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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첫날 아포칼립스가 열렸다-493화 (493/508)

민병대 (3)

사냥감의 위치를 전달받은 괴물 사냥꾼은 대검을 든 채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마치 텅 빈 들판을 걸어가는 듯 여유로운 그 걸음걸이에, 신나게 총을 쏴대던 텍사스 카우보이들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잘못 본 건 아닌가 의심했다.

“헤이, 킴! 지금 뭐 하는 거야!”

“젠장,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빌리를 비롯한 몇몇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삐를 낚아챘다.

갑자기 나타난 이 아시안들의 실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국 인간이 아니던가.

그들의 눈에 지금 대식의 행동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뭐 해, 빨리 저 아시안을 엄호하라고!”

하지만 그들이 막 돌진하려던 찰나······.

-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검붉은 화염이 폭발했다.

“끼, 끼이이익!”

“크르륵······.”

새빨간 불꽃에 집어삼켜진 괴물들은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 쓰러졌다.

대식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들 사이를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갓······.”

“젠장, 저게 뭐야!”

“이봐, 빌리!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을 데리고 온 거야!”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카우보이들은 총을 쏘는 것마저 잊은 채 멍하니 대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체불명의 동양인이 자신의 키만 한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변이체들의 사지가 허공으로 튀어 오르고,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콰득!

이어서 대식이 가볍게 왼손을 휘둘러 그를 향해 달려들던 변이체의 머리를 박살냈다.

썩은 내를 풍기는 괴물들은 쉴 새 없이 대식을 향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대식은 물러서기는커녕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그 괴물들을 짓이기고 찢어발겼다.

“저, 저게 대체 뭐야.”

샷건을 든 빌리의 손끝이 흥분과 경악, 공포로 덜덜 떨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정체불명의 아시안은,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존재였다.

아니, 저런 일이 가능한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저 아시안은 인간도 괴물도 초월한 ‘무언가’였다.

“가, 가라!”

“우와아아아!”

“죽여!”

대식의 활약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카우보이들은 변이체와 자신들 중 누가 더 목청이 큰지 겨뤄보기라도 하려는 듯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흐음······.”

그때, 잔뜩 상기된 카우보이들을 바라보던 아재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탐색조 사람들을 돌아봤다.

“다들 뭐 혀? 대장이 저렇게 불을 지르고 다니는디, 우리가 기름이라도 한번 부어줘야 하지 않겄어?”

대식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오른팔인 자신의 할 일은 분명했다.

대장이 피운 불 위에, 화끈하게 기름을 부어주는 것 말이다.

“가죠.”

아재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열의 선두에 서있던 민호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튀어나가며 환도를 휘둘렀다.

- 서걱!

이어서 은회색의 칼날이 섬뜩한 호를 그리며 그보다 머리 두 개는 큰 변이체의 팔뚝이 단칼에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한번 검광이 번득이자, 이번에는 날카로운 이를 번득이며 괴성을 내지르던 괴물의 머리가 날아갔다.

“!”

“뭐, 뭐야!”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칼춤에, 시대가 어느 때인데 검을 들고 다니냐고 떠들어댔던 거구의 백인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이, 대럴······. 너 괜찮겠냐?”

대럴의 곁에 서있던 민머리의 백인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뭐, 뭐가?”

무언가를 떠올린 대럴이 식은땀을 흘리며 되물었다.

“저 사무라이, 지금 널 쳐다보고 있다고. 아까 전에 네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은데?”

민머리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민호는 대럴을 빤히 바라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 음······.”

민호와 눈이 마주친 대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사이에도 민호는 세 마리나 되는 변이체의 머리를 날려버렸고, 거인으로 변한 형섭이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며 변이체들을 짓뭉갰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차분하게 방패를 앞세워 전진하던 거대한 방벽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변이체 군단을 짓밟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되자, 화약 냄새 대신 순도 100퍼센트의 마초 향기를 뿌리며 총질을 해대던 카우보이들은 더 이상 환호성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이 아시안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없어도 이곳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자신들이 없었다면 더 빨리 변이체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들이 방진을 유지하며 천천히 나아갔던 건, 그저 자신들과 보조를 맞춰주기 위해서였던 게 분명했다.

“자, 잠깐!”

그때, 저 멀리서 붉은 색의 빛이 터져나왔다.

이미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전진한 대식이 걸어간, 바로 그 방향이었다.

“제기랄! 킹이야, 어서 그 아시안 몬스터를 도우러 가야 해!”

그 빛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빌리가 잽싸게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외쳤다.

확실히 킴은 괴물이었다.

본 적이 없는 게 아니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수준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킹’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뭣들 해! 가만히 구경만 할 거야?”

이어서 기병대 중 몇몇이 빌리의 뒤를 따라 말을 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타고 있던 말이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붉은 빛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리고는 반대편에서 커다란 괴물의 머리통을 손에 든 검은 그림자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 툭.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빌리의 눈앞으로 악마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끝났습니다, 뒷정리만 확실히 하세요.”

