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53화
대다수의 기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맙소사.”
“……정말로 백호가 누리를 이겼다고?”
세간에서는 송승준을 ‘황태자’라고 칭해주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이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송승준은 루키들 간의 경쟁에서 항시 부동의 1위를 지켜내며, 흔히들 말하는 로열로드를 걷고 있는 헌터였다.
그런 송승준이 불과 며칠 전에 출전을 선언한 백호의 루키, 이성준에게 패배했다.
‘혹시……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몇몇 기자들은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스스로의 볼을 꼬집기 시작한다.
허나 이건 명백한 현실, 부여잡고 있는 볼에서부터 알싸한 고통이 전해진다.
자연스레 기자들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백, 백호가 누리를 이겼다니.”
“송승준 헌터가 1등을 빼앗기는 날이 올 줄이야…….”
백호의 이성준에게 왕좌를 빼앗긴 송승준,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허나 이번 레이드 게이트에서 일어난 사건은 송승준의 패배뿐만이 아니었다.
앞선 인터뷰에서 송승준은 게이트 내에서 사상자가 나왔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다는 건.
기자들이 조심스레 시선을 옮기며 레이드 게이트의 입구를 바라본다.
우웅-!
그 순간, 붉은빛을 토해내던 게이트의 색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갈라져 있던 균열이 자취를 감춘다.
바로 뒤편에 환성의 길드 마스터인 김동현이 있기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허나 두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작금의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꿀꺽-!
기자들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삼켜진다.
‘환성의 루키, 이동주가 죽었고, 송승준의 로열로더가 무너졌다!’
특종! 그것도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와 신문의 1면에 대서특필할 수 있는 대박 특종이 두 개나 생겼다는 것이다.
두 눈을 빛낸 기자들은 한시라도 빠르게 이 소식을 회사에 알리기 위해 스마트 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새하얀 빛 무리에 휘감긴 채로 레이드 게이트의 바깥으로 나온 이성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들어갈 때보다 더 많아졌군.’
어림잡아도 수백에 달하는 기자들이 레이드 게이트의 입구를 둘러싸고 있었다.
단순히 숫자만 많아진 것도 아니었다.
“수개월을 준비한 다른 길드들의 루키와 달리 레이드 게이트 출전 이틀 전, 갑작스레 출전을 선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하셨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
“어떤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고, 무슨 방법으로 사냥을 하신 건가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등을 차지하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환성 길드의 이동주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죠?”
레이드 게이트에서 1위를 차지한 만큼, 기자들의 관심들이 쏠리다 못해,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길이라 할 수 있는 곳들이 전부 기자들로 인해 가로막혔고, 사방에서 질문과 플래시 세례가 쏟아져 온다.
그리 유쾌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눈앞의 기자들이 아니었다.
후웅-!
허공을 내질러 온 환성 길드의 마스터, 김동현이 얼굴을 굳힌 채로 이성준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성준 헌터,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뱀, 그것도 아주 지독한 극독을 품은 독사와 같은 기세다.
은원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가급적이면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헌데 김동현은 결단코 좋다고 볼 수 없는 관계를 가진 환성의 길드 마스터다.
이성준이 곧장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표출해냈다.
“피곤한 상태인지라, 저 말고 다른 헌터들에게 질문해주시죠.”
나름 그럴싸한 핑계를 둘러댄 후, 걸음을 옮기려 했다.
허나 김동현은 이성준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곧장 옆으로 걸음을 옮긴 김동현이 이성준의 앞길을 막아선다.
“뭐하는 거지?”
잔뜩 날이 선 이성준의 반응에도 김동현은 여전히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레이드 게이트에서 우리 환성의 루키인 이동주가 죽었어, 길드의 마스터인 내가 몇 가지 물어볼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위아래로 핥아내는 입술, 가늘어진 눈매.
흡사,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모습이다, 단언하건데 절대 단순한 질문을 던질 리가 없었다.
꼬투리를 잡아내고, 이동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 분명했다.
‘나름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같다만…….’
김동현이 바라던 상황은 결단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냉담한 시선을 한 이성준의 눈동자가 김동현을 응시한다.
“분명 거절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환성은 백호가 우스워 보이나 보군.”
SS랭크 이상의 헌터들, 압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확연하게 존재감이 감지된다.
지금 이 자리에 와있는 마스터는 김동현뿐만이 아니다, 5대 길드의 마스터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 말은 즉, 백호의 길드 마스터인 오경현 또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이었다.
말을 내뱉은 이성준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흐르고 있던 순간이었다.
“백호 길드의 마스터로서 이건 그냥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군.”
어느새, 이성준의 등 뒤로 다가온 오경현이 표정을 굳힌 채로 김동현을 바라본다.
