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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영웅왕이 살아가는 법-10화 (10/128)

10화

인펙스의 방어는 완벽했다.

교차한 네 개의 낫 발.

그게 공격을 받아낸 핵심이었다.

지금껏 나는 모든 게 원샷원킬이었다.

그 어떤 몬스터도 감당하지 못했던 펀치.

그럼에도 인펙스는 담담하게 막아냈다.

물론 온 힘을 다한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상당히 의외였다.

“재미있는 놈이네. 이거?”

―틀렸다. 흥미로운 상황 아님. 불쾌하다. 내 영토가 침탈당했다.

슬쩍 뒤로 물러난 인펙스.

녀석은 정화된 땅을 가리켰다.

차원 부식에 물들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신성력의 흔적이 남았다.

자그맣게.

‘근데 갑자기 영토라니?’

아무래도 양심을 내다 버리고 사는 모양이었다.

침략자가 무슨 소유권을 주장해?

원래 여기 살던 놈처럼.

“어이가 없네. 뻔뻔함이 아주 그냥 하늘을 뚫겠어.”

―표식을 먼저 넣는 자가 주인. 그게 바로 침탈자의 법칙.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어차피 너희끼리만 통용되는 관례잖아.”

―원주민의 의사는 고려 사항 아니다. 여긴 함량이 부족한 존재뿐.

“와! 진짜 혐오스러운 사상이네.”

짝! 짝!

나는 느릿하게 손뼉을 쳤다.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었고.

칭찬하는 게 아니었다.

비꼬는 거지.

이놈의 우두머리가 침탈자라 했던가.

행동과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문득 인펙스가 낫 발을 까딱거렸다.

도발은 아니고.

그냥 질문하는 거였다.

―미개한 인간한테 묻는다.

상당히 의외였다.

이놈과 정상적인 대화를 할 줄은 몰랐거든.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나.

몬스터가 인간에게 궁금한 것이 뭐 있다고.

그냥 잡아먹기 바쁘지.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어디 해 봐.”

―억제기와 같은 힘이 돌아다닌다. 이상하다.

“뭔 말을 하는……. 아, 그거?”

억제기란 차원 부식을 막기 위한 기물.

예언가가 만든 것이었다.

한울의 중심부가 멀쩡한 이유였다.

침탈자도 잘 아는 모양이었다.

하긴 차원 부식이 막혔으니.

영 기분 나빴겠지.

“이걸 말하는 건가 본데.”

츠츠츠츠츠!

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주변의 안개가 확 밀려났다.

동시에 지면이 정화되었다.

인펙스는 팔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무지하게 불쾌했나 보다.

방금의 내 행동이.

―위험! 위험!

“어이구! 그랬어? 근데 어쩌냐? 내가 온 이상, 그간 누리던 편한 세상은 다 끝났는데.”

―위협 인자는 제거한다. 목표물 소거 시작.

쉬쉭―!

인펙스는 대뜸 엄청난 속도로 쇄도했다.

자기 할 말만 주르륵 늘어놓더니.

대뜸 기습?

‘어지간히도 치사한 놈이네.’

지척까지 다가온 인펙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반응도 못 할 터였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일이니까.

물론 나는 아니고.

카앙―! 팅!

나는 녀석의 낫 발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다.

고작 가위처럼 만든 손가락.

하지만 인펙스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힘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놈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냥 나머지 두 개의 낫 발을 그대로 휘둘렀으니까.

“아? 팔이 네 개였지. 참.”

인펙스의 연쇄 공격은 상당히 정교했다.

휘두르는 간격이 거의 없을 정도.

하지만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옆구리를 내주면 되니까.

그러곤 주먹을 휘두를 뿐.

채챙! 쩌어어어엉!

두 번의 날카로운 쇳소리.

곧이어 굉음이 터졌다.

인펙스는 가공할 속도로 튕겨 나갔다.

짓쳐들어온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에이, 옷 다 찢어졌네.”

나는 가볍게 짜증을 냈다.

옆구리에 구멍이 뻥뻥 뚫렸거든.

이것도 새로 산 건데.

신상이라고!

오랜만에 누리는 현대 문물이지 않은가.

마음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새끼, 내가 옷값 톡톡히 받아낸다.”

나는 인펙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입술을 날름 핥으며.

놈은 비칠비칠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신성력 펀치를 정통으로 맞았는데.

꽤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번엔 거의 진심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맨주먹만으로 쓰러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흠……. 그럼 뭐로 조져 보지?’

