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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영웅왕이 살아가는 법-65화 (65/128)

65화

피잉―!

화려한 불빛이 허공을 수놓았다.

나수연은 넋을 놓고 있었다.

상대는 파멸급 특수 몬스터.

지하왕 네파.

혼자 처바를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힘을 좀 빼놓긴 했다.

하나 누가 달려들든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도전자의 패배로 말이다.

하지만 지하왕은 그야말로 매타작을 당하고 있었다.

“아아…….”

그녀는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한데, 불현듯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강철남과 천지혁.

두 사람은 다 죽어가는 표정이었다.

“누님. 그거 구경하실 시간 있으면, 저희 좀 어떻게 해주시죠.”

“이것 좀 보라고. 정말이지 뒈질 뻔했다니까?”

두 사람은 너스레를 떨었다.

몸 곳곳에 난 상처.

꽤 심각해 보였다.

하지만 시선이 가지 않았다.

영웅왕의 활약이 너무 압도적이었으니까.

저 엄청난 장면을 놓쳤다간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나수연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거 안 보여?”

“보입니다만.”

“근데도 고쳐 달라는 소리가 먼저 나와? 넋 놓고 구경해도 모자랄 판에.”

“그거야…….”

천지혁이 말꼬리를 흐리며 옆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강철남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우린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저런 괴물을 나는 왜 모르는데?”

“그러게. 세상에 관심 좀 가지고 살아라. 만날 투기장에서 애들이나 패지 말고.”

영웅왕은 저평가되고 있었다.

활약의 상당 부분이 묻혔고.

이슈라고 해봐야 잠깐이었다.

하지만 마동왕 때부터는 달라졌다.

공략 영상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울의 태도도 변했다.

신정부의 체면을 살려준 결과였다.

어쨌거나 나수연은 영웅왕의 이름도 몰랐다.

“스읍! 제대로 말 안 해? 부러진 데 또 맞으면, 아플까? 안 아플까?”

그녀는 철퇴를 빙글빙글 돌렸다.

무시무시한 협박.

두 사람은 양손을 번쩍 쳐들었다.

잘못 개겼다간 뼈도 못 추릴 터였다.

투기장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인물 아닌가.

강철남과 천지혁은 앞다투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너희 둘만 영입할 목적으로 정보를 차단했다?”

“딱히 그랬다기보단 굳이 퍼트리고 다닐 이유가 없었던 거지. 알잖아. 이쪽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말이야.”

“그래서 누가 이겼는데?”

나수연의 질문에 두 사람은 어깨를 으쓱했다.

영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으니까.

“아무도.”

“지존 길드랑 앵글러 길드를 마다했다고?”

“어이가 좀 없긴 한데, 그럴 만하기도 해.”

“너희들이 담기엔 저자의 그릇이 너무도 컸겠지. 상식적으로 길드장보다 훨씬 강한 길드원이 어디 있겠냐?”

“크흠! 그 정도로 막 엄청난 차이는 아니라고.”

강철남의 변명에 나수연은 빙그레 웃었다.

지하왕을 곤죽으로 만드는 중인 영웅왕.

몬스터를 상대로는 엄청난 위용을 보였다.

하지만 PVP는 다르다.

자신 또한 투기장에서 최강을 다투는 중이지 않은가.

“오랜만에 피가 끓는군.”

그녀는 호승심 가득한 눈으로 영웅왕을 응시했다.

“저기 누님. 집중하시는 건 좋은데, 일단 치료부터 하면 안 될까요?”

“닥쳐 봐. 난 이게 더 중요하니까. 아프면 병원 가든지.”

“그…… 병원은 리스폰 장소가 아닌데요?”

“어휴! 이걸 확!”

나수연은 머리 위로 철퇴를 번쩍 들었다.

하나, 이내 힘없이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았으니까.

결국에 그녀는 본분부터 다하기로 했다.

* * *

콰직!

성검이 짓쳐 들어갔다.

체내에 왕창 쏟아진 신성력.

지하왕은 한 마리의 생새우가 되었다.

퍼덕거리며 발광한 것이다.

통증이 어마어마하겠지.