눈 깜짝할 새에 킹의 목을 따 온 아시안 몬스터는 육포를 질겅거리며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

마치 집 안에 들어온 벌레 한 마리를 때려잡은 것처럼 무심한 모습이었다.

* * *

“푸하하! 민호 형님, 생각보다 소심하신데요?”

전투를 끝마친 뒤, 잔뜩 신이 난 지혁은 고개까지 젖혀가며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그거, 칼 쓴다고 야만인 취급해서 그런 거죠?”

“뭐가.”

“에이, 아까 분명 이런 시대에 어쩌고 했던 백인 쳐다보면서 협박하셨잖아요.”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그럼요?”

“사무라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 거야.”

“그거나 그거나 아닙니까?”

“다르지. 난 한국 전통 검술 연구하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사무라이라니.”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민호를 바라봤다.

“진짜요?”

“제가 말 안했습니까?”

“안 했어요.”

“······. 하여간, 전 사무라이라고 부르는 거 되게 싫어합니다.”

한편, 전투가 시작될 때만 해도 잔뜩 기세가 올라있던 민병대의 대원들은 잔뜩 기가 죽어 조용히 한국인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는 핏불이었다면, 지금은 리트리버처럼 순한 대형견으로 변한 느낌이랄까.

“너무 기를 죽이신 것 같은데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식이 피식 웃으며 농을 던지자, 아재는 살짝 입술을 내밀며 툴툴거렸다.

“아이고, 억울혀라. 우리 대장님이 기강을 좀 잡으려는 것 같아서 도와준 건디,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여? 알겄어, 앞으로는 시키는 일만 딱딱 해야겠구먼.”

아재의 천연덕스러운 되치기에, 대식은 못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뭐라고 하긴요. 잘하셨습니다.”

조금 기가 죽은 거야 조만간 회복될 테니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이렇게 풀이 죽어있는 게 너무 기가 살아 날뛰는 것보다는 몇 배는 더 나았다.

어찌 됐든 이 민병대의 구성원들은 자국의 중장에게도 이빨을 드러낼 만큼 거친 성품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런 혈기 왕성한 조직을 다스릴 때는 확실하게 위아래를 정해두지 않으면 언젠가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깁슨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와의 관계가 안 좋은 방향으로 풀린다면 천 이상의 아군을 얻은 셈이고, 좋은 방향으로 풀린다면 민병대를 확실히 휘어잡은 건 그 자체로 통솔력을 입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자, 그럼 이제 항아리 안에 든 게 똥인지 된장인지 한번 확인해봐야겠구먼?”

아재의 의미심장한 한마디에, 대식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답을 내놓았다.

“항아리 안에 똥을 넣는 놈이 있으면 죽여버려야죠. 항아리는 신성한 겁니다.”

“푸하하! 그려, 그려! 그건 그렇구먼. 내가 비유를 잘못혔어!”

* * *

- 칙, 치이익.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깁슨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여기는 고기 러버. 상황 종료됐습니다. 전사자 0명, 앨버커키 인근의 변이체는 전멸. 곧 포트 후드로 돌아가겠습니다.”

“음, 수고했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포드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식의 말을 깁슨에게 전달했다.

이에 깁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목에 찬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기쁨도, 당혹감도, 놀람도 아니었다.

‘정말인가?’

의심.

하루는커녕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작전을 끝마쳤다는 사실에, 놀라움보다는 의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왜? 의심스럽나?”

깁슨의 그 반응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린 포드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감시 병력이라도 좀 딸려보내지 그랬나.”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조금이라도 병력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고. 저희는 이미 충분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포드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깁슨의 안색을 살폈다.

결과를 의심하기는 하지만, 당황하거나 겁을 먹지는 않는다.

정말로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놈이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 수는 없었다.

‘흐음······.’

이어서 그는 가볍게 앞쪽으로 몸을 숙이며 다시 한번 깁슨의 속내를 떠보았다.

“자네, 정말 아무런 흑심도 없는 건가?”

“미합중국 중장의 명예를 걸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럼 전과를 확인하면, 우리를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이어지는 포드의 질문에, 깁슨은 기계처럼 무뚝뚝한 말투로 답을 내놓았다.

“물론입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기에는 지나치게 단호하고 강직한 태도.

깁슨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 사내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텍사스를 남부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자원을 비축해 온 것이다.

‘그건 그거대로 대단하군.’

포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겁쟁이니 반역자니 하는 비난과 오명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이 정한 방침을 지켜나가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반대파를 힘으로 찍어누르지 않고 그 비난을 묵묵히 견뎌 나가는 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나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뭐, 그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지.’

이제 와서 그런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고 들기보다는 이 기지에서 얻을 수 있는 걸 모두 얻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이 포드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깁슨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입에 올렸다.

“장군님과 함께 온 그 아시안들의 보고가 사실이라는 게 확인된다면, 저는 옷을 벗겠습니다.”

“뭐······ 뭐라고?”

“장군님과 함께 온 그 아시안들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저는 옷을 벗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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