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64화
믿을 수 없는, 믿기 힘든 현실에 조세혁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회심의 수라 할 수 있었던 방법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당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황하는 시간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타닥.
이성준이 지면을 박차며 다시금 조세혁에게로 달려든다.
일순간, 조세혁의 표정에 초조함과 다급함이 어린다.
머지않은 미래, 자신의 운명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죽는다.’
생명을 가진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열망을 일으켜 낸, 조세혁은 곧장 힘을 이끌어낸다.
콰과광-!
천년빙조를 이용해 얼음의 기둥들을 일으켜 내며 몸을 지켜내려 했지만, 태선질주를 펼치며 달려드는 이성준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솟구치는 얼음들을 모조리 강력한 풍압으로 부숴낸 후, 꽈악- 말아 쥔 주먹을 내뻗는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조세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끄으읍-!”
고통을 호소하는 조세혁의 신형이 쓰러지려 한다.
허나 그마저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성준의 무릎이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조세혁의 턱 아래를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쾅-!
쓰러지던 육체가 다시 한번 하늘로 치솟아 오르더니,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기막에 처박히며 큰 충격이 일어났다.
동공에 초점이 사라진 조세혁의 육체가 실 풀린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진다.
이성준은 그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SS랭크라고 해서 나름 기대를 했는데…… 시시하군.”
고개를 내저은 이성준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바닥에 널브러진 조세혁의 신형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던 순간이었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읊조리고 있는 조세혁의 두 눈동자에는 광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욕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
예상치 못한 변수, 압도적인 격차가 있는 만큼 납득할 만한 패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루키라 불리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
루키 학살자라 불리는 자신을 꺾어낸 루키, 분명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며 명성과 이름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드높은 명예와 성공을 거머쥘 거라는 말이었다.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당연히, 아무런 이유 없이 루키들만을 사냥해온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루키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헌터도 되지 못한, 벌레와 같은 인간을 죽였다는 것으로 사신 길드에서 루키라 촉망받던 본인, 조세혁이라는 인재에게 죗값을 물으려 한 과거의 과오를 뼈저리게 느끼며 사과를 건네 올 테니 말이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 어떤 루키도 성공을 이뤄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내야 한다.
아니, 막아낼 것이다.
설사 몸이 부스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으아아아-!”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른 조세혁은 강제로 몸을 일으켜 낸다.
앞선, 교전들로 확연한 차이를 느낀 만큼 승산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꿈을 이뤄 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쿠구구구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얼음의 기둥들이 계속해서 솟구친다.
이미 공멸을 선택한 만큼 스스로의 안위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좁은 공간 내에서는 스스로조차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봉인해두었던 천년빙조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천년빙조, 필살기(必殺技), 절대영도(絶對零度).’
콰드드드득-!
흙바닥, 널브러진 공사자재들과 쓰레기 같은 물건이나 지형들만 얼어가는 게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사용자라 할 수 있는 본인, 조세혁의 육신조차도 차갑게 얼어붙어가며 피부가 파랗게 괴사해나가고 있었다.
허나 조세혁은 천년빙조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
“이성준, 나와 함께 이곳에서 공멸(共滅)하자!”
슈퍼 루키, 아니 괴물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이성준과 함께 죽는다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조세혁이라는 인물을 적으로 돌려 낸 지난날에 내린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말이다.
비록 살아서 사과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죽어서라도 삶의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의 숙원을 위해서 이곳에서 쓰러지는 것이다!”
제 목숨마저 내던질 정도의 광기를 피워 낸 조세혁이 천년빙조의 궁극기, 절대영도의 힘을 구속연무장 내부에 퍼뜨린 순간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이성준의 눈매가 낮게 가라앉는다.
“……마지막까지 실망을 시키는군.”
비록, 조세혁에게 어떠한 사연과 꿈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숙원, 꿈이라 할 수 있는 일을 위해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 죽여 왔다는 것은 확실했다.
미쳐버린 광인(修羅)에 불과하다는 거였다,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행위를 보이는 조세혁의 모습에 역겨운 감정을 느낀 이성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네놈의 그 꿈, 절대 이루어지지 않게 해주마.”
두 눈을 가늘게 뜬 이성준이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는 순간, 갈무리해놓았던 혈기가 폭발할 듯이 일어나며, 고혹적인 붉은빛이 일대로 퍼져나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저 붉은빛에 담겨 있는 힘은 수라(修羅)와 같은 존재, 혈마가 다루는 파괴적인 힘이었다.
그 파괴적인 힘의 중심에 서 있던 이성준이 활짝- 펼친 오른팔을 앞으로 내뻗는다, 그러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혈기들이 준동하기 시작한다.
쿠궁-!
짧지만 강렬한,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혈기들이 허공에 모여들여 자그마한 구체를 이루어낸다.