“김동현, 자네에게 정식으로 묻겠네, 환성은 우리 백호가 우스워 보이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은 오경현이 날카로운 기세를 김동현에게로 쏘아낸다.
당연하지만, 근거 없는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오경현은 SS랭크의 헌터인 김동현보다 한 단계 높은 SS+랭크의 헌터다, 명확한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 자리에서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는 말이었다.
자연스레 김동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빌어먹을!’
그렇지 않아도 그림자 형제의 살인 교사 건으로 인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헌데 길드의 미래라 할 수 있는 루키, 이동주가 레이드 게이트에서 죽음을 맞이해버렸다.
당장 내일 장이 열리게 되면 환성 길드의 주가가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5대 길드에서 환성이라는 이름이 쫓겨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곧, 명예 그룹의 후계 싸움에서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성준에게 책임 소재를 떠넘기는 것으로 이슈를 만들어내어 환성에 대한 이야기기 나오지 않게 하여 피해를 최소화시키려 했다.
얼핏 보자면,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허나 후계 싸움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급함을 느낀 상태라, 일순간 시야가 좁아졌고 이성준이 백호 길드에 소속되어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망각해버렸다.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다니.’
불행 중 다행히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아니다, 다소 자존심이 상하고 꼴사나운 모습이 되긴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수습을 해낼 수 있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어 낸, 김동현이 고개를 숙인다.
“……백호 길드에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 환성의 길드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나머지 순간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번 일은 이성준 헌터가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공식적으로 다시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사과를 건네 온 만큼, 오경현은 쏘아내던 기세를 거두어낸다.
허나 그렇다고 김동현을 용서해준 것은 아니었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오경현의 입에서 엄중한 경고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그냥 말로 넘어가지만, 또다시 우리 이성준 헌터를 함부로 대하려 한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니, 명심하는 게 좋을 걸세.”
빈말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오경현은 절대 허투루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 번에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오경현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보복을 가해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주억이는 김동현으로부터 확답을 받아낸, 오경현이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백호 길드의 헌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삽시간에 근방에 있던 기자들을 몰아내고, 일(一)자의 길을 만들어 낸 백호 길드의 헌터들이 오경현과 이성준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성준은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며, 백호 길드가 대기시켜 놓은 차량에 몸을 실었다.
* * *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레이드 게이트와 관련된 이야기들로 언론과 매스컴이 난리가 났다.
[백호 길드의 루키, 이성준 헌터. 레이드 게이트에서 1등을 차지하다.]
[이성준 헌터, 그가 떠오르는 샛별이 될 수 있던 이유.]
[백호 앞에 고개 숙인 환성의 마스터, 김동현.]
[루키, 이동주 헌터의 죽음, 환성의 몰락 박차 가하나…….]
[혜성처럼 나타난 슈퍼 루키, 이성준 헌터, ‘황태자’라 불리던 송승준 헌터의 왕좌를 빼앗아내다!]
[이성준 헌터 1위 등극 이후, 백호 길드 주가 급등.]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누리를 꺾어 낸 백호, 예상치 못한 이변이 일어나다!]
누리 길드의 본사, 그중 최상층에 위치한 집무실에 놓인 데스크 탑으로 쏟아지는 기사들을 확인하고 있는 윤민수의 고개가 주억여진다.
“확실히 예상외긴 하구나. 설마 네가 1등을 놓칠 줄이야…….”
말끝을 흐린 윤민수의 시선이 바로 앞, 소파에 앉아 있는 송승준에게로 이동한다.
“이성준 헌터라, 그리 대단한 실력자더냐?”
이미 머릿속으로 확실하게 판단을 끝마친 만큼, 송승준은 망설임 없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었다.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다크엘프들을 인지해내는 날카로운 기감, 은신을 사용한 엘리오루스의 움직임을 추적해내는 기이한 능력, 다채로운 무공 활용도 여태껏 봐왔던 귀환자, 무인들 중에서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사신, 정윤호를 제치고 2등을 차지할 만한 인재입니다.”
1등이 아닌 2등, 당장 발표된 등수와 다소 다른 등수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윤민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인다.
송승준에게 절반의 힘을 숨기라고 조언을 한 것이 바로 본인, 윤민수였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의문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성준 헌터, 어느 정도의 힘을 썼으면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
송승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선뜻 답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앞선 능력이 이성준의 전부였다면, 곧장 대답을 했을 것이다.
‘70퍼센트.’
그 정도의 힘만으로 충분히 승기를 거머쥘 수 있었다.
허나 이성준이 펼친 마지막 공격,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압도적인 일권(一拳)은 실로 훌륭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S+랭크의 헌터들이 펼치는 기술과 맞붙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80퍼센트…… 어쩌면 90퍼센트를 발휘해야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