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나는 개코다.
뜬금없이 이게 뭔 개소리냐고?
나를 지칭하는 별명은 무수히 많았다.
‘마황, 살육의 화신, 무자비한 학살자, 신의 깡패, 여신의 기둥서방 같은 게 있었지.’
하지만 마왕들은 꼭 ‘개코’라고 부르곤 했다.
그만큼 추적술이 뛰어났으니까.
특히 마기를 뒤쫓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관사로 되돌아간 나는 정인훈의 옷을 찾았다.
그러곤…….
“킁킁!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박종욱.
녀석은 기겁한 표정으로 나를 말렸다.
“개가 된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좀 별론데 말이야. 어쩔 수 없어.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거든.”
“그렇다고 빨래도 잘 안 하는 인훈이 새끼 옷 냄새를 맡아요?”
“뭔가 일이 있어서 튄 거 같은데, 얼른 찾아야지. 그리고 나 비위 되게 좋아.”
“굳이 그래야만 할까요?”
“잘 생각해봐. 정인훈이 왜 튄 거 같냐? B구역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던 놈인데.”
“어…….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바로 그거야.”
정인훈이 도망친 이유.
유추하는 건 쉬웠다.
정확한 내막까진 알 길이 없었다.
하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쫓고 쫓기는 게 우리 인생, 개만도 못한 것이 노비의 생.”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허공을 응시했다.
흩뿌려진 기운을 읽기 위함이었다.
사람에겐 고유의 파장이 있거든.
그런 건 흔적이 남기 마련이고.
한데, 그 모습이 섬뜩했던 모양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린 순간.
벌벌 떠는 박종욱이 눈에 들어왔거든.
“대체 그 무시무시한 노래는 뭡니까?”
“추노 해야지.”
“예?”
“노예가 도망쳤잖아.”
“…….”
박종욱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현관과 창문을 번갈아 보는 시선.
이 자식도 도망칠 각을 잡는 거 같은데.
“종욱아.”
“예, 예.”
“나 사람 되게 잘 찾거든? 그러니까 잘 새겨둬라.”
“뭘 말씀이시죠?”
“튀려고 발버둥 쳐봤자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남긴 후.
곧장 관사를 나섰다.
이제 도망친 노비를 원래 자리로 갖다 놓을 차례였다.
박종욱은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래도 고분고분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덕심과 공포심.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느낌이었다.
“으, 의인님?”
“왜?”
“설마 저도 노예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어차피 노예로 살 거면, 대감집에서 하란 말이 있잖아. 그럼 적어도 나한테 맞아 죽을 일은 없겠지. 안 그래?”
“오호? 그건 좀 괜찮은데요?”
이 녀석도 또라이 기질이 있어서 그런가.
의외로 금방 수긍했다.
쫄래쫄래 잘 따라오는 걸 보아하니.
공포심은 확 줄어든 듯했다.
‘그런데 말이야. 난데없이 재벌이라는 게 튀어나오지 않았나?’
추적하는 동안.
나는 정인훈의 집안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정철우.
정명 그룹의 총수이자 재정평의회 의원이었다.
권력과 금력을 한 몸에 지닌 괴물.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다.
반면에 어머니는 김미윤.
정 회장의 본처와는 이름이 달랐다.
‘그럴 수밖에. 한때 대단한 스캔들이 있었던 여배우니까.’
뻔하디뻔한 이야기였다.
위정자와 여배우의 지저분한 사생활.
거기서 탄생한…….
‘혼외자.’
정철우의 집안으로서는 감추고 싶은 오점일 것이다.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으면 좋겠지.
근데 그게 왜 지금인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난 그냥 노예만 잡으면 되거든.
“여기로군.”
흔적은 으슥한 창고로 이어졌다.
원래라면 이렇게 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터였다.
차원 부식이 방해했으니까.
하지만 정인훈과는 꽤 오랫동안 함께한 사이.
워낙 익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태가 별로 안 좋네.’
건물은 관리가 되지 않은 듯했다.
주변에 폐기물의 산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우욱! 냄새가 아주 그냥 끝내주는데요?”
“몬스터 부산물 같은데? 뭐 아는 거 없어?”
“유명하죠. 도저히 못 써먹을 부위만 버리는 곳입니다. 스케빈저들도 여긴 안 와요.”
스케빈저는 C구역 하층민들을 지칭하는 단어.
놀랍게도 그들은 사냥터 인근에서 활동했다.
플레이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폐품과 몬스터 잔해물로 생활하니까.
하나 스케빈저들도 이 창고에는 접근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박종욱 또한 고개를 흔들었다.
“안 와?”
“의인님이야 초월적 존재라서 괜찮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냥 평범한 아저씨라고요.”
“안 죽으니까 그냥 따라와. 내 별명이 개코였다고 했지? 어떤 유독 가스도 다 감지할 수…….”
푸쉬이이이―!
겁에 잔뜩 질린 박종욱.
녀석을 설득하려던 순간이었다.
불현듯 노란색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가스에 노출되었고.
박종욱은 비명을 질렀다.
“으악! 거봐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래도 데리고 가진 못할 것 같았다.
암만 설명해 봐야 소용없어 보였으니까.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거든.
‘에이, 이걸 안 맞았어야 하는 건데.’
이런 날벼락에 당할 줄 누가 알았겠나.
꽤 위력적인 유독 기체긴 했다.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한테 영향을 끼칠 수 없기에 무시했을 뿐.
‘여신 닮아서 그런지 권능도 융통성이 없네. 기분이 더럽잖아. 기분이.’
아쉽지만 혼자 들어가야 했다.
만약 정인훈을 설득해야 한다면.
