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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영웅왕이 살아가는 법-36화 (36/128)

36화

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 끝난 거 아닌가?

갑자기 왜 이래.

“왜?”

―아직 끊으시면 안 됩니다.

“아니, 또 뭐가 있어?”

―그야 당연하죠. 요즘도 휩쓸고 다니시지 않습니까? 민원이 엄청납니다. 몬스터가 없어서 죽겠다네요.

터틀 베어 사냥터.

A구역에서 가장 안정적인 곳이었다.

혼자 다니는 데다가.

말살급이 자주 출몰하지도 않고.

부산물 가격도 높은 편이었으니까.

“플레이어가 사냥하는 걸로 뭐라 하면, 대체 어쩌자는 거지?”

―그래서 이 말씀을 드리려고요. 최태성 씨와 정중동 씨의 승급 절차를 단축하기로 했습니다. 조만간 따로 연락이 갈 거예요.

“오호? 그럼 플레티넘이 되는 건가. 정중동은 다이아겠군.”

―네. 신분증 교체를 비롯한 업무는 조금 기다리셔야 할 테지만, A구역 상위 사냥터에는 곧장 출입할 수 있을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터틀 베어가 괴수급치곤 꽤 쏠쏠한 놈이긴 했다.

하나 상위 등급에 비빌 수는 없었다.

말살급은 훨씬 비싸게 팔릴 테니까.

대충 몇 주만 썰고 다녀도.

당겨쓴 팀 자금을 메꿀 수 있겠지.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 독차지하지 말고, 더 높은 곳으로 꺼져라. 이거지?”

―표현이 좀 거칠긴 합니다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좋아. 낮은 데로 가라는 것도 아니고, 얼른 비켜 드려야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준다는 게 이런 거였군.”

―하하! 너무 뻔했나요?

“아니야. 괜찮았어. 그럼 다음에 밥 한 끼 사.”

―예? 그거 제가 해야 하는 말 아닙니까?

“초인관리부를 상대로 길드전은 안 걸었잖아. 지금이라도 망나니 칼춤 좀 춰 줘?”

―아, 아닙니다. 그땐 국밥보단 비싼 거로 대접해 드리죠.

“그래.”

뚝.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기묘한 느낌이 뒤통수를 간질거렸다.

끼긱거리며 돌린 시선.

그러자 팀원들이 보였다.

초롱초롱한 눈빛.

무슨 레이저를 쏘는 듯했다.

“왜 이래? 징그럽게.”

정중동은 꽤 점잖은 편이었다.

가끔 또라이짓을 하긴 해도.

김로니만큼은 아니거든.

근데 그놈마저 저러고 있으니.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비싼 걸 얻어먹는다고요? 당장 우린 전투 식량으로 때우고 있는데?”

“김로니 좀 보십시오. 밥이 없어서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근손실을 걱정하는 놈이!”

이승제와 강행군은 열변을 토했다.

팀원을 끼워 팔면서까지 말이다.

그러자 김로니가 양은 냄비에 고봉밥을 퍼넣으며 대꾸했다.

“아저씨, 밥 있어. 좀 줘?”

“…….”

체력 훈련을 늘렸다더니.

그냥 탄수화물이 당겼던 모양이었다.

강행군은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미친 것들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살심이 마구 솟구친단 말이야.

“그래서 뭐?”

“커흠흠! 기왕 좋은 거 드시러 가는 김에 다 함께하자는 거지요. 우린 한 팀 아닙니까?”

이번에는 정중동이었다.

이 녀석도 하향 평준화가 된 듯했다.

머저리들한테 물이라도 든 건가.

“예전보다 수백 배는 잘 벌게 되었으면서, 거지새끼들이 따로 없네.”

“아직 정산이 안 됐으니까 그렇죠. 빌라 매매에 팀 자금 100억을 꼬라박았잖습니까?”

“중동아.”

“예.”

“팩트 폭행도 폭행이야. 뒈질래?”

