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S구역 대학 병원의 1인실.
깡마른 남자가 번쩍 눈을 떴다.
두통이 상당한 듯.
신음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으윽!”
한참 뒤.
그자는 힘없이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야 통증이 잦아든 모양이었다.
“여긴…….”
흐릿한 시야.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린 머릿속.
남자는 수액 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이곳은 병원이었다.
기억을 더듬는 순간.
발차기를 날리는 사람이 떠올랐다.
“헉!”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대체 왜 여기에 누워 있는지 말이다.
벌떡 일어난 남자는 거울을 응시했다.
덥수룩하게 긴 머리칼.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
공허한 눈빛.
이자는 앵글러 길드의 부길드장.
마스터 급 탱커 천지환이었다.
“기습인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대놓고 접근했으니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피할 기회는 충분했던 것 같았다.
단지 상대가 너무 빨라서 놓쳐 버렸을 뿐.
터엉!
“빌어먹을.”
천지환은 거울을 후려갈겼다.
주먹에 유리 파편이 으스러졌다.
그러나 생채기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초능력이 육신을 보호한 덕분이었다.
탱커 특유의 방어력.
자신의 피부는 총알도 막아낼 정도였다.
“그런데도 기절해 버렸다고? 단 두 방에?”
발차기에 이은 펀치.
골이 울릴 정도로 강력했다.
변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가 없었다.
천지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드기처럼 들러붙는 기억.
어떻게든 떨쳐 보려 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형상이 자꾸만 생각났다.
펄쩍 뛰어오르며 찰지게 펀치를 꽂던 순간이.
“그런데 평상복 차림 아니었나. 방어구도 없이 A구역 사냥터를 돌아다닌다고?”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냥터에 있는 걸 보면.
플레이어는 확실했다.
한데, 혼자서 다니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인적 드문 최외곽 지역을.
“연습 좀 해 보려다가 별 봉변을 다 당하는군.”
천지환은 마스터 급 탱커.
원래 S구역 사냥터에서 활동해야 했다.
그러나 굳이 거기까지 간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스킬 때문이었다.
“생긴 것만 멀쩡했어도 이 고생은 안 했을 텐데…….”
천지환은 늑대 인간의 모습이었다.
거기까진 뭐 괜찮았다.
변신하는 플레이어야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형태가 너무 혐오스러웠다.
일반적인 늑대 인간이 아니라.
언데드 같은 외형.
그래서 오랫동안 스킬을 봉인해야만 했다.
실력만큼 이미지도 중요하니까.
“지독한 난관이야. 별 게 다 발목을 잡는군.”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천지환은 실적을 미친 듯이 쌓았다.
그러나 번번이 마스터로 시즌을 마쳤다.
비슷하게 평가되던 자들은 기어코 그마를 달고야 말았다.
자존심이 깎여 나갔다.
결국에 몬스터화 스킬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깨졌다. 이름도 모르는 놈한테.”
랭킹 페이지를 한참 뒤졌다.
하지만 어제 그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마스터거나 그 이하라는 의미.
자신과 비슷한 티어일 것이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압도적인 격차로 발리지 않았나.
그런데 그마도 아니라고?
“크으으!”
천지환은 괴로워했다.
동료들이 자신을 제칠 때만큼 모멸감이 느껴졌다.
앞으로 또 얼마나 추월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다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강퍅한 얼굴.
깨진 거울 속에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영혼이 갉아 먹히는 듯한 고통.
이를 해소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놈을 찾아야 해.”
하나, 천지환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근데 가서 뭘 하지?”
거기까진 떠오르지 않았다.
도전해 봤자 뭐가 다르겠는가.
또 개같이 처맞기만 하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벌컥!
그런데 불현듯 문이 열렸다.
이곳은 앵글러 길드의 전용 병실.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는 장소였다.
이렇게 거침없이 들어온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어났나.”
“…….”
무심한 한마디를 툭 던진 자.
천지환의 친형.
앵글러 길드의 마스터 천지혁이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혈한.
인상은 딱 그런 인간으로 보였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피떡이 되어 돌아온 동생을.
냉철한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니까.
걱정 따윈 한강에 갖다 버린 듯했다.
“무슨 일이지? 네가 병문안을 다 오고.”
“그렇게 보였나. 과일 바구니나 꽃도 없는데, 해석이 너무 자유분방하군.”
“그럼 대체 왜 왔는데?”
“경고 및 임무 부여. 다른 놈을 보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아서.”
“그 빌어먹을 놈의 사무적인 말투는 좀 치우면 안 돼?”
“지금은 일 때문에 왔으니까.”
“평소에는 본인이 따뜻한 줄 아나 보군.”
“물론 그건 아니지.”
으르렁거리는 천지환.
최선을 다해 받아쳐 봤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애초에 말싸움으로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얼른 할 말이나 하고 꺼져. 사람 속 긁지 말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니 기분이 좋군.”
“젠장!”
“지랄하지 말고 듣기나 해. 복수는 꿈도 꾸지 마.”
“왜?”
“말로 해서 알아들을 놈이 아니니, 설명은 넘어가지. 신정부에서 S구역 경비 지원을 요청했어. 당분간 그쪽으로 출퇴근해.”
툭. 찌이익!