박종욱보다 좋은 선택지가 없는데.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더럽게 의심스러운 곳이네.”
창고는 폐기물 섬 한가운데에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투박한 모양새의 로봇이 돌아다녔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녀석들이었다.
‘이래서 여기만 깨끗한 건가?’
요란스럽게 돌아다니던 로봇.
놈들은 한순간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끼긱?”
“끼기긱?”
괴상한 소리.
뭔가 말을 건다기보단.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느낌이었다.
새삼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쟤들 입장으론 황당하겠지.
폐기물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나는 로봇을 무시한 채.
창고로 향했다.
퍽! 퍼퍽!
목표 지점의 근처.
문득 짜릿한 소리가 들려왔다.
둔탁한 물체로 후려갈기는 듯한 타격음.
내가 또 그런 쪽 전문이라서.
매우 잘 알지.
‘타격 부위의 지름은 7cm, 길이는 대략 1m 정도로군. 음……. 야구방망이인가?’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윽고 창고 내부를 살펴보았다.
기대 가득한 눈으로.
안쪽에는 의자에 묶인 남자가 있었다.
연신 휘둘러지는 길쭉한 무언가.
그들의 손에 들린 건…….
울퉁불퉁한 쇠 파이프였다.
“아, 이걸 틀리네.”
너무도 큰 실망감.
육성이 절로 터지고야 말았다.
그러자 고문을 가하던 두 놈이 고개를 홱 돌렸다.
“웬 놈이냐?”
“그래. 웬 놈이시다.”
와장창!
나는 안으로 몸을 쑥 집어넣었다.
창문을 완전히 박살 내면서.
유리 파편이 스쳤다.
하나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건 내 몸에 상처를 입히지 못하거든.
쇠 파이프를 든 두 남자.
놈들은 무기를 거칠게 휘둘렀다.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후웅!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내가 저딴 걸 무서워할 리가 있겠나.
“정장에 선글라스라니, 고전적이로군.”
성큼성큼 좁혀지는 거리.
두 놈은 협박 방식을 바꾸었다.
의자에 묶여 있는 남자.
정인훈의 머리통을 겨눈 것이다.
여차하면 박살 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위를 차지했다고 느꼈는지.
한 녀석이 입꼬리를 뒤틀어 올렸다.
아무래도 저놈의 신분이 더 높은 듯했다.
“이 쓰레기와는 무슨 관계지?”
“음……. 동거인?”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지껄이는 건가? 간도 크군. 하긴 그 정도 담력이 아니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안 되겠네. 다른 놈에게 질문해야겠군.”
스윽.
쇠 파이프를 까딱거렸다.
정인훈의 눈앞에서.
“네놈이 대답해 봐라. 저자는 누구지?”
하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정인훈이 뜬금없는 소리를 뱉어냈기 때문이었다.
“……제발 하지 마세요.”
“뭘?”
“당신한테 말하는 거 아니니까 닥쳐!”
“뭐, 뭐?”
난데없는 외침.
두 남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지금 잡혀 온 놈이 맞나 싶겠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태도였으니까.
“그냥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하지만 나는 정확히 알아들었다.
누굴 보고 하는 말인지.
물론 꺼져줄 마음은 없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왜?
“싫은데?”
투웅―!
나는 지면을 강하게 지르밟았다.
충격파와 함께.
깨진 콘크리트 조각이 허공에 떠올랐다.
두 괴한이 놀라는 순간.
나는 이미 목표 지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곳은 바로 정인훈의 앞.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뒤.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안 돼!”
노예 녀석이 슬로 모션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되돌리기엔 늦었다.
쩌적!
딱 두 번의 펀치.
그와 동시에 괴한들의 대갈통이 사라져 버렸거든.
이윽고 시체가 힘없이 쓰러졌다.
휘리릭! 척!
공중으로 튕겨 나간 선글라스가 빙글빙글 떨어졌다.
나는 중지와 검지를 펼쳤다.
척!
손가락 사이에 정확히 꽂힌 선글라스.
나는 그걸 느릿하게 쓰며 말했다.
“구출 완료.”
“으아아악!”
그 순간.
정인훈은 발작적으로 괴성을 질렀다.
의자가 부서질 듯 퍼덕거리면서 말이다.
기껏 구해 줬는데.
대체 왜 저러냐고?
‘그야 이놈만 곤란해지니까.’
괴한들은 정명 그룹에서 보낸 해결사.
아마 불법적인 일들을 대신 해 주는 놈들이겠지.
정인훈을 감시하는 역할.
딱 봐도 답 나오잖아.
근데 그런 자들이 죽었다?
정명 그룹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앞으로 세상에 나가겠다. 당신들과 맞서 싸우겠다.”
“헙!”
정인훈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내가 이토록 정확히 꿰고 있을 줄은 몰랐겠지.
투둑! 털썩!
가벼운 손짓.
의자에 묶여 있던 밧줄이 단번에 끊어졌다.
무릎을 꿇은 녀석.
이내 어이없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 그걸 어떻게?”
나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이를 드러내며.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
“돌아갈 시간이다. 노예야.”
“제가 어째서 노옙니까?”
정인훈은 발끈했다.
아무리 처맞아도 바득바득 기어오르는 또라이 새끼.
그게 이놈의 정체성이었지?
이래서 골려 먹는 맛이 있단 말이야.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혼자 정명 그룹하고 싸울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든가. 이 꼴을 보면, 걔들이 아주 좋아하겠어.”
머리 없는 두 구의 시체.
정인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쭈뼛거리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뭔가 계획이 있어서 이런 일을 벌이신 거죠? 그렇다고 해 줘요. 제발!”
그렇게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런 거 없는데?”
“…….”
정인훈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