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117화
함민현과 강재희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천하의 최천영에게 신임을 얻은 사람이라니 정체가 궁금하긴 하군.”
“대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저도 한껏 기대가 되긴 하네요… 그런데 제 마음속 기대감이 너무 높아져 버렸는데 전부 충족이 될지 모르겠네요.”
기준점을 한참이나 높여버리는 함민현의 언행에도 최천영은 젓가락을 집어 들며 무심하게 말했다.
“마음껏 기대해도 좋네.”
눈앞에 놓인 소고기를 하나 들어 입안에 넣고, 그대로 우물거린 최천영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내뱉는다.
“절대 실망할 일은 없을 테니.”
“너무 궁금해지는데 대체 우리의 대주주가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자신 있으신 걸까.”
호기심과 기대감이 풍선처럼 부푼 함민현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단박에 세 개의 길드를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을 가진 자본가이면서 최천영마저 굴복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
대한민국 내에서도 손에 꼽힌다 할 수 있었다.
아니, 단 한 명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설마?’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함민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며 한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던 인물이었던 만큼 단박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이, 이성준 헌터!”
함민현이 들뜬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재희 역시 음성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경악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앞서 최천영이 보였던 자신감들이 납득이 갔다.
‘이성준 헌터, 그래, 이성준 헌터라면 확신을 가질 만하지.’
현재 이성준 헌터는 각종 수식어를 가진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이자 헌터였다.
물론, 납득이 간다고 해서 놀라움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헌터로서 뛰어난 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소문으로 들었던 것 이상이네.’
로드, 어태커, 미스틱 모두 건실한 중소기업으로서 대주주에 등극하기 위해서는 최소 2천억에 달하는 자산을 필요로 하는 제법 규모가 큰 길드였다.
같은 중소길드로서 분류되어있지만 흔하디흔한 100억 대의 자본으로 대주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업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수천억에 달하는 큰돈을 과감하게 투자하다니, 실력만큼이나 큰 배포를 가진 사람이었네.’
정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성준 헌터는 자격과 실력뿐만 아니라 투자자로서의 자본과 대담함까지 모두 갖춰 낸 완벽한 인물이었다.
“오셨습니까, 대주주님. 명령하신 대로 어태커, 미스틱의 마스터들을 모두 불러두었습니다.”
곧장 고개를 숙여낸 최천영을 향해 손짓으로 화답한 이성준이 시선을 옮겨내며 함민현과 강재희를 바라본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신데 갑작스레 불러내어 죄송합니다, 우선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성준이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태커 길드의 마스터인 함민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미스틱 길드의 강재희입니다. 항시 헌터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리 딱딱하게 구실 거 없습니다, 다들 편하게 앉으시지요.”
피식- 미소를 흘린 이성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뒤를 이어, 최천영을 비롯한 각 길드의 마스터들이 자리에 착석하는 순간이었다.
이성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어냈다.
“다들 궁금하시겠죠, 제가 어째서 수천억의 돈을 써가며 대주주의 자리를 꿰차냈는지.”
길드를 이끌고 있는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헌터 생태계를 뻔히 알면서도 수천억의 현금을 사용해가며 이렇게 공격적인 투자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던 최천영이 입을 열어냈다.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애초에 그 이야기를 하러 이곳에 온 겁니다.”
입가에 미소를 피워 낸 채로 길드 마스터들의 얼굴을 훑어 낸 이성준이 다시 한번 입을 열어냈다.
“우선 최우선의 과제는 로드, 어태커, 미스틱 세 길드가 인피니티라는 이름으로서 하나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길드 세 곳 신설합병을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성준의 고개가 주억여진다.
“네, 정확합니다.”
본래라면 그리 급한 일이 아니었던 만큼, 빌딩 구매부터 길드 창설까지 차근차근 순서대로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 도민준의 도움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길드 창설은 어차피 계획에 있던 일 중 하나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몰아붙여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당장 이루어진 정부의 지원을 통해 미래 가치가 5천억을 가뿐히 넘어서는 빌딩의 소유주가 되었다.
‘받은 만큼은 일을 해줘야지.’
명목상이라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도시를 수호해줘야 한다.
대형 길드에 준하는 헌터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집하려면 못할 것은 없다만…….’
그간 쌓아온 명성들이 있는 만큼, 당장 신생 길드를 창설하여 바닥부터 시작한다 할지라도 빠르게 인원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과정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것은 없다는 것이다.
허나 그로 인해 소모되는 심력과 시간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름길을 내버려두고 굳이 먼 길을 돌아갈 이유는 없지.’
심지어 합병 과정 속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사소한 법적인 문제들마저도 정부와 협회에서 모두 해결을 해준다고 호언장담을 하기까지 했으니, 길드들을 신설합병해내는 것만큼 편한 길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백호나 불새를 끌고 오는 거였겠지만…….’
5대 길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두 길드는 서울의 핵심 전력인 만큼 갖가지 규제와 제약뿐만 아니라 길드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부협회장, 고태현에게 부탁을 하여 중소 길드 중 가장 건실하고 깨끗하면서도 실력이 있는 길드들을 알아내어 주식을 사들였다.
물론, 이런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길드 마스터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저희 세 길드 모두 이성준 헌터님의 휘하에 들어간다는 뜻입니까……?”
