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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영웅왕이 살아가는 법-13화 (13/128)

13화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딜 가나 꺼지라는 소릴 듣네. 내가 그렇게 못마땅한가?”

여신 엘리아야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스스로 가꾼 펜드리아가 폐허로 변해 버렸으니까.

하지만 지존 길드 놈들은 어떠한가.

몬스터 몇 마리 빼앗긴 것뿐.

고작 그 정돈데.

너무 반응이 거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수고.”

나는 여유롭게 표식을 꽂았다.

헬 카우의 사체에.

그러곤 유유자적 물러났다.

이러면 사냥터 관리인들이 수거할 터.

물론 내…….

아니, 우리 팀 명의로 말이다.

“저, 저런 미친놈이!”

얄밉게 생긴 탱커 녀석이 욕을 했다.

이름이 노현수였던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놈들과 치고받지도 못하는데.

굳이 힘 뺄 필요 있나.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었다.

이윽고 나는 적당한 곳에 몸을 숨겼다.

그러곤 지존 길드의 활동을 기다렸다.

마치 맹수처럼.

“으랏차!”

뻐어어어엉! 쿠궁!

이놈들은 학습 능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사라지자마자 다시금 풀링을 시도했으니까.

같은 자리에서.

그럼 어떻게 되겠나.

헬 카우 한 마리를 또 헌납하는 거지.

어째서 이렇게 잘 빼앗냐고?

어차피 노릴 만한 놈은 뻔하거든.

규모가 큰 무리를 건드릴 순 없으니까.

그러니 예측하는 건 매우 쉬웠다.

“…….”

지존 길드원들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화낼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벌써 몇 번짼가.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말이다.

멘탈이 터지지 않을 리가 있나.

“잘 먹고 갑니다.”

나는 표식만 남긴 채.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심하게 몸을 숨기고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잘 안 보이니까.’

사냥터는 방벽 바깥.

억제기의 힘이 약해지는 구간이었다.

안개로 인해 시야가 좁은 상태.

적당히 거리만 벌리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찾기가 매우 어렵거든.

몬스터야 워낙 큼지막해서 다 보이지만.

위이이잉―! 덜컥!

이윽고 사냥터 관리인이 접근했다.

중장비에 실린 헬 카우의 사체.

“엥? 영웅왕 팀 표식이라고 나오는데, 이게 맞아요?”

관리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표식은 영웅왕 팀인데.

근처엔 지존 길드만 있었으니까.

그러자 노현수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니, 이것 좀 보세요. 상도덕이 있지. 이래도 되는 겁니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고 나니.

관리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또 규정 어쩌고 해봐라.’

나는 속으로 칼을 갈았다.

이번에도 지랄한다?

함께 조져 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관리인의 대답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풀링이 되기 전에 전투가 벌어졌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암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아무 문제 없는데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회수해야 할 개체가 워낙 많아서.”

“…….”

단호한 대처.

상대가 지존 길드든 뭐든.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그 말을 끝으로.

관리인은 쌩하니 가 버렸다.

‘오호? 이건 합법이란 말이지?’

나는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냥터 관리인의 메시지.

그건 딱 하나였다.

싸우지 마라.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얼마든지 사냥을 방해해도 된다는 소리였다.

충돌만 하지 않으면 말이다.

그런데 그때.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워낙 큰 길드라 좀 불안합니다. 사냥 외적으로 뭔가 수작을 부릴 수도 있고요.”

강행군이었다.

녀석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반면에 김로니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저 바닥을 뒹구는 중일 뿐.

하나, 강행군은 나름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아마 암울한 미래를 직감한 듯했다.

지존 길드가 이걸로 시비를 건다?

그럼 오히려 땡큐지.

나한테 명분이 생기는데.

“괜찮아. 무슨 짓을 하든 다 조져버리면 되니……. 오호? 되레 떼로 덤벼주면 더 좋겠는데?”

작은 팀과 대형 길드의 분쟁.

승리자는 항상 규모가 큰 쪽이었다.

