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인터넷은 레이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하나, 내 일상은 평소와 똑같았다.
이중희와 함께 사냥하는 게 전부.
오늘도 운전은 박종욱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알아봤어?”
“아, 단독주택 말씀이시죠? 물론입니다. B구역부터 리스트를 쫙 뽑아 놨지요.”
“천궁 그놈이 사는 데는?”
“그…… 정신머리가 좀 이상한 원거리 딜러요?”
“조금 아니고 많이. 어쨌거나 얼마쯤 해?”
“자세한 건 자료를 뒤져봐야 알겠지만, 못 해도 7천억쯤 할 겁니다. 가장 작은 곳이요.”
“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극한의 인플레이션이 만연한 세상.
현금 가치가 나락으로 꼬라 박혔다.
그렇다 쳐도 금액이 너무 컸다.
C구역 빈민들은 평생 7천만 원도 만져보지 못하니까.
“레이드 1위 자리를 차지하고도 A구역에 집 한 채를 못 하다니.”
“다들 초인관리부와 지휘권 계약을 맺는 이유죠.”
“그럼 여기저기 노예처럼 동원되어야 하잖아.”
“영웅왕 팀은 규모가 작아서 더욱 심하게 부려 먹힐 겁니다.”
“내가 그래서 뭣 같아도 참고 빌라에서 사는 거야.”
무상노동을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 같은 고오급 인력을 날로 처먹어?
괘씸하지 않은가.
신정부의 악독함을 욕하고 있을 때.
문득 차가 멈춰 섰다.
사냥터에 도착한 것이다.
“수고했어.”
“뭘요. 돈 받고 좋아하는 일 하는 건데요. 그럼 나중에 뵙죠.”
“그래. 근처에서 좀 쉬고 있어.”
나는 봉투 하나를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박종욱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넣어둬.”
“전 진짜 괜찮은데요.”
“레이드에서 꽤 벌었거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의인님!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원래 하던 일만 잘해 줘도 되니까,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
“넵!”
씩씩한 대답.
간이고 쓸개고 다 빼다 바칠 듯한 얼굴이었다.
‘다루기 쉬워서 좋네.’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주냐고?
사회생활을 오래 한 건 아니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았다.
좀 떴다고 오만하게 군다?
순식간에 골로 가기 마련이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그럴 때를 대비해야 했다.
힘이 되어줄 동료라든지 말이다.
‘레이드도 그래서 참여해 준 거니까.’
강동식 또한 중요한 인맥이었다.
아마 장관의 입지는 확 올랐을 것이다.
레이드 성공은 사실 본전이었다.
못했을 때만 욕 처먹는 일이거든.
하지만 신의 한 수가 있었다.
직접 꽂아 넣은 인물이 1위에 등극했으니까.
나는 박종욱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때마침 밴 한 대가 멈춰 서는 게 아닌가.
덜컥!
“여, 재밌는 일을 벌였더라?”
문을 열며 나타난 건 이중희였다.
유쾌한 음성.
과장된 몸짓.
하지만 내심을 숨길 순 없었다.
이놈에게 그리 달가운 소식은 아닌 모양이었다.
입술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거든.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무슨 일?”
“레이드 1위 말이야. 흔치 않은 기횐데, 그걸 확 잡아 버렸네.”
“그래서 그렇게 빡친 건가?”
“누가?”
“너 말이야.”
“에이, 애도 아니고 고작 그런 거로 샘을 낼까?”
“그렇다고 하기엔 다리를 너무 떠는군.”
“…….”
이중희의 얼굴에 큰 파문이 생겼다.
불편한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까닭이었다.
더 이상은 감출 수가 없었다.
이윽고 녀석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젠장, 하필이면 몸값을 갑자기 높일 게 뭐냐고. 이러면 계약한 의미가 없어지잖아.”
“어차피 소규모 팀 입장 금지령이 철회되지 않는 한 조건은 똑같아. 뭐가 문제지?”
“그다음이 곤란하거든. 이번 일이 끝나면, 정식으로 영입 제안을 하려 했다고.”
“아, 그거?”
역시나 이중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스카우터들처럼.
사실 가장 거부감이 덜했다.
차근차근 알아가는 방법이었으니까.
‘어지간한 길드장보다 얘가 영입을 더 잘하는 것 같네.’
물론 응할 마음은 없었다.
난 수수료 떼이는 게 정말 싫거든.
“지존 길드 다음은 앵글러였나?”
“천지혁도 널 찾아갔어? 추진력 좋네. 그 아저씨.”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아. 다 거절했거든.”
“왜?”
“비싼 거 사준다면서 국밥집에 데려가더라고. 내가 진짜 마니아인 줄 알았나 봐.”
“초인관리부 청사 앞에 자주 들르긴 했잖아.”
“그거야 볼일 때문이고.”
“온라인에 나도는 건 그냥 유언비어였군.”
이중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기분 좋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으니까.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분간은 김칫국 마시도록 그냥 놔둘까?’
괜히 초 쳐서 사냥에 지장 가는 것보다야.
그편이 낫겠지.
벌써 선 그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장관령이 해제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곧장 사냥터로 진입하려 했다.
그런데 이중희의 목소리가 다시금 발길을 붙잡았다.
“쟤들 또 왔네. 넌 왜 만날 기자를 달고 다니냐?”
“이제 워낙 유명해져서 말이야. 부러우면 너도 명성을 좀 얻든지.”
“와! 레이드에서 1등 하더니, 사람이 변했네. 이전보다 훨씬 더 뻔뻔해졌어?”
“미안하지만 난 그대로거든. 게다가 쟤들은……. 기자가 아니라, 팬클럽인데?”
“또 헛소리한다. 으휴!”
