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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영웅왕이 살아가는 법-41화 (41/128)

41화

불현듯 들려온 음성.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 이거 되게 짜증 나네.’

만약 여기가 마계였다면?

후방을 내주는 순간.

최소 중상이었다.

어떻게 대응한다 해도 후속 공격에 절명할 터였다.

마왕군은 엄청나게 많지만.

용사는 하나뿐이거든.

성질 더러운 나한테 동료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그래서 초감각을 갈고 닦았다.

권능 중에 가장 하찮았으나.

목숨을 수도 없이 구해 준 기술.

‘근데 그게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단 말이지.’

차원 부식의 영향이었다.

PTSD가 스멀스멀 올라오려 했다.

수도 없이 당했던 암살 기도.

그 순간들이 기억났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예 쓸모가 없진 않으니까.’

여신의 권능은 극한의 상황에서 성장하는 힘.

초감각이 강해진다면.

저 빌어먹을 안개도 꿰뚫을 수 있을 거다.

언젠가는.

새롭게 주어진 난관 아닌가.

불편하긴 해도 호승심이 일었다.

그런데 문득.

방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예 무시해 버리다니, 좀 어이가 없군요.”

멀뚱히 서 있던 강퍅한 인상의 사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구더라?”

“하! 그리 실컷 두들겨 패놓고, 피해자도 몰라본단 말인가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파렴치하시네요.”

“아아, 알지. 알지. 천지호.”

“천지환입니다.”

“알아! 저 이름이 더 유명해서 먼저 떠올랐을 뿐이거든.”

“한울의 셀럽 중에 천지호라는 인물은 없습니다만.”

“그런 게 있다면 있는 줄 알아.”

솔직히 억지를 부린 거였다.

얼굴은 곧바로 떠올랐다.

모를 리가 없지.

두 번이나 박살 낸 놈인데.

만나자마자 곧장 알아보긴 했다.

이름만 기억하지 못했을 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

‘그나저나 왜 찾아왔어?’

되게 불편했다.

이놈하고 마주하면 괜히 뜨끔한 마음이 드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가.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다고.

어쨌든 그냥 어물쩍 넘기려 했다.

무슨 의도도 찾아왔든.

대충 응대해 주고 얼른 보내야지.

그런데 문득 기묘한 반발심이 일었다.

“아니, 근데 두들겨 패다니? 딱 두 대밖에 안 때렸다고. 고작 그거 처맞고 나가떨어질 줄은 몰랐지.”

“…….”

“그러니까 누가 몬스터처럼 하고 다니래?”

천지환은 벌린 입을 어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헛웃음만 짓고 말았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좋습니다. 그거야 제 잘못도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어차피 합의도 다 끝난 일 아닙니까.”

“진작 그렇게 나와야지. 근데 혼자선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들어왔냐?”

“최태성 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도 다 방법이 있죠.”

“그래? 그럼 굳이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그야…….”

천지환은 별안간 뒷말을 삼켰다.

대수롭지 않은 듯하더니.

뭔가 턱 걸린 듯했다.

말하기 힘든 속사정이라도 있나.

물론 그러든 말든.

나야 별 관심이 없었지만.

잠시 가만히 서 있던 천지환.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찾아온 거다?”

“답을 알 수가 없어서 이곳저곳 들러 보는 중입니다.”

“호오? 이거 흥미로운 주제로군.”

나는 뭔가를 포착했다.

어중간한 태도.

갈피를 못 잡는 눈빛.

분명 방황하고 있었다.

잘만 하면 영입이 가능할 것 같달까?

그러나 천지환이 늘어놓은 건.

내 예상과 사뭇 달랐다.

“최태성 씨도 보셨겠지만, 요즘 여론이 장난 아닙니다. 저를 단두대로 끌고 가려고 할 만큼 격하죠.”

“그래? 난 잘 모르겠던데.”

“뉴스를 잘 안 보십니까?”

“어, 내 거만 봐.”

“저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더 저를 비난하는 기사와 댓글만 눈에 들어오나 보군요.”

“여론이 그래서 뭐?”

“솔직히 말하면, 견디기가 너무 힘듭니다. 아예 플레이어 활동 자체에 회의가 생길 정도로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길드를 향한 불신?

그런 거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회한이라.

이미 마음이 떠난 듯했다.

‘이러면 어렵겠는데?’

팀에 마스터 급 탱커가 들어온다면?

최상위 등급 사냥터로 가는 지름길이 열릴 것이다.

지금처럼 깨작깨작 올라갈 일은 없겠지.

실적도 엄청난 속도로 쌓일 테고.

하지만 영입은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혹시 뉴스에 나왔던 테러범들 기억하십니까?”

“잘 모르는데.”

“그자들을 찾아볼 작정입니다.”

“왜?”

“해답을 얻으려고요.”

아마 이 녀석은 수많은 지인을 만났을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

그걸 확인하고 싶었겠지.

단지 댓글이 고통의 모든 것은 아닐 테니까.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을 터.

테러범들과의 재대결?

그런 걸 원하는 건가.

‘안 돼. 훠이! 꺼져. 얼른 꺼지라고.’

영웅왕 팀의 영입 대상.

그건 너무도 명확했다.

배신하지 않고 충실히 명령에 따를 것.

우리가 하는 짓들을 알게 된다면.

천지환이 어떻게 나오겠나.

폭로든 뭐든.

끔찍한 결과만 나오겠지.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 터.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이곳에는 해답이 없어.”

“저도 압니다. 그냥 궁금해서 찾아와 봤습니다. 당신은 어쩌고 있는지.”

“근데 테러범들은 어떻게 찾을 거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죠. 그들처럼 어둠이 되어볼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중2병 같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천지환은 이미 발길을 돌린 상태였다.