비단 한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지구도 똑같았다.

힘이 셀수록.

뭔가를 동원하는 역량이 강하니까.

‘사람이든 자금이든.’

어쨌거나 지존 길드와 붙으면 손해 볼 건 없었다.

아마 굉장한 이슈가 될 터.

당연히 내 인지도는 급격하게 치솟겠지.

어차피 마음에 안 들던 놈들이었다.

첫 만남부터 말이지.

도약의 발판으로 못 쓸 건 뭔가.

“어어? 팀장, 저놈들 또 사냥한다.”

“좋아. 잘 봤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만 해.”

나는 김로니의 민머리를 벅벅 긁어준 다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번에는 스틸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지존 길드는 멀리 이동한 상태.

저곳은 포위당하면 위험한 장소였다.

방벽과 한참 거리가 있어서, 유사시 지원이 늦거든.

‘다른 선택지가 없었겠지.’

벌써 몇 번째 목표를 빼앗겼나.

저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뒤따랐다.

이윽고 노현수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풀링 시도였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곧장 허공으로 솟구쳤다.

곧이어 몬스터의 뒤통수에 작렬한 킥.

뻐어어억!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가공할 발차기에 얻어맞은 헬 카우가…….

즉사하지 않은 것이다.

놈은 끼긱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시뻘건 안광을 번득였다.

“엥?”

나는 황당한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잖아.

지금껏 맹호급 이하는 전부 한 방 아니었나.

근데 이놈은 뭔가 달랐다.

이걸 처맞고도 멀쩡한 데다가.

주변의 다른 헬 카우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떼로 덤빌 것처럼.

“크워어어어!”

“크르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놈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나한테 얻어맞았던 녀석 또한 반격이 만만찮았다.

거대한 언월도가 날아들었거든.

‘아니, 뭔 몬스터 손에 저런 게 들려 있어?’

충격을 이겨낸 즉시 시작된 반격.

쑤후우웅!

“이크!”

나는 지면을 향해 뚝 떨어져 내렸다.

큼지막한 날붙이가 뒤를 바짝 쫓았다.

투웅―!

지면을 박차며 쭉 달려 나간 순간.

바닥에 무기들이 우수수 박혔다.

콰과과과곽!

“와우! 친구들. 이건 아니지!”

다행히 포위망을 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순간 가속력이 워낙 빨랐으니까.

놈들을 떨쳐낸 나는 시선을 홱 돌렸다.

지존 길드 쪽으로.

그들은 우르르 도망치는 중이었다.

이 상황을 예견했다는 듯이.

그러자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와! 머리 쓰는 수준 보소.”

일격에 죽지 않는 헬 카우.

냅다 튀는 지존 길드원들.

이 정도면 답이 딱 나오지.

‘이놈이 맹호급인가?’

날 뒤쫓는 헬 카우 무리.

그중 가장 덩치가 큰 녀석.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닐 터였다.

아마 우두머리겠지.

C구역 사냥터에 아주 가끔 출몰한다던 그놈.

“그래서 어그로가 한 번에 끌렸구나?”

잠깐 헬 카우 무리를 살펴보는 사이.

지존 길드는 이미 시야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안개가 워낙 짙어서 말이지.

성질 같아선 패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팬클럽 처리가 우선이었다.

안 그랬다간 불똥이 엄한 데로 튈 테니까.

우리 팀원들에게 말이다.

“어어?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강행군의 다급한 외침.

나는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가시거리가 좁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팀원들의 위치를 몰랐거든.

‘일단은 방벽 근처로 가자.’

안개가 짙어도 한울의 방향을 짐작하는 건 쉬웠다.

방벽이 워낙 높았으니까.

게다가 나침반을 봐도 되고 말이다.

추격전은 계속 이어졌다.

그냥 다 죽이면 되는데 왜 이러는 거냐고?

“나만 고생할 순 없지. 이 썩을 놈들 어디 갔어?”

사냥에 목마르지 않았나.

이참에 실컷 먹여 드려야지.