“진짜라니까, 속고만 사셨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중희를 남겨둔 채.
나는 인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곧이어 환호성이 들려왔다.
“꺄악!”
“영웅왕 님! 여기 좀 봐주세요!”
“사인 부탁드려요!”
사냥터 앞은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
플레이어 외에는 접근이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제 난간에 딱 붙어 있었다.
그저 소리만 지르는 중이었다.
이중희는 멍청하게 눈을 껌뻑거렸다.
열화와 같은 반응에 놀란 듯했다.
“아니, 이게 진짜라고? 믿을 수가 없군.”
“부러우면 너도 레이드에서 1등 먹든지.”
“그게 됐으면 진작에 했지. 아예 참가도 못 했는데 무슨.”
“그런 주제에 영입 제안을 한다고? 당근이 엄청나게 크지 않으면, 씨알도 안 먹힐걸?”
“…….”
나는 곧장 인파를 향해 다가갔다.
사냥터 관리인들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고가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내가 해결하지. 당신들은 원래 자리로 복귀해도 돼.”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공연히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군.”
“아, 아닙니다. 인파 통제도 저희 업무인데요.”
나는 관리인들을 돌려보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원래 이런 건 정말이지 젬병인데 말이야.
자리와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고.
닥치니까 또 다 하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까지 유명해진 이상.
적당한 이미지 메이킹은 필수지.
‘이런 걸 팬 서비스라 했던가.’
나는 셀럽이 된 기분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백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떨릴 만도 한 상황이었다.
하나 나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마왕군 앞에서도 당당했는데.
이 정도야 쉽지.
하지만 입을 열 틈이 없었다.
환호는 비명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었으니까.
“아니, 나 말 좀…….”
“꺄아아아악! 너무 멋있어요!”
“끄와아아악!”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팬 서비스를 하러 오지 않았나.
화낼 필요는 없었다.
말을 들어 처먹지 않는 게 좀 빡치긴 했지만.
‘그래. 이보다 더한 역경도 헤쳐나왔잖아?’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평정심.
그게 바로 용사의 자질 아니겠는가.
마음을 추스른 나는 이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닥치고 줄 서. 이 새끼들아.”
“…….”
* * *
이중희는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사냥하는 내내 저러는 중이었다.
“푸하하핫! 팬 서비스가 욕이라니, 진짜 웃겨 뒈지겠네.”
“조용히 해라. 쪽팔리니까.”
나는 성검을 신경질적으로 휘둘렀다.
콰직! 쑤컹!
그러자 물소 괴인의 머리통이 단번에 떨어져 나왔다.
맞은 데가 거의 가루가 될 정도였다.
과도한 신성력이 작용한 탓이었다.
그러자 이중희는 더욱 신나게 키득거렸다.
“에헤이! 성질난다고 부산물을 다 때려 부수면 어떡하나?”
“이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전투 중엔 별별 일이 다 있잖아?”
“거의 다 잡은 놈 막타만 친 건데, 무슨 소리야. 이번 거는 뿔 값 제하고 계산한다?”
“젠장할!”
“어이쿠! 또 욕지거리. 이거 완전 버릇이었네.”
솔직히 험한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날 찾아온 팬들인데 말이다.
하지만 안 빡칠 수가 있겠는가.
내 말을 들어 처먹질 않는데.
아무래도 정상적인 팬심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했다.
‘곤란해하는 날 보며 희열을 느낀다고나 할까?’
시원하게 지르고 나니, 질서는 금방 회복되었다.
내 기세가 그들을 압도했으니까.
어쨌거나 사냥에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런 사고를 치고 왔으니 말이다.
“푸흐흐흐!”
곁에서 깐족거리는 새끼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았다.
저 웃음소리를 멈추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듯했다.
아가리에 펀치를 쑤셔 박는다든지.
한데, 사냥이 막 끝난 직후였다.
두우우웅!
뜬금없이 기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좀 이상한데?”
“뭐가?”
“이거 말이야.”
나는 대지의 흔들림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중희는 태연하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뭐가 문제냐는 듯이.
“여긴 S구역 사냥터야.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가 수두룩하지. 네가 상대했던 마동왕만 한 놈도 있어. 물론 전투력은 한참 낮지만.”
진동을 발걸음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의견은 달랐다.
“지진이야.”
“엉?”
“단순한 몬스터의 난동이 아니라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한울은 지난 수십 년간 지진이 없었어.”
그건 나도 잘 아는 바였다.
한국은 지진이 잦지 않은 편이니까.
그러나 내 기감은 확실했다.
진동이 땅속 깊은 곳에서 시작되었음을.
“아니, 진짜 그럴 리가 없다니까? 내기할래?”
“좋아. 뭘 걸 건데?”
“지진이 아니면 나랑 정식으로 계약하기.”
“호오? 그런 식으로 후려치시겠다?”
“대신 네가 이기면, 차 한 대를 선물해 주지. 내가 보유한 것 중에서 말이야.”
이중희의 뻔뻔한 내기 제안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속셈이 뻔히 보였으니까.
그래도 보상이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아마 좋은 차를 많이 갖고 있겠지.
오랫동안 상위 티어에 머물렀을 테니.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싸움이거든.
“좋아. 돌아가서 확인해 보자고.”
“그래.”
우리는 동상이몽을 꾼 채, 사냥터 대기실로 복귀했다.
그런데 지진 경보가 있었는지를 알아보려던 찰나였다.
쿠구구구구! 투쾅―!
난데없이 엄청난 진동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게다가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다.
시커먼 무언가가 지면을 뚫고 올라온 것이다.
놈은 방금 막 열린 게이트에 몸을 끼워 넣었다.
덜컹!
“이게 대체 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