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마신은 만렙 플레이어-114화 (114/185)

제114화

114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김기영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정신을 놓아버린 폐인의 모습이었다.

화아악-!

그런 김기영의 육신이 비형이 피워 낸 검은 장막에 집어삼켜진다.

말도 안 되는 협박을 가해 온 김기영을 깔끔하게 청소해내었지만, 마음 한편에서 치솟는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가족들을 건드리다니…….’

마신으로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구로 귀환한 이유,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가족에 대한 위협은 이성준에게 있어 마지막 ‘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김기영을 비롯한 귀환자 연합의 간부들은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섰다는 말이었다.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를 하여 정말 다행히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 유야무야 넘어가 줄 생각은 없었다.

‘피에는 핏값이 따르는 법.’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 줄 생각이었다.

차가운 분노를 머금은 이성준은 곧장 부협회장, 고태현에게 연락을 하여 작금의 사실들을 알려냈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반응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 감히……!

자초지종의 상황을 들은 고태현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장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소와 같이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린 고태현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꺼내어 냈지만, 이성준은 그를 단칼에 잘라냈다.

“아닙니다.”

애초에 직접적인 도움을 바라고 고태현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그간 헌터 협회와 쌓아온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그리고 경고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가 직접 정리하겠습니다.”

과거에는 힘이 없어서 어느 정도 타협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충분한 힘과 명성을 갖췄다.

‘그 누구도 다시는 가족들에게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본보기로서 깔끔하게 정리해낸다.’

내면에 억눌러 두었던 혈마이자 마신이라 칭송받으며 천 대륙 모두가 두려워했던 지배자의 본성을 보여줄 때라는 것이다.

이런 서슬 퍼런 이성준의 의중을 읽어낸 것인지 평소와 달리 고태현은 쉽사리 대답을 해오지 못한다.

-…….

잠시 짧은 침묵이 흐르는가 싶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고태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지금 이성준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통보였다.

애초에 거부권은 없다는 것이다.

곧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현재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최대한 깔끔하게 뒤처리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해놓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협회장, 고태현. 역시 상당히 눈치가 빠르고,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 생각한 이성준은 차가운 분노를 머금은 채로 귀환자 연합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귀환자 연합 본부, 대회의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본인들의 승리를 확신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던 귀환자 연합의 간부들의 표정은 석고상마냥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기사단장 쪽은 아직도 연락이 없습니다.”

“……김지영을 타깃으로 삼은 그림자단 쪽도 이렇다 할 소식이 없습니다.”

“참모장님도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 회의실에 앉아 있던 귀환자 연합의 간부들은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허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승태.

무문주의 직책을 맡은 간부이자, 서열 5위로서 한국 귀환자 연합의 손에 꼽히는 간부라 할 수 있는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로 앉아 있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군.’

솔직히 말하자면 계획 자체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상대는 이성준이다.

항시 예상했던 것, 아니, 그 이상을 보여 온 인물이었다.

이런 규격 외의 괴물이 본인의 약점을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해뒀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영의 계획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이로써 내 목숨은 확실히 부지해낼 수 있겠군.’

연합장, 태상천은 폭군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잔혹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제멋대로 날뛰는 망나니는 아니었다.

연합의 전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간부들의 목을 쳐낼 멍청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쉽사리 대처해낼 수 있는 떨거지들이 아닌 김기영을 비롯한 몇몇 주요 간부들을 직접 계획에 참여하고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귀환자 연합의 주요 간부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남은 주요 간부들을 쳐낼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

감히 예상하건대, 기껏해야 잠시 분노를 쏟아내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일반인을 건드렸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정부와 협회에서 상당한 압박이 들어오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었다.

‘유일한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이성준, 그놈의 행보인데.’

사전에 조사해 본 결과 이성준은 가족들을 끔찍이 아낀다.

지금 귀환자 연합은 이성준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건드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보복을 가해올 것이 분명했다.

랭커급 강자인 이성준의 보복, 섬뜩하다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최승태의 표정은 큰 동요는 없었다.

‘……이쪽도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다.’

애초에 감당할 수 없었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연합장님께서 폐관 수련을 깨고 나오기 전까지 해외, 세계 귀환자 연합에 몸을 숨기고 있는다면 크게 문제 될 거 없을 거다.’

세계 귀환자 연합, 일반적인 헌터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랭커 혹은 가디언즈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강대한 힘과 권력을 가진 세력이었다.

제아무리 이성준이라 할지라도 절대 쉽사리 건드릴 생각 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었다.

세계 귀환자 연합에 속한 간부들이 갖가지 물음과 질문들을 던져오며, 여러모로 다소 불편한 일들이 생길 수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목숨을 잃을 일은 없을 것이란 말이었다.

‘지금 바로 가장 빠른 비행기를 수소문해서 출국을 한다면…… 내일 아침에는 세계 귀환자 연합의 본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다.’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겨냈다고 생각한, 최승태가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 있던 때였다.

