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120화
프렌지 게이트.
레드 등급의 레이드 게이트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하는 것으로 난도가 상승하게 된 만큼 쉽지 않은 전투가 찾아올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허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도리어 자신이 있었다.
폐관 수련을 통해 경지의 벽을 넘어선 만큼 지금 진입한 곳이 설사 프렌지 게이트라 할지라도 패배를 생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레드 등급의 게이트가 아닌 프렌지 게이트로 강화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다면 확실하게 자신, 윤민수가 최강임을 증명해낼 수 있을 테니.
때문에 윤민수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절벽들을 당당히 거닐었고, 얼마 가지 않아서 레이드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 절명의 삭풍(朔風), 카빌로라는 하피 퀸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내 검을 뽑아 든 윤민수가 마음속으로 최강, 스스로의 위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상기해낸 순간이었다.
마음 한편에서 강한 열망이 일어나며 내면의 작은 벽을 부숴낸다.
전신을 강타하는 듯한 고양감과 함께 본래의 실력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검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눈앞의 카빌로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허나 이런 생각이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여워, 발버둥 치는 꼴이 진짜 벌레 같은 모습이네.”
레드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 카빌로는 끔찍할 정도로 강했다.
처음,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부터 전부 카빌로의 농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격차가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째서…! 닿지 못하는 거지! 대체 왜!”
울분과 같은 말을 토해낸 윤민수가 땅을 박찬다.
쿵-!
푸른빛 섬광과 같은 모습, 전신에서 솟구친 푸른빛 강기를 휘감은 윤민수는 실낱같은 틈을 파고들어 낸다.
현재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이자, 여유를 부리고 있는 카빌로의 빈틈을 완벽하게 노린 공격이었다.
분명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막아내지 못해야 한다.
‘이 검마저 막힌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을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 낸 윤민수가 말아 쥔 검을 거세게 휘둘러내는 순간이었다.
후웅-
바람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카빌로의 신형이 자취를 감춘다.
“정말 이유를 몰라? 간단한 거잖아.”
동시에 등 뒤에서 카빌로의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검은 너무 느리거든.”
코웃음을 친 카빌로가 손을 내뻗는 순간, 쏘아지던 검이 한 줄기의 광풍이 되어 쏘아진다.
피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흘려내는 것이 전부다.
채애애앵-!
두 자루의 검이 맞부딪히며 요란한 쇠 울음소리와 함께 검날에서 불꽃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카빌로의 검로가 변화한다.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윤민수의 검을 강타한다.
챙-!
“끄읍…!”
압도적인 괴력에 검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서 살갗이 터져나간다.
자연스레 손에 쥐고 있던 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윤민수의 육신 또한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다.
“수준은 처참하다만 그래도…… 같은 검사여서 몸풀기 상대로는 나쁘지 않았어.”
흡사 장난감을 바라보는 듯한 카빌로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 윤민수의 검은 눈앞에 있는 카빌로의 영역에 닿지 못한다.
‘지금의 내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강자다.’
레드 게이트의 솔로 공략은 오만이고 실수였다.
혼자 와서는 안 되었다.
누리의 헌터들. 아니, 이성준 헌터와 힘을 합쳤어야 했다.
‘만약 이성준 헌터와 함께 왔었더라면…….’
라자카를 토벌할 때 보여주었던 그 검격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분명 전투의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어리석은 선택에 입 안에 씁쓸함이 감돌았지만, 이미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현재에 집중해야 할 때다.’
윤민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념들을 떨치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저런 괴물이 밖으로 나간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였다.
조국, 대한민국은 끔찍한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다.’
두 눈을 빛낸 윤민수는 품에서 심장에 뭉쳐 있는 기운을 빠르게 회전시켜내는 것으로 팔자의 고리를 빚어낸다.
‘코어 폭주.’
인위적으로 코어를 만들어 한계를 넘어서는 힘, 이는 엘든 대륙에서부터 익혀 온 비기이자 윤민수의 필살기였다.
다만 강제로 힘을 이끌어내는 것인 만큼 리스크가 엄청났다.
한번 사용하게 된다면 최소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기운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뿐더러 만약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평생 기운을 다루지 못하게 된다.
검사이자 헌터로서의 생명을 건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리스크가 큰 만큼 리턴 또한 확실했다.
‘모든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지속시간은 길어야 3분, 그 안에 눈앞의 카빌로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윤민수의 눈동자에 결의가 차오르는 순간, 심장에서 솟구친 거대한 힘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며, 전신에서 격정적인 기운이 차오른다.
띵-!
[코어 폭주 상태에 돌입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지속시간이 지난 이후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현재 남은 시간 3분.]
초록빛 홀로그램 창으로 된 타이머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윤민수는 곧장 바닥에 떨어진 검을 다시 잡아냄과 동시에 다리를 놀린다.
“마지막 발악 같은 건가, 재미있겠네.”
삽시간에 카빌로와의 거리를 벌려 낸, 윤민수는 곧장 궤적을 그리며 검을 휘둘러낸다.
“폭류창파(瀑流蒼波).”
하나둘씩 쏘아진 푸른빛 강기들은 흡사 거센 파도와 같은 형상으로 쏘아지며,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고 있는 카빌로의 신형을 뒤덮어낸다.
“으응?”
항시 웃음을 보이고 있던 카빌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콰과광-!
몰아치는 파도에 전신에 두르고 있던 장막이 부서져 내린다.
방어가 뚫렸다는 것이다.