눈앞에 떨어진 서류 봉투.
천지환은 곧바로 찢어 버렸다.
마스터 급 탱커에게 무슨 경비 업무란 말인가.
그런 명령을 내릴 길드장은 단 한 명도 없을 터였다.
“그럴 줄 알고 몇 장 더 가져왔지. 어디 계속 찢어 봐. 직원들 시켜서 트럭째 배송해줄 테니까.”
서류 봉투가 연속으로 날아들었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천지환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겠으니까, 이제 꺼져!”
하나 천지혁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무감정한 눈빛으로 병실을 쭉 훑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갔을 뿐.
천지환은 침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떨쳐지지 않았다.
“내가 얌전히 창고나 지키고 있을 거 같아? 두고 봐라. 반드시 그놈을 찾아갈 테니까.”
그 무렵.
복도로 나온 천지혁.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저벅. 저벅. 뚜르르르.
일정한 간격의 구두 소리와 신호음.
이윽고 통화가 연결되었다.
천지혁은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 팀장, 내 동생 건드린 놈 신상 파악해 와.”
* * *
안타깝게도 말살급을 발견하진 못했다.
A구역 외곽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결과는 꽝이었다.
벌써 여기서 헤맨 것만 며칠째.
더 이상은 무리였다.
계속 소득이 바닥일 수는 없으니까.
“아무래도 그 늑대 새끼가 다 처먹은 거 같은데.”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이곳에 말살급이 드물긴 했다.
근데 어찌 이리 안 나올 수 있겠는가.
운이 없었다고 하기엔 너무 심했다.
누가 쓸어갔다는 게 신빙성 있지.
‘그나저나 몬스터로 변신한다고? 거대화보다 좋아 보이던데.’
성능 자체는 나무랄 게 없었다.
외형이 좀 괴상하긴 했지만.
좀 역겹게 생긴 게 뭐 어때서.
몬스터만 잘 죽이면 되지.
“손맛도 괜찮은 편이었던가.”
적당히 봐줬다면.
단 두 방에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탱커의 개입이 좀 크긴 했다.
그놈 때문에 서둘렀으니까.
어쨌든 앵글러 길드와의 분쟁은 간단하게 끝났다.
먼저 친 건 나고.
숨겨야 하는 건 저쪽.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그냥 없던 일로 처리한 것이다.
‘실수로 사람을 박살 냈는데,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물론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그놈의 과실도 있지 않은가.
그런 모습으로 사냥터를 돌아다녔는데.
“그래도 잘 해결됐잖아. 자, 그럼 다시 한번 달려 볼까?”
“이러다 A구역 상위 사냥터도 금방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끝을 통통 튕기는데.
정중동이 말을 붙였다.
나는 잠시 팀원들과 합류한 상태였다.
잠시 휴식하기 위함이었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였다.
한데, 올 때마다 몰골이 심각해졌다.
‘아주 그냥 상거지가 따로 없네.’
저렇게 될 만도 했다.
사냥터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거든.
나야 오물 범벅이 되고도 잘만 살았다.
마계에선 그게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얘들은 평범한 플레이어.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었다.
“너흰 좀 더 쉬어.”
“휴식이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제발 씻게 좀 해주세요!”
문득 이승제가 처절하게 호소했다.
나는 이제야 알아차린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미 눈치는 챘는데.
모른 척한 거였다.
에이, 이걸 못 넘어갔네.
“아! 그게 문제였어?”
“아니, 팀장님은 간지럽지도 않으세요? 진짜 찝찝해서 죽을 맛입니다. 집에 좀 갑시다. 예?”
“그러게. 100억이나 들여놓고 몇 번 들르지도 못했네.”
“하하……. 그것 보세요. 지금 이건 비정상이라니까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마리만 더 잡고 가자. 딱 한 마리만.”
“으아악!”
이승제는 물고기처럼 팔딱거렸다.
하지만 나는 딴청을 피웠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저러다 제 할 일을 할 거거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사냥터를 쭉 훑었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대충 감이 왔다.
어디로 가면 몬스터가 있을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런 나의 초감각은 번번이…….
“틀렸네.”
지도 앱을 보면서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었다.
포인트에서 다소 과감하게 벗어나 봤는데.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좀 줄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좀 많이 이상해. 뜸해도 너무 뜸하잖아.”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언제나 적중했다.
재수 없게도.
나는 곧장 합류하려 했다.
팀원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런데 웬 차들이 캠프 주변에 세워져 있었다.
사냥터 관리인들이 타는 오프로드 차량.
딱 봐도 그거였다.
“이게 다 뭐야?”
“아! 팀장님!”
질문을 던지며 들어가는 순간.
정중동이 튀어나와서 반겼다.
이윽고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를 가리켰다.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차가운 눈빛.
날카로운 인상.
거기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까지.
사냥터에서 볼 법한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엔 정명 그룹 해결사인 줄 알았다.
선글라스만 쓰면 비슷해 보이거든.
하지만 그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최태성 씨 되십니까?”
남자는 내게 말을 걸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행동은 정중한데.
태도는 무례한 느낌.
왠지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슬쩍 턱을 들며 답했다.
“그런데?”
“잠시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이건 또 뭔 주말 드라마 같은 전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