독극물이 체내를 휘젓는데.

“키에에에―!”

구슬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멸급 몬스터의 위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놈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반격을 시도한 것이다.

피비비비빙―!

세 갈래의 꼬리에서 솟아난 시퍼런 빛.

청색 기운은 채찍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기다란 끈에 칼을 달아 놓은 느낌이네.’

나는 곧장 성검을 갖다 대 보았다.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푸캉!

굉장한 반발력.

손아귀를 울리는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팔이 튕겨 나갈 정도였으니까.

아무래도 한꺼번에 처리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원래 힘이 강하면 머리가 고생하지 않아도 되지만.

“가끔 잔대가리 굴려서 이득 볼 수도 있는 법이지.”

나는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대폭 올라간 성신장갑의 출력.

그러자 기상천외한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자면.

90도 이상으로 꺾는다든지.

멈췄다가 반대편으로 튀어 나간다든지 말이다.

이 모든 게 거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이루어졌다.

효과는 확실했다.

지하왕의 공격이 흐트러졌으니까.

“호오?”

하나 나는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꼬리의 추격을 떨치지 못했거든.

그 말인즉.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게 아니란 의미였다.

“무슨 검술 같네.”

지하왕은 공격은 치밀했다.

마치 그물처럼.

피할 곳을 점점 지워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응 또한 매우 빨랐다.

내가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포위하듯 독침이 날아들었다.

지금처럼.

취리릿―!

“에헤이! 왜 이러실까?”

나는 짧게 혀를 찼다.

다 잡아가던 놈 아닌가.

결정타를 먹이지 못해서 시간만 질질 끌다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이 상황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냥 패야지. 뭐.’

나는 비행 속도를 올렸다.

상대에게 되레 몸을 바짝 붙였다.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파격적인 시도는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쳐봐라. 나도 칠 테니까.”

터어엉―! 콰직!

옆구리에 상당한 충격이 느껴졌다.

놈의 꼬리가 작렬한 것이다.

하지만 성신장갑의 출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틀어진 자세를 제어하며 그대로 날아들었다.

착지는 역시.

‘슈퍼히어로 랜딩이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성검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빛의 폭풍이 시작되었다.

쩌어어엉!

“킈이이이!”

지하왕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마구 뒤틀었다.

아마 수많은 공격을 받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치명적인 상처는 처음인 듯했다.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면 말이다.

“어휴! 이놈 털 빠지는 거 봐. 짐승 털갈이하냐? 아, 몬스터는 짐승이 아닌가?”

나는 지하왕을 찰지게 두들겨 팼다.

잔소리 대마왕이 된 것처럼 말이다.

콰직! 스가각―!

뭉툭했던 성검은 점점 제 모습을 갖춰갔다.

3단 기어의 안정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하왕의 껍질은 순식간에 깎여 나갔다.

이윽고 녀석은 손질된 새우처럼 변해 버렸다.

“오우! 미안하다. 너무 벗겼네.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집게발과 독침도 완벽하게 박살 났다.

속살만 남은 갑각류.

지하왕의 모습은 딱 그 꼴이었다.

이제 먹히는 것 말고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윽고 녀석은 대지에 머리통을 처박아 버렸다.

싸울 의지가 남지 않은 것이다.

‘이놈도 대화가 되려나?’

승패는 갈렸다.

지금은 빨리 목숨을 거둬 주는 게 자비로운 거였다.

하지만 나는 악명 높은 용사.

이런 기회를 날려 먹을 위인이 아니었다.

정의감?

그게 뭔데.

“야, 패딩아. 들리냐?”

나는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축 늘어졌던 지하왕이 퍼덕거렸다.

마계어가 먹힌 것이다.

물론 패딩이라는 단어는 몰랐겠지.

―네놈은 누구냐?

곧이어 놈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렸다.

인펙스와 비슷한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발음하기엔 구강 구조가 영 이상했거든.

나는 곧장 질문을 던져 보았다.

“겔드라그라고 알아?”

―내가 먼저 물었다. 대체 어떻게 마계어를 할 줄 아는 거지?

