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마신은 만렙 플레이어-92화 (92/185)

제92화

92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이성준의 정보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고, 파악해 낸 만큼 상황 자체는 좋다고 볼 수 있었다.

허나 치솟았던 짜증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 그딴 연유들로 나와 소수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 버러지들을 용서해주라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 소수문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무능함을 보인 버러지들은 반드시 처단해내야지요, 허나 지금은 목적을 원활하게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미루자는 뜻일 뿐입니다.”

“…….”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로 고민을 이어나가던 강이령이 고개를 주억여 낸다.

“좋아, 샤오잔 네 의견을 받아들여 줄게, 단 이후 내려질 형벌에 대해서는 오롯이 내가 결정할 거야.”

강이령이 통보와 같은 말을 내뱉은 때였다.

때마침 TV 화면 속, 류자서의 신형이 쓰러진다.

마지막 다섯 번째 주자, 강이령의 차례가 왔다는 말이었다.

* * *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연승을 이어갑니다! 정말 압도적인 차이! 이성준 헌터가 소수문의 헌터들을 말 그대로 압도해내고 있습니다!

연이은 승리의 기쁨에 취한 것인지, 사회자의 목소리에는 흥분한 기색이 다분했다.

아니, 비단 사회자뿐만이 아니었다.

비무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도 들뜬 숨을 내쉬며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연무장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성준의 두 눈은 오히려 더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터벅. 터벅.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무장 위에 올라서고 있는 다섯 번째 주자이자 소수문의 문주, 강이령은 앞선 조무래기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느껴지는 기세부터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뿐더러, 내공 또한 제법 훌륭히 갈무리되어 있었다.

‘……나름 한 문파의 문주라는 건가.’

앞서 쓰러뜨린 네 명의 간부들이 합공을 펼친다고 해도 강이령을 감당해내는 것이 불가능할 거였다.

이성준이 가늘어진 눈매로 강이령을 파악하고 있던 때, 마찬가지로 강이령 또한 눈을 흘기며 이성준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든단 말이지.”

끈적끈적한 목소리를 흘린 강이령이 고개를 내젓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네가 다치게 되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소수문에 들어오면 안 될까? 원한다면 차기 문주로서 공표해 주고, 내 무공들도 모두 전수해 줄 수도 있어, 어때?”

“거절하지.”

단호한 이성준의 거절에 강이령의 미간이 꿈틀- 거린다.

“무작정 콧대만 세우려 하지 말고 신중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인내심이 그렇게 좋지 않거든.”

당연하지만, 이성준의 마음이 변할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성준은 천 대륙의 지배자인 혈마이자 마신으로서 군림해왔을 뿐더러, 선계의 신들마저 두려워했던 지고의 무공들을 알고 있었다.

고작 소수문의 문주라는 직위와 강이령의 무공이 탐이 날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물론, 지난 과거에 대해서 강이령에게 설명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해준다고 해도 믿을 리가 없지.’

아니, 설사 믿어준다 할지라도 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강이령의 두 눈동자에 차오르고 있는 감정들이 상당히 불쾌한 탓이었다.

‘욕심, 아니……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군.’

외교라 할 수 있는 국가 간의 사정과 더불어 소수문의 영입 제의가 있었던 만큼 욕심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후자인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도저히 용납해 줄 수가 없었다.

‘……내버려 둔다면 분명 귀찮은 일을 만들어 낼 거다.’

과거, 천 대륙에서 강이령과 비슷한 성정의 인물들을 보았던 적이 있는 만큼, 이성준은 단박에 그녀의 성격을 파악해낼 수 있었다.

‘광인(狂人).’

두 눈동자에 넘실거리는 욕망과 탐욕, 제멋대로의 성격과 더불어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행동들까지.

눈앞에 있는 강이령은 완벽한 광인이었다.

‘만약 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저 광기의 집착은 곧장 살의로 바뀌게 될 거다.’

지금의 싸움이 단순한 친선 비무가 아닌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생사결(生死結)이 될 것이란 말이었다.

좋지 못한 미래가 그려지는 상황인 만큼, 이성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헛된 욕심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늑대가 개 밑으로 들어갈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다소 퉁명스럽긴 하였으나 어찌 보자면, 충고라 볼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강이령의 눈동자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집착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콧대가 높아도 너무 높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 조금은 교육을 하는 수밖에……. 쯧.”

혀를 찬 강이령이 자세를 다잡아내는 순간, 그녀의 전신에서 푸른빛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모두 네가 자처한 일이니까,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마.”

“원망이라…… 날 죽이기라도 할 생각인가 봐?”

“글쎄. 그건 네가 언제, 무슨 대답을 하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그러니까, 최대한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할 거야, 아무리 아끼는 장난감이라도 고장 나 버리면 버려지기 마련이잖아?”

싸늘한 냉소를 머금은 강이령의 몸에서 흘러나온 포악한 기세가 연무장을 뒤덮어 간다.

그렇게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오려는 압박감들에 이성준은 앞서 예상했던 상황이 현실이 되어 감을 느끼고 있었다.

“…….”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이성준과 강이령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 순간이었다.

후우웅-!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이성준의 모습이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다.

그 순간, 강이령이 몸을 비틀어 내며 주먹을 내지른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내뻗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주먹은 정확하게 이성준의 신형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신공절학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태선질주의 속도를 강이령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허나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싸움을 해온 이성준이 고작 이 정도에 당황을 보일 리가 만무했다.