작고 평범해 보이는 붉은 구체, 그 안에는 혈마이자 마신이라 칭송받았던 수라의 힘이 담겨 있었다.
압도적인 힘의 응집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 위력은 이성준이 현재 펼칠 수 있는 최고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 능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애송이 따위가 받아낼 수 없는 힘이란 말이었다.
‘만상혈마해(萬狀血魔解), 제1식 혈천연무강(血天演武强).’
전력, 모든 것을 풀어 헤쳐 낸 혈마의 무공.
그중에서도 첫 번째 초식, 피의 하늘을 열어내는 초식이 완성되는 순간, 허공에 떠있던 붉은 구체가 폭사한다.
콰과광-!
요란한 폭음과 함께 붉은빛으로 세상을 가득 매우는 순간, 모든 것을 얼려내고 있던 절대영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얼음 기둥들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바스러진다.
아니, 비단 절대영도뿐만이 아니었다.
혈천연무강에 영향 내에 있던 구속연무장도 무사할 수 없었다.
일대를 감싸고 있던 기막들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가더니, 삽시간에 연무장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형태를 잃어간다.
쿠구구궁-!
당연하지만, 혈천연무강을 정면으로 받아 낸 조세혁의 몸이 온전할 리가 만무했다.
“꺼어억-!”
전신에 두르고 있던 천년빙조의 얼음들로 인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몸 상태는 바람 앞에 등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 위치에 끼워져 있는 뼈를 찾아내는 것이 힘들 정도로, 사지가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었다.
이는 곧, 싸움에 승자가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 * *
에에에에에-!
비상 사이렌을 울려대던 수십 대의 차량이 폐공장의 주변에서 일제히 멈춰 서며 경무대원들이 일제히 하차한다.
SS랭크의 빌런인 조세혁을 체포하고 이성준 헌터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급히 움직이며 접근을 해내야 하였지만 상황이 녹록치가 않았다.
쿠구궁-!
괴물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거대한 두 기운이 목표지라 할 수 있는 폐공사장에서 맞부딪히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홍민기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솟구친 얼음 기둥, 조세혁이라는 빌런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던 만큼 크게 당황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뒤이어 뿜어져 나오고 있는 붉은 기운이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서는 최소 SS랭크 이상의 강자다.’
5대 길드의 마스터들과 필적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세간에 이름을 날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지금 일대로 퍼져 나가고 있는 붉은 기운은 난생처음 마주하는 힘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자의 갑작스런 출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실 거죠?”
옆에서 들려오는 조강현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일대에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에서 과거, 최강이라 불리었던 협회장님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정말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힘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 붉은 기운의 주인이 해외에서 밀입국해온 빌런이라면……?’
꿀꺽-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 밀려오는 긴장감에 목울대로 마른침이 삼켜질 정도인 만큼 결과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하지만 경무대원이기에 눈앞에 벌어진 상황, 정체 모를 강자의 정체를 확인해내야 한다.
“내부로 진입한다, 단 교전은 최대한 회피하며, 조세혁과 교전 중인 정체불명의 강자의 정체 확인과 이성준 헌터의 신병 확보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홍민기가 지시에 따라 경무대원들이 일제히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는 공사장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순간.
“이, 이건 대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경무대원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춰 선다.
“뭐하는 거야?!”
갑작스레 멈춰 버린 경무대원들의 모습에 홍민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선두를 향하여 걸음을 내딛는다.
직후, 홍민기는 경무대원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쿠구구궁-!
당연히 패배했을 것이라는 이성준이 두 발로 서 있는 것도 모자라, 그의 주변에 휘감겨 있던 고혹적인 붉은빛이 폭사하며 조세혁의 얼음들과 함께 투명한 기막이 형성되어있던, 구속연무장을 무너뜨려 버리고 있었다.
“맙소사…… 조세혁이 졌다고?”
조세혁이 누구란 말인가?
루키 학살자라는 이명을 가진 SS랭크의 빌런이다.
심지어 보유한 고유 스킬들조차도 성장을 마치지 못한 루키를 사냥하기에 최적화된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조세혁이 불과 며칠 전, 루키의 자리에 오른 이성준에게 패배한 것이다.
“말도 안 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두 눈을 비벼보았지만, 널브러진 조세혁과 고고히 서 있는 이성준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슈퍼 루키 이성준이 루키 학살자 조세혁을 이겼다.’
심지어 단순한 승리도 아니었다.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던 만큼, 폐공사장에 도착한 직후부터 붉은 기운에 대해서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경무대원들에게 최대한 교전을 피하라고 당부를 했을 정도.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 이성준 헌터뿐이었다.
‘그렇다는 건…….’
홍민기가 조심스레 시선을 흘기며 주변의 붉은 기운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휘익-!
허공을 유영하고 있던 붉은 기운들이 이성준의 가벼운 손짓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