직후, 거친 살의가 담긴 윤민수의 푸른빛 강기들이 카빌로의 시선을 가득 메운다.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카빌로가 다급히 몸을 놀렸지만, 쏘아지는 강기들을 모두 피해낼 수는 없었다.
아찔한 고통과 함께 전신을 뒤덮고 있던 백색의 깃털들이 붉게 물들어간다.
“감히! 벌레 같은 게……!”
성질을 부린 카빌로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기운을 일으켜낸다.
윤민수를 응시하고 있는 카빌로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거대한 살의뿐이다.
일전과 같은 장난기는 보이지 않는다.
느껴지는 기세 또한 확연하게 변해 있었지만 윤민수의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최고의 상황이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불과 3분 남짓이다.
한 번의 공격으로 결판을 낸다.
전의를 불태워 낸 윤민수가 검을 꽈악- 말아 쥔다.
“폭류창파, 대격류(大激流).”
더는 파도가 아니었다.
해일(海溢)이 된 강기들은 일대를 휩쓸어 낼 정도의 강대한 위력을 머금어낸다.
당연한 것이었다, 코어 폭주로 육신을 강화시킨 상태다.
이건 한계를 넘어선 힘이다.
허나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쿠구궁-!
허공에 떠오른 카빌로의 검은 마치 거대한 폭풍과 같은 모습이었다.
“흔적조차 안 남도록 찢어줄게.”
선언을 내린 카빌로의 검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폭풍과 해일, 두 개의 힘이 허공에서 맞부딪힌다.
쿠구구궁-!
팽팽하게 이어지는 힘 싸움, 얼굴을 일그러뜨린 윤민수가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른다.
“죽어라-! 죽으란 말이다!”
동시에 심장에 자리 잡은 마나의 고리들을 더욱더 빠르게 회전시켜내며 기운을 이끌어낸다.
쿵쿵쿵쿵쿵-!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쉴 새 없이 귓전을 강타했고,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내지른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기세를 보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빌로의 검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콰과광-!
몰아치는 카빌로의 폭풍들에 윤민수의 해일이 밀려난다.
“으아아아-!”
다가오는 죽음을 목도한 윤민수가 거센 고함을 내지르며 마지막 힘을 짜내는 순간이었다.
쨍그랑-!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게이트 내부를 뒤덮고 있던 무형의 장막에 거미줄처럼 균열이 일어났다.
동시에 카빌로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인다.
“무슨……?”
의문 섞인 음성을 흘린 윤민수의 시야가 핑- 돌아간다.
일순간, 세계가 암전된 것 같은 짙은 어둠이 내리깔리는가 싶었지만 갑작스레 풍경이 일변하며 익숙한 형태의 건물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윤, 윤민수다! 윤민수가 나왔어!”
“게이트가 안 닫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사후세계 혹은 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어 폭주의 반동으로 인한 고통들이 밀려오기 시작하며 명백한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시켜준다.
“어, 어떻게……?”
너무나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윤민수는 그랜드 마스터에 오를 정도의 고수다.
곧장 평정심을 되찾아내며, 머릿속을 회전시켜낸다.
짧은 시간, 재빠르게 회전한 두뇌가 습득했던 정보 중에서 납득 갈 만한 이유를 찾아내주었다.
‘설마…… 추방당한 건가?’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특수 게이트에서 간혹 가다가 일어난 적 있는 일이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덕분에 목숨을 구사할 수 있었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등 뒤, 레이드 게이트는 여전히 흉흉한 기운을 흩뿌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괴, 괴물이 있습니다. 한국 전체를 파멸로 이끌 괴물입니다!”
다급한 표정을 한 윤민수가 고함을 내지르며 게이트 내부의 상황을 전달해내기 시작했다.
* * *
윤민수가 패배를 맞이했다.
최강이라 불리운 헌터의 패배, 세간은 적지 않은 충격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뉴스 기사들은 말 그대로 쏟아졌으며 공중파 언론사들은 긴급 속보로 윤민수의 인터뷰를 내보내며, 레이드 게이트의 위험성을 알려댔다.
어딜 가나 윤민수와 레드 게이트에 관한 소식들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이성준 역시 빠르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네.”
거실에 놓인 TV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이성준의 눈매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게 서대문구에 발발한 레드 게이트가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더 이상 방관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자진해서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이성준이 스마트 폰을 들어 올릴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발신인 고태현의 전화가 왔다.
“예. 뉴스 봤습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겠군요. 헌터 협회. 아니, 한국 정보로부터 공식적인 토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처리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순수한 무의 경지가 화경에 이른 윤민수마저도 패배한 만큼 레드 게이트에 서식하고 있다는 하피 퀸, 카빌로는 분명한 강자였다.
허나 새로이 얻은 스킬과 그로 인한 상승들을 생각한다면 패배는 존재치 않는다.
흔쾌히 고개를 주억여 낸 이성준이 입술을 달싹여 낸다.
“당연히 토벌해야죠, 지금 바로 서대문구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동 수단은……
“제가 직접 가는 게 더 빠를 거예요.”
머나먼 거리였다면 모를까, 용산에서 서대문구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였다.
차량 혹은 헬기는 지형지물의 제약을 받거나 까다로운 제약이 있는 만큼 다소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자신, 이성준이 직접 이동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고태현 또한 이를 인지한 것인지 군말 없이 곧장 동조를 표했다.
-예. 바로 이성준 헌터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놓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고태현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어낸 이성준은 곧장 옷을 챙겨 입으며, 바깥으로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