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95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지만, 고태현은 그 감정들을 억지로라도 눌러냈다.
‘……아직은 미래의 이야기다.’
현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란 말이었다.
어떤 변수가 끼어들지 알 수 없었다.
‘특히나…… 중국과 일본 쪽이 이 상황을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리가 없다.’
물밑에서 이성준 헌터에 관한 정보들을 낱낱이 조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들을 건네며 이성준 헌터님을 회유를 하려 하겠지.’
일전처럼 주고받는 거래 관계로는 지금과 같은 우호적인 인연을 지속해나가기 힘들게 될 것이란 말이었다.
‘그들이 함부로 이성준 헌터님을 넘볼 수 없도록 사전에 대비를 해둬야 한다.’
이성준 헌터가 필요로 하고, 바랄 만한 것들을 찾아내어 이루어 놓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한낱 부협회장의 힘으로는 다소 벅찬 일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방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대통령님과 단판을 짓는다면…….’
타국에서 이성준 헌터님을 넘볼 수 없도록 확실하게 대비를 해둘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은 정말 바삐 움직여야겠군.’
그로 인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될 것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꿈에서만 바라던 일들을 현실로 이루어낼 수 있게 될 줄이야…….’
먼 훗날 동아시아의 강자로 도약한 한국의 모습에 고태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 * *
한국과 중국의 친선 비무장, VVIP룸.
그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백무진의 입가에는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크하하! 이성준!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군!”
대나찰, 강이령은 오롯이 스테이터스만으로 SSS랭크에 오른 존재, 반푼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실제로도 SS+랭크에 불과한 자신, 백무진 또한 강이령과 정면 승부를 벌여냈다면 승기를 거머쥐어 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때문에 보물 게이트를 홀로 클리어하고 나온 이성준의 실력이라면 강이령에게 충분히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방금 전, 이성준의 활약은 단순히 승기를 거머쥐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지막에 이성준이 사용한 힘은 틀림없는 강기였다!’
초절정의 고수에 오른 무인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힘을 다뤄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이성준은 초절정의 반열에 오른 고수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예상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군.”
백무진은 가슴 한편에 차오르는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붙어 볼 수 있겠군.”
이성준과의 대련을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자,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쿵! 쿵! 쿵!
이런 흥분을 이끌어 내는 적이 대체 얼마만이란 말인가?
‘현 귀환자 연합장인 태상천, 누리의 윤민수?’
아니, 부족하다.
두 사람조차도 처음 만났을 시에는 이 정도의 흥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백무진의 코와 입에서 거친 숨결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회의 시간에 늦게 될 수도 있습니다.”
등 뒤,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무문주, 최승태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 왔다.
일반적인 회의였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곧장 이성준에게 대련을 신청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자그마치 세계 귀환자 연합에서 소집한 회의였다.
심지어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들 모두 각국의 귀환자 연합장 혹은 대리로 활동하고 있는 부연합장들이었다.
마냥 무시하기에는 귀찮은 일들이 여럿 생기게 될 것이란 말이었다.
다소 짜증이 나긴 했지만, 수십 년을 기다려 왔는데 고작 이 정도를 참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니, 어찌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성준에게 손을 대려 했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완연하게 무르익을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다뤘던 강기의 양을 생각한다면 이성준은 이제 갓 초절정의 초입에 들어선 수준이었다.’
뛰어난 내공의 기예로 부족함을 메꿔내었지만, 실질적인 양으로만 보자면 그리 많다고 볼 수 없었다.
초절정의 최상위권에 달해있는 자신, 백무진과 맞붙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래 초절정 내에서도 상승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겠지만…… 이성준은 지구로 돌아온 지 고작 4개월 만에 초절정의 고수에 도달했다.’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생각한다면, 귀환자 연합의 회의를 끝마치고 올 때쯤이면 전력을 다해야 할 훌륭한 강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즐거운 싸움을 즐겨 낼 수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훗날 더욱더 큰 즐거움으로 가져다 줄, 성장한 이성준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낸 백무진은 새어나오려는 욕망을 억눌러냈다.
‘그날을 위해서라도 조금…… 조금만 더 참아내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억지로 차오르는 욕망을 억눌러 낸 백무진은 스스로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곧장 등을 돌리며, 입을 열어냈다.
“지금 곧장 이동할 테니 출발 준비를 해놓도록.”
* * *
중국, 텐진, 패룡성의 본거지.
