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126화
거실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을 때, 이성준과 시선을 맞춘 이서윤이 물음을 던져왔다.
“근데 우리 거만 사 온 거야?”
이성준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여진다.
“그러면 누가 더 있어?”
“누가 있긴? 오빠가 있잖아.”
“난 딱히 필요 없는데.”
과거, 천 대륙에서 황제보다 더한 부귀영화를 누려왔다.
갖고 싶은 것들을 말하면 모두가 취해냈었고, 금은보화로 산을 쌓아본 적도 있었다.
그를 통하여 순간적으로는 쾌감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모두 한순간의 감정일 뿐이었다.
결국 남게 되는 것은 공허함, 그리고 고독이었다.
지금처럼 가슴 한편을 항시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었다.
때문에 이성준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자 선물은 지금과 같은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성준의 개인적인 입장이었다.
결의에 찬 표정을 지은 이서윤을 필두로 이수혁과 김지영 또한 고개를 주억여 낸다.
“안 되겠어, 바로 나가죠.”
“그래야겠네.”
“지금 이 시간에요? 어디로요?”
“어디긴 오빠 선물 사러 가는 거지.”
흔히 볼 수 없는 이서윤의 과감한 행보에 이성준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음을 던졌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응, 다 같은 가족인데 오빠만 못 받는 거 말이 안 되잖아, 아니. 허용할 수 없는 일이야.”
가족들에게 선물을 준비할 때 자신, 이성준 또한 느꼈던 감정인 만큼 이서윤이 어떤 마음인지 꽤 깊이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까지, 기쁜 일부터 슬픈 일을 포함한 일상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하고 또 성장해가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모두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가족이라는 것이다.
어찌 차별을 둘 수 있단 말인가?
그 마음을 알고 있기에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더불어 당장 시선 속, 비치고 있는 이서윤의 눈빛은 더욱더 거절을 내뱉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
이번 선물을 통해 방대해졌을 뿐이지 갑작스레 생겨난 감정은 아니었다.
동생, 이서윤의 시선 속에는 항시 존재해온 감정이었다.
이사부터 학업 지원까지 그저 자신, 이성준과 가족들이 바라는 일이었기에 수용해주고 있었을 뿐이지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겠지.’
자신, 이성준처럼 너무나도 가족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가족들 앞에서 당당하고 싶기에 생긴 감정일 것이다.
이런 마음이 고맙고 대견하기에 이서윤이 지고 있는 저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알았어, 가자 가.”
“오케이, 그러면 바로 준비해서 나올게!”
“오랜만에 가족 외출이네.”
“그러면 나는 차고로 가서 바로 시동 걸고 있으마.”
이성준이 고개를 주억이는 순간, 가족들은 곧장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외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가족들과의 외출, 갑작스레 정해진 만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그리 많은 것을 즐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함께 쌓아낸 추억은 가장 큰 선물로서 마음 한편에 커다란 만족감을 심어주었다.
항시 바라왔던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꿈을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더욱더 욕심이 났다.
‘……평생 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거다.’
세상 그 누구라 할지라도 이 행복을 부숴내려 한다면 가차 없이 손을 쓸 것이다.
마음속으로 한 굳은 다짐들을 지켜낼 수 있도록, 이른 아침부터 게이트로 향하며 성장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려 했다.
허나 앞서 생각했던 것처럼 곧장 성장에 박차를 가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계획에 없던 갑작스러운 방문객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긴 밤 평안하셨습니까!”
“박선우?”
파란 트레이닝 복과 맑은 눈매는 몇 개월 전 보았던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다.
물론, 태도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막무가내로 만남을 청하는 걸 스승님께서 불쾌해하시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불쑥 찾아와 정말 죄송합니다!”
확실히 그리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납득이 갔다.
‘박선우가 나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
직접 찾아오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던 만큼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건데, 찾아온 목적 또한 사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과제를 훌륭히 완수해냈군.”
“모두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죠!”
“내 가르침만은 아닌 것 같은데.”
“제 상태를 단번에 알아보시다니!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박선우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는 이성준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도 그럴 게 몽상혈인을 통하여 건네준 뇌성운향신공의 정보들은 3성에 국한되어 있었다.
헌데 지금 박선우의 뇌성운향신공의 경지는 무려 4성이었다.
독학으로 4성에 도달해냈다는 말이었다.
뇌령마신지체를 타고난 이들의 오감이 발달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노력, 아니면 재능인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박선우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보물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간신히 벽을 부숴낸 것도 아니군.’
단전에 뭉쳐 있는 푸른 뇌기는 박선우의 뇌성운향신공이 완연한 4성의 경지에 올라 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 정도의 성장 속도라면…….’
빠르면 반년, 늦어도 1년 안에는 든든한 전력으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선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보물이었군.’
이성준이 속으로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던 때.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박선우는 속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승님의 제자가 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
처음 스승, 이성준을 만났을 당시에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실제로 사용하는 능력들 또한 기존의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이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던 거였다니…….’
수련을 거듭하여 뇌성운향신공 4성의 경지, 헌터로 치자면 SS랭크에 도달하게 되자 스승, 이성준의 위용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분명 내력으로 내 몸을 훑어내셨을 텐데……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히 인지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기(氣)를 완벽하게 조율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론적으로만 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은밀하면서도 섬세하게 기를 움직일 수 있다면 상대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절대 이론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수련을 위하여 시청을 했었던 최상위권의 랭커들의 전투 영상에서도 이렇게 완벽하게 기를 조율해내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
‘스승님은 최상위권의 랭커들마저 압도해내실 정도의 힘을 갖추고 계시다는 거다.’