나는 인펙스를 유심히 살폈다.

단단한 외골격.

유연하고 탄력 있는 근육.

엄청난 방향 전환에도 끄떡없는 관절.

막강한 체력까지.

저놈은 전투 병기나 다름없었다.

어지간해선 부서지지 않을 터였다.

방금 꽂힌 펀치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이게 좋겠네.”

나는 오른쪽 무릎을 든 채.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다음번 공격의 예고.

발차기라고 알려주는 움직임이었다.

거기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는지.

인펙스는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주변을 빙빙 돌 뿐.

약점을 찾으려고 저러는 듯했다.

‘근데 지금 나 전신이 빈틈투성인데?’

일부러 한 다리로 서 있지 않은가.

팔도 좌우로 쫙 펼치고.

불안정한 자세임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이윽고 녀석이 발걸음을 멈췄으니까.

확신이 섰겠지.

아니나 다를까.

쉬쉭―!

암살 메뚜기의 도약이 시작되었다.

‘아니, 아깐 사마귀라고 했었나?’

어쨌든 둘 다 날긴 하잖아.

놈의 기척은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럼에도 나는 학다리 자세를 풀지 않았다.

인펙스가 네 개의 낫 발을 휘두르려는 찰나!

빠아악!

나는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러곤 손날을 내리찍어 버렸다.

머리통에 작렬한 일격!

“발차기는 페이크였다. 이 순진한 자식아!”

―킈이이익! 비겁한 인간.

“웃기고 있네. 무슨 몬스터가 그딴 걸 논해?”

인펙스는 바닥에 쑤셔 박혔다.

위에서 가해진 충격 때문이었다.

마치 못처럼 꽂힌 것이다.

나는 그 상태로 강하게 내리눌렀다.

놈의 덩치는 나보다 두세 배는 컸다.

하지만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내가 힘이 훨씬 센 데다가.

신성력으로 무게까지 늘렸거든.

마치 무협에 나오는 천근추의 수법처럼 말이다.

“마무리는 역시 이거지!”

나는 슬쩍 한 발을 뒤로 뺐다.

그러곤 다리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이윽고 발차기가 인펙스의 머리통에 작렬했다.

순간적으로 음속을 돌파했는지.

굉장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독수리 슛!”

뻐어어어엉!

연륜이 느껴지는 네이밍 센스.

그래도 위력만큼은 탁월했다.

단단한 외골격이 박살 나고 말았으니까.

그것도 단 일격에.

인펙스의 머리는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손으로 이마에 차양을 쳤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관중은 없지만.

“축구로 하지 말고 야구로 하자. 이 정도면 홈런이네.”

* * *

인펙스는 죽었다.

그러나 안개는 물러가지 않았다.

이놈은 그냥 영역 확장 역할.

오염의 주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원 부식은 침탈자가 일으키는 거니까.

물론 기운의 농도가 떨어지긴 했다.

인펙스가 끌고 온 안개가 흩어졌기 때문.

“이제 가자. 너무 오래 있었어.”

나는 놈의 사체를 질질 끌었다.

다른 몬스터는 마정석만 챙겼지만.

얜 그럴 수가 없었다.

괴수급 아닌가.

그것도 특수 몬스터.

이 정도면 자랑할 만하지.

삐빅―!

도시 근처로 접근하자, 단말기에 통신망이 연결되었다.

날짜를 확인한 나는 입맛을 다셨다.

‘벌써 5일째야?’

차원 부식 속에서는 시간 감각이 이상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알 수가 없었으니까.

체감보단 훨씬 외유가 길었다.

척! 처적!

나는 방벽을 균열을 통과했다.

그러자 며칠 전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엠페러 크랩은 대부분 해체되었다.

거기다 슬슬 복구 작업에 착수하려는 모양이었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인부들이 몰려와 있었거든.

한데, 방벽 공사를 충혼관에서 담당하는 모양이었다.

정인훈이 현장 지휘를 하는 중이었으니까.

‘이럴 때는 또 열심히 하는 척하네.’

이제 충혼관이 없어지는 걸 노리진 않는 듯했다.

하긴 벌써 두 차례나 침입을 막아냈다.

별 피해 없이.

위에서도 효용 가치를 인지했을 터.

정인훈의 뜻대로는 안 될 가능성이 컸다.

이윽고 녀석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 태성 님?”

“오랜만이네.”

“아니, 대체 왜 이제 오셨어요? 그보다 밖으로 나가신 이유가 뭡니까?”

“그냥 상황 좀 알아보려고.”

