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속성 (1)
* * *
집으로 돌아가는 차량에 올라탄 병사들의 얼굴에서는 한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꼬박 24시간 가까이 깨어있었음에도 피로한 기색 하나 없이 밝기만 했다.
첫째로는 당연히 베이징 일대를 지옥으로 만든 용을 처치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 돌아가면 맛있는 거 주겠지? -
- 당연하지, 그런 엄청난 괴물을 잡았는데. -
- 그건 사실 진 대형이랑 그 동료분들이 잡은 거 아니야? -
-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그래도 진 대형이 우릴 굶기기야 하겠냐 이거야. -
바로 승리 후에 기다릴 맛있는 식사 때문이었다.
이제 그들은 한국인들 못지않게 먹는 것에 진심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싸운다, 이긴다, 먹는다’가 순서였다면, 이제는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싸워서 이긴다’로 앞뒤가 바뀌어 있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스운 일이었지만, 마음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 그런데, 안 자냐? -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무심코 질문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 답이 돌아왔다.
- 두근거려서 잘 수가 없어. -
- 먹을 것 때문에? -
눈을 마주친 병사들은 미친 사람처럼 킥킥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 큭큭! -
- 미친놈들······. -
- 그러는 너는 왜 안 자고 뻗대고 있는데? -
- 그야 너희랑 같지. -
한때는 능력치와 먹을 것, 온갖 것을 두고 경쟁하던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기보다 먼저 능력치를 챙길까 노심초사하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어쩌면 밥이 맛있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들의 머리를 스쳤다.
함께 사선을 넘고,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고작 그것만으로도 이 지랄 맞은 세상이 조금은 더 살만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이제는 그들도 알고 있었다.
* * *
이후 연합군은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톈진으로, 톈진을 거쳐 임시 보급기지인 라오팅 현으로 향했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태양이 떠올라 있었다.
“자, 다들 빨리 빨리 내리자고!”
아재가 밝은 목소리로 신호를 보내자, 차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승리의 기쁨에 취해 졸린 줄도 모르고 떠들어대던 병사들이 하나둘 햇살 아래로 걸어 나왔다.
“오늘은 또 뭐가 나오려나.”
“그러게, 난 베이징덕 한 번 더 먹고 싶은데.”
“난 꿔바로우 먹고 싶다, 꿔바로우.”
“훠궈!”
“훠궈!”
“전 양장피가 입에 맞던데요.”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저마다 먹고 싶은 것을 입에 올리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대식이 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 어딘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전해지는 숯불 향기와 마을 가득 피어오르는 연기.
‘구이인가······.’
모르기는 몰라도, 오늘의 요리는 구이 종류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 자, 그럼 대충이라도 몸 좀 씻고 오게. 곧 있으면 요리가 완성될 것 같으니 말이야. -
답지 않게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대식의 곁에 서있던 진스이가 픽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풀 죽은 강아지처럼 늘 대식의 눈치를 살피며 노심초사하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그 태도에, 대식은 약간의 흥미를 느꼈다.
“그렇게 맛있는 겁니까?”
대식의 짤막한 질문에, 진스이의 얼굴에는 약간의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미소가 걸렸다.
- 황제의 연회에 올라가던 요리이자, 중국이 자랑하는 팔진(八珍 : 여덟 가지 진귀한 음식)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음식이지. -
말을 마친 진스이는 대식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용을 해치운 영웅 대신 검은 안개만이 남아있었다.
“형님! 혼자 가시는 게 어딨습니까!”
“자, 우리도 빨리 빨리 밥 먹을 준비하자고!”
“우와아아, 대식 씨를 따르라!”
뒤이어 대식과 같은 차에 타고 있던 그의 동료들이 우르르 샤워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진스이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뛰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뭐, 뭔가 맛있는 게 나오는 모양이군! -
- 진 대형이 뛰고 있다! 분명 굉장한 게 나올 거야! -
- 뭣들 해, 빨리 빨리 가자고! -
한국인들의 함성 소리에 이어, 중국어로 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윙윙대며 울렸다.
* * *
샤워장을 나선 대식은 홀린 듯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몸을 끈적하고 뒤덮고 있던 용의 체액을 말끔하게 닦고 나니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냄새가 더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숯불 냄새, 고기 냄새, 그리고 약간의 신내와 단내.
‘대체 뭘 만드는 거지?’
한국에서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독특한 향취에, 긴 싸움으로 텅텅 비워진 그의 위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역시 형님은 빠르시군요.”
“허허, 그러게 말이여.”
빠른 속도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지혁과 아재가 얼른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오른팔과 왼팔을 대동한 대식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얼른 식당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어서 그의 동료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가 나오려나?”
“무슨 숯불 냄새가 나던데.”
“향신료 냄새는 그렇게 심하지 않던데요?”
민호와 형섭, 윤호가 하나둘 입을 열어 오늘의 요리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굶주린 아기새들의 기대감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 끼익.
식당의 문이 열리며 새하얀 조리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커다란 쟁반이 올려진 카트를 밀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우, 우와아.”
“이야!”
마침내 오늘의 메인 메뉴를 확인한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이 흘러나왔다.
티끌 하나 없는 것을 넘어 얼굴이 비출 것처럼 새하얗게 닦인 쟁반 위에는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몸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새끼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올려져 있었다.
돼지의 몸 아래에는 고기의 색과 대비되는 푸른색과 붉은 색의 야채가 보기 좋게 깔려 있었다.