저 굳건한 신념을 박살 내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몸의 대화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저놈하고 각별한 사이도 아니고.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있겠나.

‘얼마든지 찾아보라지.’

게다가 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충분히 극복할 능력이 되니까.

하나, 좀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역대급 빌런을 만들어 낸 느낌.

“적당히 팰걸. 좀 심했나?”

* * *

천지환이 떠난 이후.

나는 가제트 구울을 본격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윅?”

진동하는 악취와 멍청해 보이는 듯한 울음소리.

언데드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

하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놈은 수십 개의 만능 팔을 뽑아내더니.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그야말로 칼질의 향연이었다.

‘돌았네.’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서 대응할 틈이 없어 보였다.

무협에 나오는 검벽이나 검막.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접근이 쉽지 않은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플레이어일 경우에 말이다.

콰직―!

“팔이 많아 봤자, 제대로 쓰지 못하면 거치적거리기만 할 뿐이지.”

나는 뼈 칼의 측면을 후려쳤다.

그러자 가제트 구울의 팔들이 크게 출렁이는 게 아닌가.

마치 도미노처럼.

강한 힘에 밀려 연쇄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충격은 몸에도 전해졌다.

놈은 춤을 추는 것처럼 휘청거려야 했다.

그러는 동안.

연계 공격은 맥이 끊겼고.

“대응을 못 해? 그럼 뒈져야지.”

쩌어엉!

옆구리에 꽂힌 주먹 한 방.

가제트 구울은 자지러졌다.

신성력이 가득 담겨 있었거든.

고통이 상당한 모양인 듯.

퍼덕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일격에 끝장나진 않았다.

한동안 발광하던 녀석.

그러더니 대뜸 변형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츠르르릇! 처적!

팔이 여섯 개로 확 줄어들었다.

개수가 감소한 만큼 굵어진 모습.

그래서 힘은 더 세 보였다.

‘맷집도 꽤 좋고. 루돌프보다 재밌겠는데?’

썩은 냄새만 빼면 최고의 장난…….

아니, 사냥감이었다.

형체를 바꾸는 게 슬라임 같기도 하고 말이다.

퍽! 퍼벅! 쿵!

무지막지하게 쏟아진 철권 세례.

가제트 구울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골로 가버린 것이다.

나는 곧장 마정석을 뜯어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뼈 칼.

전부 돈이었다.

가제트 구울의 부산물은 저게 핵심이거든.

아, 물론 마정석만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굉장히 좋은 도구였다.

손잡이만 달면 바로 쓸 수 있으니까.

“이럴 줄 누가 알았겠어?”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나지만.

놀랍게도 뼈 칼은 위생적이었다.

기이한 항균 효과가 있거든.

이게 그래도 아이템에 속하는 물건이라.

옵션이 붙을 수 있었다.

기본이 ‘항균’이라는 게 희한했지만.

“돈맛 죽여주네.”

한 마리에 대략 5분 남짓?

일단 찾기만 하면 잡는 건 쉬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이놈들의 특성을 파악한 뒤론.

욕지거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아, 또 도망치고 지랄이야.”

가제트 구울의 습성.

그건 도주였다.

불리하다 싶으면 냅다 빼는 게 일상이었다.

보통 몬스터는 호승심이 강한데 말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한 방에 죽여야 했다.

도망가기 전에 조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눈치가 더럽게 빠르거든.

이상한 기류를 엄청나게 잘 알아챈단 말이지.

확률은 딱 절반.

살기를 감추지 못하면 귀찮아진다.

‘이것도 나름 수련이 되겠군. 노림수를 숨기는 측면에서 말이야.’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공격.

최고의 효율을 내기 마련이었다.

원래 모르고 처맞는 게 아픈 법이니까.

타다다닷!

나는 가제트 구울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빠르게 몸을 띄운 뒤.

뒷덜미에 돌려차기를 먹였다.

쩌억! 쿠웅!

“크르륵!”

가제트 구울은 힘없이 무너졌다.

목뼈가 가루로 변했거든.

달리다가 나자빠지니까.

무슨 눈썰매처럼 미끄러졌다.

녀석의 등에 올라탄 나는 잠시 레저 스포츠를 즐겼고.

이내 중간 정산을 해보았다.

“후! 많이도 잡았네.”

그간 잡은 건 20마리.

활동은 대략 10시간 정도였다.

나쁘지 않은 결과 아닌가.

하루에 말살급을 이만큼이나 잡다니.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서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었다.

가시거리가 꽤 넓었음에도 말이다.

“마치 뼈를 수집하는 마왕이 된 듯한 느낌이로군. 이름이 스컬른 콰리우스였나.”

취향이 독특한 마왕이었다.

그놈의 최후는 예술이었다.

자신이 모은 백골 더미에 파묻힌 채.

골통이 부서지고 말았으니까.

내가 똑같이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죽어서도 즐기라고.

하지만 이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때 좀 심했던 것 같았다.

“나름 재미있긴 하네. 지옥에서 온 정복 군주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야.”

나는 뼈 무더기에 걸터앉았다.

스컬른이 이런 식으로 위신을 높였던가.

뒤편이 둥그렇게 넓으니.

왕좌 같은 느낌이 들긴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일단의 무리가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장난기가 돋아올랐다.

나는 그자들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근엄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죽음을 찾아왔는가.”

사냥터에 울려 퍼진 음산한 목소리.

그들은 곧장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나를 몬스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인간형이 아예 없진 않으니까.

한데, 선두의 남자가 낯익었다.

‘그때 시비 걸던 지존파 새끼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은 남자 이름을 대체 왜 기억하겠는가.

재수 없게 생긴 놈.

머릿속에 박힌 건 딱 그 정도였다.

‘근데 표정이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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