위이이잉-!

대회의실 내부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뭐야?!”

“당장 나가서 어떻게 된 건지 빨리 알아봐!”

간부들의 소통에 회의실에서 대기 중이던 귀환자 중 한 명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부리나케 바깥으로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금세 되돌아온다.

물론, 제 발로 순순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쾅-!

문짝과 함께 날아온 귀환자의 신형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간부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던 때였다.

“다들 고맙게도 한 자리에 모여 있네, 덕분에 번거롭게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겠어.”

차가운 음성과 함께, 자욱한 먼지 속에서 한 명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서히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비친 사내의 얼굴은 귀환자 연합의 간부들 모두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 이성준?”

큰 고비를 넘겼다 생각하고 있던 최승태의 표정에 경악이 어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고도 무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갑작스러운 이성준의 등장,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상황 자체는 매우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혼자다.’

공권력을 가진 헌터 협회 혹은 정부 기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건 기회다.’

최승태는 침착한 모습으로 두 눈을 빛낸다.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나오다니, 크하하! 혼자서 우릴 다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물론, 여기 있는 귀환자 연합의 간부들이 모조리 다 덤벼든다 할지라도 이성준을 쓰러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끌며 버텨낼 자신은 있었다.

‘경보음이 울리며 소란이 일어난 만큼 10분 남짓한 시간만 버텨낸다면 협회의 헌터들이나 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도착할 거다.’

당장 무력 자체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이성준의 움직임을 묶어내는 방패막이 혹은 족쇄로는 활용 가능할 것이다.

도망칠 틈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무사히 자리만 벗어난다면 이성준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거다.’

확실한 증거들이 있는 만큼 한밤중에 갑자기 습격을 가해 온 범죄자, 빌런으로서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감옥에 처박아 넣으며, 아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리석은 놈, 가족들이 위협을 받은 것에 분노에 눈이 멀어 자충수를 뒀군.”

“…착각이 심하군.”

헛웃음을 흘린 이성준이 말아 쥔 중지를 가볍게 튕겨내는 순간이었다.

붉은 선을 그리고 날아간 구체가 최승태의 어깨를 관통해낸다.

콰직-!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최승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끄읍-!”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한 손으로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최승태의 두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기공……?’

평범한 기공도 아니었다.

S+랭크,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자신, 최승태가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교한 기공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무공을 익히고 있는 거지?’

이성준을 바라보고 있는 최승태의 얼굴에 깊은 당황이 자리 잡는다.

그도 그럴 게 이성준이 세간에 보여준 공격 방식은 권법과 검법이 전부였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평범한 무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상승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조차도 한 가지 길을 연마하는 것만으로도 벅차한다.

두 가지 무공을 상승의 경지로 익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헌데 방금 전 이성준의 공격 방식은 분명 기공이었다.

‘권법과 검법도 모자라서 기공마저 상승의 경지로 다뤄낸다고?’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이성준의 무위에 최승태의 당황과 놀람이 커져간다.

허나 얼마 가지 않아서 최승태는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세 가지 길, 무공을 연마했다는 무인은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다.

‘기선 제압을 위해 연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제대로 된 기공을 연마했을 리가 없다.

기껏해야 방금 전처럼 탄지공을 쏘아내는 것이 전부일 거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정말 괴물 같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당해내지 못할 변수는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크긴 하겠지만 10분 정도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거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마친 최승태가 다급하게 목소리를 드높인다.

“병X 같은 놈들 뭘 멀뚱멀뚱 서 있는 거냐! 공격할 틈 주지 말고 밀어붙여!”

최승태의 외침에 어물쩍한 자세로 서 있던 간부들이 정신을 다잡아내는 순간이었다.

‘혈화천개벽(血花天開闢), 만개화(滿開花).’

손을 내뻗어 냄과 동시에 허공에 붉은색 구체를 빚어낸 이성준이 가벼이 손가락을 튕겨낸다.

동그란 구체로 뭉쳐있던 혈화의 꽃봉오리가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어나더니, 사방으로 꽃잎을 발산해낸다.

휘이익-!

절대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대회의실 내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꽃잎들을 피해낼 공간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만개한 붉은 꽃잎들이 궤적을 그려내며, 간부들의 육신을 꿰뚫어낸다.

“끄어억-!”

“끄아아아악!”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간부들의 상처에서 뜨거운 피가 쏟아지며 바닥을 흥건히 적신다.

하얀 대리석 바닥이 삽시간에 붉게 물든 피로 강을 이루었고, 자연스레 입과 코에는 비릿한 혈향으로 가득 찬다.

붉은 피로 물든 세계, 시선 속 보이는 일대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모습이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롯이 죽음뿐인 세계의 광경에 최승태의 두 눈동자에 절망이 가득 차오르고 있을 때였다.

지옥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붉은 눈의 수라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