“아이고! 저는 큰일이라도 나신 줄 알았잖아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자기 왜 이래?

내가 사라지길 바라는 놈이.

“입에 발린 말은 하지도 마.”

“크흠! 들켰습니까?”

“어허? 이제는 부인도 안 해?”

“농담이었습니다. 근데 뒤에 그건 뭐예요? 되게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만.”

“아, 이거? 괴수급이야.”

“……네?”

정인훈은 멍청하게 눈만 껌뻑거렸다.

대수롭지 않은 태도가 어이없었던 모양이었다.

반응이 격할 이유가 있나.

내가 놀랄 만한 일을 벌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 * *

소문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단신으로 괴수급 특수 몬스터를 잡았으니까.

인펙스는 사냥하기 까다로운 개체.

그래서 그런지.

더욱 반응이 거센 것 같았다.

“그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충혼관 앞에 진을 치고 난립니다. 그냥 인터뷰 한 번만 해주시죠?”

정인훈은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에 종일 시달렸거든.

물론 나는 인터뷰 같은 걸 할 마음이 없었다.

이놈이 징징거리든 말든.

왜냐고?

“그럼 신비로운 느낌이 안 살잖아. 너무 대놓고 공개해 버리면, 예언가인지 뭔지 하는 놈의 관심을 끌 수가 없어.”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곧장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생 좀 하더니.

드디어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하! 태성 님이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답니까? 신비주의를 고수하게?”

“비슷한 느낌이긴 하네. 충혼관에 내 팬클럽이 우르르 몰려갔다며?”

“팬이라기보단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고 저러는 거 같은데요?”

“그런 놈들하고 인터뷰하란 말이 나오냐? 이 새끼 완전 양아치네.”

“남의 집에 상전처럼 들어앉은 분이 할 말은…….”

뻐어억!

나는 정인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오랜만에 치니까 손맛 좋네.

아무래도 이 새끼는 미친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심각한 피학증에 걸렸다든지.

“하여간 매를 벌어요.”

기절해 버린 정인훈.

나는 녀석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었다.

그러곤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요즘 자꾸 단 게 당긴단 말이야.

활동이 잦아서 그런가.

아니, 거지 같은 것만 먹고 산 까닭인지도 몰랐다.

펜드리아나 마계는 음식이 형편없거든.

“근데 뭐 이런 것밖에 없어?”

정인훈의 냉장고는 부실했다.

암만 혼자 산다지만, 뭐가 너무 없는 거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다 먹은 건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어차피 이 녀석이야 충혼관에서 밥을 먹고 오지 않는가.

범인이 여기 있었네.

그럼 불평한 게 좀 미안해지는데.

나는 목 주변을 긁적거렸다.

겸연쩍은 얼굴로.

딩―동!

그런데 문득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찾아올 사람이 있나? 이놈 이거 친구 하나 없는 왕따인데.”

나는 정인훈을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워낙 정타로 처맞았거든.

아마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강제로 못 깨울 건 없지만.

직접 나가 보기로 했다.

냉장고를 거덜 낸 게 미안했거든.

덜컥!

“누굽니까?”

“으, 의인님?”

덥수룩한 수염의 뚱뚱한 남자.

어디서 봤더라?

B구역 관문 관리소에 있던 공무원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 히어로 영화 덕후?”

“예, 예. 접니다. 박종욱이요.”

“여긴 어쩐 일이지?”

“으허허!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왔죠.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든지.”

박종욱이라면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날 되게 우상처럼 받드니까.

적어도 내 정보를 팔아넘기진 않겠지.

“이놈은 왜 여기 자빠져서 자고 있어? 아무 데서나 자는 건 내 장기인데.”

바닥에 정인훈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박종욱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창고에 처박혀서도 잘만 자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정도는 일상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왜 찾아왔는지 의문이었다.

“기쁜 소식이 있다면서? 그게 뭐지?”

“아, 일단 이것 좀 보시죠.”

박종욱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내 사진과 이름.

플레이어 일련번호가 박힌 신분증이었다.

이건 나도 있는데?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박종욱이 손을 팔랑거렸다.

“뭐가 좀 다르죠?”

“그러게. 은색이군.”

나는 그제야 차이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두리 장식이 살짝 바뀌었다.

워낙 미세한 변화라 몰랐던 모양이었다.

신분증에 별 관심이 없기도 했고.

“실딱이……. 아니, 실버 티어로 승급하셨습니다. 이제 B급 시민과 같은 자격을 얻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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