“허허! 이 정신 나간 놈 좀 보소. 지금 너랑 내가 대등한 관계냐?”

슈웅! 빠아악!

나는 미사일처럼 날아가서 양발을 뻗었다.

성신장갑의 추진 능력을 활용한 드롭킥.

지하왕은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100kg이 넘는 무게가 쏜살같이 날아가 박혔다.

아마 고통이 엄청날 터였다.

―끄으으으!

“자, 이제 위치 파악이 좀 되셨나?”

―아무리 괴롭혀도 원하는 걸 얻진 못할 것이다. 내 의지는 결단코 꺾을 수…….

퍼억! 퍼벅! 퍼버벅!

털린 새끼가 입만 살아선.

덜 처맞았나 보다.

아직도 개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 보면.

나는 이놈의 몸 위에서 프로 레슬링 경기를 펼쳤다.

“다음 기술은 뭐로 할까? 너도 이제 기대되지?”

―크허억! 그, 그만!

“그래서 겔드라그하곤 어떤 관계라고?”

―다 말하겠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이미 시작된 기술은 멈출 수가 없단다.”

콰직!

나는 공중에서 720도를 돌며 떨어졌다.

그러자 지하왕의 꿈틀거림이 멈췄다.

충격이 한계를 넘어버린 모양이었다.

새하얗게 변한 녀석의 눈.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오우! 이러다 뒈져 버리면 안 되지. 미안. 미안. 고쳐줄게.”

츠츠츠츠츠!

황급히 일으킨 신성력.

곧장 상처 부위를 다독여 주었다.

한데, 지하왕이 괴성을 지르는 게 아닌가.

“킈이이이이!”

“아, 참. 너 몬스터였지? 대화하다 보니까 사람으로 착각했네.”

몬스터에게 신성력은 독극물.

그 사실은 마계나 여기나 똑같았다.

지하왕은 치를 떨었다.

―크으으으! 마왕보다 더욱 지독한 놈이로다.

“호오? 마왕의 존재를 알고 있어?”

―알다마다.

“침탈자하고는 다른 건가?”

―물론이다.

“그럼 겔드라그는?”

―내가 모시는 분과 꽤 친밀한 관계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달까?

“……!”

나는 눈을 크게 치떴다.

사실 어느 정도 의심하긴 했다.

아예 다른 차원에 간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마계에선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거 꽤 큰일인데.’

침탈자와 손을 잡은 마왕.

떠올리자마자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근데 이 고민을 왜 하고 있지?

난 이제 용사도 아닌데.

정확하게는 의무만 싹 벗어던진 거잖아.

굳이 건드릴 이유는 없었다.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이윽고 지하왕이 사념파를 보냈다.

―나도 그 이상은 모른다. 그러니 깔끔하게 죽여라.

하지만 이대로 끝낼 마음은 없었다.

이 썩을 놈은 내 숙소를 박살 낸 장본인이잖아?

그럼 절대로 곱게 죽어서는 안 되지.

“야, 인마. 저게 대체 얼마짜린 줄이나 알아?”

―화폐라는 게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우린 그딴 거 없다.

“허! 이놈 말본새 좀 봐라?”

―나는 우리 종족의 긍지를 다했다. 그대도 인간을 대표하는 자로서…….

나는 지하왕의 살덩이를 확 잡아챘다.

이 자식이 뭔 개소리야?

스산한 웃음이 절로 머금어졌다.

“적어도 셈을 치러야 한다는 건 아네?”

―그게 무슨 소린가.

“손해 배상을 못 하겠으면 다른 식으로 갚아야지.”

―이해할 수가 없군. 우리한텐 화폐가 없다니까?

“누가 그런 거 달래?”

―그럼 뭘 원하는 건가.

“어차피 너한텐 선택지 따윈 없으니까, 난리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몸으로 갚아야 하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아,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네.”

녀석은 불안하게 꼬리를 꿈틀거렸다.

나는 지하왕의 커다란 눈알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 맛있냐?”

그러면서 코앞의 살덩이를 콱 깨물어 버렸다.

식감은 보리새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꽤 잘 팔리겠는데?

―크아아악! 이런 의미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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