벽면에 비춰지고 있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패룡성의 성주, 위지강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강이령이 패배할 줄이야…… 예상외의 결과군.”
그냥 패배한 것도 아니었다.
“순수한 무(武)의 수준으로만 보자면 그냥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논 수준이었단 말이지.”
위지강의 말에 함께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간부들은 아무런 말을 내뱉지 않는다.
무언가 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들 위지강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깐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풍룡대주가 격한 반응을 보일 때부터 엄청난 천재인 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건 놀라울 정도군요.”
“확실히…… 저희 정보부에서 예상했던 것 이상의 결과입니다.”
당장 강이령과의 친선 비무뿐만이 아니었다, 이성준이란 인물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일전에 정보부에서 올린 보고서에 적힌 대로라면…… 이성준이 이계에서 생활을 한 시간은 고작 5년이 전부다.’
본래 귀환자들의 강함은 이계에서 생활했던 시간으로 정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주 간혹 가다가 본인, 위지강처럼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
그러니까, 작금 지구에서 랭커라고 불리우는 존재들 중에는 이계에서의 쌓은 경험과 기억을 시스템에 접목시켜내는 것으로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 내는 귀환자들이 존재했다.
“그래도…… 이성준은 너무 유례없는 존재란 말이지.”
위지강이 내뱉고 있는 말에는 적지 않은 감탄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성준이 공식적으로 헌터 활동한 지 불과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다는 거다.’
4개월,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을 가진 귀환자들이라면 이렇다 할 성과를 이뤄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초절정의 무인, 고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강기를 다뤄내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시간이었다.
‘이미 한번 걸어봤던 길이어서 정신이 기억하고 있다 한들, 귀환 직후의 육체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상태다.’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기초부터 다시 쌓아나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천재라고 칭송받았던 본인, 위지강조차도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 자그마치 2년의 시간을 소모했었다.
헌데 이성준은 불과 4개월 만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내며, 보란 듯이 강기를 사용해냈다.
‘천재…… 그 이상의 존재라는 거지.’
만약 강이령과의 비무 영상이 없었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정도로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결과, 영상을 확인한 시점에서 부정을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성준은 천무지체(天武肢體)를 타고났을 수도 있겠군.’
아니, 여태껏 이성준이 쌓아 온 업적들을 생각한다면 천무지체를 타고났을 확률이 매우 농후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끊임없이 성장을 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동한다.
만약 이 상태로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다면 이성준은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화경…… 아니, 현경? 아니,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생각한다면 그 너머의 경지에도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지않아서 대한민국, 이성준은 세계의 패자 중 한 명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란 말이었다.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던 아시아의 패권이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냥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거다.
‘늦기 전에 확실하게 노선을 정해둬야 한다.’
적으로 돌려서 확실하게 대립하거나, 든든한 우군으로서 옆자리를 꿰찬다.
너무나도 쉬운 문제라 할 수 있는 만큼, 위지강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국, 이성준의 우군이 된다.’
자그마치 천무지체를 타고난 무인이다.
‘괜한 욕심에 눈이 멀어 적으로 돌리는 멍청한 짓을 할 이유가 없지.’
마음 같아서는 곧장 이성준에게 화평을 제안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패룡성의 조국인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다.
지금 본인, 위지강의 생각이 정부와 같다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혹여나 반대의 의견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라면?
‘갖가지 제약과 억압을 가해오려 하겠지.’
만약 홀로 활동 중이었다면 기꺼이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패룡성을 비롯한 주변의 친인척들에게까지 손을 뻗어내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현역 랭커로서 활동 중인 본인, 위지강이라 할지라도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친선 비무의 결과에 대해서 우리, 중국 정부 측은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지?”
위지강이 내던진 질문에 정보부의 수장, 리시엔이 곧장 입을 열어냈다.
“현재로써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미 노선을 정한 위지강의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허나 마냥 부정적인 상황이라고는 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이성준이란 인물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나 보군.”
“네, 아마 조사를 끝내고나면 여태껏 그래 왔듯이 우선은 저희 중국 측으로 귀화를 권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위지강의 고개가 주억여진다.
‘이성준의 귀화라…… 나와 패룡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군.’
물론, 막연하게 중국 정부를 믿어가며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자고로 한 집단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항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혹여나 있을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하여 중국 정부가 이성준에 관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철저하게 조사를 하도록. 더불어 이성준을 적대하려 한다면 즉시 보고를 올릴 수 있도록.”
리시엔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군말 없이 곧장 고개를 숙이며 답해왔다.
“명 받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