후웅-!

다시 한번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이성준의 잔상이 흩어진다.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움직임이 강이령을 눈을 희롱해낸다.

허나 강이령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귀여운 재롱이네.”

일순간,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킨 강이령이 허공을 향해 활짝- 펼친 손바닥을 내뻗는다.

콰앙-!

폭음과 함께 일어난 폭발이 등 뒤에서 접근해 오던 이성준을 밀어내는 순간, 강이령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파앗-!

마치 먹이를 노린 뱀처럼 휘어진 강이령의 손길이 이성준의 옷깃을 잡아채려 한다.

이성준이 다급히 허리를 비틀어 내며, 그 손길을 피하려던 순간이었다.

우우웅-

공명음을 토해내고 있는 강이령의 푸른빛 기운이 이성준의 시야를 가득 메운다.

두 눈을 가늘게 뜬 이성준이 발로 땅을 거세게 밟아 내며, 허공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콰과광-!

강이령의 주변으로, 거센 폭발이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연무장의 절반 이상을 뒤덮어낸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폭발력이다.

공중에 떠올랐다고 해서 피해 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단 말이었다.

빠르게 판단을 끝마친, 이성준은 곧장 스킬을 펼쳐낸다.

‘별의 보호.’

허공에 일어난 장막을 확인한 이성준은 재빠르게 그 위에 기막(氣膜)을 덧씌워냈다.

웬만한 절정 무인도 쉽사리 뚫어낼 수 없는 방어막이다.

제아무리 SSS랭크의 헌터인 강이령이 펼친 무공이라 할지라도, 한 점에 응집되어 있는 힘이 아닌 광범위한 폭발이라면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콰과과광-!

실제로도 연무장을 뒤덮었던 폭발은 지축을 뒤흔들 정도의 요란했던 모습과 달리 이성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뒤이어, 연무장을 메우고 있던 자욱한 먼지가 가시며 강이령 또한 이성준의 몸에 이렇다 할 상처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기술, 속도, 힘, 능력 모두 제법이긴 한데…… 너무 뻔해.”

마치 머리 위에 서 있는 것마냥 오만한 시선을 보내오는 강이령의 모습에 이성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재미있네.”

확실히 강이령은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방금 전, 대응은 실로 완벽하다 할 수 있었다.

마치 이어질 공격을 알고 있는 것마냥 움직임을 완벽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나름 철저하게 대비를 해왔나 보네.”

“왜? 이제야 격차가 와 닿아? 그런데 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어.”

말을 내뱉고 있는 강이령의 입이 귀에 찢어지듯이 걸린다.

“너무 많이 건방졌거든. 도저히 그냥 넘어가 줄 수 없는 수준이었단 말이지.”

강이령의 광기 어린 모습에도 이성준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그려진 호선이 더욱더 진해지고 있었다.

“준비된 SSS랭크 헌터라 과연…… 어디까지 받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네.”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흘려 낸 이성준의 몸 주변으로 금빛 기운이 휘감긴다.

띵-!

[사용자 ‘이성준’에게 별의 총애, 대지의 축복, 바람의 비호, 근력, 체력, 민첩 강화를 사용합니다.]

[활성화 스킬, 증폭의 효과로 강화 스킬들의 효과가 50%씩 상승합니다.]

[버프 스킬, 대지의 축복의 효과로 인해 육체의 내구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민첩 스테이터스가 45만큼 상승합니다.]

[힘, 체력 스테이터스가 37씩 상승합니다.]

평소의 강이령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허세라고 치부하며, 코웃음으로 넘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성준은 달랐다.

“무슨……?”

스스로를 단련해온, 무인으로서의 직감이 강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절대 허세 따위가 아니다.’

실제로도 당장 이성준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기세 또한 변해 있었다.

삽시간에 변한 이성준의 모습에 본능적인 위험을 느낀 강이령은 곧장 체내의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내며 방어를 준비한다.

실로 훌륭한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이성준의 신형이 어느새 강이령의 품에 파고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언제?!’

너무나도 재빠른 이성준의 움직임에 일 순간, 강이령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린다.

허나 당황은 잠시뿐이다.

‘단순히 빨라지기만 한 거라면, 문제 될 거 없다.’

싸움이란 것은 오롯이 강한 힘과 빠른 속도로만 승자가 정해지는 게 아니다.

자고로 진정한 무인이라면 다음 수를 내다보아야 할 줄 알아야 한다.

다소 느리더라도 공격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하나하나 살피고 예측해 내는 수 싸움을 벌인다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앞선 친선 비무들을 통해 무공의 사용 방식, 공격 패턴에 대한 파악을 끝마친 자신, 강이령이 이성준의 공격에 당할 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파악해 둔 대로 대응해 낸 후, 곧장 역공을 가해 주마.’

다급하게 손과 발을 놀린 강이령이 쇄도해오는 이성준의 공격들을 막아 내며 거리를 벌리려 한다.

그러나 이성준이 그를 허락해 줄 리가 만무했다.

두 눈을 빛낸 이성준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강이령의 뒤를 따라붙으며 공격을 가해온다.

파바바박-!

연이어진 공방으로 인해 손과 발이 허공에서 얽히는가 싶더니, 이성준의 신형이 갑작스레 시야에서 사라진다.

‘다음은…… 등 뒤!’

재빠르게 몸을 회전시킨 강이령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없어?”

저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음성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때, 옆구리에서 아찔한 고통이 느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