놀람 반, 경악 반이 섞인 표정을 지은 함민현의 질문에 이성준이 고개를 주억여낸다.
“네, 마스터는 저, 이성준이 맡습니다, 더불어 활동 영역은 지금 계신 서울이 아닌 파주가 될 겁니다, 최전방을 담당하는 길드가 되는 것인 만큼 신설합병 과정에서 만반의 준비를 해두셔야 할 겁니다.”
최천영, 함민현, 강재희 모두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 눈동자에 피어나고 있는 감정은 완벽히 똑같았다.
기쁨과 희망, 그리고 상당한 고양감이었다.
‘큰 사람 밑에서 큰일을 할 수 있겠군.’
‘이성준 헌터가 마스터인 길드라니…… 대박! 대박이다!’
‘드디어 내 인생도 피는구나!’
수도인 서울을 떠나 새로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될 거 없었다.
자그마치 이성준 헌터의 휘하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길드들조차도 줄을 대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인물이었다.
금으로 만든 동아줄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소중한 줄을 잡게 된 것이다.
‘부산으로 떠나서 지역의 패자로 자리 잡아 낸 라이트 길드의 선례를 생각한다면…….’
‘신도시, 파주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을 거다!’
‘5대 길드와 필적하는, 아니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거야!’
최천영을 비롯한 길드 마스터들의 두 눈에 이채가 어린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저 함민현의 이름을 걸고, 대주주님의 지시 반드시 이행해내겠습니다!”
“이성준 헌터님, 아니. 마스터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를 할 테니 맡겨만 주십시오!”
어찌나 우렁찬 목소리였는지, 세 사람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메아리치듯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로드, 어태커, 미스틱의 신설합병.
이슈로서 자리 잡고 있던 세 길드의 합병 소식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세 길드를 왜 한 번에 사나 했더니 신설합병이 목적이었던 거네.
└미쳤다, 미쳤어, 이러면 새로운 대형 길드 탄생한 거잖아.
└전부 건실하고 능력 있는 길드라서 웬만한 대형 길드들보다 더 강할걸?
└새로운 대형 길드의 탄생이라니 완전 호재네.
└화재가 아닌 호재는 오랜만이네.
└든든하다! 인피니티!
└한국인이란 사실이 기쁜 건 진짜 오랜만인 듯.
항시 몬스터들의 위협을 받는 세계인만큼 새로운 대형 길드의 탄생은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실로 기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기존에 피어났던 궁금증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커져갔다.
└그래서 인피니티 길드 창설한 대주주가 누구임?
└진짜 최천영의 그 높은 콧대를 꺾은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하긴 하네.
└최소 5대 길드 마스터일 듯.
└지금 길드 상황들 보면 누리 쪽 윤민수가 이성준 견제하려고 세력 키우고 있는 게 유력함.
└아니면, 이성준이 역으로 누리 견제하려고 세력 만든 거일 수도 있음.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일본에서 검은돈이 들어오고 있다니까.
└진짜 감이 안 잡히네.
커져가는 의문 속, 대한민국 아니, 세계를 뒤흔들 길드, 인피니티가 창설이 되었다.
* * *
여의도, 헌터 협회, 게이트 관측 본부.
평소와 같이 화면 속에 띄워진 자료들을 확인한 직원들이 새로이 발발할 게이트들을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침묵 속에서 제 할 일을 이어가고 있던 정기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맙, 맙소사!”
사무실에 내려앉아 있던 침묵을 갈라내 버리는 고음에 직원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야?”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당연한 반응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발발 위치를 놓치게 되면, 도시 내에 지대한 피해가 생길뿐더러 시민들의 안전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인 만큼 단 한 개의 게이트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때문에 모두가 집중하고 일을 할 수 있게끔 고함을 내지르거나, 소란을 피워내지 않는 것이 게이트 관리 1팀의 불문율이었다.
물론, 입사 8년 차인 정기우가 이를 모를 리가 만무했다.
허나 정기우는 쏟아지는 동료 직원들의 눈총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었다.
“팀장님!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눈치챈 관측 본부장, 김창식이 다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걸 봐주십시오.”
가늘어진 눈매로 정기우가 띄워 놓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김창식의 입에서도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이거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네, 혹시나 싶어서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니길 빌면서 확인을 했다.
허나 애석하게도 명백한 현실이었다.
“현재 마력 응집 속도부터 과정, 그리고 예상 수치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이번 서대문구 레이드 게이트의 등급은……”
목울대로 마른침을 꿀꺽- 삼켜 낸 정기우의 입이 다시 한번 열린다.
“레드입니다.”
“빌어먹을……!”
연신 눈동자를 굴려가며 모니터 속 자료들을 확인하고 하던 김창식의 입에서 흘러나온 거친 욕설에 사무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레, 레드?”
“진짜 레드 게이트라고?”
말을 내뱉고 있는 직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그마치 레드 게이트였다.
레이드 게이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자, 30년 전, 대한민국에서 강원도의 땅을 빼앗아 간 악몽의 게이트다.
뇌리에 각인된 공포 때문이라도 발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게이트였는데, 심지어 위치마저도 서울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서대문구였다.
‘말 그대로… 최악이군.’
밀려오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꽈악- 짓누른 김창식이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 바로 부협회장님에게 보고를 올리러 갈 테니까, 지금 바로 이 자료들 프린트로 뽑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