 악마를 내려다보았다.

- 강했습니다. 탱크는 물론이고 그……. -

그의 신하는 잠시 인간일 때의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머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그런 것일까, 가끔씩 단어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 아, 헬기. 헬기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신하의 보고를 받은 왕은 흥미롭다는 듯 입술을 매만졌다.

이번에 이 지옥에 발을 들인 인간들은 어딘가 달랐다.

빠르지만 서두르지는 않았고, 신중하지만 느리거나 겁쟁이처럼 굴지 않았다.

- 재미있군. -

관람차를 왕좌 삼아 걸터앉아있던 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

이어서 그의 눈이 관람차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섯을 차례대로 훑었다.

- 그래, 네가 가봐라. -

왕의 손가락이 가장 오른쪽에 있는 악마를 가리켰다.

- 내가 대화를 원한다고 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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