“그런 말씀은 정산부터 하고 하시죠?”

“아, 금방 갚는다고!”

영웅왕 팀은 투 트랙 체제였다.

내가 사냥하는 건 따로 떼는 것이다.

이러면 팀 전체 수익이 증가하고.

팀원들도 불만 없는 금액을 만질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각자 잡은 만큼 가져가는 거니까.

덕분에 자금 사정은 회복세였다.

물론 정산까지는 아직 남았지만.

‘이러니까 내가 무슨 악덕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인 것 같잖아?’

연예인…….

아니, 플레이어 착취의 주범이라니.

왠지 나쁜 놈이 된 듯했다.

“잔말 말고 출정 준비나 해. 오늘부터는 A구역 상위 사냥터에 전부 출입할 수 있으니까.”

“오오!”

“통화 내용을 다 엿들었으면서, 이건 왜 모르는 거냐?”

“별로 쓸모없는 내용이니까요.”

“돈 되는 일인데 왜?”

“그야…….”

정중동은 말꼬리를 흐리며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나는 이놈들이 왜 이러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말살급을 너희들끼리만 상대하는 건 좀 어렵겠네.”

“저야 동 티어라서 어찌어찌 버틸 수 있겠지만, 나머진 진짜 골드 현지인이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이승제는 그나마 괜찮았다.

골드 티어에 오래 있었고.

클래스가 힐러니까.

하지만 김로니와 강행군은 이제 막 올라온 상태.

아마 사냥은 꽤 어려울 것이다.

종일 해봤자 한 마리나 겨우 잡겠지.

그러자 자칫 실수라도 하면?

몰각 각 아니겠나.

‘훈련을 시킬 수도 없고, 난감하네. 나하고는 아예 강해지는 방법이 다르잖아.’

플레이어의 성장 방식은 대략 두 가지였다.

레벨을 올림으로써 스킬과 스탯을 얻거나.

옵션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나는 여신의 권능뿐.

그렇다고 날로 먹은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꽤 강한 힘을 지니긴 했으나.

적들은 훨씬 강했으니까.

뼈를 깎는 수련과 실전.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지옥 훈련이라도 시작해 볼까?”

“그런다고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럴 시간에 몬스터 하나를 더 잡는 게 좋겠지. 그래도 김로니의 저질 체력이 개선되긴 했잖아. 밤낮없이 신나게 굴려서 말이야.”

“그건 저놈이 조루라서…….”

정중동의 말이 옳긴 했다.

플레이어에게 개인 수련은 비효율적이다.

레벨과 템빨이 깡패인 업계.

훈련은 쓸데없이 힘만 빼는 일이었다.

결국에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나눠서 가야 할 거 같은데. 괜찮겠어?”

“물론이죠. 이제 괴수급 정도는 저희 넷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팀원들은 나의 보조를 받아왔다.

안 그러면 위기를 너무 많이 맞게 되거든.

다들 나사가 하나씩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숱한 실전을 겪은 결과.

결점은 어느 정도 보완된 상태였다.

김로니는 저질 체력을 극복했고.

강행군과 이승제도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실제로 더 좋은 게 걸리지는 않았다.

뽑기 운이 없을 때.

잘 대처할 수 있게 된 것뿐.

“좋아. 그럼 잘들 하고 오라고.”

“네, 맡겨만 주십시오.”

팀원들은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들을 불러들여야만 했다.

정인훈의 연락 때문이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바로 출발하시죠.

“잠깐, 스톱!”

나는 팀원들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러곤 반대편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사냥터가 아니라, 팀 사무실로 가야만 했으니까.

“아니, 대체 왜 만날 이랬다저랬다 하세요. 사냥이 장난이야?”

“팀장, 혼자 가려니까 무서워? 아이고! 어떡하냐? 우쭈쭈. 우쭈쭈.”

이승제와 김로니의 개소리가 잇따랐다.