하나 지존 길드는 보이지 않았다.

방벽 근처로 와도 마찬가지였다.

진작 도망친 모양이었다.

헬 카우의 난동은 멀리서도 잘 보이니까.

“아, 이러면 나가린데.”

나는 괜히 방벽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후웅―! 퍼버벅!

날아드는 언월도를 모조리 피하면서.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거든.

내가 이래 봬도 이름 좀 날렸단 말이야.

물론 다른 차원에서지만.

쿵! 쿵! 쿵! 쿵!

“으아악! 매, 맹호급이다!”

“대체 누가 우두머리를 건드린 거야?”

“잔말 말고 튀어!”

이윽고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몬스터 무리가 사냥터를 어지럽혔기 때문이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브론즈나 아이언 티어니까.

대부분은 멘토가 있기 마련이었다.

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인간은 거의 없거든.

하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실버 이상의 멘토들도 도망치기 바빴다.

‘당연한 건가.’

맹호급은 실버 티어의 팀이 필요한 상대.

거기다 하수인 수십 마리가 붙었다.

골드급은 와야 해결될 상황.

‘이거 엄청난 민폐가 될지도 모르겠네.’

내 목적은 단순했다.

그냥 가볍게 혼내줄 마음?

하루 정도 공치게 할 작정이었는데.

일이 커져 버렸다.

그렇다고 다른 팀에 피해를 줄 순 없는 노릇.

지금이라도 되돌려야 했다.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지.

“그럼 어디 오랜만에 한 판 해보실까?”

나는 허공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빛줄기가 번득이며 터져 나왔다.

“초공간 격벽 해제.”

츠츠츠츠츠! 팟!

넘실거리던 빛줄기의 향연.

이윽고 길쭉한 형상이 드러났다.

큼지막한 검 한 자루가 내 손에 들렸다.

성스러운 백광을 토해내는 검신.

화려하게 장식된 손잡이.

여신 엘리아가 내린 성검 카드미엘이었다.

“찬란하게 죽어라. 악의 종자들이여.”

화르륵!

나는 성언(聖言)을 읊조렸다.

검신에서 치솟아 오른 불길.

그와 동시에 무시무시한 압력이 공기를 내리눌렀다.

사실 좀 웃긴 일이었다.

악의 종자.

펜드리아 사람들이 내게 붙인 별명 중 하나였다.

근데 뭐 어쩌겠나.

‘성언이 원래 이런데.’

스윽. 후웅!

나는 성검을 느릿하게 휘둘렀다.

혼신을 불태워 날린 일격?

결단코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횡으로 긋기만 했을 뿐.

여유로운 움직임과는 달리.

결과는 평화롭지 않았다.

쿠콰콰콰콰!

용트림하듯 쏟아져 나온 백색 기운.

거기에 헬 카우 무리가 휩쓸렸다.

녀석들은 그대로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휙! 화르륵!

나는 그대로 손잡이를 놓았다.

몬스터들을 향해선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그러자 성검은 자취를 감추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백색 화염과 함께.

“죽어서 신의 품에 안기든지 말든지.”

그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정지했던 건 아니고.

이미 죽어서 못 움직였을 뿐.

잠시 후.

헬 카우 무리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궁!

수백 조각으로 찢어진 몬스터 사체.

사냥터에 거대한 피바다가 생겼다.

나는 담담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을 쩍 벌린 플레이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별것도 아닌데, 되게 놀라네.’

피식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려던 찰나.

어디선가 김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팀원이라고 여기까지 따라온 모양이었다.

“팀장, 바보야?”

“엉?”

“이거 얼른 챙겨야지. 멍청하게 서 있으면, 저놈들이 다 빼앗아 간다?”

문득 사체 더미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이 슬금슬금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표식을 꽂기라도 하려는 모양.

저러면 소유권 주장이 가능하니까.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이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아!”

어? 아까 누가 나한테 한 말인 것 같은데…….

뭐 어때?

내가 언제는 얼굴에 철판 안 깐 적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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