- 카오루주. 중국이 자랑하는 팔진 중 하나이자, 황제의 식탁에도 올랐다고 하는 진미 중 하나네. -
비장의 무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진스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메뉴를 소개했다.
“으음······. 확실히 카오루주면 자신이 있을 만하네요.”
그 요리의 맛을 증명이라도 하듯, 식신의 왼팔이자 요리 전문 설명봇이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평소 요리를 앞에 두고도 비교적 점잖은 태도를 유지하던 아재마저 평정심을 잃고 연신 마른침을 삼켜대고 있었다.
- 바삭!
그때, 도저히 고기에서 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대식의 귀를 잡아끌었다.
“와.”
“뭐야?”
“고기에서 왜 이런 소리가 나?”
주방장이 솜씨 좋게 통돼지를 슥슥 썰어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주방장의 칼이 돼지의 몸을 먹기 좋게 자를 때마다, 마치 얇은 과자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식탁 위에 울려퍼졌다.
그 낯설고 이채로운 효과음만으로도 식욕이 몇 배는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 자, 먹어보게. -
이어서 진스이가 호방하기 짝이 없는 기세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린 돼지고기와 소스 몇 가지를 내밀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먹어보지 못했던 신기한 요리를 마주한 식신의 손끝이 흥분과 기대로 가느다랗게 떨렸다.
그리고 마침내, 호박색을 띤 돼지고기 한 점이 그의 입으로 들어갔다.
- 바삭.
껍질과 붙어있는 고기를 한입 씹는 순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입안에 들어있는 것이 정말로 돼지껍질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바삭한 식감.
밀가루나 다른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튀김과는 다른, 마치 돼지껍질로 만든 과자같은 식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자나 다른 튀김처럼 침을 머금은 채 눅눅하게 변해 입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부서져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
대식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입안에 든 음식의 맛을 음미했다.
약간의 산미와 단맛이 함께 느껴지는 소스의 맛, 바삭한 돼지껍질의 맛, 그리고 이어지는 담백한 살코기의 맛.
숯불에 정성껏 구워 기름이 쫙 빠진 고기는 기름기 하나 없이 담백하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은 바삭한 껍질과 대비되어 몇 배는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또 반대로, 고기의 부드러운 식감이 바삭하고 살짝 기름진 껍질의 맛을 몇 배나 끌어 올려 주었다.
팔진이니 황제의 상에 올라가던 요리라느니 하는 거창한 소개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는, 실로 절묘한 맛이었다.
“마, 맛이 어때요?”
“어떻습니까?”
“맛있습니까?”
감탄사조차 흘리지 못하고 홀린 듯 입안의 음식에 집중하는 대식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시식평을 요구했다.
“이건······.”
잠시 고민하던 대식은 짤막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냥 드셔보셔야 알 거 같습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사방에서 젓가락이 날아들었다.
“우, 우와······.”
“이게 뭐야?”
“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워요?”
“이거 껍질 진짜 맛있다.”
어떤 고기 요리와도 다른 독특한 식감과 풍미에 반한 ‘식신 원정대’는 앞다투어 젓가락을 움직이며 주린 배를 채웠다.
“형님.”
그때, 느긋하게 카오루주 한점을 맛 본 지혁이 대식의 앞에 작은 접시 하나를 밀어주었다.
“이거 설탕 찍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는 지혁의 프로정신(?)에, 대식은 감탄한 듯 침음을 흘리며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 * *
한편, 식당 밖에서는 또다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 카오루주다! -
- 우와아아아! -
한국인들과는 달리 카오루주의 맛을 아는 중국인들은 한바탕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본래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라고, 중국인들에게 카오루주는 그리 낯선 음식이 아니었으니까.
- 자, 식사 전에 진 대형에게 감사 인사! -
- 감사합니다! -
- 감사합니다! -
이어서 몇몇 중국인들이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남동쪽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것은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일종의 식사 예절이었다.
- 우와아아······. -
- 크으, 안 자길 잘했다! -
- 맛있다, 맛있어! -
- 야, 천천히 먹어! -
맛있는 음식이 목구멍을 지나 위장으로 들어가자, 간밤의 사투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온몸에서 기운이 샘솟았다.
그것은 단순히 ‘회식’ 스킬의 효과 때문은 아니었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이제는 정말로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느끼는 사소한 행복.
앞으로는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먼 훗날, 함께 사선을 넘나들며 괴물들을 물리치던 동료들을 만나 술 한잔 걸치며 그때의 영웅담을 떠들어 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 모든 생각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들의 마음에서 먹구름을 걷어냈다.
* * *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승전 기념 만찬이 끝난 뒤, 진스이가 조심스럽게 대식에게 다가왔다.
- 어때? 음식은 마음에 들었나? -
“최고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스이의 질문에, 대식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꾸벅 고개를 숙였다.
- 흠, 흠, 그렇다니 다행이군. -
원하던 답을 들은 진스이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그 태도에, 대식은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던졌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상대가 이미 자신의 속내를 읽고 있음을 알아차린 진스이는 민망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으음······.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
“뭐가 말입니까?”
- 베이징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정말로 다 죽었다고 생각하나? -
이어지는 진스이의 물음에, 흡족한 표정으로 배를 두드리고 있던 대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 그거야 모르죠.”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대식이 다시 입을 뗐다.
“하지만 살아있다고 해도, 그 사람들과 만나는 게 장군님에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