단순히 기의 조율 능력이 뛰어난 것만으로도 최상위권의 랭커를 어떻게 압도해낼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헌터, 무인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조율 능력이 압도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를 다루는 것에 비해서 적게는 수 배, 많게는 수십 배의 효율을 낼 수 있었다.
같은 무공을 펼친다 할지라도 소모되는 내력의 양은 적어지고 파괴력은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더 높은 경지의 무공 또한 다뤄낼 수 있었다.
당장 스승, 이성준이 닿아있는 무의 경지는 세계의 패자라 불리는 가디언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보여 온 성장세를 생각한다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실 수도 있을 거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확신이 생겨난다.
‘스승님은 세계 제일. 아니, 절대자가 되실 분이다.’
박선우의 눈동자에 경외심이 가득 차오르고 있을 때, 이성준 또한 박선우에 대한 판단을 끝마치며 고개를 주억여 냈다.
“이 정도면 능력은 충분히 증명된 것 같군.”
훌륭하게 과제를 완수해낸 것만으로도 합격점이라 했는데 성정 또한 실로 만족스러웠다.
분명, 뇌성운향신공으로 강한 힘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선우의 눈동자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정순함이 가득했다.
쓸데없는 욕심은 한 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롯이 강한 무(武)를 갈망하는 무인의 눈동자였다.
등 뒤를 온전히 맡겨도 되는, 든든한 수하로서 등용하기에 최고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약속했던 대로 무공을 전수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할 거 없어, 그만한 대가를 받을 거거든.”
한국 헌터 협회, 불새, 백호, 누리, 마지막으로 인피니티 길드로 인해 방대한 세력을 얻어 상당한 전력을 얻었다.
허나 하나의 대륙을 제패했던 이성준이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다.
아니, 애초에 믿을 만한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특히 가족들의 호위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맡겨야 한다.’
비형이 갖가지 술법을 둘러내어 지켜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동시에 가족을 습격해온다면 골치가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부모님들의 고정된 이동 경로인 출퇴근길을 도맡아 줄 전담 호위가 필요했던 참이었다.
헌데 때마침 박선우가 찾아와준 것이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본인, 박선우의 의사마저 확고하다 할 수 있었다.
“제가 치를 수 있는 대가라면 어떤 것이든 지불하겠습니다!”
사실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무(武)라는 강함이 주는 매력은 사람을 매료시켜서 미치게 만든다.
달리 말하자면, 처음 뇌성운향신공을 익혀 무의 길에 들어설 때부터 박선우는 자신, 이성준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성준은 가벼운 마음으로 원하는 조건들을 읊어낼 수 있었다.
* * *
뇌성운향신공이 가진 힘에 매혹되어 있는 만큼, 다소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수용할 생각이었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헌데 스승, 이성준이 제시한 조건은 앞선 각오가 무색해질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다.
‘전담 호위와 인피니티 길드의 가입이 전부라니…….’
첫 번째 조건인 전담 호위의 경우는 사실 조건으로 내걸 것도 없었다.
사회의 법이나 도덕을 어기는 일이 아닌 만큼 일반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랐을 것이다.
두 번째 길드 가입은 더욱더 간단했다.
아니, 오히려 바라던 바라 할 수 있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인 만큼 곧장 조건들을 받아들이며, 뇌성운향신공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더 정진하겠습니다!”
“내 명예는 신경 쓸 필요 없고, 계약이나 철저히 지키도록.”
“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그리고 추후 연락들은 방금 내가 찍어준 번호로 하면 최대한 빠르게 답장해주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연신 고개를 숙여가며 감사를 표하고 있는 박선우를 향해 가벼이 손을 흔들어 준 이성준은 등을 돌리며 발걸음을 내딛어낸다.
터벅. 터벅.
그렇게 본래의 목적지라 할 수 있는 게이트를 향하고 있던 때였다.
우웅-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은 스마트폰의 진동음에 이성준 고개가 기울여진다.
그도 그럴 게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다.
굳이 알고 있다면 최측근, 혹은 가족뿐이었다.
허나 방금 전 집을 나선 만큼 가족들에게 연락이 올 일은 없었다.
‘누구지?’
궁금증이 동한 이성준은 곧장 스마트 폰의 액정을 확인했다.
[고태현, 부협회장 - 이성준 헌터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분이 협회에 찾아오셨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통화 한 통 부탁드리겠습니다.]
액정을 확인하기 전보다 오히려 궁금증이 더욱더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만남이었다면 고태현이 이렇게 연락을 해오지도 않았을 거다.
‘어떤 의미로든 상당히 중요한 만남이라는 거겠지.’
두 눈을 빛낸 이성준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러냈다.
“여보세요?”
-다행히 아직 게이트에 입장을 하지 않으셨군요.
안도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궁금증을 더욱더 증폭되어갈 때, 고태현이 다시 한번 입을 열어내며 만남을 요청해오는 인물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자잔 님께서 이성준 님에게 판매하고 싶다는 영약이 있다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