어지간히도 빡친 모양이었다.

“닥쳐!”

물론 녀석들은 딱밤을 한 대씩 얻어맞아야만 했다.

빠박!

“끄아악!”

감정이 실려서 그런지.

골이 빠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팀 사무실.

건물은 이미 완공되어 있었다.

물론 내부가 개판인 건 똑같았다.

“인부들 숙소로 쓸 공간인데, 이따위로 해놓다니……. 방 정리 안 하는 정인훈답네.”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지.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진 상태였다.

우리는 물건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돌아다녀야 했다.

반대편 출구로 나가자, 정화된 땅이 눈에 들어왔다.

듬성듬성 개간 중인 땅.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

내 팬클럽이었다.

“여, 바쁘냐?”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정인훈은 서둘러 일을 마무리했다.

그러곤 이쪽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바깥에서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까, 일단 들어가시죠.”

“저 쓰레기장에서 작전 브리핑을 하자고?”

“엄연히 사람 사는 곳인데요? 어지러워 보여도 다 질서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건 어디다 쓰는 건데?”

나는 플라스틱 원판을 집어 들며 말했다.

물건 더미에 함께 있던 거였다.

무슨 뚜껑이나 그릇처럼 보이는데.

뭔지는 나도 몰랐다.

정인훈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엉뚱한 소리만 지껄였다.

“어? 그건 뭐죠?”

“야이! 다 질서가 있다며.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치워.”

“넵! 일단 설명부터 하고요.”

나는 손가락을 팡팡 튕겨 보였다.

그러자 정인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화이트보드를 가져오고.

지도에 핀을 꽂았다.

그러더니 작전 개요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과정은 간단합니다. 이승제 씨의 루트대로 진입해서 물건을 빼낼 거예요.”

“근데 이건 뭐야? 지도에 폭탄 표시가 되어 있네.”

“종자에다 가축까지, 가져올 물건이 워낙 많고 죄다 부피가 커요. 개구멍으로는 절대로 못 꺼냅니다.”

“그래서 방벽을 터트릴 거다?”

“네, 그래서 작전명이 불꽃놀이죠.”

“은밀한 잠입 액션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화끈하군.”

역시 찔끔찔끔 보다는 크게 한탕 하는 게 낫지.

어차피 훔칠 건데 말이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인훈은 다이너마이트로 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그러곤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작전은 완벽합니다. 돈을 얼마나 갖다 부었는데 실패란 있을 수 없죠.”

“얼마나 썼길래?”

“최근에 번 거 전부요.”

“…….”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숙소를 구한 이후.

피눈물을 흘려가며 돈을 벌었다.

못해도 한 70억은 모였을 텐데.

그걸 다 썼다고?

팀원들 또한 황당한 눈빛이었다.

이윽고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심전심이었다.

“아니, 그걸 왜 다 쓰냐고. 이 또라이야!”

“정산도 못 받았는데!”

“이거 완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네!”

“조져!”

영웅왕 팀은 발길질을 날렸다.

한마음 한뜻이 된 건 처음인 듯했다.

하나 정인훈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실컷 처맞는 순간에도 말이다.

“아니, 폭약 자체가 존나 비싸다고 이 무식한 새끼들아!”

“…….”

사자후 같은 외침.

일순간 매타작이 멈췄다.

하지만 정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내가 사형 선고를 내려 버렸거든.

“그 정도로 큰 건이면, 상의부터 했어야지.”

“…….”

정인훈은 할 말을 잃었다.

물론 녀석은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폭탄을 그 가격에 샀겠지.

하지만 독단적으로 결정한 건 맞잖아.

“유죄 맞네. 끝장내.”

“그러췌!”

퍽! 퍼벅! 퍽!

팀원들은 다시금 발길질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당신들이 사냥 간다고 연락을 안 받……. 꾸엑!”

물론 정인훈의 항변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놈들이 지금.

짐승이나 다름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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